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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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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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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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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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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요조 로크(1)

DUMMY

1.

사람들은 장작기둥의 불씨가 완전히 타버리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에게 축제의 뒷정리는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야.

이제 날이 밝으면 여인들이 재를 치울 것이고.

잡다한 물건들은 사내들이 제자리로 옮겨놓을 것이다.


기쁜 날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도.

잔혹한 밤의 마수에게 인정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그들은 어둠 속에 숨어, 여신의 가호가 사라지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이처럼 아직 사람들의 뇌리에는 뿌리 깊게 미신의 그림자가 박혀있었다.


···단, 몇몇만큼은 아니야.

이 축제의 중심에 있었던 주역들만큼은 조금 달랐다.

넬 사제.

레렌.

한스.

그리고 키리아까지.

이들의 마음은 아직도 들떠있어.

밤의 두려움 따위는 문제될 것이 없을 정도로.


“그럼 잘 자라고. 사제형씨랑 보라색머리 아가씨.”


유고가 마지막으로 현을 튕기며 작별인사를 건네자 넬은 웃음으로 답했다.

헌데 마지막 발언이 문제였다.


“그리고 거기 왈가닥 공주님도.”


레렌의 얼굴에 성난 기색이 나타났다.

당장에라도 유고에게 따지고 들까싶었는데 오히려 레렌은 한스를 노려보았다.


“오호라, 한스··· 같은 편을 만든 거구나? 내 별명을 다 알려주셨어? 그만하기로 했으면서 치졸하게시리···.”

“아, 아냐! 그런거 아니라고! 유고 형! 뭐라고 말 좀 해줘요!”

“으핫핫하. 청춘이야, 도련님.”

“한스!”

“으, 으아아아!”

“자자, 두 사람 다 진정해요.”

“쿡, 쿡쿡.”


유고는 능청스럽게 자리를 피했고 넬은 한스와 레렌 사이를 말렸다.

그 속내는 모르지만 키리아도 한창인 소년소녀를 바라보며 연신 키득거렸다.

보다 못한 네프리티나가 박수와 함께 소리쳤다.


“이제 축제는 끝났어요. 이제 모두들 슬슬 돌아가 봐야죠?”


네프리티나의 중재로 상황은 겨우 정리되어 마무리할 순간이 되었다.


유고와 한스.

레렌과 알리시아.

존과 캐시와 네프리티나.

넬과 키리아는 각자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광장에서 헤어졌다.

그리곤 각자 어둠을 피해 자신들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 가장 가까운 집은 성당으로.

넬과 키리아는 광장에서 멀어져가는 사람들을 마중했다.


“재미있었지요?”


갑자기 넬이 뜬금없이 축제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키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쑥스럽다거나 하는 귀여운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제의 눈에 소녀의 침묵은 무언의 긍정으로 보였다.


“저도 즐거웠답니다.”


안 물어봤거든?

키리아는 당장에라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넬은 기분이 좋은 지 웃는 얼굴이야.

바라보는 쪽이 다 부끄러워 질 정도였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였기에.


‘이 녀석은 뭐가 그렇게도 좋은 걸까?’

‘이제 화도 안 내나? 슬슬 너도 저놈의 푼수 짓에 익숙해져가는 모양이군.’

‘넬이 저런 자식이란 걸 알았으니까.’

‘너치곤 이번엔 꽤 오래 참았잖아? 슬슬 변덕을 부릴 때도 되었는데.’

‘흥, 이 정도는 별 것 아니야.’


키리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느새 자신이 자연스럽게 사제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키리아 본인도 축제가 재미없었단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네프리티나는 문 앞까지 알리시아와 레렌을 배웅하고선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로 앞집에서 알리시아가 손을 흔들었고 레렌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프리티나의 뒤에게 얼굴만 쏙 드러낸 캐시도 거기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엄마.”

“왜 그러니, 우리 아가.”

“오늘 재미있었어요.”

“그랬니?”

“레렌 언니가 놀아줬어, 캐시도 엄마가 만든 요리 줬어요.”

“어머.”

“엄마, 엄마! 나도 재미있었어. 그 무섭게 생긴 악사 아저씨가 연극을 해주더라니까!”

