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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메의 불쏘시개 공방

요수전기 키리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판타지

냐메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2
최근연재일 :
2021.06.25 23:4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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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4
추천수 :
578
글자수 :
30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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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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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축제(4)

DUMMY

8.

마을 자경단의 한 젊은이가 횃불을 든다.

그는 장작기둥으로 다가가 언저리에 불씨를 집어던졌다.

나무장작의 탑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잘 마른 나무에 불이 잘 붙는 기름을 미리 뿌려둔 덕분이었다.


회색 연기가 땅으로부터 피어올라.

주홍색 가루가 하늘로 날아가 흩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이 울렸다.

그 기쁨의 울림에 화답하며 타지의 악사가 현을 튕겼다.


경쾌한 음색.

흥겨운 노래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변방에 전해지는 전통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래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희망이 스며있었다.

미래의 바람이 새겨져 있었다.


“늙어빠진 나그네가 있었다네. 사람들은 그를 현자라 불렀지!”


익살스러운 가사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이번에는 관중들이 입을 모았다. 문답하는 형식의 노래였다.


“그대는 어디로 가십니까?”

“발길이 닿는 데로 나아간다네!”


노래를 부를 때에는 현을 멈춘다.

대신 부츠를 땅에 튕기며 소리를 낸다.


“다만 전장만큼은 피해간다. 주정뱅이도 피해가지. 거기다 아름다운 여인네도!”

“왜 미인을 마다하는가?”

“그건···.”


갑자기 리듬이 빨라진다.

악사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마지막 대꾸는 노래를 부르는 악사 마다 다르게 말하는 것이 관례.

기묘한 장단이 흥을 돋우어 사람들의 기대를 자아냈다.


짠.

어느새 강렬하게 이어지던 마지막 곡조가 끝이 났다. 악사 유고는 호쾌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내가 반할까 걱정되기 때문이지! 애정이란 이름의 함정에 발이 묶일 생각은 없으니! 사랑만큼 무거운 족쇄도 없는 법이야!”


사막을 떠도는 현자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고 유고는 자신의 모자를 뒤집어 보였다.

그것은 보통 묘기의 값으로 금화와 동전을 넣어서 챙기기 위한 행위.

하나, 그에게 결코 재주를 팔려는 의도는 없었으리라.

유고가 바란 것은 단지 관중의 웃음뿐이었다.


“소년들은 모여라. 지금부터 모험 이야기를 시작할 테니. 물론 귀여운 아가씨들도 집중해! 이 이야기엔 설레는 로맨스도 있으니까!”


유고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새로운 관객들은 그의 광고대로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고는 다시금 다른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봐, 도련님도 날 좀 도와주겠어?”


현을 튕기는 와중에 말을 하는데도 연주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유고는 스스로 자부한 만큼의 실력은 되었던 것이다.


“어? 제가요?”


갑작스런 상황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한스.

관객의 입장이었던 소년은 어느새 유고의 지목을 받고 있었다.


“그래, 그래. 도련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저는 음악 같은 건 못하는데요?”

“연주는 내가 하잖아. 이렇게!”

“무용도 배운 적 없어요.”

“에잇, 답답하게! 내가 가르쳐주지! 세련된 즉흥극이란거야!”


탁.

유고가 갑자기 땅을 박찼다.

새로운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미묘하게 음악도 바뀌었다.


“변방의 아주 작은 마을! 그래, 바로 여기처럼 말이야. 어떤 평범한 소년이 있었다네.”


노래하며 한스에게 눈치를 보낸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도 한스에게 향했다.


“그 소년은 겁쟁이였다지.”


와하하.

처량한 음색에 덧붙여 소개된 주인공에 관중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평소 한스가 가진 이미지가 겹쳐져 겁쟁이란 설정이 그대로 들이 맞았기에.

울상이 된 한스와 대비되게 유고는 실실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소년을 괴롭히던 불량배는 몰랐네. 소년을 놀리던 아이들도 몰랐지. 심지어 소년을 키워준 아저씨, 아주머니도 몰랐어. 어이쿠, 이거 미리 말하지 않았군. 소년은 고아였거든.”


그게 뭐야?

설정이 허술해.

관객들의 불평이 시작되기도 전에 현의 튕김이 빨라졌다.


“시간이 흘러, 소년은 우연히 시골에 들린 귀족의 눈에 띄어 하인으로 들어갔습니다. 생긴 게 영 약하게 생긴 게 부려먹기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귀족은 소년을 돌보아주던 부부에게 금화 한 닢을 건넸습니다. 부부는 금화를 깨물어보더니 앞니가 나가버렸지! 어라, 그런데 금이 이빨보다 튼튼하던가?”

