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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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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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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축제(7)

DUMMY

13.

태양이 기운다.

하늘이 빛깔이 짙어졌다.


여신이 내린 낮의 축복도 이제 절반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밤이 찾아올 것이었다.


이 시대의 인간은 기묘한 미신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어둠.

그것은 마물의 시간.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밤의 공포가 무지한 이들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리라.

해가 서서히 떨어지는 와중에도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공포의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여신의 가호, 즉 아직 축제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혼자 뭐하시나요?”


광장 언저리 나무 밑 둥에 앉아있던 사제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넬은 여느 때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냥··· 좀 지켜보고 있습니다.”


넬에게 말을 건 상대는 네프리티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조금 짓궂게 말했다.

묘하게 요염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구경하는 게 좋으세요?”


꼭 놀리는 말투.

하나, 별달리 악의는 없었으리라.


넬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가볍게 들썩였다.



“그러는 네프리티나야말로.”

“저는 쉬려고요. 아침부터 쭉 일어서 있어서 그런지 조금 피곤해졌어요. 일 년치 수다를 다 한 기분이네요.”

“두 아이들은?”

“존은 한스랑 같이 떠돌이 연주가 씨랑 이야길 하고 있어요. 캐시는 레렌이랑 아가씨와 함께 놀고 있고요.”

“그랬군요. 다들 축제를 즐겨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 키리아 양은 지금 뭘 하고 있던가요?”

“키리아 아가씬 레렌 한풀이 들어주느라 정신없던걸요. 배가 고팠는지 항상 뭔가 먹고있긴 했지만요. 참 신기하죠? 키리아 아가씨는 벌써부터 사람들이랑 친해진 모양이에요.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그래요. 키리아 양은 정말 강한 아이입니다.”

“사제님은 그렇게 생각 하세요?”

“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단 기간에 많이 회복될 정도니까요.”

“사제님.”

“그렇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키리아 양에게 좀 신경 써주시길. 남자인 저로서는 조금 대하기 어렵다고 할까요.”

“···사제님.”

“예?”

“저는 왜 여기 혼자 계신건지를 여쭤본 거예요. 자꾸 말 돌리시면 안되죠.”


레렌은 몰라도 저한테는 안 통한답니다.

네프리티나는 그렇게 덧붙였다.


그녀는 넬의 의도를 꿰뚫어보고 있어.

이 사제는 어수룩한 겉모습과는 달리 화술이 뛰어나다는 것도 익히 알았다.

상대에게 되묻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는 데 능통해.

넬은 꾀를 간파 당했음에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프리티나는 제가 어째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지가 궁금하신가요?”

“정확히는 왜 사람들을 피하는지를 묻는 거예요.”

“피해요? 제가?”

“또 모르는 척 하시긴. 레렌이 떨어지기 무섭게 인파에서 도망치듯이 나오셨잖아요. 제가 말씀 드렸을 텐데요. 이 축제엔 사제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라고요. 그런데 여기서 혼자 계시면 그런 의미가 없잖아요. 거기다 기도는 날림으로 해버리시고. 썩 그럴싸한 논리였지만 엉터리였어요.”


네프리티나의 지적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넬은 네프리티나가 끈질기게 대답을 기다리자 마지못해 겨우 한숨을 토해내듯 입을 열었다.


“···네프리티나는 못 당하겠네요.”

“그럼요.”

“정말로 당신은 제 어머니와 닮았습니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설마 또 이야길 돌리시려는 건 아니죠?”

“물론이죠. 당신은 멋진 여성입니다.”


넬은 잠깐 시선을 사람들을 향해 돌렸다.


“저는···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함께 어울리시면 더 좋을 텐데요?”

“저는 행복에 중심에 있어서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교리나 뭐 그런 건가요?”

“아뇨. 단지 제가 그러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시죠?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게 뭐가 어때서요?”


네프리티나는 넬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토록 순한 인상.