“존, 그건 아까도 자랑했잖니?”

“그래도 굉장한 걸. 연극은 태어나서 처음 본거란 말이야.”

“그래, 그렇구나. 다음 축제 때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

“악사님이 온다고 하셨어!”

“어머나, 그래? 그럼 내년에 다시 보러가자꾸나.”


네프리티나는 존과 캐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캐시는 엄마의 손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렸고 존은 쑥스러운지 귀염성 없게 네프리티나의 손길을 마다했다.


“그런데···.”

"응?"


존이 말끝을 흐렸다.

네프리티나는 아래로 시선을 향했다. 캐시가 손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말이야, 그 보라색머리 누나··· 엄청 예쁘긴 한데 좀··· 그렇지?”

“그 인형 같은 언니야?”


존의 의견에 캐시도 동감했다.

네프리티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무섭다니, 그런 소리하면 못써.”


호통 치긴 했지만.

사실 자신도 키리아에게 느꼈던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딱 잘라 부정 할 수는 없었다.

네프리티나는 생각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도 타인의 감정이나 분위기에 민감해.

여태 아이들을 길러왔던 네프리티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두 아이가 말한 무섭다는 감상이란 단순한 투정이 아닐지도 몰랐다.


“엄마?”


네프리티나가 먼 곳을 주시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캐시는 엄마의 옷소매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자, 이만 들어가서 잘 준비해야지?”

“네에.”


어느새 원래의 온화한 얼굴로 되돌아간 엄마를 확인하고서야 존과 캐시는 집 안으로 달려갔다.

네프리티나도 문의 손잡이를 잡고서 홀가분하게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무섭다··· 라.”


문이 닫히기 직전.

네프리티나의 눈동자가 무엇을 결심한 듯이 희미한 빛을 냈다.



3.

그날 밤.

마을의 하늘에 마가 강림했다.


흉포한 한기가 흘러 마을의 생기를 빨아들인다.

불길한 공기가 지상을 감싼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기묘한 정적.

이 침묵의 대지에는 이제 황백색의 달만이 홀로남아 빛을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회색 구름의 행렬이 하늘을 뒤덮어.

순간 군청색 창공 사이로 무엇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새카만 장막.

그림자보다 짙고 암운보다도 더 불길한 날개였다.

그랬다.

날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새라고 하기엔 너무도 거대한 그림자.

어둠이 형상화된 무언가가 지상을 뒤덮었다.

그것은 고요한 어둠의 하늘을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그 누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높은 창공에서 검은색의 '그것'은···.

불길하고.

끔찍하며.

흉흉했다.

놈은 다섯 개의 불길한 푸른 광채를 뿜어내며, 모두가 잠든 마을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4.

···성당에 돌아온 키리아는 완전히 지쳐 침대에 엎어졌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곤 한참동안이나 일어나질 못한다.


이것은 인간의 흉내가 아니야.

정말로 키리아는 피로했던 것이다.

사실 몸보다도 정신이 더 지친 상태였다.


‘모르겠어.’

‘뭘?’

‘그것도 모르겠어.’


오늘 하루 동안, 키리아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했다.

축제.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노래 부르고 춤을 쳤다.

모여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낯선 이들과 인사를 했다.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것은 키리아가 처음 본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인간들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항상 겁에 질려있었어.’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응, 그랬지. 하지만 요 며칠간은 좀 달라.’


행복하게 미소 짓던 사람들의 모습에 키리아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과거 만났던 인간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기에.


‘예전엔 비명을 지르며 울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

‘큭큭큭, 살려달라면서 죽이지 말아달라고 빌었지.’


하지만 연주가의 연극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환호와 호응을 보냈었다.

남자들은 드레스를 입은 키리아에게 예쁘다고 말해줬다.

여자들은 키리아의 피부가 곱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뿌득.

순간 키리아는 이를 갈았다. 해답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이렇게나 다른지.

그간 자신이 알고 있던 인간에 대한 생각들이 혼잡하게 뒤섞여갔다.


‘왜 갑자기 성질이냐?’

