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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38
추천수 :
138
글자수 :
158,650

작성
21.06.01 10:00
조회
93
추천
2
글자
7쪽

12. 물 건너편에 1

DUMMY

12. 물 건너편에





정강이 끈을 질끈 동여매고 속도를 낸다.

산세가 험해진다. 어서 빨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산다.


‘내가 정녕 여기서 뭐 하는 거냐. 내가 정녕 여기서. 이 앞 대가리 털을 밀어버린 이놈들과 같이. 난 돌아가야 해. 어서 돌아가야 해. 하지만 큰물을 나 혼자 어떻게 건너냐고. 일단 이 새끼들을 기회를 봐서 어쩌게 해버리고 갈 거다. 눈만 껌뻑여봐라.’


오치무샤가리(落武者狩り) 당하는 걸 눈으로 직접 보니 인간이 인간으로 안 보인다. 농민도 자애로운 농민이 아니다. 적병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아무리 이시가루(농민 차출 보병) 조오효오(잡병)라고는 하나, 그래도 전장에서 적병을 찌르고 베며 전쟁을 치렀는데, 농민들은 숫자를 앞세워 죽창을 들고 패잔병 사냥 오치무샤가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가 있기 일주일 전에 지났던 곳. 그들은 분명 미소까지 띠며 길가에서 멀리서 온 군대를 조아렸다. 고로,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서 온 부대이고 어느 경로로 돌아갈지 알고 있었다.


대밭에서 궁지에 몰려 걸린 무사. 발견한 농민들은 눈이 돌아갔다. 훌륭한 갑옷과 숙련공이 공을 들였을 두 자루의 길고 짧은 칼. 농민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무사가 칼을 빼 들어 능숙한 자세와 보법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긴 죽창을 든 무리는 탐욕의 거친 숨을 쉬어 앞발을 디뎠다. 무리로 동그랗게.


무사의 등 뒤로 빽빽해지는 대나무 때문에 더 갈 곳이 없었고, 전장이든 싸움이든 등을 보이면 죽는 것이 법이다. 이리떼처럼 모여든 농민들의 날카로운 죽창 끝이 무사 목에 들이밀어 졌다.


숨어서 보던 다른 패잔병들은 그래도 농민들에게 인면수심은 바라, 목숨은 살려주고 무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것으로 보았다.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팔아먹을 화려한 갑옷에 상처가 나서 좋은 값을 치지 못할까 봐 바로 찌르지 않은 것이다. 농민들은 그래도 칼이 무서웠는지 무사에게 소리쳤다.


“칼을 놔.”

“꼼짝하면 죽인다!”

“받을 것만 받을 거야! 내놔!”


싸워서 다 죽일 수 없다는 무사의 주춤한 행동에, 옆에서 몽둥이로 냅다 무사의 머리를 쳤고, 무사가 비틀하자 더 달려들어 매우 쳤다. 농민들은 빈사 상태의 무사에게서 칼을 빼앗고 갑옷을 벗긴 다음 죽창으로 몸통을 찔렀다.


여러 명이 대여섯 번은 찔렀는데, 그때야 농민들의 마음을 읽은 무사는 분개하며 죽어갔다. 죽어가는 자가 주먹을 쥐고 땅을 때린다. 무사는 싸우다 죽어야 수치가 아니다. 무사로서는 그 농민 십오 명에서 적어도 반은 베고 죽을 수 있을 품새였다.


상대가 十五라 해도, 만약 칼과 죽창이 상대한다면, 그리고 죽창들이 무사나 낭인이 아닌 농민들이라면, 더욱 길게 추측하건데 무사가 다 죽일 수도 있다. 숨어서 보는 패잔병 무리는 충분히 안다. 저 무사는 그러고 남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포위된 무사 최대의 적은 사방의 창! 바로 그러한 형세로 농민들의 열두 자는 될 죽창에 포위되었다.