“안 그래요, 이 바보 연주자!”

“이크크, 또 내 실수! 어쨌든 소년은 귀족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하루 종일 보냈지요. 접시를 깨고, 도끼날을 부러뜨리고··· 집 지키던 개에게도 물렸습니다!”


유고의 익살에 아이들의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깃 속 소년의 비극에 어린 관중들이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고된 겨울에도 봄은 오는 법. 소년에게도 햇살이 다가왔습니다. 소년이 일하던 귀족의 영지에서 일 년에 한번 뿐인 무도회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날만큼은 주인을 모시기만 하던 천민 소년도 무리에 어울려 춤을 출 수가 있었다네!”


갑자기 유고가 팔꿈치로 옆에서 멍하니 서있던 한스를 건들었다.


“자, 도련님. 춤 춰!”

“네에? 싫어요. 무슨 춤 같은 걸···.”

“이걸 어째! 겁쟁이 소년은 춤도 추지 못했습니다. 뜀박질하다가 발에 걸려 넘어지면 어쩌지!”

“아, 알았어요! 춤 추면되잖아요, 추면!”


한스는 어기적어기적 몸을 움직였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지만 유고가 교묘하게 지령을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소년은 무도회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만한 무언가를 봤지! 운명일까! 아니면 행운이라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네!”

“어, 언제까지 춤 춰야 해요?”

“기회를 얻을 때까지지!”

“무슨 기회요?”


유고는 한스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덩치 큰 악사는 자신의 연극을 이어가는 데에만 몰두해있었다.


“소년은 보았네. 귀족의 아가씨, 공작가의 영애를 말이야. 정말로 아름다운 소녀였지! 그 소녀는 달을 닮았다. 아니, 달이 소녀를 닮았나?”

“제가 알겠나요, 뭐···.”

“소년은 소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네. 평생을 그 아가씨를 위해 바쳐도 좋겠다고 생각했지! 소년은 등골 빼먹기 좋은 성격이었어. 순진한 게 멍청하다싶고 또 그래서 단순했지. 하지만 이걸 어쩌나! 소년은 천하고 천한 농가의 천민, 소녀는 이웃 나라 왕자님의 구애를 받을 정도로 고귀한 공작가의 딸이야. 안 어울려, 안 어울려. 도련님, 여기서 춤은 멈추고···.”


멜로디가 구슬프게 변했다.


“아아, 소년은 슬퍼졌네. 자신은 처음으로 반한 여자에게 말을 걸 위치조차 못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하겠어.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소년은 이대로 포기해야만 했네. 천민은 귀족에게 말만 걸어도 사형 당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몸도 사려야지. 소년은 겁쟁이였으니까!”


그게 뭐야, 하고 한 관중이 혹평한다.

바로 네프리티나의 아들인 조나단이었다.

동생인 캐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조나단만이 꿍한 얼굴로 연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 꼬마 신사, 나한테 너무 그러지 말아. 어쩌겠어? 시대가 그렇단 말이야.”

“한스 형, 어떻게 좀 해봐요. 이야기에 진전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아니란 말이···.”

“한스, 한스!”

“아, 정말···.”


응원인지 야유인지.

다른 관객들마저 끼어들어 한스를 부추겼다.

한스는 답답한 한숨을 쉬면서 유고에게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이 연극은 완전히 실패야, 만일 성공한다고 해도 망신거리만 늘어날 것 같았다.


“유고 혀엉···.”


놀랍게도 악사는 관중들의 반응에 만족한 모양인지 실실 웃고 있었다.

유고는 잠깐 연주를 멈추더니 모자챙을 눌러썼다.


“좋아. 자, 모두들 소년을 응원해주는군.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시 악사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시작하던 때의 연주랑 같지만 더 빠르고, 더 신나게 바뀌었다.


“소년은 결정을 내려야했지. 그래, 세상은 막막하고 자신은 겁쟁이지만 그래도 귀족 아가씨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네. 이럴 수가! 소년은 겁쟁이인 동시에 욕심쟁이였던 거야!”


유고는 한스에게 귓속말로 여러 가지 흉내를 내보라고 시켰다.


“소년은 우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네.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었지.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했어. 그래서 평소보다 더 많이 장작을 패고 더 많이 달렸지.”


유고의 대사에 맞춰 한스는 도끼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거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연주가 이어졌다.


