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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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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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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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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2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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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붉은 마수(4)

DUMMY

4.

삐걱삐걱.

어긋났던 신경이 원상복귀 되어간다.

어긋난 리듬이 맞춰진다.

키리아는 자신의 감각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네 독 따윈 안 통해.”


소녀가 걸음을 옮기자 회색구름의 장막이 달을 숨겼다.

대지는 순식간에 암흑에 잡아먹혔다.

그 어둠의 세계에 남은 것은 단 둘 뿐.


붉은색과 푸른색 안광이 서로를 마주본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강렬한 적의가 그늘 속에서 맞부딪혔다.


“···기가 막혀, 이럴 수가.”


네프리티나는 키리아를 향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항체를 만들어냈다고요? 웃기지 말아요. 내 독은··· 이 방어기제는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아, 물론이지. 정말 복잡하고 성가셨다. 하지만 우리야말로 특별하거든. 둘로 갈라져 있으니까.”

“킥, 키득··· 너야말로 얕보는 거 아니야? 나와 언니의 적응 능력을?”


납득 할 수 없는 현실.

네프리티나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나 분해.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사람이 아닌 생물의 표정이 드러날 정도였다.


몸 안에 독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어.

아이들을 위해.

마을을 지키이 위해 그 아픔을 참아가며 이루어낸 결실이 당장 눈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굴욕.

동시에 참을 수 없는 공포이기도 했다.


“킥, 킥킥··· 후회되지? 그러게 너는 기회가 있을 때 날 죽였어야했어.”


그러나 아무리 내성이 생겼다할 지라도 무엇이 키리아로 하여금 해독속도를 수십 배나 가속 시킨 것일까?

그것은 키리아의 두 눈이 말해주었다.


“그런 가요··· 그랬군요. 당신은 역시 나와 닮았어.”


키리아의 힘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네프리티나를 향한 분노.

마음이란 본디 보이지 않는 것.

측정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격렬한 스트레스는 위벽에 구멍을 뚫어, 간절한 마음은 평소보다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만든다.

즉, 육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두 마리 요괴가 만들어낸 집념에 네프리티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 키리아의 해독능력은 자신과 같아, 간절한 바람의 힘이었다.

형태도 없는 마음이, 그저 가슴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인 의지가 경이로운 기적을 만들어낸 기적.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밖에.


“인정하죠. 당신에겐 더 이상 잔 수가 통하지 않을 것 같네요.”


네프리티나는 정신을 다잡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나는 아직지지 않았어.’


지금 키리아는 완벽하게 독을 정화하진 못했다.

그 증거로 키리아는 지금 다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싸우기엔 역부족.


그에 반해.

지금 네프리티나의 몸도 엉망진창이었다.

양팔도 박살이 났어.

더 이상 생체 파편을 발사할 수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

이대로 키리아가 몸을 회복하면 네프리티나는 영락없이 패배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네프리티나는 여전히 자신의 우세함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창공의 요괴는 달빛 아래서 왼팔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키리아 아가씨, 당신이라면 알고 있겠죠. 우리들의 재생력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요. 고작 며칠 내에 몸에 받아들인 열량 정도 밖에 회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다들 급격한 변신은 꺼려하죠.”

“또 은근슬쩍 수다질이야? 지쳐서 사람 껍질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그래요. 사실은 소모가 커서 지금도 서있기 힘들 답니다. 우리가 굳이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는 건 사실 엄청나게 바보 같은 짓이에요. 생존에도 불리하고 움직이기도 불편하기 짝이 없어요. 그럼에도 당신이나 저나 당장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이미 변화시킨 몸뚱이를 다시 재구축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엄청나기 때문이에요. 저는 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제 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들을 알아냈죠.”

“하, 그래? 그래서 그게 뭘 어쨌단 거야?”

“더 재미있는 걸 가르쳐드리죠.”


싱긋, 네프리티나는 활짝 웃어보였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이끌어낸 회심의 미소였다.


“우리들의 몸에는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금구의 기관이 있어요. 저희가 살아가는 모든 에너지는 그곳에서 만들어지죠. 우리 요괴들이 자유자제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모두 이 기관 덕분이에요. 뭔가를 먹으면 일말의 낭비 없이 그 기관은 힘을 비축해요. 다만 몸의 크기에 비례해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한정되어 있지요. 그릇이 그 크기만큼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 기관에는 한 가지 더 놀라운 힘이 숨겨져 있어요. 그건 바로···.”



네프리티나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콰득, 경화시킨 날개가 목 바로 아래를 파고들었다.


“무슨 짓이야?”

“돌았냐, 너?”

