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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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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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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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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8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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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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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4쪽

요조 로크(7)

DUMMY

10.

가공할 기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프리티나의 시선에는 결코 악의나 적의가 담겨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말 그대로 절실한 부탁이었다.


“저는 며칠간 당신의 반응을 살폈어요. 닉슨 패거리를 죽인 후론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에 조금 지켜보기로 했죠. 다행이 아가씬 조용히 지내더군요. 거의 안심할 뻔 했어요. 이대로 지내도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축제에서 제 딸 캐시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걸 보기 전까진 말이에요.”

“···.”

“그래서, 당신의 대답은 어느 쪽?”


네프리티나는 키리아와 마주선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대꾸를 기다렸다. 곧 키리아는 답했다.


단, 말이 아닌 행동으로.


“···윽!?”


키리아는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넬을 쓰다듬고 있던 네프리티나의 오른손을 낚아채버렸다.


신경독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방심하고 있던 탓에 네프리티나의 반응이 늦었다.


“놀고···자빠졌네!”


간결한 거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제 와서 떠나 주세요? 그러면 내가 순순히 나가줄 거라 생각했어? 함께 이 마을에서 살아가? 그거 재미있는 농담이네. 아하하, 아하하핫! 너무 웃겨서 화가 날 정도야!”

“키키킥, 옳지. 그게 우리다. 그게 네 진짜 모습이다!”


소녀의 눈동자가 자줏빛으로 물들어간다. 격하게 끓어오르는 분노다.

한없이 이글거리는 증오.

번뜩이는 그 눈은 타협을 모르는 짐승의 것이었다.


네프리티나는 작은 신음을 흘렸다.

키리아가 망설이지 않고 네프리티나의 손목을 부러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네프리티나는 억지로 인간의 형태로 끼워 맞추고 있었기에.

압축하고 있던 어느 마디가 뭉개지면 그녀가 느껴야할 고통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아윽!”


네프리티나는 반사적으로 키리아를 밀쳐내려 했다.

하나 상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로의 오른팔이 봉쇄당한 순간, 키리아의 왼팔이 변화를 시작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피부가 찢어지더니 그 사이에서 창과 같은 가시가 튀어나왔어.

키리아는 동시에 그것을 네프리티나에게 찔러 넣었다.


푸욱, 선혈이 침대에 흩뿌려졌다.


“이게··· 당신의 대답인가요?”


그러나 타격이 크진 않다.

네프리티나 역시 왼손으로 그것을 막아냈어.

창끝이 네프리티나의 손바닥을 꿰뚫었지만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네프리티나가 체액을 급속도로 응고시켜 고정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어··· 정말로 어리석네요.”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네프리티나.

거기에 반발하듯, 키리아는 경멸감이 섞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말을 질질 끌면서 무슨 소릴 하나 싶었더니, 결국은 꼬리 내리고 뒤 돌아서라는 거였어? 아핫, 아하하하하! 너는 인간이란 족속들과 십년 가까이 지내다보니 그런 농담도 할 수 있게 된 거야?”


키리아는 왼팔의 창을 밀어 넣었다.

완력으로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것은 굳어버린 체액을 밀어내며 네프리티나의 이마를 향했다.


“시도는 좋았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론 실패네요.”

“뭐?”

“기왕 노릴 거라면, 팔이 아니라 목을 노렸어야 했어요.”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네프리티나의 태도는 여유롭기만 했다.


“이제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기서 난동을 부리다 사제님이 다쳐도 좋은가요?”


네프리티나는 잠시 동안 키리아가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어느새 그녀의 치마 사이에서 뻗어 나온 꼬리를 닮은 촉각이 넬의 목을 휘감고 있었다.


“죽이고 싶진 않지만, 저에겐 이 남자보다 마을 전체가 중요해요. 그와 아직 정이 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죠.”

“이···.”

“내가 못할 것 같나요? 시험해볼래요?”


결국 키리아는 네프리티나의 의도대로 왼팔의 힘을 뺐다.


“···착각하지 마. 이건 단지 독 기운 때문에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은 것뿐이야. 그 녀석 따위, 넬이 어떻게 되던지 내 알바 아니라고!”