무사에도 종류는 있어, 아버지 핏줄에 기대어 편하게 오른 놈도 있고, 제법 훈련을 받고 무사로서의 명분도 뚜렷한 사람이 있다. 쓰러진 무사는 후자로, 사무라이 신분에 오르기 위해 또 유지하기 위해 하루도 쉼 없이 수련을 한다. 만약 죽기를 각오하고 칼을 썼다면 저 농민들 과반은 무덤이 될 대밭에 피를 뿌렸다. 애석하게도 무사는 병기와 갑만 빼앗을 것으로 착각한 것.


착각도 너무 깊었다.


농민들이 그런 상황에서 병사나 무사를 결국 죽이고 마는 것은, 그들을 살려 보내면 언젠가 돌아와서 할 피비린내 나는 복수 때문이다. 낭인 무사도 그런 건 절대 잊지 않고 열에 아홉은 반드시 어두운 밤 돌아온다. 두려운 자가 잔인하게 살상하는 법. 사람을 안 죽여 본 사람이 과도하게 상처를 내어 차마 보지 못할 모양을 만든다. 경험이 많은 자들은 차후를 도모하며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안다. 곧 죽은 것임을 익히 알기 때문.


농민들은 계절이 지난 어느 밤, 이 무사가 농가에 뛰어들어 난도의 칼을 휘두를까 무서운 것이다. 사무라이 복수는 말 한마디 없이 보는 즉 긋는다. 구차한 말 없이 바로 친다. 말이 있어봤자 죽을 사람에 대한 죄의 고지. 그 앞에서 빌어도 안 된다. 돈을 주어도 안 된다. 돈은 더한 모욕으로 화를 부추길 것이다.


바로 그런 사무라이였다. 농민들도 대번에 비범한 사람임을 알았다.


“재판은 부처가 하실 거다!”


농민 중 노인이 한 말이다.


하지만 그건 고급스런 단 한 명의 표현. 나머지는 칼과 갑옷을 보고 희희낙락하며 값을 어림잡고 있었다. 무사에게 위안이 있다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투구는 없었다는 것. 투구는 무사의 두 번째 목, 가문의 문장(다이몬)까지 들어간 그것을 넘겨주지 않는 것은 그나마 덜 모욕적이다.


그 대밭 2백 보 거리에서 이걸 숨어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부대 휘장인 다이몬을 모두 끌러서 버린다.


갑을 빼앗기고 유카타만 입은 상태로 쓰러진 무사는 여러 번 복부를 찔리며 벌어져, 배에서 내장이 튀어나왔다.


“인정이 말랐어...”


숨어서 보던 사람들은 시들어가는 가을 풀에 고개를 박았다. 저 사무라이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직접 자신들을 지휘하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꽤 신뢰와 존경을 받던 사람, 같은 다이묘 군대의 장수 중 하나.


“그냥 싸우지, 왜 인간을 봐주고 그래.”


“저 사람은 같은 사무라이나 적병이 아니면 베지 않는 사람이었어.”


“그러면 뭐하니. 죽었는데. 억울하지.”


“세상이 짐승으로 변한다...”


“잘 봤지. 이제 절대로 봐주는 거 없다.”


“말로만 들었지 정말 이럴 줄 몰랐어...”


“저들은 누가 이기든 상관없어. 어차피 세(稅)는 같아.”


너무 오래 구부리다 보면 상관없는 사람이 지나가도 일단 구부린다. 천황이란, 막부란, 쇼군이란, 할 만하다. 한번 겁먹은 사람들은 그가 관복을 벗어도 겁을 먹는다. 민중은 바보다. 벗어나는 사람은 애초부터 ‘너도 사람!’ 만만하게 봤던 사람들 쁀. 더욱더 무섭게 세를 뽑고 고문하고 겁을 주어야 내가 옷을 벗어도 평생 구부린다. 저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직도 뭔가 뒷심이 있을 것 같아 구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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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5. 산성에서 21.06.29 136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8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6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1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80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3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9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80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8 4 8쪽
30 16. 유언 21.06.12 72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2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90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9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24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1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6 2 7쪽
»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4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6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9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3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6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6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8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6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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