이렇게 단정한 용모인데도 어쩜 두 눈동자만큼은 의연하고 초연한지 그녀로선 알 길이 없었다.


흡사 고된 삶에 맞서 필사적으로 살아온 끝에 모든 것을 달관한 눈이었다.

말로는 형용 못할 큰 슬픔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으면 한눈에 들어오거든요.”

“뭐가요?”

“사람들의 표정이. 저마다 한가득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야기를 주고받죠. 이야기의 내용은 모릅니다. 그래도 어렴풋이 알 수 있어요. 저 사람들이 지금 행복하다는 걸.”


네프리티나는 원채 넬이 하는 말을 알지 못했다.

혹여 사제가 무지한 시골 여자를 놀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넬에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저 속에 섞여들면 알 수 없어요. 신기한 일이죠? 바로 앞에서 마주보는 것보다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쪽이 알기 쉽습니다. 전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아내는데 익숙하지 못해요. 이렇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게 그나마 났습니다.”


넬 스스로는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그의 점잖은 미소에 네프리티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떨어져 계시다는 건가요?”

“그렇게 되나요?”

“그건 저 사람들의 행복이잖아요. 당신의 행복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사제님은 그저 축제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걸요.”

“네프리티나, 하지만 저는 지금 어느 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요? 지금은 모두가 행복해하는데, 누구 때문에 그런다는 거죠?”

“닉슨 씨의 아버님을 비롯한 요괴 사건 때문에 죽은 이들의 부모님들입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제.

네프리티나는 순간 말문을 잃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슬픔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가 없군요.”

“그건··· 사제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압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아닐지도 몰라요.”

“이 고집불통 같으니.”

“맞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자주 듣죠. 허나 제가 조금만 더 빨리 그 자리에 도착했더라면 되었을까··· 저는 항상 그것만 생각하고 있거든요.”


아차, 네프리티나는 그제야 넬의 의도를 알아챘다.


이 남자는 이상하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라.

처음부터 목적이 어긋나있는 것이다.


“···그랬군요. 사제님은 그런 사람이었군요.”


이상하리만큼 금욕적인 생활.

스스로에게 무거운 족쇄를 달기라도 한 듯이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인생.


네프리티나는 그의 모습이 사제를 가장한 죄인처럼 비춰졌다.


“저는 남이랑 어울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들의 행복을 나눠받을 자격이 없어요. 저는 지켜보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그런 말씀은···.”

“죄송합니다. 이상한 일이네요. 좀처럼 이런 말은 하지 않는데··· 모쪼록 실언이라 생각해주시길.”

“사제님.”

“그렇죠, 네프니티나. 유고 씨가 동방에서 배운 연주를 이따 들려준다고 하더군요. 거기에···.”

“사제님!”


네프리티나는 고개를 돌리는 넬의 어깨를 잡으며 언성을 조금 높였다.

나무라는 것이 아닌,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다시 말씀 드릴게요.”

“네?”

“사제님은 이 마을의 가족이에요. 이제 한 식구라고요.”

“물론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계속 들어요!”


네프리티나는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여긴요. 다들 깊게 상처를 가진 사람들뿐이에요. 레렌에게도 들으셨죠? 여긴 다른 민족, 다른 나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이방인들의 마을, 그런 사람들이 처음부터 지금같이 오순도순 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나요? 아무런 갈등 없이 서로 보듬기만 하고 살았을 것 같아요? 아뇨, 절대 아니죠. 초기엔 서로 먹을 게 없어서 싸우고, 말이 안통해서 싸웠어요. 집집마다 도끼와 창을 들고 노크만 들려와도 핏대를 세웠어요. 그런 마을이었어요, 여긴.”

“···.”

“그런데 뭐라고요? 자긴 행복의 중심에 있으면 안 돼? 무슨 건방진 소릴 하는 거죠? 당신은 몰라, 이 마을이 얼마나 큰 아픔을 딛고 일어섰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우리가 지금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당신은 애송이에요. 수도에선 얼마나 잘난 사제님인진 모르지만 이젠 아니에요.”

