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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의 사무라이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1.05.16 10:51
최근연재일 :
2021.06.29 10:0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723
추천수 :
138
글자수 :
158,650

작성
21.06.03 10:00
조회
80
추천
4
글자
7쪽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DUMMY

13. 그 사람은 멋졌다




“모두 네 맘이냐!”


“내 맘이 아니라 날 보낸 분의 맘이지.”


“네가 오면 모두 따랐느냐!”


“따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럼 네가 어떻게 해 보던가.”


“내가 할 수 있어?”

“해 보거라. 되나.”


“꼼짝없구나.”

“대체로 그렇지.”

“대체로 라니?”


“어떤 사람은 떠나기 직전 마지막에 다시 살기도 해.”


“어떤 경우에서?”

“그걸 내가 어찌 알아.”


“넌 과거에 인간이었나.”

“하다 보니 별 질문을 다 받네. 아 빨리 가자니까!”


“지금 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잖아.”

“어허 이 사람 말 많아 진짜.”


“인간이잖아! 검은 도포에 검은 갓. 관리냐?”

“일단 존댓말부터 좀 써볼래?”


“네 놈이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늙지 않고 죽었기 때문이다.”


“거 봐. 인간이었던 거 맞네.”

“아이고 넘어가 버렸네.”


“부탁한다.”

“내가 결정하는 것 아니라니까요.”


“이 노인네가 안 불쌍하냐?”

“뭐? 급사(急死)도 아니고 당신 늙어 죽는 거야. 호상.”


“살려달란 소리가 아냐.”

“그럼?”

“옛 시절을 한 번만 보고 싶다.”


“최대한 늙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놈이나 매한가지네. 아 그만 나불거리시고 가시자고 이제! 돌아가긴 어딜 돌아가! 한 십 년을 유람하시라고? 그럼 뭐 하러 죽어. 차이가 없잖아!”


“아니. 딱 한 때.”

“왜.”


“자꾸 반말할래?”


“나 고조선 사람이야. 백제 따위가 까불고 있어. 죽고 싶냐?”


“곧 죽을 거 까먹었냐.”


“아 그렇지. 그러니까 어느 때가 그립다고???”


보고 싶어. 나로 하여금 보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오래 걸리지도 않아. 내 나이 열 살 적이었나? 그때. 짧았어. 냉수 서너 사발 마실 정도야.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 젊은 고조선 할아버지... 부탁이야.


그렇지. 사계절에는 다 여러 갈래 때가 있어. 계절은 네 개가 아니야. 너무 더워서 안달이 나면 곧 낙엽이 지고 더위가 그립지. 변덕이 죽을듯하게 우린 살아. 그리고 그 변화는 시기마다 추억이 손짓해. 사람의 기억은 대게 날씨와 붙어 있단 말여. 어떤 일이 있으면 마지막에 꼭 하늘을 보거든. 하지만 하눌님은 모습을 뵈여 주지 않고 푸른 하늘만 보여. 하눌님은 파라신가 봐.


더위가 이제 ‘가셨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이었지만 바람이 세던 날, 밤이면 이불 속으로 발가락을 여미게 되는 시절. 그러니 아침은 몸이 조금 굳어서 깨어나지.


당연히 식전.


난 밖에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깨어났어. 말이 귀에 또렷이 들려.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네 말을 알아는 들으면서도 똑같이 따라 하지 못했지만, 난 잘 알아들었어. 난 거기가 고향이니까. 그 동네 말과 부모의 말이 섞여 동네 아이들이 놀리곤 했어.


내 잠이 달아난 첫 말은 그거였어.


“세상에 영원 커니 숨겨진다고 생각했남!”


“놀랐어? 우리가 워떻게 알았는지?”


목소리가 격앙되어 화가 난 남자 어른. 그 말은 내 아비에게 하는 말이었을 것이고. 남자들 일에 끼어들지 않는 모친은 아마도 옆에 서 있는 듯했어.


“여자는 물렀쏘 이.”


그러자 내 아비의 목소리가 이어져.


“나는 칼을 칼로 받을 처지도 못 되느냐.”


그러자 다른 남자가 그랬지.


“칼? 칼. 드디어 이실직고 허는구나 너!”


그러자 ‘어떻게 혀... 이?’ 말이 돌았고, 다른 어떤 사람이 거만하게 말을 받았어.


“여섯에 하나인데, 칼까지 안 주면 거시기 창피하덜 안 해?”

“글지. 그것은 창피하지.”


“가진 것이 각자 하난디. 칼을 빌려줘? 누구 하나는 맨손으로 노남?”

“우리가 뭐땀시 칼을 빌려줘. 저늠이 이러게 사람을 볶아 먹어!”


“금쪽같은 시간에 말여.”


드디어 아버지 목소리가 들려.

“저 안에 있다.”


