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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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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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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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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붉은 마수(6)

DUMMY

7.

“미쳤어··· 넌 미친 거야.”


키리아는 질겁했다.

깨달은 것이다.

광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로크의 무모함을···.


로크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키리아에게 날개를 집어 뜯겼을 때 수명이 다한 것이었다.


살과 가죽이 부풀어 오르지만, 그것은 재생이 아닌 부패···.


“잠자코 자빠져 있었다면 최소한 남은 목숨은 십 몇 분 정도라도 유지됐을 것을···.”


그런데 무슨 수로 여기까지 온 거지?

로크는 불가사의한 어떤 수단을 동원해 겨우겨우 날개를 재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얼마 남지 않은 목숨까지 소모해가며···.


“지···킬거···야.”

“이해할 수 없어. 말도 안 돼.”

“내 아이들··· 이 마을을··· 반드시.”

“왜··· 그렇게까지!”


생물체의 목적은 생존.

자기 자신의 안위를 최대한 오래도록 지키는 것.


하지만 대체 무엇이 로크로 하여금 이토록 강한 의지를 주었는가?

무엇이 이 요괴에게 이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하였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놀이 따위가··· 아니야. 나, 에겐··· 존과 캐시가, 정말로 소중한 아이들이기 때문···이야”


키리아와 키사는 알고 있었다.

궁지에 몰렸을 때, 지성체는 비로소 진짜 얼굴을 보인다는 걸.


목숨에 위협이 생기면 대다수의 인간은 도망치는 것이 정상.

그것은 생명을 가진 요괴에게도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네프리티나의 모성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로크는 더욱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을 각오하며 여기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너, 방금 이 몸에 무슨 짓을 했지?”

“갸, 아···아아··· 그건, 나의··· 저주···.”

“뭐?”

“원념··· 이라고 할까? 후, 후후후··· 언제까지고 당신···을 따라다니며, 후회시킬··· 내 최후의 저···주.”

“저주?”

“무슨 헛소리냐?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 크헉!”

“후후후··· 겨우, 효과가···.”

“···흘러들어와. 제멋대로··· 아윽!”


키리아와 요괴는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요괴의 뇌 속을 헤집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나의, 모든 것··· 바로 이 마을에서 보낸··· 십 년간의 추억들···..”

“막을 수 없어! 계속해서··· 마음에 뭔가가!”

“크으, 이런 개 같은 술수를! 어떻게 했는 진 모르겠지만 기억을 강제로 주입 했구나!”


요괴들이 악을 지르고 있었지만 로크는 당장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체내에 남아있는 공기만으로 겨우 실낱같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크아아악! 감히 패배자 주제에! 끝까지 이딴 발악을!”

“이긴 건 나야··· 너는 약하니까 그 꼴이 된 거야!”


두 마리 요괴는 분노를 토해냈다.

그것은 얼핏 로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붉은 마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긴 건 우리야! 내가··· 내가 더 강하단 말이야!”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승리를 선언하지만 그것은 거의 애원이나 다름없었다.

붉은 마수는 로크가 패배를 인정하길 바랐다.

하지만 무거운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질 못했다.

로크가 경험해왔던 과거들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당장 달려들어 로크의 숨통을 끊을 수조차 없었다.


“왜, 어째서?! 대체 뭐야, 이 아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승패의 여부 같은 건 의미를 잃었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적을 짓이겨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 붉은 마수가 논하는 강함이란 정말이지 부질없는 것에 불과했다.


붉은 마수는 로크의 진정한 힘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으로선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유구하고도 고결한 영역···.

마음.

그리고 의지의 강함이었다.


“···쳇,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독이라니, 빌어먹을! 엿 같은 기분이다. 아직도 놈이 가진 기억의 편린이···.”

“그만··· 미칠 것 같아. 제발 그만···.”




이제 붉은 마수는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잠자코 로크의 죽음을 지켜볼 뿐이었다.


“존··· 캐시···.”


죽어가는 와중에도, 로크는 다정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읊조렸다.

그것은 네프리티나의 음성이었다.


“어, 엄마? 어디 있어요?”


틀림없는 모친의 목소리.

캐시가 반응했다.

존도 주변을 둘러보며 두 마리 요괴를 앞에 대면하면서도 어머니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엄마?”

“어디있어요? 무서워요, 엄마!”


바로 앞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을 부르는 아들과 딸을 보며 로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로크의 몸 중 그나마 온전한 두 개의 푸른 눈동자가 애절하게 남매를 비추고 있었다.