키리아가 팔을 거두어들이자 네프리티나는 싱긋 웃으며 뭉그러진 자신의 손을 회복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네프리티나는 꺾여버린 손목의 위치를 고정시키면서 미소를 띤 얼굴로 상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넬에 대한 키리아의 반응이 재미있었던가?


키리아는 화가 났다.

네프리티나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공생하는 두 마리의 요괴는 빠드득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빨을 악물었다.


“곤란하네. 오늘 저녁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회복된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고서야 네프리티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 같잖은 인간놀이에는 흥미 없어.”


키리아는 비아냥거리며 상대에게 적의를 쏟아냈다.

같은 요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우스갯소리로 넘겨들을 만한 단순한 비꼼.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네프리티나는 동요했다.


“···놀이?”


일순간 네프리티나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의도하지 않았던 키리아의 도발이 성공했어.

네프리티나에게 조나단과 캐시를 돌보는 것은 놀이의 연장선 정도가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을 배웠다.

가정의 행복을 깨달았다.

십년이라는 시간동안 네프리티나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그 소중한 기억들을 하찮은 놀이라고 비하하는 것을.

네프리티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말··· 당장 취소하는 게 좋을 걸.”


네프리티나의 두 눈이 경고했다.

이번에는 확고부동한 살의가 담겨있었다.


“싫다고 한다면?”


키리아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요괴의 굳센 자존심은 누군가가 시킨다고 해서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프리티나는 더욱 강압적으로 나섰다.

치마 사이로 뻗어 나온 꼬리가 넬의 목을 압박했다.


“장난처럼 보여요? 이렇게 보여도 난 그쪽 보다 백 년은 더 살았어, 쓸데없는 허세 따윈 부리지 않아요. 망설임도 없죠.”

“···칫!”


넬의 숨소리가 약해져가자 키리아는 더 이상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리아가 말문을 닫자 네프리티나는 순간이나마 흥분한 마음을 다잡았다.


“···당신에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우스워 보이겠지요?”


궁지에 몰린 것은 키리아 쪽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절박해보이는 것은 네프리티나 쪽이었다.


“저는 지금껏 수많은 목숨은 빼앗았어요. 당신과 다를 게 없었죠. "



네프리티나는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어서 자신이 저지른 것을 이야기한다.


“배가 고프면 마을을 부수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죠. 애원하는 것도, 울부짖는 것도 모두 무시하고··· 심지어 그 반응을 즐기기까지 했었죠. 몰랐어요. 인간이, 인간들 사이에서 머무는 것이 이토록 따뜻한 것인지 알지 못했어요. 당신도 슬슬 느끼고 있지 않나요? 너무나 아득하고 너무나 포근한··· 이 행복이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하는 제 마음을···.”

“···.”

“수년 전, 어쩌다 다른 요괴가 이 마을을 지나친 적이 있었죠. 저는 그때도 애원했어요. 이 세계로 흘러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당신은 모르겠지만 저는, 로크라는 이름의 마물은 이쪽 대륙에선 꽤 유명하답니다. 악명이 있는 요괴는 그 만큼 강한 법이죠. 그런 제가··· 빌었답니다. 자존심과 긍지 빼곤 자신을 논할 수조차 없던 이 창공의 포식자가··· 머리까지 숙이고 간청했죠.”


부탁이야.

이렇게 애원할 테니까 내 소중한 것을 빼앗지 말아줘!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아 주세요!


네프리티나는 그렇게 떠오른 기억 속의 장면을 그대로 재연했다.

키리아에겐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저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빌고 또 빌었지요. ···하지만 소용없었어. 녀석은 마을을 부수려하더군요.”


일순간, 네프리티나의 입가가 뒤틀렸다.


“그래서 저는···.”


아름다운 얼굴이 악귀의 형상으로 변했다.


“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도록, 살점 하나까지 전부!”


사람의 것이 아닌 살기.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것은 키리아 마저도 움츠려 들 정도의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어머나, 미안해요. 저답지 않게 조금 흥분해버렸네요.”


다시금 의연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을 잇는 네프리티나였다.