“소년은 시녀들이나 하는 허드렛일도 자기가 다 도맡아하고 열심히, 아주 열심히 움직였다지! 그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났어.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언젠가부터 소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지. 몸집도 커지게 됐고 말이야. 소년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더 잘하게 되었어. 소년을 산 주인도 좋아했지.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고서 악사는 숨을 골랐다.

꼬마 신사, 숙녀들은 극이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직관으로 알고 있었다.

관객들을 바라보는 유고의 강렬한 눈빛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제부터 시작이란 것을 말하고 있었다.



9.

“너, 이 자식! 넌 끼어들지 말라고! 애인도 있는 놈이 정신을 못 차려!”

“시끄럿! 이런 미인을 앞에 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추남 놈들은 저리 비켜있으라고!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제 이름은···.”

“내가! 내가 먼저!”


한편, 키리아는 곤경에 처해있었다.

소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아비규환.

아무리 좋게 말한다 해도 난장판이었다.


‘뭐, 뭐야? 이 수컷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거야?’

‘가관이군. 네가 조금 꾸민 정도로 이렇게 발정하다니. 어지간히도 굶주려 있었나보군.’


축제가 시작한 직후.

넬은 의도치 않게 마을의 높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레렌은 사제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다 그 무리에 휩쓸렸고.

네프리티나도 동네 여자들과 수다를 떠느라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키리아가 홀로 남겨지자, 갑자기 사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주위를 둘러쌌다.

그 수는 대략 열 명 남짓.

대부분 스무 살이 넘었어.

서른 살이 채 안된 마을의 남자는 몽땅 몰려온 것 같았다.

걔 중에는 자경단원도 끼어있었는데, 처음에 키리아는 창을 들고 온 사내를 보고 설마하니 해코지를 하려는 줄 알고 경계했다.

그런데 자경단원은 창을 뒤로 숨기곤 어디에서 꺾어온 건지 모를 야생화를 건네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 뿐이 아니었다.

축제용 옷으로 치장한 키리아의 모습에 이성이 날아가 버린 사내들이 하나 둘 씩 엉켜들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험한 말로 싸우기 시작했다.


키리아는 이런 그들을 말리기는커녕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캬캬캬, 잘도 싸우네!’

‘천박한 남자들이야.’

‘큭큭, 아주 야성적인 게 난 좋기만 한데? 좋아, 좀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볼까?’

‘뭘 하려고?’

‘넌 지켜보고만 있어.’


공생하는 요괴는 성대에 직접 개입하더니 키리아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다들 저 때문에 싸우지 말아주세요!”


평소 키리아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

놀라운 흉내였다.


“아가씬, 걱정 마셔. 이 정도는 언제나 있는 일이야. 모두 가벼운 장난질이지.”

“···저는 난폭한 남자가 싫어요.”


뜨끔.

거칠게 말을 늘어놓던 사내들이 일순간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이어진 키리아의 대사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키리아는 입가를 살짝 가리더니.


“···물론 힘 쌔고 강한 사람은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우, 우와아아앗!‘


사내들은 이제 키리아가 했던 말은 아랑곳 않고 상관없이 치고 박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함소리와 더불어 이리저리 주먹이 오가는 와중.

언제부터인가 마지막에 이기는 녀석이 키리아와 데이트를 할 수 있다던가하는 보상마저 생겨났다.


‘아하하하하! 노린 대로야!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지들 멋대로야. 누가 너희들한테 눈길이라도 한 번 줄 거 같아?’


키리아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기 때문에 싸우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공방은 상당히 치열해져.

몇 사람이 싸움에 몰두해 있는 와중에 기회를 노려 키리아에게 접근하는 이들마저 생겨났다.

하지만 곧 제지당하고 같은 일이 반복.

요괴의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싸움구경에도 질려버린 키리아는 바보 같은 남자들을 내버려두고 몸을 획 돌려버렸다.

그러나 키리아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머나! 역시 맞았어! 얘 피부 진짜 곱다!”

“꺄아, 이 아이 인형같아. 귀여워!”

“저 잘록한 허리하며 너무 부러워!”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야만스런 사내들에게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극성인 여인네들이 키리아를 몰아넣었다.


“얘, 뭘 먹으면 그렇게 얼굴이 빛나니? 세수할 적에 귀한 잿물이라도 써?”

“있지, 있지. 그 목걸이 네프 언니 꺼 맞지? 치이, 내가 빌려 달랬을 땐 아무 말도 없었으면서··· 뭐 확실히 너한테 잘 어울리긴 하지만···.”