“잘, 들으···렴···.”

“엄마?”


“나···는 이 새카만 요괴···에게 잡아 먹혔···단다···.”


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캐시는 너무 놀라 울지도 못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 엄마?”


애꿋은 거짓말.

로크는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괴물···의 뱃···속에 있단···다.”

“구해줄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물러나!”


부웅!

조나단이 로크에게 다가 오려하자 갑자기 부러진 날개가 거칠게 움직였다.

존은 겁에 질려 뒤로 나자빠졌다.


“안 돼··· 여기 오면··· 조나···단···.”


쿨럭.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로크는 붕괴되어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아, 조금만···.’


로크의 날개가 문드러지기 시작했어. 표피가 산산조각으로 떨어져나갔다.


“있지, 얘들아. 엄마는··· 곧··· 죽을 거란다. 이 괴물···이 날 먹어···서 이젠··· 살 수··· 없어. 그러니까··· 조나···단··· 캐···시···.”

“싫어! 싫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엄마를 살릴 거야! 이 나쁜 요괴 놈! 엄마를 돌려줘!”

“갸아아아아아!”


로크는 비명을 지르듯이 목소리를 토해냈다.

하늘이 울리는 그 소리에 두 아이는 깜짝 놀라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그러지··· 마, 존··· 엄마 말을··· 들···으렴. 요괴··· 몸에서··· 나오는 파···란 액체···에 다가가···지 마··· 무서운 독··· 이니···까. 요괴···가 죽으···면 아저씨들···한테 말···해서 태워···버려야···해···.”

“엄마··· 엄마아···.”

“···존···은 오빠니···까, 캐시를 잘··· 돌아주어야··· 한···다? 우리··· 딸··· 울면 못··· 써. 예쁜 얼굴···이 미···워지잖···니?”


요괴의 몸통이 건조한 회색빛으로 점차 변해갔다.



‘나에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로크는 추억을 더듬어갔다.

기뻤다.

즐거웠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벅찼다.


조나단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엄마라고 불러줬을 때.

캐시가 걸음마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두 아이가 다투어가며 안마를 해주었을 때의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곤란한 걸. 캐시는 토닥여주지 않으면 울음을 그치지 않아. 조나단은 밥을 먹을 때 꼭 채소를 남겨. 시기마다 빨래는 자주해야해··· 그렇지 않으면 말썽쟁이인 아이들이 갈아입을 옷이 없는 걸. 어쩐담. 이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주는 쿠키를 좋아하는데··· 앞으로는 누가? 아아, 나는 이토록···.’


기억이 뒤섞인다.

아련한 기억들이 흘러간다.

지금 두 마리의 요괴는 로크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로크는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품에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


먼발치에서 존이 소리쳤다.

소년의 얼굴은 눈물로 가득했다.


“내년에도 축제 같이 간다고 했으면서··· 연극 보러간다고 했으면서!”

“응, 그··· 래··· 가자··· 꾸나···.”


로크는 이제 사고를 관장하는 부분마저도 망가지고 말았다.


“축···제, 내년에도··· 존··· 캐시··· 우리 가족은, 언제나처럼··· 함께···.”


종말이 찾아왔다.


“우리··· 착한, 아이···들···.”


로크의 눈이 탁해졌다.

푸른빛이 생기를 잃었다.

그것으로 로크는 완전히 침묵했다.

창공의 포식자가 죽었다.


“···.”


로크의 주검을 앞에 두고 붉은 마수는 넋을 잃었다.

그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이 더러운 기분은··· 대체 뭐냔 말이다.”


겨우 떨쳐낸 인간의 의문이 다시 되돌아왔어.

요괴는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요괴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키리아는 단지 로크가 있는 이 장소, 네프리티나의 자식들이 울부짖는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았다.


여기는 작아빠진 촌락에 불과해.

벌레 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짜증나는 마을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시덥잖은 공간.


그러나 요괴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마을엔 요괴의 자리는 없다고, 어디에도 있을 리 없다고 말이다.


붉은 마수는 계속해서 달렸다.

사람들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새빨간 요괴를 보고 식겁하며 반대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키리아는 그들을 쫒지 않는다.

로크와의 싸움으로 배가 너무도 고팠지만 사람을 습격하지 않았다.


길게 이어진 벽면에 진홍빛 그림자가 비추어졌다.

그 그림자는 비쭉비쭉 튀어나온 괴물의 형상이었다.


