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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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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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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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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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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요조 로크(4)

DUMMY

7.

“···호오, 몸뚱이를 재구축 시켰군. 대응하기 위해서 급조한 건가? 그게 아니면···.’


내리쬐는 월광에 비춰지는 지상에는 기묘한 그림자.

네 쌍의 날개가 펄럭여.

그것은 기묘한 춤을 추고 있었다.


흐트러짐이 없는 날개 짓은 익숙해보였다.

키리아는 그것이 단순한 임기응변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처음부터 저 녀석의 날개는 여덟 개였단 거야?”


키리아는 약이 올랐다.

가까스로 로크를 끌어들여 공격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적은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두 쌍의 날개는 초고속 비행을 위한 것.

빠른 방향전환과 속전속결의 공격이 가능한 형태였다.

반면에 이 많은 날개는 그와는 다른 전투에 특화된 것이리라.


“같은 수는··· 이제 통하지 않겠지?”

“관둬라. 보통내기가 아니다. 더는 얕보지 않는 게 좋겠어.”


몸통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

하지만 날개부분에는 다섯 개의 마디와 그 사이로 검은 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그것은 질기고 튼튼할 것이 틀림없었다.

과연 하늘을 날기 위한 형태.


“하지만 그건 놈도 마찬가지야. 한 번 당했으니 이젠 섣불리 움직이진 못하겠지?”


키리아는 생각했다.

당장 적에겐 공격 수단이 없다고.

저 여덟 개의 날개는 단지 궁지에 몰린 패배자의 발버둥처럼 보였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로크가 보여주는 공중에서의 공격패턴은 단순 그 자체.

속도는 무시무시하지만, 반대로 적의 속도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맞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또 녀석이 참지 못하고 달라붙길 기다릴 셈이냐?”

“그래, 지금은 견제하면서 기회를···.”


키리아는 그렇게 적을 얕보고 말았다.

그래서 다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아윽!?”


푸욱.

무언가가 소리도 없이 키리아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그 속도도 어마어마해.

키리아는 그 충격에 뒤로 거의 튕겨나갈 뻔 했다.


“뭐야, 너 왜 못 피했냐?!”

“···아무 기척도 없었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분명히 적에게는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이전과 다름없이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서 날개를 펄럭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키리아는 당했다.

외부표피를 뚫고서 파고든 검은 조각.

그것은 어른의 손바닥 크기의 날카로운 생체 파편이었다.

보통 인간이 이것을 정면으로 맞았다면 몸을 그대로 두 동강 내버렸을 것이다.


가슴에 박힌 것은 세 개.

거의 같은 위치에 두개가 박혀버렸고 그것과 약간 떨어진 위치에 하나가 파고들었다.

키리아는 당장 어떤 것 하나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단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저 하늘 위에서 유유히 내려다보고 있는 로크가 날려 보낸 것이다.


“이런 수가 있었나? 한 방 먹었군.”

“이··· 약아빠진 놈!”


키리아는 욕을 내뱉으며 건물이 늘어선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로크에게 흉악한 공격수단이 있단 것을 깨달은 지금.

상황은 키리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큿···하아···.”


키리아는 가슴에 박힌 검은 조각을 뽑아내려했다.

하지만 로크가 날린 검은 생체 파편은 놀라울 만큼 잔혹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굉장하군. 몸속에 파고든 조각의 끝부분이 갈퀴처럼 돌기로 되어있다. 끄집어내려면 조각이 파고든 만큼의 살 조각을 후벼 파야해.”

“하윽! 하아···.”


키리아는 이를 악물고 조각을 끌어냈다.

그러자 바닥에 혈흔이 떨어진다.

피부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올 때 마다 출혈의 양도 늘어가.

그만큼 극심한 고통이 퍼져갔다.

조각의 크기가 반 이상 빠져나왔을 때, 키리아는 단번에 힘을 주었다.


“크···!”


푸슈우우.

상처를 자리 잡고 있던 이물질을 빼내자 그 자리로부터 검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키리아가 입고 있던 푸른 드레스가 붉은 피와 뒤섞여 버렸어.

이내 본래의 색을 완전히 잃었다.


키리아는 손에든 조각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남은 두개의 조각을 제거하기 위해 양손에 힘을 주었다.


“아흑!”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서 동시에 두 개를 뽑아냈다.

키리아의 상반신은 상처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갈고리와 함께 혈관이 파열된 탓이었다.

그만큼 출혈량도 어마어마했다.


과다출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미 회생 불능할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그러나 키리아는···.


“후우···.”


