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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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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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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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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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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요조 로크(6)

DUMMY

9.

“어머, 너무해라. 제 이름은 네프리티나 인걸요? ‘너’가 아니라.”


네프리티나의 도발.

키리아는 증오로 일그러진 눈동자를 불태우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키리아의 움직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거기까지.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인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에요.”


지금 네프리티나는 넬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작고 가녀린 손가락이 장난치듯 사제의 목 주변을 만지작거렸다.


“당신도 잘 알겠죠? 우리들의 손아귀 힘이라면 아주 살짝만 거머쥐어도···.”


네프리티나의 손이 기이한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해.

그것은 새카만 광택으로 빛나는 칼날과도 같았다.


“연약한 인간의 목 관절 따위, 한순간에 부숴 버릴 수 있다는 걸?”


그 협박에 키리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하하하! 쓸데없는 짓!”


공생하던 요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당치도 않아! 너,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깟 인간 놈이 나한테 인질의 가치가 있을 것 같냐?”


으름장.

주도권을 잃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래요. 물론 당신에겐 아니겠죠.”

“아앙?”

“제가 말하는 건 그쪽··· 몸의 주도권을 가진 키리아 아가씨랍니다.”

“···쳇.”


알고 있었단 말인가?

기척만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모두 파악했다고?

공생체 요괴는 적의 영리함에 혀를 찼다.


“후훗, 그쪽이랑 말하는 건 처음이죠? 네, 처음부터 두 마리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존재는 알았지만, 둘이서만 속닥속닥··· 설마하니 동족의 주파수를 제가 감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나요?”

“네가 둔한 녀석이길 약간 기대했거든.”

“어머나, 이걸 어쩐담. 안타깝지만 저는 눈치가 빨라요. 아주 빠르답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대화로 제 주위를 흩트리려는 시도는 그쯤 해두세요.”


요괴의 계략은 간파 당했다.

그 말처럼 네프리티나는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빈틈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당신은 아직 독 기운이 남아있죠?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답니다.”


그랬다.

키리아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다.

독이 신경의 연결을 방해하고 있어.

신체를 재구축 할 수 없는 지금의 키리아로서는 도저히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원하는 게 뭐야?”


키리아는 아주 조금 적의를 가라앉혔다.


“꿍꿍이가 뭐지? 전날의 결판을 지으려 했다면 네 특기인 무차별 습격 쪽이 훨씬 유리했을 텐데?”

“원하는 것? 글쎄요. 일단은 대화를 좀 할까 해서요.”

“웃기지 마. 너는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어. 뭔가 목적이 있으니까 이렇게 찾아왔겠지.”

“후후, 호되게 당했으니 절 의심하는 건 이해하지만··· 정말인걸요?”


네프리티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당신의 진짜 성격은 정말이지 까칠하기 그지없네요. 평소의 얌전하기만 하던 그 모습은 모두 연기였나요?”

“상관 마. 고작 그걸 말하려고 온 거야?”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요. 전 단지 당신들에게 제안을 하러 온 것뿐이니까.”

“···제안?”

“그래요. 어찌 보면 부탁이라고도 할까요?”


인질을 잡고서 부탁을 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았지만.

키리아는 당장 그걸 지적할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음, 하지만 그 전에 이야기를 좀 나눠 봐요. 동족이랑 하는 대화는 너무 오랜만인 걸···.”


박수까지 치며 장난스럽게 말하곤 있지만 네프리티나.

아니, 로크는 방심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또 무언가를 준비하고서 언제 키리아를 공격할 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진정해요. 긴장을 풀라고요. 저는 대화를 하러 온 것뿐이래도요?”

“널 믿으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하지 마.”


네프리티나는 한숨을 쉬었다.


“의심이 많은 아이네요. 키리아 아가씨.”


비꼬는 그 말투에 키리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에겐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아.”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이상해다. 자기 스스로 붙여놓은 이름이면서 애착이 없나요?”

“큭큭, 인간의 이름에 무슨 얼어 죽을 애착? 이 가죽도 그저 사냥을 위한 거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후후, 또 다른 분은 그렇게 말하지만··· 아가씨 쪽은 어떨까요?”


