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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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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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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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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글자수 :
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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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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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에필로그

DUMMY

<에필로그(epilogue)>


다음날.

네프리티나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비탄에 빠졌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넬이 머리에 붕대를 두른 채로 마을의 입담꾼이던 그녀의 장례식을 거행했다.


사제는 자신이 마음을 연 여성의 죽음을, 네프리티나의 사망 소식에 한참동안이나 허망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봐야만 했다.


요괴 소동이 끝난 후에 레렌은 정신을 차린 넬의 소식을 듣고서 날아갈 듯 기뻐했지만.

곧 네프리티나의 비극을 전해 듣고서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친우를 잃어버린 알리시아는 이 모든 것들이 거짓말이길 바랐다.


한스는 항상 자신을 누나라고 부르라며 으름장을 놓던 네프리티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어있는 관이 행렬을 따라 움직였다.

마을의 자경단 청년들이 관을 옮기고 있었다.


네프리티나의 진짜 주검···.

로크의 시체는 그녀가 부탁한데로 당장에 불을 붙여 태워버렸다.

푸른색 맹독 위에는 모래를 뿌리고 그 위를 기름으로 덮었다.

영혼을 잃은 요괴의 육신은 연약하기 그지없어서, 마치 마른 나무처럼 검은 악몽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불길에 휩싸여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슬픔은 그처럼 간단히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여신이시여, 어찌 이런 잔혹한 운명을···.”

“거짓말이야, 연달아 요괴가 나타나는 것도 모자라 네프까지.”

“이제 네프가 해주는 요리를 먹을 수 없다니···.”


사람들은 각자 네프리티나의 생전 모습을 그리워했다.

다들 크던 작던 네프리티나에게 도움을 받았기에.

항상 밝았으며 사람들을 보듬어주었고 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매 같은 이웃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어쩐 데요?”

“그러게 말에요. 원래부터 네프는 오갈 데 없는 몸이라 다른 혈육도 없다고 하던걸요.”

“큰일이네요. 집이 요괴한테 무너지지만 않았다면 제가 도맡았을 텐데···.”

“제가 키우죠.”

“알리시아, 지금 뭐라고···.”

“조나단과 캐시는 앞으로 제가 도맡겠어요.”


광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아낙들 사이로 알리시아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네프리티나와 특히 사이가 각별했던 사이.

이웃에서 자주 오고가며 만났기에 존과 캐시에게도 익숙하리라.


“그래요. 알리시아라면 안심이네요.”

“레렌도 좋은 아이고···.”


알리시아는 아낙들의 대화에서 자신들이 책임을 떠받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기색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며 이 마을이 완전해지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광장에서는 네프리티나의 장례식과 더불어 파괴된 마을의 보수작업에 대해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요괴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죽은 사람이 단 한명 뿐이란 것은 사실상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완전히 박살난 집만 해도 스물 둘.

부상자는 열다섯에 육박했다.

회의에서 대장장이 톰슨이 마을 수복에는 최소한 두 달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 또한 기껏해야 두 달로 치유될 만한 것이 아니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사 그럴지라도 이들은 일어날 것이었다.


변방의 잡초는 강하다.

이곳은 온갖 전쟁과 재앙에 필사적으로 맞서온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다.

결코 이 정도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니.


“저기, 키리아···.”


광장 옆에 자란 자그마한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있던 키리아에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익숙한 목소리.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자신감이 없었다.

키리아는 고개를 돌려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레렌이었다.

소녀는 애매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걱정 많은 얼굴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키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레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키리아는 속이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


당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어.

부름에 반응한 것도 그저 조건 반사.

그것은 그저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었다.


키리아는 자신이 죽여 버린 네프리티나를 기리는 사람들의 앞에 도저히 얼굴을 보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광장 구석에서 멀리 떨어져 장례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레렌이 말을 걸어왔다.

키리아는 레렌이 아직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관없어.

오히려 누군가 자신을 꾸짖어주길 바랬다.

이미 인간이 하찮다느니 하는 생각은 전날 밤 넬의 앞에서 울며 떨쳐낸 지 오래였다.


하나, 레렌이 키리아에게 말을 건 이유는 그런 유치한 추궁이 아니었다.


“미안해. 너한테 심한 말을 해서···.”


레렌은 키리아에게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양손을 앞에서 꼼지락 거리며 세어나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언니 동생 하기로 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키리아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뭐가 잘못이란 걸까?


모두 사실인 것을.

넬을 다치게 만든 것도.

이 마을에 재앙을 가져다 준 것도 자신이 맞았다.

아니, 요괴인 자신이야말로 재앙 그 자체였다.


