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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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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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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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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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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전야제(4)

DUMMY

7.

성당에서 키리아가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이.

마을 아래에서는 한스가 막 가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작은 몸집의 소년은 어쩐지 지쳐 보였다.

강가에서 돌아오는 길이 오르막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매일 하는 일과이기에 익숙했다.

양동이를 한가득 채운 것이 서넛 번째라 할지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스는 축축한 바지 자락조차도 불쾌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레렌에게 얻어맞아 얼굴에 새겨진 화끈거림만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평소보다 좀 늦었구나.”


부엌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한스는 가볍게 답했다.


“물가에서 발을 헛딛었어요.”


추궁을 미리 대비했는지 반사적으로 말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생각한 핑계.

하지만 너무 재빠르게 답했기에 한스는 도리어 의심받을까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한스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스는 그것이 아버지가 뭔가 생각에 빠졌을 때의 버릇이란 것을 알았다.


매일같이 술집을 찾는 손님들은 말한다.

이 마을의 술집 주인은 쓸데없는 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스의 아버지는 아들인 자신은 물론 손님에게조차 농담을 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었다.

불편하다싶을 정도로 어색한 고요.

한참 뒤에서야 한스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감기 걸린다. 조심 하거라.”

“예.”


짤막한 대답.

그 이상은 말하지 않는다.


부자지간 아니랄까봐.

하필이면 이런 면이 닮았다.

그것을 알기에 아버지도 아들의 태도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소 껄끄러운 분위기.

하지만 이들 부자에겐 늘 상 있는 일이었다.


한스는 말없이 부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늘어진 원통들 사이로 일에 열중인 아버지가 보였다.

한스는 옆에다 양동이를 내려놓으며 슬쩍 아버지를 눈치를 살폈다.

조금 쉬어가면서 일하면 좋을 것을, 한스는 일에 정신이 팔린 아버지의 모습이 기분이 조금 씁쓸해졌다.


한스의 아버지.

프랭크 포드의 나이는 올해 마흔 다섯이었다.

머리끝이 회색빛으로 물들긴 했지만 결코 늙었다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가족은 아들 한 명이 전부.

아내는 수년전에 모종의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래부터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이후부터 프랭크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고집이 세고 융통성 없는 술집주인.

그것이 세간의 프랭크에 대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만큼 장인이셔.’


소년은 안다.

프랭크가 빚은 술은 아랫마을에 팔아넘길 수 있을 만큼 질이 좋다는 걸.

그가 어디서 이런 재주를 배웠는지는 친아들인 한스조차 알지 못했다.

출신은 북구이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한 번쯤 물어볼 수도 있을 터이지만, 애초에 이 마을에서 전쟁 이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암묵적인 금기였기에.


“한스, 오늘은 가게 문부터 열거라.”

“네?”


소년은 의아했다.

평소대로라면 먼저 장작을 옮겨 놓아야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술집의 난로가 꺼지면 곤란해.

가게 문을 열고 바닥을 청소하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굳이 왜 그래야 하나 싶어서 소년이 질문을 입에 올리기도 전에···.

곧 그 의문은 떠들썩한 고함소리와 함께 풀어졌다.


“이야! 간만에 운동 제대로 했군. 주인장, 이거 도끼는 어디두면 될까?”


투박한 복장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거구가 집 안으로 들어섰다.

요란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날 한스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손님.

악사이자 익살꾼인 유고였다.


“창고라면 어디든 좋네. 아무 대나 내팽개쳐놓지 그랬나?”

“어, 그래도 이런 건 관리를 잘 해둬야 된다고? 날이 무디다 해도 이건 무서운 무기야. 위험하잖아?”

“이 마을에선 걱정할 필요 없네.”


어느새 부엌에서 나와 유고와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는 프랭크.

한스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손님인 자네가 이런 일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에이, 뭘. 공짜로 숙식에 술까지 얻어먹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덩치 값은 해야 하니까 신경 쓸 필요 없이 얼마든지 더 시켜만 달라고.”


건장한 팔뚝을 들어 올려 보이며 알통을 만드는 유고.

확실히 이 거구의 악사에게 장작 몇 토막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 마을에 건장한 젊은이는 드물다. 마을의 구성원 대다수가 중년이거나 어린 아이들 뿐.

그나마 막 스무 살을 넘긴 이들은 불과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이런 불균형은 단순히 짧은 마을의 역사 탓인가?

아니.

별달리 자식 농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전염병이 나돈 것도 아니야.

마을에 젊은이가 부족한 것은 순전히 전쟁 때문이었다.


수 년 전.

열세에 몰린 국가가 마구잡이로 청년과 소년들을 징병한 결과···.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을의 노동력이 현저히 부족해져 아직 어린 아이들도 일을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레렌이 바느질과 밭일을 돕는 것처럼.

한스의 경우만 해도 열일곱 소년이 술집에서 일 하는 것은 이 마을에서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한스, 넌 아직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프랭크의 지적에 한스는 서둘러 부엌 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리 봐도 유고를 피하는 눈치였다.


“어, 혹시 나 미움받고 있나?”


한스가 지나간 방향을 멀뚱히 바라보며 유고가 묻자 프랭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 녀석 말처럼 아무 것도 아닐세. 자네는 이제 좀 쉬지 그러나? 아들 녀석이 물 기르러 간 이후부터 쭉 도끼를 휘둘렀으니.”