“아따 이 음흉헌 놈.”

“그걸로 우리 목경이를 조사부렀냐?”


무리의 대장 같은 목소리.


“연개금의 개. 개져오든지 말여.”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왔어. 그리고는 나에게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고 엄명을 한 자루를 뒤적여. 그리곤 천에 싸인 지다란 걸 꺼내. 난 어깨를 딱 펴고 움직이는 아비를 봤어. 나는 저들에게 칼 맞는 것이 아닌가 불안했지만, 그 사람 참으로 차분했어. 거대한 조각상 같았지. 항상 그렇듯. 아버지는 날 버림받은 사자 새끼처럼 딱따간 놈이 되도록 정 깊은 눈을 주덜 안 해.


그리고 그때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어.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나를 보더니, 손으로 밀어. 누우라고. 글고, 손가락을 내 입술에 대셨지.


“쉬~~~~~이!”


문밖으로 나오면 경을 칠 거라고 인광을 번뜩이셔.


그리곤,

씨익 웃으셨어. 참말로 웃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지. 지나고 보니 차암 이상한 장면이었어. 당최 웃음이 나오냔 말여. 그 지경에서.


떠오르는 햇살에 빛나는 옷. 옷들이 하얗게 빛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윤기가 흘러. 옷이 번쩍여. 바탕은 부드러운 밝은색에 가지가지 오색이 물들고 수가 놓여 있는 옷. 기가 막히대.


한 가지 당시의 회상에 주의할 점은, 당시는 어렸기 때문에 마당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어. 그때는 기이했고 지금은 그걸 이해하기에 다소 가감이 붙을 수가 있어. 그건 이해하라고. 내가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보기에 내 아버지란... 다시 말해 그 사내는, 딱히 무엇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거야. 내가 거짓을 말한다 할까 노파심이 앞서.


첫 장면이 그래, 대적할 것이 여섯이야. 보통 생각하면 다시 뭐라 씨부리고는 단박에 칼을 다 뽑고 아버지를 빙 둘러싸면서 기 싸움이 시작될 것을 상상할 거야. 아냐.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면서 이미 천을 풀었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칼을 뽑아 가까운 남자의 손목을 쳤어. 살짝 비겁하다고 생각할 거야. 무도의 예도 있고 무사의 범절을 우리는 최고로 치니까. 아녀. 한 사람과 상대할 때는 그러는 것이지.


‘지금 생각’이라 어두를 꺼낸 이유가 있어. 당시는 어렸기에, 어른들이 칼을 들면 그 정도는 다 하는 줄 알았어. 아니어. 식전에 찾아온 그들은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어. 그런 어떤 모양새를 난 이후도 별로 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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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5. 산성에서 21.06.29 134 2 17쪽
38 24. 탈곡 21.06.17 97 3 12쪽
37 23. 잡놈 21.06.17 86 4 18쪽
36 22. 동검의 무사 21.06.16 81 3 17쪽
35 21. 접신 +1 21.06.16 79 5 19쪽
34 20. 옹진의 살수 21.06.15 83 5 15쪽
33 19. 패잔 21.06.15 68 4 11쪽
32 18. 손들의 싸움 21.06.14 80 4 14쪽
31 17. 옹진 큰물 21.06.13 78 4 8쪽
30 16. 유언 21.06.12 71 3 7쪽
29 15. 옛날 옛적 그 자리 2 +1 21.06.11 74 4 8쪽
28 15. 옛날 옛적 그 자리 1 21.06.10 111 3 7쪽
27 14. 눈이 결정한다 2 21.06.08 90 4 7쪽
26 14. 눈이 결정한다 1 21.06.05 98 3 8쪽
25 13. 그 사람은 멋졌다 2 21.06.04 92 3 7쪽
» 13. 그 사람은 멋졌다 1 21.06.03 81 4 7쪽
23 12. 물 건너편에 2 21.06.02 86 2 7쪽
22 12. 물 건너편에 1 21.06.01 93 2 7쪽
21 11. Intermezzo 21.05.31 93 3 9쪽
20 10. 입신양명 3 21.05.30 104 3 7쪽
19 10. 입신양명 2 21.05.29 86 3 7쪽
18 10. 입신양명 1 21.05.28 89 2 7쪽
17 9. 계루에서 사는 법 2 21.05.27 99 3 9쪽
16 9. 계루에서 사는 법 1 21.05.26 93 3 8쪽
15 8. 목경 2 21.05.26 80 3 7쪽
14 8. 목경 1 21.05.25 96 3 7쪽
13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2 21.05.25 85 3 7쪽
12 7. 세상은 비만이 지배한다 1 21.05.24 108 4 7쪽
11 6. 검은머리 짐승 3 21.05.24 95 4 8쪽
10 6. 검은머리 짐승 2 21.05.23 9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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