“네프 언니가 이런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나···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서··· 오늘도 집에 돌아가면 네프 언니가 평소처럼 농담할 것 같아. 언제나처럼 짓궂게 놀릴 것 같아. 하지만··· 무너진 지붕 천장을 보면, 울고 있는 존이랑 캐시를 보고 있으면 이 비극이 진짜란 걸 깨닫게 되어버려. ···아이참,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사과하러 왔으면서 자꾸 이상한 소리만하네···.”


흑, 레렌의 어깨가 들썩였다.

가벼운 훌쩍임은 곧 큰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레렌을 마주하자 네프리티나가 박아 넣은 짧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레렌에게도 네프리티나는 친언니와 다름없을 만큼 큰 유대가 있었다.

지금 이 소녀의 슬픔은 존과 캐시에 버금갈 만큼 크리라.



“미안해··· 진심이 아녔어. 너무 무서워서···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미안해, 미안해···.”


어제 살아있던 사람이 내일 죽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국 죽음은 결국 날벌레 한 마리가 죽는 것이나, 길가에 핀 꽃이 하나 꺾어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한 일이 아니기에, 그러니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이상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너무도 크게 포장해버린다.

마치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을 짊어지기라도 한 듯이···.


요괴들은 자신만을 생각해.

남을 돌볼 여력이 없다.

심지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체 중 그 무엇보다 강하면서도 말이다.

허나 인간은 다르다.

그들은 약해빠진 주제에 다른 누군가를 돕는다.


키리아는 세삼 그런 인간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울려 함께 살아간다.

서로를 보듬어준다.

그것이 사람.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키리아가 느낀 따뜻함의 정체였다.


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렌에게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놀랍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신기하리만치 자연스럽게 키리아는 레렌을 껴안아주었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도 이 요괴에겐 낯선 일.

하지만 누구나 용서를 바란다.

그것은 거울.

사람의 포옹에는 서로 껴안는 것만으로도 스스를 보듬는 효과가 있기에.


레렌은 키리아의 보듬음에 순간 놀라긴 했지만 금세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 키리아··· 미안해···.”


레렌을 보듬어주며 슬픔을 함께 전해 받았다.


“···훌륭한 어머니에게 이 곡을 바치지.”


광장에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유고의 손끝에서 음울한 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세련되고도 구슬픈 음색은 네프리티나의 진혼곡이었다.


사람들은 기원했다.

하늘이 자신들에게서 더 이상 행복을 빼앗아가지 않기를.

앞으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레렌의 어깨 너머로 키리아는 하늘을 바라본다.


네프리티나.

로크가 누렸을 창공을 올려다봤다.

저 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맑아.

너무나 아름다워서 높은 하늘에 홀려버릴 것만 같다.

도저히 장례식이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묘한 기분이군.’

‘응···.’

‘하지만 이 감정은··· 너의 것도, 나의 것이 아니다. 이건 잔류사념이나 마찬가지야. 그야말로 저주다.’

‘왜 일까? 어째서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 거야?’

‘착각이다. 전부 로크 녀석이 노린 것뿐이지.’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하늘에서 내리쬐는 온기에 키리아는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


이 두 요괴는 지금까지 어둠으로 가득한 세계에서만 살아왔다.

반대편의 세상은 몰라.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곳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키리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오히려 망설여졌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쳇, 낸들 알거 같냐?’


하나, 키리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번 보금자리의 포근함을 알게 된 짐승은 이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이제 비로소 받아들일 때.

먼 길을 거쳐 다다른 이곳 변방의 마을에서 서쪽의 붉은 마수는 인간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사람의 따뜻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단 것을.


지상에는 봄이 자리 잡았다.

이제 마을의 밭에도, 언덕 위에도 새싹이 하나 둘씩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변방의 마을은 따스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작가의말
제1부, 요조 로크편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구상해둔 이야기가 남았지만,
아쉽게도 봐주시는 독자님들이 많지 않아 
키리아의 부활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결론만 얻었습니다.

이것은 본래 <클라르테>라는 제목의 소설이었습니다.

요수전기를 처음 쓴 것은 2007년...

대충 19살쯤 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목성의 노래 보다 1년 앞선 시기였군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한편 당 5,500자라는 기준이 없어서
적당히 쓰는 족족 올려서 100화 달성이라며 괜히 기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로서는 처음으로 써본 장편.
처음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끝맺음한다는 의미에서,
저에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소설입니다.

기회가 생긴다면 다음 에피소드도 써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예나 지금이나 주목을 받을만한 이야기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도 평생동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언젠가 다시 키리아를 독자분들께 소개할 기회가 있기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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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축제(2) +2 21.05.20 66 10 14쪽
20 축제(1) +4 21.05.19 72 12 19쪽
19 전야제(5) 21.05.19 46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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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야제(1) 21.05.17 57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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