“후후··· 아뇨, 제 정신은 멀쩡해요. 오히려 너무 맑아서 문제랄까요?”


키리아는 혹여 네프리티나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은 아닐지.

자신이 분을 풀 적이 사라질 지도 모른단 생각에 이를 갈았다.


“어쩔 수 없네요. 십년이나 인간의 생활을 유지한 저로서는 당신의 재생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요.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이 방법뿐이에요. 마을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후후, 이 정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네프리티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없었다.


“자, 봐요··· 위치만 정확하게 안다면 자력으로 그 힘을, 큭··· 억지로··· 끌어낼 수 있어.”

“너··· 그딴 짓을 했다간 수명이 조금 주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랬다.

네프리티나가 저지른 것은 자신의 생명을 재물로 바쳐 일순간이나마 강력한 힘을 내도록 만드는 자가 수술.

설사 키리아에게 이긴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상관없어요.”


네프리티나의 망가진 날개가 꿈틀거린다.

벌어진 상처가 아물어간다.

키리아에게 당했던 모든 상처가 완전히 재생했다.


불길한 청안이 밤을 비췄다.

네프리티나의 양쪽 날개가 펼쳐졌다.

네 쌍의 날개가 이형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각질화 된 조각을 발사하는 목적이 아닌.

본래의 순수한 그 용도를 충실히 실행하기 위해서.


“자, 모든 걸 내려놓고··· 우리 같이 놀아볼까요?”


네프리티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하늘 위에서···.”


그 말을 끝으로 여덟 개의 날개가 네프리타나를 감싸 안았다.

온 몸을 날개의 막으로 숨긴 그 모습은 나비로 우화하기 직전의 고치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네프리티나는 인간의 형태를 버리고서 지금 비로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미쳤어. 넌 제정신이 아니야.”


눈앞의 적이 이형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던 키리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갸아아아아아!”


끔찍한 포효는 로크의 재림을 알리는 것이었다.

거대한 날개가 검은 안개를 내뿜으며, 일제히 뻗어나갔다.

동시에 하늘로 다섯 개의 푸른빛이 날아올랐다.


그것은 밤보다 더 짙은 암막.

창공을 누비는 유일무이한 포식자였다.


각기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네 쌍의 날개와 갑옷과 같은 생체 표피.

지상을 비추는 청옥의 눈동자···.

그 괴이한 생물은 마치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형상이었다.


지금, 가녀린 여성의 몸 안에 잠들어있던 하늘의 마수가 눈을 떴다.


“킥, 넌 그 모습이 잘 어울려. 가증스런 인간의 껍데기 따위보다 더!”


지상의 붉은 소녀가 조소와 함께 적의 등장을 반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조우는 만월이 뜬 밤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일어서, 키리아. 몸은 충분히 회복되었다. 놈을 다시 떨어뜨려주자.”

“응.”



땅을 박찬 소녀는 망설임 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적정거리에 다다른 순간.

소녀의 오른손과 함께 붉은 궤적이 로크를 향해 그어졌다.


“역시 도망치는 재주 하나만큼은 일류인 모양이네!”


베는 감촉이 전혀 없어.

소녀는 위로 고개를 돌렸다.

로크는 어느새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찬의 말씀,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 음파로 로크의 대답이 흘러왔다.


“하지만 변변치 않은 건 마찬가지야. 인간의 모습이나 지금 그 모습이나.”


소녀는 가볍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위를 올려다보며, 하늘의 적에게 비웃음을 건넨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네프리티나의 전언이 다시금 소녀에게 울려 퍼진다.


“이제부터 알려드리지요.”


로크의 본체가 키리아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제가 어째서 창공의 포식자라고 불리는지!”


로크가 급강하를 시작했다.

여덟 개의 날개를 동시에 쳐내어 만들어낸 폭발적인 가속도가 키리아를 위협했다.


하지만 로크의 움직임은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낙하하는 순간에도 로크는 생체 파편을 뿜어냈다.


“소용없어!”


키리아는 자신에게로 뻗어 나오는 생체 파편들을 양팔의 검으로 쳐냈다.

자신감을 담은 검의 흐름이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아무리 어둠속에 녹아들어도, 기묘한 소리로 혼란스럽게 만들어도 키리아에겐 생체 파편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앗?”


곧 소녀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생체 파편에 실린 힘이나 속도가 이전에 보았던 것과 비교해서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키리아는 로크의 모습이 시아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키리아의 몸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뿔싸!”

“커···억!?”


충돌.

무시무시한 빠르기와 육중한 무게가 합쳐진 충격이 키리아의 등을 강타했다.