“네프리티나···.”

“당신은 이제 이 마을의 일원일 뿐이에요. 알겠나요? 넬 노튼, 당신은 그저 맘씨 좋은 시골 사제에요. 레렌이, 마을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성당의 주인이라고요. 당신은···.”


넬의 어깨를 잡은 네프리티나의 손에 힘이 실렸다.


“우리 마을의 행복의 상징이라고요.”


그랬다.

아무리 좌천당했다곤 하나 이만큼 변방에 있는 시골까지 떨어지진 않는다.

넬이 여기에 온 것은 그간 이 마을 사람들이 수 도 없이 간택했기 때문에.

또한 그만큼 촌락이 안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넬 정도나 되는 학식을 가진 사제를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도 결코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네프리티나···.”


넬은 어안이 벙벙해져 네프리티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프리티나도 자신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넬의 몸에 금방 손을 떼어냈다.


“···죄송해요. 저도 이러려고 한건 아녔는데.”


넬은 고개를 늘어뜨렸다.

그리곤 자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네프리티나가 화낼 만도 하죠.”

“그래도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사제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모두가 알아요. 키리아 아가씨도 당신이 구해줬죠. 그런 사제님이 행복을 누릴 이유가 없을 리 없잖아요? 당신처럼 청렴한 사람이 와주어 모두들 다행이라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어울려주세요.”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네프리티나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넬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아, 정말 답답한 사람이야. 레렌이 불쌍할 정도네요. 자요, 일어나요.”


네프리티나는 한숨을 쉬며 넬의 손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네, 네프리티나. 이러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당신 어머니를 대신해서 혼을 낼 테니까요. 하여간 유독 사내아이들이 말을 안 듣죠. 고집이란 고집은 다 부리고. 그러면 자기가 멋진 줄 안다니까.”

“그러니까 저는 그럴 자격이···.”

“이보세요, 사제님. 이 마을에 쓰라린 과거 같은 거 없는 사람은 없어요. 비밀이지만 심지어 여긴 전직 도적 출신에 탈영병까지 있죠.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이제 모두 한 가족인데. 알겠나요? 여기에선 다 필요 없어요. 과거는 전부 잊어요. 새 시작이라고요. 이 마을에선 어제를 그리워하지 않아요. 오늘만 필사적인 것도 아니고요. 그저 내일만을 바라볼 뿐이죠.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반드시! 그건 당신도 예외는 아니에요. 제가 기회를 드릴게요.”


네프리티나의 피곤해서 쉬러왔다는 말은 완전 거짓말인 모양이었다.

비록 마른 몸이긴 했지만 그래도 성인 남자를 힘으로 끌어내는 것을 보니 과연 농사로 뼈가 굵은 변방의 여자였다.


넬도 교단에 있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정도의 옹고집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넬보다 더욱 더 악착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넬은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에게 혼쭐이 나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것으로 넬의 무모한 각오가 누그러졌다.

놀라운 현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신의 교리에도 지지 않던 그가 지금 굴복하려한다.

고작 변방 작은 마을의 한 미망인의 꾸짖음으로.



“···어쩔 수 없군요.”


넬은 그만 실소를 뿜었다.


“제가 졌어요. 네프리티나. 그러니까 아이취급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제야 네프리티나는 싱긋 웃으며 넬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것은 흡사 어린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을 때 해주는 배려와도 같았다.


네프리티나는 광장 중심에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장작불이 슬슬 꺼져가고 있죠?”

“그렇군요.”

“이제 곧 댄스 타임이 시작될 거예요.”


네프리티나는 넬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공주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마무리 확실히 하시길.”


공주님?

여인의 장난스러운 말에 사제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 숯검정이 되어버린 장작더미 사이에서 불의 요정들이 날아올랐다.

광장을 가로질러 하늘로 날아가 가루가 되어 땅에 흘러내려.

하지만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축제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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