···잠시후, 붉은 마수가 다음 집으로 넘어가니 그곳의 벽에 비친 그림자의 키가 줄어들었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갈 때마다 그림자는 더욱 작아졌다.

마지막 집을 통과했을 때에는 그 자리에 요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골목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긴 보랏빛 머리카락을 가진 전라의 소녀.

붉은 마수는 어느새 다시 키리아의 가죽을 뒤집어 쓴 것이었다.


기막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의 인도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요괴가 무의식중에 행선지를 미리 정해뒀기 때문?


놀랍게도 키리아의 걸음이 멈추었을 때.

그녀의 앞에 있었던 것은 바로 사제가 잠들어 있는 요양소였다.



“넬···.”


소녀의 모습이 된 요괴는 조금 전처럼 난폭하게 집을 부수지 않았다.

조용히, 점잖게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오르자 복도 너머로 나무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반나절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해 얼굴이 수척해진 넬이 누워있었다.


키리아는 그앞으로 다가가면서 자신이 아는 넬 노튼의 모든 것을 떠올렸다.

레렌이 말해준 넬에 대한 이야기와 네프리티나의 기억과 감정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수도에서 온 교단의 사제.

멍청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성실하다.

아침 기도를 빠짐없이 행하는가 싶다가도 어느 부분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볍게 그만둬버린다.

넬의 이런 일면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아귀가 맞지 않았다.


키리아가 이 마을에 흘러들어온 그날 아침···.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원리원칙을 준수할 것 같던 넬은 고작 레렌의 어리광 때문에 새벽 기도를 포기했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축제가 시작하기 직전에 행해야 했을 기도도 혹여 다른 풍습과 종교를 가진 타지의 주민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다.


이러한 행동은 사람을 대하는데 융통성 있는 모습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어.

적당히 상황에 타협하는 것도 아니었다.


키리아는 깨달았다.

넬의 행동에는 주체라는 것이 없다는 걸.

모든 것들이 오직 타인을 위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두철미한 사제가 유독 청소만큼은 하지 않아.

이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그는 자신이 어찌되던 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교리나 사제의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단지 오랫동안 지속된 버릇과도 같은 것.

그것을 부수는 이유는 단지 상대를 위해서였다.


이타심.

그것은 마치 넬 노튼을 위한 말 같았다.


“너··· 때문이야!”


키리아의 오른팔이 뒤틀리더니 끔찍한 형상의 날붙이로 변했다.

그것은 붉은 마수가 자랑하는 최강의 무기.

고주파로 진동해 새빨갛게 번쩍이는 지옥의 칼날이었다.


“그래, 이 자식 때문이다!”


키리아는 변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자신의 삶에 일말의 의문조차 느끼지 않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부정하고 싶어도 돌이키지 못해.

고작 며칠, 닷새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인간과 어울린 것만으로도 붉은 마수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며들고 말았다.

극도의 혼란.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제 요괴는 참을 수가 없었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만큼···.


“네가, 너만 아니었다면!”


요 며칠간 인간과의 접점이 얼마나 있었던가?

키리아는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별것 아니었다고.


상대가 말을 걸어오면 적당히 대꾸하고 여차하면 무시해버렸다.

그것이 전부.

하지만 그것은 평생 동안 키리아가 인간과 마주한 순간들보다 더 길었다.


“나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허나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있었을 뿐이다.


“그때 왜 나한테 말을 걸었지?”


사제에게 사심은 없었다.

그저 곤경에 처한 소녀를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왜 내 대신··· 파편을 맞은···거야?”


넬에게서 대답이 들려올 리 없었다.

키리아는 가장 바라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우리는, 나는 로크에게 이겼어··· 잘난 듯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빌어먹을 녀석을 압도적으로 처 죽여줬다고! 강해, 그깟 인간놀이나 하는 쓰레기 보다 훨씬 더··· 그런데!”


또 다른 요괴마저도 이를 악물었다.

키리아의 뺨에 나타난 입 사이로 뿌득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쌔게 깨물었던지,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아직도 가슴이 아파. 머릿속이 깨질 것 같아. 이게 대체 뭐야? 우린··· 이겼단 말이야!”


키리아는 붉은 검을 넬에게 내리치려 했다.

그러나 소녀의 눈에는 살의라곤 전혀 눈뜨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증오가 완전히 식어버렸어.

분노가 사그라져 있었다.


“제기랄, 이게 저주라면··· 정말로 굉장한 뒷끝이군. 정말로··· 네가 원하는 대로 되어버렸잖아. 빌어먹을 로크···.”


