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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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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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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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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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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요조 로크(8)

DUMMY

11.

“···협상은 결렬이군요.”


무표정.

네프리티나는 쓸쓸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정말로 안타까운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거라면···.”


네프리티나의 눈동자에 강렬한 적의가 나타났다.


“얼마든지 상대해드리죠. 하지만 이번에는 봐주지 않아요.”


인간의 거죽을 쓴 요괴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 견제했다.

키리아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그 행동에는 은근히 망설임이 보여.

어디까지나 넬의 신변을 신경 쓰고 있었다.


반면, 네프리티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

키리아의 행동이 원채 돌발적인데다, 언제까지고 인질 작전이 통할 지도 알 수 없었기에.

거기다 하늘의 마수인 네프리티나가 이렇게 좁은 집안에서의 어디까지 싸울 수 있을지도 미지수···.


하지만 불리한 것은 어디까지나 키리아 쪽이었다.

몸 안에 침투한 신경독이 대부분 중화되었다고는 하나.

전체적인 회복은 평상시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셈이야, 너?’

‘몰라.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선 채로 당한다. 무리하게 대치해봐야 소모만 될 뿐이야.’


그 말 그대로, 키리아는 진이 빠졌다.

자신의 몸이 삐걱거리는 게 느껴져.

아직 해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를 무리하게 변화 시킨 행동이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었기에.


‘···도와줘, 언니. 다투던 건 나중에 해결하자.’

‘쳇, 어쩔 수 없구만. 너, 나한테 빚진 거다.’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입을 열었다.


“···야, 로크라고 했지? 이번엔 내 쪽에서 하나만 묻자.”


공생하는 요괴가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키리아는 무너져 내리는 다리를 고정시켰다.

이것으로 움직임의 변화를 적이 눈치 챌 걱정은 없어졌다.


“잔꾀를 부리는 거라면···.”

“안 통겠지. 하지만 나와 이 녀석은 별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거든. 궁금증은 풀고 싶어서 말이야.”

“흐응?”


물론 속임수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인간이란 것들은··· 왜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남을 도우려 하는 거지?”


그것은 동시에 키리아도 궁금했던 것.

넬과 접촉한 이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다.


키리아는 내려앉기 직전의 건물에서 두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 몰려든 마을의 사내들을 떠올렸다.

무너지는 파편에 머리를 맞아가면서까지 자신을 밀쳐냈던 넬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자색의 요괴는 다시금 질문했다.


“너도 몇 번인가 겪었지 않냐? 자기 목숨보다 남을 살리는 걸 우선시하는 별종들 말이야.”

“···있었죠. 그런 이들을 꽤 자주 만나요.”


그 물음에 일순간 네프리티나는 허점을 드러냈다.

그것은 키리아에게 기회였다.


‘옳지. 지금이다! 당장 목을 물어뜯어!’

‘···.’

‘야? 뭐하는 거냐? 어서!’


하지만 키리아는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성공률이 낮은 도박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조차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진 것일까?


아니, 둘 다 아니었다.

단지, 키리아는 듣고 싶었다.

해답을 얻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느새 키리아의 얼굴에는 적의나 살의가 아닌 순수한 호기심만이 나타나있어.

네프리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풉.”

“뭐가 웃기지?”

“당신은 정말이지, 저와 닮았어요.”


네프리티나는 이야기 도중 눈을 감아버렸다.

키리아에게 해답을 내놓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경계가 흐려졌잖아! 움직여! 어서 죽여 버리라고!’


적을 앞에 두고서는 해선 안 될 기행이었지만 그녀는 키리아가 자신을 공격해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신뢰할만한 근거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만족스런 답변을 해드리는 건 무리예요. 뭐랄까, 그건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게 뭐야···.”

“미안해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미뤄야겠네요.”


타닥 타닥.

아래층에서 소리가 울려.

키리아와 네프리티나, 둘 모두의 귀가 반응했다.


작고 가벼운 발소리.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됐으니 결판은 다음에 내죠."

짝.

네프리티나는 양손을 합장하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지어낸 표정.

미소가 과장되게 느껴질 정도로 밝은 것을 보아 연기가 틀림없었다.


방금 전까지의 긴장감은 키리아가 질문을 던진 시점에서 완화되었지만.

이것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급변했다.


‘그렇겠지. 녀석도 마을 안에서, 그것도 대낮에 우리와 싸우는 것이 그리 환영할만한 상황은 아닐 테니.


네프리티나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 사태를 타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용을 쓰고 있었다.


‘···쳇,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죽일 수 있었는데.’


끼익, 이윽고 손잡이를 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평균적인 어른의 신장에 위치해야 할 머리의 위치에는 아무것도 없다.

키리아는 좀 더 아래에 시선을 두고서야 그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엄마, 알리시아 아주머니께서 불러요.”


발소리의 주인공은 네프리티나의 귀여운 딸.

캐시였다.


어린 소녀의 양손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공이 들려져있었다.

네프리티나는 캐시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었다.


캐시는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으려는 듯 커다란 눈동자로 방 안 여기저기를 탐색했다.

의원은 소녀에게 낯선 집이었지만 엄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잊게 했다.

그러다가 캐시는 키리아의 보라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라, 언니야도 있었네?”


키리아는 자신보다 작은 키의 소녀를 내려다보며 동공을 확장시켰다.

차가운 시선이었다.