인간이 아니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회생불능처럼 보이던 키리아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식물의 뿌리처럼.

여러 개의 줄기가 속에서 꿈틀거리다 키리아의 피부를 천천히 원상복귀 시켜갔다.


불과 수십 초 사이.

키리아의 상처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이야말로 '랑페르에서 흘러온 자' 만이 보유하고 있는 경이로운 초 재생능력이었다.


“쳇, 쓸데없이 열량을 소모해버렸군. ···자, 이제 어쩔 셈이냐?”

“킥···.”

“야?”


되돌아간 자신의 몸을 보고서, 키리아는 오른손을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살며시 벌어진 입술 사이가 흉포하게 일그러졌다.


“키, 킥. 키득. 키키킥···.”


광소.

그러나 그 웃음엔 어떤 형태의 유쾌함도 즐거움도 기쁨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굴욕감에 의한 분노.

자신에 대한 혐오만이 스며있을 뿐이었다.


“···있지, 이걸 봐. 이것도 저것도 다 엉망진창이야.”


하얀 피부는 자신의 체액으로 더럽혀졌고.

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었던 푸른 드레스는 넝마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은 적을 얕본 것의 대가.

키리아는 착각하고 있었다.

날개를 한 번 베인 것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떠있을 뿐인 로크를 겁쟁이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몸에 흉물스러운 것들을 박아 넣고 말았다.


키리아는 이를 악물었다.

적을 과소평가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손가락이 경련한다.

눈동자의 초점이 떨린다.

머리카락이 기묘하게 흔들린다.


“···좋아.”


키리아의 웃음은 끝이 났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소름끼치는 짐승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진홍빛 눈동자가 타원으로 일그러졌다.


“너··· 이제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


자신을 향한 분노는, 이윽고 적을 향한 강렬한 증오로 바뀌었다.


“큭큭큭, 좋아! 이제야 발동이 붙었구나.”


키리아는 극심한 고통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다.

좀 더 날카롭고 냉정하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 여덟 개의 날개는 단순히 하늘을 부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번갈아가며 속사의 생체파편을 발사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로크의 전법은 거리를 유지한 다음 날개에서 돋아난 날카로운 검은 조각을 날리는 것.

적과의 전력차이는 명백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로크는 키리아가 가장 상대하기 곤혹스러운 적이었기에.


속도를 앞세워 돌진해오던 날개가 한 쌍의 날개라면 대처방법은 있어.

그러나 지금 적은 약간의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고 키리아를 완벽하게 견제했다.

로크는 영악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원거리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죽일 거야, 죽여주겠어!”


키리아는 같은 말을 다시 되풀이하며 보라빛의 눈동자로 분노를 토해냈다.

그것은 작은 불꽃이 아닌, 작열하는 폭염이 이글거리는 형상이다.


“또 다시 바닥에 처박아서,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난도질 해주겠어!”


파앗!

순간 키리아의 뺨을 지나갔다.

키리아는 흠칫하며 고개를 숙였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닥에 박혀다. 로크가 골목에 숨어있던 키리아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자식!”


이어서 검은 파편의 비가 쏟아졌다.

가공할 연사 속도.

키리아는 아슬아슬하게 그것들을 피해 다음 집 건너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우뚝 솟은 지붕들을 방패처럼 이용해, 로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갸아아아아아!”


물론 로크가 적의 접근을 쉽사리 용납할 리는 없었다.

검은 악마의 날개가 격하게 펄럭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날개의 리듬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키리아는 그것이 탄환의 장전과 발사를 위한 움직이란 사실을 눈치 챘다.


“빈틈이다.”


검은 조각을 발사할 수 없는 지금이야말로 반격할 절호의 기회.

키리아는 그 한순간의 정적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눈썰미는 틀리지 않았다.

날개의 교차는 검은 탄환을 발사하는 것과 비행을 동시에 하기 위한 일연의 과정이 맞았어.

그러나 생체 파편을 만들어내는 빠르기는 키리아의 예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어둠을 등진 로크의 소리 없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진 날개의 끝으로 각질화 된 생체 파편이 키리아를 향하여 투척되어졌다.


“칫!”


파편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왔다.

검은 조각이 부피가 작은 만큼이나 공기의 저항을 적게 받으니 로크 본체의 속도보다 빠를 것은 당연했다.


위기.

그것도 대 위기였다.

키리아가 직면한 위험이란 적이 가진 무기의 빠르기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숫자였다.

조금 전 키리아의 몸에 박힌 조각의 수는 고작 세 개에 불과했어.

하나, 그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었다.

몸을 재생했다곤 하지만 그만큼 힘의 소비가 커.