교묘하게도 그 위치는 비스듬한 대각선 위를 향해있었다.


소녀는 저항도 못하고 지면에서 떨어져나갔다.


콰지직!

몸 속 어딘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크의 충돌은 키리아의 몸을 하늘로 끌어올렸다.


“큭··· 거기냐!”


머릿속이 충격에 흔들린 와중에도 키리아는 뒤를 돌아 적의 모습을 확인하려 애썼다.

그러나 키리아가 시선을 향한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키리아가 본 것은 왼쪽 어깨를 파고든 검은 조각뿐이었다.

키리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검은색 빗줄기가 소녀의 몸을 덮쳤다.


팔, 다리, 가슴, 목···.

잔혹한 생체 파편의 비에 키리아의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독 자체의 효력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생체 파편이 가진 고유의 파괴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디를 보고 있나요?”


아픔에 정신이 흐트러진 키리아의 빈틈을 로크는 놓치지 않았다.

키리아는 위와 아래조차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하늘에 유린당했다.

하늘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균형감각도 소용이 없었다.


콰앙!

일방적인 충돌로 소녀의 몸은 다시금 부상한다.

눈앞에서 지나간 로크를 향해 필사적으로 오른팔을 휘두르지만 키리아가 벤 것은 적의 그림자뿐이었다.

키리아가 내지른 검에 대한 보답은 뒤에서 날아든 생체파편으로 되돌아왔다.


푹, 푸욱!


소녀의 등에 박혀 든 수많은 검은 조각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키리아의 비명소리는 바람에 흩어져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뭘 하고 있어요? 이쪽이라니까?”


로크는 튀어 오른 소녀의 몸보다도 빠르게 비행하며 항상 한 발 앞서 움직였다.

그리곤 그때마다 저항하지 못하는 키리아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쳤다.



“또 틀렸어요, 난 여기 있어요.”


과거 하늘을 지배하던 로크 자신은 지금과는 상대도 안될 만큼 빨랐다.


그리운 하늘.

지금껏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공간.


로크의 비행은 날개 짓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가속했다.

움직이는 방향에 검은 잔상만을 남기면서 반대쪽에서 들이닥쳤다.


“크···으!”


“정신 차려라! 이대로는!”


다시 팔을 뻗어보지만 키리아는 로크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로크의 초고속 비행은 이미 생체파편의 빠르기를 능가하고 있었다.


“여기라니까요?”


푸욱!

온 몸에 파고드는 검은 가시들이 소녀를 망가뜨렸다.

콰앙!

로크의 견고한 로크의 몸통과 정면충돌한 키리아가 무사할 리 없었다.



“이제 잘 알았겠죠?”



쾅, 콰앙, 콰광!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로크는 처참하게 허공에 방치된 키리아를 들이박았다.


“이 하늘에서는···.”


이것이 창공의 포식자, 이것이 로크의 진짜 모습···.

하늘의 지배자의 강함인 것이다.


“누구도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로크의 영역에 걸려든 키리아의 몸은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에요!”


드디어 로크가 최후를 선언했다.


‘이 이상은 나도 버틸 수 없으니···.’


허나 사실 지금 로크는 초조한 상태였다.


세계의 법칙은 공평하다.

자연계의 규율은 인간이건 요괴이건 간에 모두에게 적용된다.

당장 키리아를 압도하고 있는 이 힘과 속도는 발악에 불과해.

꺼지기 일보 직전 타오르는 촛불과도 같았다.

다시 말해, 언제 힘이 다할지 모르는 상황···.


‘좀 더··· 조금만 더!’


로크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더 이상 다음이란 없다는 것을.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순간부로 목숨이 다 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로크는 한시라도 빨리 키리아의 목숨을 끊어야만 했다.


‘가속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바람보다, 소리보다도 더 빠르게!’


키리아는 로크의 몸통에 들이박고 하늘의 미궁에 던져져 공중에 붕 뜬 채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 틈을 노려 로크의 분열된 날개가 하나가 되었다.

날카로운 그림자가 뭉쳐졌다.


로크는 창이 되었다.

화살이 되었다.

자신의 몸 전체를 경질화시킨 것이다.


로크는 공기의 벽을 부수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키리아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이건 위험···해!”


로크의 머리 부분이 송곳과 같은 형태로 변했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공격에 키리아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대로라면 키리아의 작디작은 육체는 산산조각날 것이었다.


“내 눈으로도 따라가질 못해! 감으로 쫒아도 한 발 늦는다! 어떻게든 막아내야 해!”


“···.”

“야! 키리아?! ···제기랄, 하필 이럴 때!”


키리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할 수가 없었다.