“너 이름이 키리아라고 했지? 사제님이랑 같이 성당에서 산다는 게 정말이야?”


입에 무슨 장치라도 달아놓았는지.

쉴 새 없이 말을 걸어오는 여자들이 혼란스러운 키리아였다.


‘큭큭, 계집들에게도 인기가 많구나. 키.리.아?’

‘닥쳐! 이럴 때만 그 이름으로 부르다니! ···성가셔! 전부 짜증나는 것들이야! 레렌 계집보다 더 성가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또 계속해서 주목을 받는다.

요괴가 이런 상황이 유쾌할 리 없었다.


‘정말? 그렇다면 죽여 버리지? 언제나처럼 말이야.’

‘흥···.’


허나 키리아는 그러지 않는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죽인다고 말버릇처럼 중얼거리곤 있지만 정말로 살의를 뿜어내진 않았다.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키리아는 나름대로 인간이 귀찮게 하는 것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던 것이다.


“서쪽은 어떤 곳이니?”

“저기 아까 너한테 꽃 내밀려고 하던 남자애 잘 생기지 않았어?”

“너 사막을 건너온 거야? 거기 엄청나게 멀지 않아?”


그러나 역시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는 수다부대에겐 서쪽의 붉은 마수도 속수무책이었다.


‘조잘조잘, 용케도 별 사소한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다 물어보는군.’

‘만지지 마! 어딜 만지는 거야!?’


여인네들은 키리아의 몸에 손을 대거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거나 가까이 붙어서 향기를 맡아보는 둥.

갈수록 대하는 것이 친숙한 여자들의 스킨쉽으로 발전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좀 떨어지란 말이야!’


그 순간, 구세주가 나타났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앗, 사제님···.”

“세라 언니, 히스티아 언니, 미스티 언니. 그렇게 한꺼번에 물어보면 키리아가 놀래잖아요?”

“어머, 레렌. 넌 또 언제 왔니?”


키리아는 여태까지 그 어느 순간보다 이토록 넬과 레렌이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실은··· 키리아 양은 지병이 있어서 몸이 약하답니다. 이번 축제에 외출하신 것도 상당히 힘들어하셨고요. 죄송하지만 이야기는 병세가 호전된 다음에 부탁드립니다. 그럼···.”

“그럼 언니들, 나중에 뵐게요.”


후우, 키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다···’


조금만 더 마을 여자들의 질문 공세에 노출되었더라면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을지도 몰랐다.


레렌은 키리아의 손을 잡고 인파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자들 무리를 빠져나오자 아직도 엉겨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레렌은 도끼눈을 뜨고 사내들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오빠, 아저씨들! 오늘같이 좋은 날에 무슨 추태에요? 다들 어른이잖아요? 다들 철 좀 들라고요!”

“하, 하지만 레렌···.”

“하지만이고 자시고! 다들 바보 같아!”


그제야 넋이나가 레렌을 따라가는 키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하는 남자들.

그리고 절규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 남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스스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키리아 양. 장로 분들이 마을 계획에 대해서 자꾸만 물으시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라 설명하는 게 좀 늦어졌군요.”

“그 사람들은 그냥 사제님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뿐일걸요? 어쩌면 술친구가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다들 좋은 분들이시던데요.”

“에휴, 사제님은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에요. 그치, 키리아?”


동의를 구하는 레렌의 말에 키리아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넬은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키리아 양까지···.”

“그거 보세요. 사제님은 가끔 너무 하시다니까요.”


키리아는 어느새 안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음에도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여 자기도 모르게 안정하고 있었다.


“정신없었죠, 키리아 양?”

“아, 네에. 조금···.”

”하하, 여기도 저기도 떠들썩하네요.”

“그야 봄축제니까요, 사제님! 그치만 역시 저희 마을엔 별로 구경거리 같은 게 없어서 심심해요.”

“구경거리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요. 웃고 떠는 사람들을 보세요. 충분히 멋진 축제입니다.”


넬과 레렌은 키리아를 데리고서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차려진 테이블 위에서 마을 여인들이 실력을 발휘한 요리들로 가득해.

긴 겨울 동안 아껴둔 말린 고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변방 사람들에게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한스의 아버지가 빚은 곡주 덕분에 축제의 분위기는 한껏 달라 올랐다.

성직자이기에 넬은 직접 술잔을 들지 않았지만.

흥겨운 열기만큼은 좋아하는 지 사뭇 들뜬 얼굴이었다.

레렌도 어렴풋이 넬이 평소 성당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기도만 하던 때와 조금 다른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들떠 있었다.