키리아는 그간 비축해둔 체력을 모두 상처를 회복하는데 써야했다.


그런데 지금 공격에서 로크가 날린 검은 조각의 수는 그 열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파편들 하나하나는 모두 흉포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 으···.”


푸욱!

공중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튼 키리아였지만 결국 검은 조각 중 하나가 왼쪽 어깨에 명중하고 말았다.

생체 파편의 작살 같은 갈퀴는 또 다시 살을 파고들어 엄청난 고통을 키리아에게 선사했다.


“전부 피하는 건 무리다!”

“그딴 건 상관없어!”

“돌파할 생각이냐?”

“언니의 조력, 기대할게.”

“쳇, 이런 때만 의지 하다니···.”

“왜? 겁이라도 먹었어?”

“아니··· 원하던 바다!”


적을 향해 돌진하는 키리아는 이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공격을 피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

로크는 생체 파편을 쉴 세 없이 뿜어낼 뿐이었다.


푹!

푸푹!

이어서 오른쪽 다리와 가슴 주변에도 공격이 적중했다.

이윽고 키리아의 머리를 향해 검은 조각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키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까불지 마라, 빌어먹을 날 벌레 새끼···!”


머리를 겨냥한 생체 파편은 명중하지 못했다.

조각이 얼굴이 닿기 직전, 키리아의 얼굴 표면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아가리가 그것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퉷, 마무리 할 수 있겠냐?”

“치명상은 없어.”


사실 키리아는 로크가 뿜어내는 검은 조각들 대부분을 피해내고 있었다.

물론 모든 파편을 피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렇기에 자잘한 상처를 입을 것은 각오하고 위험한 부위를 최대한 지켜낸 것이었다.


“거리는 좁혔다. 충분히 닿아!”


앞으로 달려가던 키리아가 도약했다.

지붕을 뭉그러뜨릴 만큼 강한 도움닫기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크의 망막에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는 키리아의 모습이 비쳤다.

붉은 눈동자에서는 귀기가 서려있어, 소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은 마치 날개와 같이 하늘에 펼쳐졌다.


“자, 이제 베어버려!”


그러나 지금, 키리아의 오른손만큼은 본래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가녀린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하면서도 기묘한 붉은 팔이 어느새 작고 예쁜 손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

그 지옥의 형상은 아무리보아도 인간의 그것이라 할 수 없었다.

차가운 달빛조차 짓이겨버릴 것만 같은 적갈색의 오른팔.

손가락 따윈 찾아볼 수 없고 사이사이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이 이질감을 더 했다.

신체의 일부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의 형상은 마치 검.

그랬다.

그 붉은 검은 그 단면만으로도 지옥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기야아아아아!”


로크는 날개를 급하게 휘둘러 생체 파편을 발사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윽고 악몽의 대검이 내리꽂혔다.


붉은 궤적.

검격이 원을 그리며 창공을 갈랐다.

키리아의 오른손에 어둠이 찢어졌다.

로크의 날개에 균열이 발생.

날개의 막을 연결하고 있던 마디가 일직선으로 베어져버렸다.


잘려나간 날개 마디 사이로 푸른 형광색의 체액을 흩뿌리며 로크는 균형을 잃었다.

거대한 몸체가 중력에 인도되어 지상으로 이끌려간다.

남은 날개를 필사적으로 움직여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콰과과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래도 로크는 추락했다.

난폭하게 십 수개의 건물들은 무너뜨려가며 지면에 쓸려 처박혔다.


“가관이야.”


잔인한 미소를 띤 소녀는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어느새 키리아의 오른팔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넌 그렇게 땅에 처박힌 모습이 잘 어울리는 걸?”


건물에 파묻힌 로크에게 조소를 흘리며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기는 키리아.

서두르지 않는 그 태도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것 같았다.


“그러게 주제도 모르면서 까불면 안 되지. 응? 안 그래?”


로크의 투명한 눈에 다시금 키리아의 형상이 나타나.

로크는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서 자리를 벗어나려한다.


“갸아, 갸아아아!”


키리아는 온몸에 박힌 생체 파편을 하나하나 뽑아냈다.


“흑, 하아··· 많이도 맞췄네.”


마지막 남은 검은 조각을 제거하고 나서야 키리아는 자신의 드레스가 완전히 찢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찢어진 오른쪽 소매는 방금 전 변화시킨 팔 때문에, 레이스가 치맛자락은 파편들로 인해 너덜너덜했다.


“···이게 뭐야?”


어째서였을까?

순간, 키리아는 넬이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 드레스, 잘 어울리네요.’