요괴의 육체가 가진 생존법 때문이었다.

그 몸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을 잃는 것을 택했다.

로크의 맹공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절체절명.

키리아는 그대로 로크의 창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할 것처럼 보였다.


“하늘은 나만의 것이야! 누구도 날 이길 수 없어요!”


상대의 말처럼 자신은 하늘의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이 창공에서 키리아에겐 그대로 꿰뚫려 죽은 운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웃기지 마라··· 누구 마음대로? 네 녀석 따위···.”



일순간 키리아의 머리카락이.

팔이.

다리가.

전신이이 부풀어 올랐다.


소녀의 몸은 순식간에 해체되어 하늘을 감쌌다.

키리아는 자신의 몸을 모조리 생체 사슬로 변화시켰다.


“이 몸이 나락으로 끌어내려주마!”

“아니···!”


분열된 키리아의 몸이 로크의 몸을 휘감았다.

로크의 강력한 일격에 부딪힌 사슬은 여지없이 찢겨졌지만.

그물과 같은 모습이 된 키리아에 의해 로크의 시아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 상태로는 감속조차 할 수 없어, 로크와 키리아는 가공할 속도로 지면에 추락했다.


쿠과과아아앙!

공터가 폭발했다.

언덕이 날아갔다.

아름드리나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바닥이 움푹 파였다.

흙과 모래와 먼지와 파편이 하늘로 흩뿌려졌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로크의 모습이란···.


“크··· 으···.”


처참한 몰골이었다.

온 힘을 다해 키리아를 꿰뚫으려했던 로크의 창이 완전히 박살난 채였다.


영롱한 보석과도 같던 다섯 개의 눈 중 세 개는 뭉그러져 터져버렸다.

부서진 바위 조각이 박혀든 몸통은 여기저기로 체액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하늘을 날 수 없어,

더는 날아오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창공의 포식자가 자랑하던 날개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모조리 꺾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큭, 큭큭큭···.”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는 으르렁거리는 울부짖음과 같았다.


밤하늘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체모를 짐승이 추락한 로크를 비웃고 있었다.


“겨우 풀려났다. 이 저주스런 주박에서!”


악몽이란 것이 형상을 갖추게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태고로부터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존재일 것이다.

의심할 필요도 없는 잔혹한 악의를 품으며 처절하리만큼 두려운 귀기를 뿜어내는 마(魔)의 집대성···.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 로크의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 몸뚱이를 자유롭게 써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너에게 감사해야겠어. 큭큭···”


피어오르는 먼지사이로 지옥의 광채가 번뜩였다.

가라앉는 흙더미들 사이로 진홍색 안광이 이글거린다.

그 순간, 달빛이 죽었다.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 자리에는 더 이상 단아한 소녀 키리아는 없어.

남은 것은 잔학무도한 붉은 마수뿐이었다.


거대한 몸집.

10척을 넘어가는 날카로운 실루엣이 지상에 강림했다.


날카로운 가시들.

온몸에 들이 붙은 생체 갑주는 끔찍하다는 표현이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섯 개로 갈라진 뿔을 가진 흉측한 머리.

그 형상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옥의 존재를 믿도록 만들 정도였다.


“···들어본 적 있어. 그 날카로운 모습··· 서쪽에서 유명한 요괴의··· 분명 붉은 마수 키사라고 불리던······.”

“그래, 잘 알고 있군.”

“그게··· 당신의 진짜···.”

“큭큭큭, 맞아. 작아빠진 계집애 거죽 따위가 아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내 모습이지.”

“큭··· 후, 후후··· 설마하니 기생하고 있던 쪽에게 당할 줄이야···.”

“···아앙? 기생? 누가 기생이라고!?”

“갸악!”


콰직!

바닥에 널브러진 로크의 몸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붉은 마수가 흉포하게 으르렁거렸다.


“같잖은 착각하지 마라··· 나야말로 이 몸의 주인이라고.”

“뭐라···고요?”

“반대다. 기생하고 있는 건 내가 아니야! 서쪽의 마수 키사란! 그 이름은 애초부터 나를 가리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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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요조 로크(7) +2 21.06.08 45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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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요조 로크(5) +3 21.06.01 42 8 17쪽
31 요조 로크(4) +3 21.05.31 45 8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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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축제(8) +2 21.05.26 41 7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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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축제(2) +2 21.05.20 66 10 14쪽
20 축제(1) +4 21.05.19 72 12 19쪽
19 전야제(5) 21.05.19 46 11 15쪽
18 전야제(4) +2 21.05.18 58 13 12쪽
17 전야제(3) +5 21.05.18 55 1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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