모두가 마치 어린소년처럼 북적이는 광장을 누볐다.


“수도에서 왔다는 악사님 연주라도 들으러가요. 외모는 우락부락한 사람이지만 실력이 좋기로 유명대요. 바로 저기에요! 어린 애들이 모인 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네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자, 키리아 양도 함께 가죠? 일류 악사가 내는 리라는 참 고운 소리가 난답니다.”


그런데 레렌이 가리킨 곳으로 세 사람이 다케빈자 점차 음색이 늘어 더니 어느 순간 뚝 끊어졌다.


“어라? 하필 우리가 보러오니까 연주가 끝난 거야?”

“어, 레렌 누나?”

“안녕, 존! 캐시는 어쩌고 너 혼자 있어?”

“캐시는 엄마랑 알리시아 아줌마랑 같이 있어. 걔는 노래보다 과자가 좋데.”


레렌을 반긴 것은 네프리티나의 아들인 조나단이었다.

레렌은 안 좋은 타이밍에 온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팔짱을 꼈다.


“공연은 벌써 끝났어요?”

“끝이라니 그럴 리가 있나? 방금 한 막이 마무리된 것뿐이야. 오, 사제 형씨랑 아가씨가 두 명이라! 손님이 점점 느는 걸?”


거구의 악사가 씩 웃으며 새 손님을 맞이했다.


“아, 그랬군요. 그런데···.”


레렌은 손가락으로 악사 옆의 소년을 가리켰다.


“한스, 넌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한스는 움찔거리며.


“레렌?”

“난 너한테 인사한 거 아냐. 뭘 하냐고 물은 거야.”

“하하, 도련님은 지금 나랑 연극을 하는 중이야.”

“연극?”


레렌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넬은 관심을 보였다.

키리아는 공연에는 무관심하고 저 멀리 테이블 위에 올라온 닭고기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아.”


한스는 시선을 피한 채 얼버무렸다.

차마 겁쟁이 소년이야기 따윌 소꿉친구 여자애에게 자랑스레 말할 순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조나단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냐, 레렌 누나. 이제 슬슬 재미있어지려고 해. 조금만 더 있으면 주인공인 겁쟁이가 힘을 길러서 무도회 날에 불량배 안톤이랑 결투하러가는 장면이거든. 예쁜 공주님이 그걸 지켜봐!”

“헤? 결투? 공주님? 그거 재미있겠다! 사제님, 우리 이거 보고가요.”

“아, 그럴까요?”


조나단은 나름대로 연극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조나단이 말하자 여태 한스의 열연을 지켜보던 아이들도 호응했다.


“야야, 그게 아니야. 꼬마 손님. 설정이 틀리다고. 공주님이 아니라 공작가 딸이란다. ···음, 어째 공주님도 괜찮은가? 아무렴 어때. 어쨌거나 미인이 지켜보고 있어. 도련님도 다음 장에서 힘내.”

“···또 해야 하는 거예요?!”

“어허, 주인공이 빠지면 이야기가 안 되잖아?”

“배우도 저 혼자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요?”

“혼자라니, 무슨 소리야? 여기 세 사람 더 있잖아?”

“네?”


유고는 씩 웃으며 사제와 두 소녀를 바라봤다.


작가의말

어라 업로드가 좀 늦었습니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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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요조 로크(5) +3 21.06.01 41 8 17쪽
31 요조 로크(4) +3 21.05.31 44 8 19쪽
30 요조 로크(3) +2 21.05.29 50 7 18쪽
29 요조 로크(2) +2 21.05.28 44 8 15쪽
28 요조 로크(1) +4 21.05.27 48 8 13쪽
27 축제(8) +2 21.05.26 41 7 24쪽
26 축제(7) +2 21.05.25 49 7 13쪽
25 축제(6) +3 21.05.24 55 6 20쪽
24 축제(5) +4 21.05.23 58 10 25쪽
» 축제(4) +2 21.05.22 57 11 21쪽
22 축제(3) +2 21.05.21 58 11 17쪽
21 축제(2) +2 21.05.20 66 10 14쪽
20 축제(1) +4 21.05.19 72 12 19쪽
19 전야제(5) 21.05.19 46 11 15쪽
18 전야제(4) +2 21.05.18 58 13 12쪽
17 전야제(3) +5 21.05.18 55 11 17쪽
16 전야제(2) +3 21.05.17 71 12 23쪽
15 전야제(1) 21.05.17 57 12 18쪽
14 키리아(6) +3 21.05.16 69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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