뿌득.

키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네가 날 습격한 이유 따위,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어.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야. 하지만 곱게 죽을 거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걸?”


요괴의 수명은 길다.

이 세계의 어느 생물보다도 생명력이 질기고 강하다.

그러나 그것은 불사와는 거리가 멀다.

사고회로가 있는 뇌를 심하게 다하거나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랑페르가 자랑하는 재생 능력도 소용없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미신과 달리 요괴들도 사실은 살아있는 생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키리아는 당장 로크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키리아의 목적은 그저 로크를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우선 네 날개부터 하나하나 다 떼어줄게. 그 다음엔 껍질을 뜯어내고 내장을 파내서 찌르고 또 찌를 거야. 하지만 안심해. 아직 죽이진 않을 거야. 잠시 동안 기다렸다 재생하고 나면 또 짓밟아주지. 나한테 시비를 건걸 죽을 때까지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키리아는 오른손에 신경을 이었다.

그리고는 자비 없이 팔을 휘두르려했다.

그런데···.


“어?”


갑자기 키리아가 행동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키리아의 의지가 아니었다.

몸이 정지했다.

움직이기 않았다.

신경을 이어 붙이던 오른손의 회로가 끊어졌어.

몸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안··· 움직여. 뭐야? 설마 언니가 방해하는 거야?”

“그럴 리 없잖냐! 내 목숨도 위험하다고!”

“그렇다면, 갑자기 왜?”

“급격하게 혈관이 뒤틀리고 있다. 내장까지 마비가···.”

“크, 으으윽!”


키리아는 억지로라도 로크를 베려 했지만 몸은 키리아의 의지를 철저하게 배신했다.

털썩.

이번에는 멋대로 몸이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말도 안 돼.

키리아는 무릎 꿇은 채로 로크를 노려보았다.


“너어! 내 몸에 무슨 짓을?”

“갸아아아아아아!”


로크의 눈동자가 빛을 냈다.

키리아의 눈에 그것은 회심의 미소처럼 느껴졌다.

로크는 진즉에 상대의 몸에 이상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키리아가 멈추자마자 잘려나간 마디를 재생시켰다.


날개는 식물의 줄기가 엮여지듯이 천천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크윽,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틀림없어. 이건··· 독이다!”

“그럴 리가? 요괴의 몸에 듣을 정도의 맹독이라고?”

“그래. 이건 아마 신경을 좀먹는··· 그것도 아주 성가신···.”


상처를 회복해가는 적을 눈앞에 두고서도 키리아는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안간 힘을 다 쓰고서 일어나려고 해도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다고? 이중··· 아니 삼중의 함정이다. 저놈은 엄청나게 교활해.”


로크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체 파편은 상대를 직접적으로 죽이는 용도의 무기가 아니었다.

그저 독을 퍼뜨려 먹잇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공생하는 요괴가 말하는 것처럼 로크는 치밀한 책략가였다.

신경독은 같은 요괴였기에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다소 늦긴 했지만 이미 공격이 명중한 키리아를 끌어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모두 로크의 계략대로 연출되었어.

키리아는 처음부터 적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


“아악!”


퍼억.

로크의 몸에서 튀어나온 촉수가 무력한 키리아의 몸을 저 멀리로 날려버렸다.

보통의 채찍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 굵기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가공할 속도로 옆 건물에 충돌했다.

벽에 내동댕이쳐진 키리아는 그 상태로 축 늘어져버렸다.


“···제길··· 이 빌어먹을 놈···.”


키리아는 상처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아무래도 검은 조각에는 신경 독 이외에도 혈액의 응고를 방해하는 물질도 함께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투둑.

키리아가 기대고 있는 건물 외벽에 금이 가며 파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곧 벽이 무너져 움직일 수 없는 키리아를 덮칠 것이었다.


“돌덩이에 묻혀서 죽을 걱정은 없지만··· 곤란하군.”

“···무슨 수라도 없어?”

“무리다. 이건 나에게도 미지의 독이야.”


요괴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눈앞의 적이 날개의 재생을 모두 마쳐간다는 것이다.


“분···해!”


키리아는 치욕에 몸서리치며 정신력으로 대항해보려 했지만.

이미 독이 신경 여기 저에 뿌리를 내려 그녀의 몸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키리아가 점차 의식을 잃어가던 그 순간.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리아!”


익숙한 목소리.

키리아는 정신이 몽롱해져가는 상태에서 그 필사적인 외침이 들려온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키리아 양!”


저 멀리서 한 어리숙한 갈색 머리 남자가 자신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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