붉은 마수는 로크를 죽이고 나면 마음속의 혼란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었다.

분명 싸울 때만큼은 그런 데에 신경 쓸 겨를 없어서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괴는 승리 후에 더욱 커져가는 아픔을 맞이해야만 했다.

로크에 대한 적의로 억누르고 있던 마음이 가슴 언저리에서 세어 나와.

머물 곳을 잃은 감정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 키리아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죽임으로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넬이야말로 모든 것의 원흉, 키리아는 지금 넬의 목숨을 끊으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키리아에게 이제 그런 짓은 불가능했다.


“아···.”


바닥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눈물은 키리아의 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놀라운 일.

요괴가···.

어미의 앞에서 갓난 아기를 찢겨발기는 것은 극상의 기쁨으로 여기던 그 마물이.

서쪽 대륙을 공포로 몰아놓은 붉은 마수가 혼란스러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몰라··· 모르겠어. 이건 뭐야? 이 기분은 뭐냐고? 가슴이 지끈거려··· 참아 보려 해도 안 돼.”


키리아는 결국 들어 올린 오른팔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검의 신경을 풀어서 다시 인간의 팔로 되돌렸다.


“···이제 우린 인간을 먹을 수가 없게 됐다. 인간을 죽일 수가 없어.”


키리아는 인정해야만 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붉은 마수는 인간과 지내며 그들에게 융화되어버렸다는 걸.

마을에서 지내며 더는 없을 안식과 즐거움을 깨달았다는 사실을.


자신은 요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네프리티나가 새겨 넣은 기억이 주박처럼 가슴을 죄어왔다.

그럴수록 인간의 마음은 빈틈을 노려 자꾸만 빠져나올 기회를 노렸다.


키리아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 것은 바로 그것.


“왜 너희들은··· 어째서 같은 울타리에 있을 때 왜 이렇게 따뜻한 거야?”


레렌이 옷을 주겠다면서 껴안았을 때를 떠올린다.

번거롭고 귀찮았다.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축제날 마을 사내들이 흥분해가며 집적거렸을 때의 기억도 있다.

모두가 시끄럽게 조잘조잘 거렸다.

더할 나위 없이 짜증나.

그래서 실은 자신을 예쁘다고 말해주어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강제적으로 한 연극에서도 관중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연신 떠들어댔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놀라고 어떨 때는 야유하더니 어느 때엔 또 환호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화가 날정도로 거슬렸다.

하지만 재미있었다.

관중의 위에서 있었을 때 키리아는 공녀의 딸로 비춰 지고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축제가 끝났을 때를 돌이켜본다.

레렌이 화를 냈었다.

한스가 난처해했다.

유고는 깜짝 놀래며 둘을 말렸다.

네프리티나가 박수를 치며 실소를 터뜨렸다.

넬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키리아는···.


“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것을 떠올리고만 키리아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키리아는 패배했다.


분명 그녀는 요조 로크에겐 이겼다.

하지만 어머니 네프리티나를 이길 순 없었다.


어둑한 밤.

망가진 마을에 구석진 어느 작은 집안에서 전라의 소녀는 흐느꼈다.


“키리아··· 양.”


그때였다.

침대 위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리아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사했군요.”


그 자리에는 한 남자가 눈을 반쯤 감은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행히도, 넬은 어둠 속에서 막 눈을 뜬 상태.

키리아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넬··· 나는 사실!”


깨어난 넬에게 키리아는 필사적으로 뭔가를 말하려 했다.

모든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 온 이후부터 그녀가 원하는 것이 단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있었는가?

물론 아니었다.

이번에도 키리아는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키리아가 뭔가를 내뱉기도 전에.

넬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행이야.”


그 한마디에 키리아의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요괴의 긍지.

포식자의 정체성.

지금껏 살아온 일생 전부가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렸다.


넬의 목소리는 키리아로 하여금 갈등을 종식시킬 정도의 강한 무엇인가를 주었다.


“아, 아아···.”


요괴는 목 놓아 울었다.

그것은 필사적으로 눌러 담다 못해 터져 나오고만 마음의 오열이었다.


이제 이 자리에는 더 이상 잔혹 무도한 서쪽의 붉은 마수는 없었다.

그저 마음 표현이 서투른 소녀···.

키리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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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전야제(5) 21.05.19 46 11 15쪽
18 전야제(4) +2 21.05.18 58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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