네프리티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키득거렸다.


“정말 솔직하지 못해, 거짓말쟁이네요. 축제에선 예쁘다는 말에 그렇게 기뻐했으면서.”

“입 닥쳐···.”


키리아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네프리티나의 태도가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거짓말쟁이라고? 아무렴, 너만 하겠어? 모두를 실컷 속여 넘겼던 주제에! ···무슨 수를 쓴 거지? 동족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는데!”

“별로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단지···.”


네프리티나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랑하는 것도.

으스대는 것도 아닌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저는 인간을 먹지 않게 된지 십년이 넘었으니까요.”


네프리티나의 말에 키리아와 또 하나의 요괴는 크게 놀랐다.


십년.

그 긴 시간동안이나 인간을 잡아먹지 않았다니!

그것은 키리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기본적으로 육식을 하는 요괴가 인간이라는 맛있는 먹이를 스스로의 의지로 거부해?

그 끔찍한 인간의 식생활로 무리하게 십년이나 살아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네프리티나의 얼굴에는 거짓의 낌새가 없었다. 키리아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꼬마들도 동족?”

“설마요. 조나단과 캐시는 순수한 인간이랍니다.”


네프리티나가 질문에 장난스럽게 웃으며 답하자 키리아는 얼굴을 오만상 찌푸렸다.


“인간을 먹는 괴물이 인간의 아이를 키운다고? 지금 장난치냐? 마치 고양이가 쥐를 키우는 격이군.”


그러나 네프리티나의 진지한 눈은 여전히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넌 미쳤어.”

“뭐가요?”

“인간을 키워고 있어. 어머니를 연기하고 있잖아! 대체 무슨 생각이야?”

“후후··· 알아요. 기가 막히죠? 이해할 수 없겠죠? 하긴, 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니까···.”


네프리티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적을 앞에 두고서 저런 여유를 보이다니.

키리아는 네프리티나가 자신을 깔보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다.

몇 초 정도가 지났을까?

이윽고 네프리티나는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처음 아이들을 만난 것도 이맘 쯤 이었군요. ···그때도 오늘처럼 따스한 봄바람이 불었어요.”


네프리티나는 느닷없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간들의 전쟁은 길더군요. 당시에 그들은 몇 십 년이나 서로 죽고 죽이고를 반복하고 있었죠. 덕분에 먹이가 부족한 경우는 없었지만. 후후, 어딜 가던지 먹을 것이 넘쳐났어, 언제나 질릴 정도로 배를 채울 수 있었죠. 우, 하지만 역시 시체의 고기는 금방 질리더라고요. 상상할 수 있겠죠? 썩어버린 고기의 맛은 형편없으니까요. 아무리 살기 위해서지만 가능하면 좋은 음식을 먹는 게···.”


키리아는 네프리티나의 질색에 일부나마 공감했다.

비록 적이라고는 해도 식성의 취향에서 만큼은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우연히 사막의 하늘 위를 날아가다 한 여자를 보았지요. 한 살도 안 된 남자아이와 갓 난 여자아이를 안은 채로··· 마을을 찾아 해매고 있더군요.”

“흥. 그래서?”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를 사냥했어요. 그리곤··· 잡아먹었죠."


네프리티나의 미소가 슬픈 빛을 띠었다.


“그게 이 모습··· 제가 뒤집어쓴 가죽의 주인이었어요.”

“···.”

“여자는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서 저에게서 도망치려 했지요. 필사적으로, 온힘을 다 해서요.”

“못 들어주겠군. 그게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냐?”


공생체 요괴가 짜증이 나서 얼른 본론으로 넘어가라고 네프리티나를 독촉했다.

하지만 네프리티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두 아이를 처음 대면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순전히 호기심뿐이었어요. 인간의 아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귀엽다기보다 신기했죠. 상상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요만큼이나 작은데도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게 뭐?”

“후후, 당시엔 식욕이 없었어요. 그래서 당장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죠. 시체를 뒤지는 것도 지긋지긋했고··· 잘 생각해보니 이 기회를 노려서 사람의 마을에서 지내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죠. ···그래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나와 똑같아.