‘몰라. 모르겠어. 그래서 그게 더 열 받아. 너는 알겠어?’

‘낸들 알겠냐? 전부터 말했지? 난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고.’

‘···쳇.’


키리아는 묘하게 짜증이 났다.

오히려 본인이 겨우 이딴 일에 의문을 가지고 있단 것 자체가 화가 났다.


‘재미있었지요, 키리아 양?’


어째서인지 키리아는 넬의 얼굴이 떠올렸다.

축제가 끝난 직후의 그 말이 키리아의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되었다.


“흥.”


어벙한 표정의 넬.

믿음직한 표정의 넬.

걱정스런 표정의 넬, 그리고 미소를 짓는 넬.


이상한 인간.

참견이 심하고 착각이 수준급인 귀찮은 녀석.

멍청하고 둔해빠진 주제에 자신보다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보 같은 놈···.

키리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제의 모습을 모두 떠올렸다.

그리곤 자신이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원인을 모두 넬에게 돌렸다.


‘모두 그 자식 탓이야. 그 망할 사제 놈이랑 만난 날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 그런데도 어째서···.’


하지만 역시 살의는 생기지 않았다.

처음은 단순한 호기심.

그저 소화가 끝날 때까지 흥미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인간 놀이를 즐길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과 같이 키리아의 생활은 지루함과 거리가 멀어졌다.


키리아는 분명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이뤘다.

바라던 예쁜 옷감도 손에 넣었다.

매일 매일이 새롭고 이상한 경험을 했다.

본래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을 해야만 했다.

그 덕분에 요괴는 생각해야할 것들이 늘어났다.


“재미···있었냐고?”


축제는 소란스럽기만 했어.

이리저리 끌려 다녔고 짜증나는 일을 겪었다.

멍청이 같은 사내놈들에 시끄러운 여자들.

번거로운 연극에 귀찮은 레렌.

거기다 뭘 생각하는지 모르는 꼬맹이까지···.

뭣하나 마음에 안 들고 지겨운 일들뿐이었다.


‘저도 즐거웠답니다.’


키리아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 주변을 더듬었다.


‘너, 또 웃고 있군.’

‘···정말이네.’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거냐?’


살며시 벌어진 틈이 부드러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좋은 게 아냐.’

‘너는 지루함이 싫다고 말했었지?’

‘그랬지.’

‘지금은 어떠냐? 인간들의 축제는 어땠지? 이제 슬슬 그만둘 마음이 생기지 않냐?’

‘···.’

‘충분히 겪었다고 보는데? 매번 예상치 못한 일에 휘둘리는 것도 지칠 법도 한데 말이지. 아니면 설마하니··· 넌 정말 이런 게 즐거웠던 거냐? 사람의 무리에 들어가서 어울리는 게?’

‘글쎄.’

‘뭐? 분명히 좀 말해달라고. 답답해 죽겠단 말이다.’

‘모르겠어.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어.’


납득했다.

그러자 잔뜩 복잡하기만 하던 키리아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반면에 공생하는 요괴 쪽은 속이 타는 듯 했다.


‘···잘 들어라. 이건 어디까지나 놀이다. 그건 너도 알고 있지?’

‘응.’

‘나는 지금까지 네가 생존에 위협이 가는 짓거리만 하지 않는 한 참견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협력했어.’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걱정이 된다.’

‘후후, 그건 고맙네.’

‘···착각하지마라. 이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위가 염려 되서 하는 말이야.’

‘그럴 필요 없어. 나도 그 정도는 구분하고 있어.’

‘정말이냐? 내가 보기에 너는 어쩐지···.’

‘어쩐지, 뭐?’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라고 차마 요괴의 또 다른 공생체는 말하지 못했다.

배려인가?

그것은 키리아의 마음을 생각해서 신중히 말을 골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니?’


잔잔하던 바람의 흐름이 달라졌다.

공기를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에 키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야, 갑자기···.’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어.

요괴의 뛰어난 청각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거칠면서도 무거운, 흡사 밤의 고요를 허물어뜨리는 이질적인 울림.

느닷없는 불협화음이 들려온 방향은 놀랍게도.


‘이건··· 위다!’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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