“그러고 보면, 당신의 경우는 조금 특별했죠. 저에겐 마을을 둘러싼 일대 전부를 감지하는 어떤 힘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어찌된 건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거든요. 당신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사실은 그만큼 제 힘이 약해졌을 가능성도 있죠. 요괴의 삶을 버리고 인간의 삶을 십년동안 이어가다보니, 최근에는 재생력도 크게 줄어들었어요. 후후, 사실 저는 처음에 당신이 옛 동료들이 보낸 잔당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영문 모를 소리만 하는군, 그러면서도 키리아는 잠자코 네프리티나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의심했죠. 당신도 날 괴롭혔던 다른 난봉꾼 요괴들이랑 다를 것 없을 거라고 말이에요. 심지어 이번에는 모습마저 인간을 흉내 내서 마을까지 잠입하다니? 처음엔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요. 상황이 복잡하게도 돌아갔어, 축제를 맞이해서 이방인이 마을에 셋이나 흘러들어오니 저는 누가 요괴인지 감이 안 잡혔어요. 당신은 알기 쉬웠죠. 온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으니까. 다만 사제님이나 떠돌이 악사씨도 조금 의심스럽긴 했어요.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죠. 연주가 씨는 낯을 가리기로 유명한 한스 군이 따르는걸 보니 좋은 사람이었고. 넬 사제님도 조금 별났지만 악인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남은 건 당신 혼자 뿐··· 그래서 저는 어젯밤 당신을 죽이러 갔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캐시에게 해코지를 할 가능성을 막으려고··· 나의 행복을 앗아가기 전에 먼저!”


키리아는 짜증이 몰려왔다.

눈앞에서 자신을 죽이니 뭐니 하며 건방진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하지만 의외였어요. 저는 아주 깜짝 놀랐답니다. 사제님이 쓰러졌을 때 당신의 반응은 절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까부터 계속 말만 돌리고 있어.”


참다못한 키리아가 소리를 질렀다.

네프리티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저와 닮았어요.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죠. 우리는 동지였어요.”


네프리티나는 웃고 있었지만 키리아는 아니었다.

멋대로 자신과 가치를 같이 매겨버린 상대에게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웃기는 소리··· 내가 너 따위와···.”


키리아가 부정하려는 찰나, 네프리티나가 그 말을 끊었다.


“그렇기에 말씀드리는 거죠. 그게 아니라면 당신을 살려둘 이유가 없어요. 기억하죠? 어젯밤을.”

“···.”

“저는 분명 당신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었어요. 허세는 그만 부리는 게 좋을 걸요? 인정하세요. 키리아, 당신은 약해. 물론 그 몸속의 다른 요괴도 나한텐 상대조차 안 돼요.”

“너어어어!”

“감히 면전에서 날 모욕하다니?”

“어머, 당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저 솔직해지는 게 좋다고 말할 뿐이에요. 키리아··· 떠올려 봐요. 사제님이 다쳤을 때의 그 느낌을,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그 기분을. 어째서인지 마음이 아팠죠? 너무너무 슬펐지요?”


그랬다.

키리아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슴 언저리가 지끈거리는, 마음의 아픔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그 기분···.

키리아는 다신 그런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인정해요. 받아들여요. 그러면 제가 도와줄게요.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드리죠. 당신이 영리하게 대처해준 덕분에 사람들은 키리아 아가씨를 의심하지 않아요. 이 마을 사람들은 과거를 묻지 않아, 곤란한 일도 없을 거예요. 내 손을 잡아, 그러면 여기서··· 이곳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요. 당신을 건드렸던 건 사과하겠어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고개도 숙이도록 하죠. 저를 믿어주세요. 우린··· 함께 공존할 수 있어요.”


그것은 구김 없는 진심이었다.

네프리티나는 간절하게 애원했다.


“한 번 더 부탁드리겠어요. 부디··· 저와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아요.”


침묵이 이어졌다.

키리아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왜 고민하는 걸까?

망설일 이유 따위 일말의 여지도 없을 텐데···.


여러 감정들이 키리아의 머릿속으로 교차했다.

하지만 결론은 나왔다.

키리아는 로크에게 당했던 굴욕을 절대로 잊지 못했다.


“킥···.”


킥키킥킥, 키득키득···.


소녀의 모습을 한 요괴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끔찍한 웃음소리.

불길한 마귀의 조소였다.


키리아는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리곤 네프리티나가 가장 바라지 않은 대답을 입에 올렸다.


“···너는 물론이고 이 마을을 전부 쓸어주겠어.”


잔인한 미소.

그것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겠다는 키리아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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