네프리티나의 사정은 며칠 전 인간의 놀이를 시작하기로 했던 키리아의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저는 이 모습으로 의태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데려갔지요. 조금 걸어가다 보니 마을이 나오더군요. 그 여자는 전쟁 중에 고향을 잃고 이 이방인들의 마을로 향하고 있었어요. 여기가 유일한 희망이었겠죠.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도중에 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금방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

“당시의 저는 그 여자가 가엽다기보단 좀 우스웠어요. 운이 더럽게 나빴다며 비웃었죠.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어요.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자 쪽이겠지요. 모유가 나올 턱이 없는 제가 아이들의 울음을 방법은 없었지요. 저는 그 칭얼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당장에 아이들을 죽이려 했어요. 거기서··· 저는 알리시아를 만났지요. 알리시아는 마을 여자들에게 저를 소개하곤 마침 막내아이를 낳았던 다이에나한테 부탁해서 아이들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습니다."


네프리티나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때로는 몸짓을 과장해서 설명한다.

그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거짓은 없었다.


“정말··· 너무나 신기했어요. 겨우 그것만으로 아이들은 울음을 멈췄거든요. 저는 어안이 벙벙했죠.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담··· 정말로 기가 찼어요. 특히나 조나단은 먹는 양이 장난이 아니라서 아주머니가 곤란해 하셨을 정도라니까요.”


네프리티나는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벅찬 기억, 잔잔한 추억들··· 결코 화려하진 않지만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이 시작되었죠. 이따금씩 일어나는 풍파에도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보듬고 돈독하게 정을 쌓아갔어요.”


그것이 인연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십년이 부쩍 지나있었다.

아이들의 성장과정.

마을의 발전.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


네프리티나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하나하나 키리아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 이런. 미안해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그걸 이제 알았어? 그게 뭘 어쨌다는 건데?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뒤늦게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네프리티나는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이제야 본론을 말했다.


“키리아 아가씨. 저는 이 마을이 참 좋답니다.”


진심이 담긴 한마디를 쏟아낸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해요.”


네프리티나의 목소리에는 확고한 의지가, 온화한 미소 뒤에는 흔들리지 않는 결의가 담겨있었다.


“그러니까 지키고 싶어요. 이 마을을···. 조나단과 캐시를···. 모두가 행복한 이 울타리와 보금자리가 언제까지고 안락하게 유지됐으면 해요.”


일순간 네프리티나의 푸른 눈동자에서 섬뜩한 귀기가 흘러나왔다.

전날 밤의 로크가 뿜어냈던 안광보다도 불길한 빛을 냈다.


그것은 살기를 띤 키리아마저 압도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운이었다.


“선택하세요.”


고요를 위장한 마(魔)가.

본성을 감수고 있던 흉포한 짐승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저와 이 마을에서 머물며 함께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당장에 떠날 것인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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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붉은 마수(1) +2 21.06.10 45 7 19쪽
35 요조 로크(8) +3 21.06.09 47 9 12쪽
34 요조 로크(7) +2 21.06.08 45 10 14쪽
» 요조 로크(6) +2 21.06.03 52 8 13쪽
32 요조 로크(5) +3 21.06.01 42 8 17쪽
31 요조 로크(4) +3 21.05.31 45 8 19쪽
30 요조 로크(3) +2 21.05.29 50 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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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요조 로크(1) +4 21.05.27 48 8 13쪽
27 축제(8) +2 21.05.26 41 7 24쪽
26 축제(7) +2 21.05.25 49 7 13쪽
25 축제(6) +3 21.05.24 55 6 20쪽
24 축제(5) +4 21.05.23 58 10 25쪽
23 축제(4) +2 21.05.22 57 11 21쪽
22 축제(3) +2 21.05.21 58 11 17쪽
21 축제(2) +2 21.05.20 66 10 14쪽
20 축제(1) +4 21.05.19 72 12 19쪽
19 전야제(5) 21.05.19 46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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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야제(1) 21.05.17 57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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