유고는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체, 겨우 잠이 깼는데 축 늘어지라고? 해가 중천인데 빈둥거리면 농부들에게 면목이 없지.”

“그럼 외출이라도 할 텐가?”

“꼬맹이 청소나 도와주면서 겸사겸사 친해지지 뭐.”

“아니, 한스는···.”


유고는 프랭크가 만류하기도 전에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부엌에 남은 프랭크는 걱정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이야, 기특한 걸?”


바깥에서 가게 앞을 쓸고 있던 살갑게 한스에게 말을 거는 유고.

하지만 소년의 반응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한스는 익숙한 것이 좋았다.

평안한 생활.

규칙적인 하루가 맘에 들었다.

도구도.

사람도.

일상 모두 눈에 익은 것들에만 마음이 닿았다.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두근거리는 모험이나 자극적인 삶의 변화는 필요 없어.

단지 충실하게 매일 하던 것들만 하면서 살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런 한스에게 있어서 이방인이란, 환영받지 못할 존재였다.

그리고 걔 중에서 가장 한스가 상대하기 꺼려하는 것은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타지 사람.

바로 한창 일이 바쁜 한스에게 능청스럽게 말을 건네는 이 남자, 유고처럼.


“매일 성실하게 청소하는 건가?”


한스는 대답도 없이 청소에 몰두했다.

낯가림은 아니야.

한스는 생판 처음 본 사람에겐 쉽사리 정이 가질 않아, 심지어 맹목적인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소년이 쌀쌀맞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두려운 것뿐이었다.

타지에서 온 사람, 새로운 것이.


“읏차, 그럼 난 뭘 도와줄까?”


묵묵부답.

이쯤 되면 무안해서라도 대답을 해줄 만도하려만, 한스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하지만 소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유고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이제 보니 불씨가 얼마 안 남았군.”


유고는 난로 옆에 쌓인 나무토막 몇 개를 집어 들어 난로 위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래에 눌린 작은 불꽃이 탐욕스럽게 장작으로 기어 나와 연기를 토해냈다.


“컥, 켈록켈록! 아니, 이거··· 콜록콜록!”


갑자기 유고가 기침을 해댔다.

무심코 숨을 들이쉬다 연기와 재를 마신 모양이었다.

큰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입을 막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겨우 한스가 유고에게 눈길을 줬다.


“콜록! 아니··· 이건 어쩔 수 없잖냐? 불 피우는 건 자주 해본 적이 없어서, 콜록콜록! 원래 악사는 이런 건, 콜록!”


한심해.

다 큰 어른이 어쩜 저렇게 조심성이 없담?

연신 콜록거리는 유고에게서 시선을 거두는 한스.

그러나 소년은 다시금 뒤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유고가 또 무모하게 장작을 집어 또 다시 자욱하게 연기와 재 먼지를 들이마셨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그렇게 넣으니까 당연히 재가 나오죠.”


참다못한 한스가 밀대를 내려놓고서 난로 옆으로 다가갔다.


“잠깐만 비켜보세요.”


작은 장작을 하나 짚더니 조심스럽게 잿더미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자세히 보니 한스는 완전히 타버린 재를 밀어내고 장작만 불씨 가운데로 옮기고 있었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붙여야 되요.”

“이야, 꼼꼼하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좋은 걸 배웠어. 오호라, 타고 남은 잿더미를 정돈하는 것도 요령이 다 있구만.”


뭘 감탄까지 하는 건지.

한스는 남은 장작을 모두 밀어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하던 일을 끝마치기 위해 밀대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어?”


손을 내민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분명 벽 옆에 세워둔 밀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당황한 소년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스는 자신의 물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기다란 나무 손잡이를 한 번에 꺾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커다란 팔뚝이 밀대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 이거라도 좀 도와줄까 해서.”


한스는 유고가 왜 굳이 번거로운 일을 자처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일부러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이리 주세요.”

“어, 어어?”

“이리 달라고요!”


무슨 용기였을까?

한스는 유고가 쥔 밀대 끝에 손을 뻗어 거칠게 잡아 당겼다.

놀라운 일이었다..

여태 취객들에게도 기가 죽어 살던 소년이, 자신이 평소 가장 꺼려하던 이방인에게 날을 잔뜩 날을 세운 것이었다.


당황한 유고가 밀대에 손을 때자 힘이 한 방향에만 쏠렸다.

당연하게도 소년의 몸은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우당탕탕.

한스는 기묘한 자세로 뒤집어졌다.


“이봐, 꼬마 친구. 괜찮아?”


엉덩방아를 찍은 한스를 향해 손을 내미는 유고.

하지만 한스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무모하게 손바닥을 쳐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악사 양반, 간밤에 잠은 잘 잤는가?”


전날 유고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남자와 일행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후부터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유고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 형씨들. 오늘도 진창 취하러 오셨는가?”

“그렇지! 어젠 충분히 놀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자네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다네.”

“오우, 그건 맡겨달라고. 내 직업이 바로 그거니까. 이걸로 흥을 띠워주겠어!”


그리고 동시에 한스의 헛손질이 이어졌다.

무심코 팔을 거둔 유고 때문에 한스는 다시금 바닥을 굴렀다.


“엥? 한스, 넌 바닥에서 뭐하고 있냐?”


손님 중 한 명이 묻자, 유고는 그제야 한스를 바라봤다.


“아차, 미안해. 친구.”


소년은 약이 오른 듯 부글부글 끓는 얼굴로 악사를 올려본다.

그 시선에 악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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