‘옳거니··· 이 꼬마를 잡아라! 그러면 다시 우리에게 상황이···.’

‘···관둘래.’

‘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캐시는 네프리티나와 키리아를 번갈아보다 불안하게 입을 땠다.


“언니, 캐시랑 공놀이··· 안 할래요?”


느닷없이 공을 내미는 캐시의 행동에 키리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공놀이···?”


이 어린 아이는 전날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면 못쓴다는 꾸중을 들었다.

그것을 기억하고서 어떻게든 키리아와 친해질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캐시는 키리아에게서 흘러나오는 섬뜩한 귀기에도 불구하고 공을 내밀었다.

아이로서는 대단한 용기였으리라.


“시, 싫어.”


그러나 키리아는 거절했다.

사실 캐시를 인질로 삼아 적을 궁지에 몰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아이의 뒤에 선 네프리티나가 그것을 용인할 리 없었다.


“우···.”


캐시는 노골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키리아 때문에 캐시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하다.

네프리티나는 보다 못해 나긋한 목소리로 캐시를 달랬다.


“이 언니야는 어제 무서운 일을 겪었어요. 피곤해서 캐시랑 놀아줄 수 없데. 우리 캐시 착하지?”

“으응···.”


네프리티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캐시의 어깨를 뒤에서 살포시 껴 앉았다.

맛있는 간식을 기대하라며 보듬어주자, 캐시는 금세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칫···.”


당연히도, 키리아는 이 두 모녀의 훈훈한 광경 따위는 관심 없었다.


“자, 알리시아 아줌마가 기다리겠다. 안내해주렴, 캐시."


캐시는 엄마라는 안정된 존재의 영향이 컸던 것인지 기특하게도 울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네프리티나는 천천히 캐시를 앞으로 밀어가며 재촉했다.

이대로 도망갈 셈이었다.


“그 전에···.”


문을 열고서 밖으로 발을 내딛기 직전, 네프리티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키리아도 그 움직임에 반응했다.

아이를 동반하긴 했지만 여전히 경계의 대상.

결코 방심할 수 없어.

키리아는 혹시나 모를 역습에 대처하려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네프리티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키리아를 비추는 푸른 눈동자에는 다정하면서도 잔잔한 기운이 담겨져 있었다.


네프리티나는 부드럽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의 질문에 대답해드릴게요. 그건···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뭐?”


그것은 키리아가 기대하던 해답이 아니었다.

네프리티나의 말은 논리보다도 감성으로서 접근해야할 또 다른 수수께끼나 다름없었다.


소중한 사람?

또 다른 의문이 늘어버렸다.

키리아는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멈춰버린 기분.

또 다시 가슴언저리가 지끈거린다.


“그럼···.”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 리 없는 캐시는 마음이 급했는지 엄마의 소매를 끌어당겼다.

딸의 재촉에 네프리티나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삐걱.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문이 천천히 기울어져갔다.

그 광경은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 같은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


그때였다.

키리아가 문 너머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파를 감지한 것은···.


진동의 폭이 지나치게 불안정했지만 키리아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네프리티나의 목소리.

인간의 언어가 아닌, 의지만을 담은 전언이었다.


‘─오늘 밤, 마을 밖의 공터에서.’


그것은 조용하지만 우렁찬 선전포고였다.

대답은 원치 않아.

이제와 결정을 번복할 이유는 없었다.


키리아는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적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키리아와 한 몸을 쓰는 다른 요괴 쪽도 분노를 담고서 고요한 살기를 뿜어냈다.


‘···.’


침묵.

기척이 사라지자, 키리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고정시킨 다리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왜 꼬맹이를 잡지 않았냐?”

“모르겠어.”

“그걸 지금 말이라고···?”

“몰라. 정말 모르겠는 걸. 어째서인지 그래선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단 말이야.”

“우리에게 다음 기회는 없을 지도 몰라. 방을 나서면서 녀석이 풍겨온 살기는··· 내가 예전에 붙어본 그 어떤 녀석들 보다 날카로운 뭔가가 스며있었어.”

“강적이란 소리네.”

“멍청아! 어제 녀석이 널 상대했던 게 정말로 장난이었단 의미다!”

“상관없어. 이번엔 절대로 지지 않을 거니까.”

“아무 대책도 없는 주제에 무슨 헛소리야? 내가 없었다면 넌 지금쯤···!”

“괜찮아. 그걸 위해 나는 언니와 함께하는 거잖아?”


잠시 동안의 침묵.

이것은 신뢰인가?

공생체의 우수한 판단 능력을 믿고 있단 의미일까?


“···쳇, 됐다. 이젠 나조차 널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네가 빈틈을 보인다면,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선택을 해버린 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몸을 다시 빼앗아 버릴 거다.”

“응, 알고 있어. 그게 우리의 계약.”

“절대로 잊지 마라.”

“나는···.”


키리아의 시선은 침대로 향했다.

그 자리에는 미약한 숨소리를 흘리며 깊은 잠에 빠진 사내가 있었다.


넬을 바라보는 지금의 키리아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격렬한 증오를 뿜어내던 요괴가 아니었다.


-재미있었지요, 키리아 양?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면, 그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축제의 마지막에 넬이 했던 말과 지금 막 네프리티나가 남긴 대답이 키리아의 귓가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소중한···사람···.”


고요하고 쓸쓸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메아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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