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3,589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9.06 17:47
조회
29
추천
1
글자
9쪽

세력들의 반란

DUMMY

-딸칵. 딸칵.

-다다다다닥······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아후 씨발!

..


장이 시작되자 여러 가지 소음들이 들려왔고 누군가는 그 소리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거참, 오디오 좀 줄입시다!”


트레이딩실로 바뀐 바둑 대국실.


테이블마다 거리는 꽤 떨어져 있지만, 파티션도 없고 커튼도 없다.


지난 1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픈된 채로 결승전을 치르는 것이다.


다른 날과 다른 점이라면 감독관이 번갈아 들어와서 대국실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확인하기도 하고, 혹시 모를 물리적 충돌이나 부정행위를 막으려는 듯 보였다.


그동안 나는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HTS 계좌 인증을 마쳤지만, 뭐를 골라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 되었다.


좌우 모니터에 여러 개의 창만 띄워놓은 채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44번.

그가 기권하면서 딜을 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방금 내 추측을 확인할 방법이 있는 듯 보였다.


때마침 옆을 지나는 감독관에게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다.


“저, 화장실에 다녀와도 될까요?”


모자 쓴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그러나 내 목적은 사실은 그게 아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테이블을 지나야 한다.

자리가 좌하귀 쪽이라서 출입문으로부터 가장 멀었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출입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뚜벅


놈들은 모두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있기 때문에 내가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중앙 자리를 지나가려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박청강.

그자 또한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나 보다.


한술 더 떠, 나를 보자마자 얄밉게 눈을 한번 찡긋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이 보던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는 무언가를 급히 눌러댄다.


-딸칵 딸칵


곁눈질로 테이블 위 모니터를 돌아보았지만, 보일 리 만무했다.

박청강은 의식적으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모니터를 가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대국실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감독관이 한 명 더 보였다.

주변을 서성이자 감독관이 다가왔다.


“대국실 이외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바깥 산책은 괜찮나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하는 감독관.


밖이라고 해 봐야 갈 곳은 본관 앞 잔디밭이나 산책로밖에는 없다.


장중에는 화장실과 바깥 외출만 가능하고, 사무실이나 기숙사 등 통신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출입을 제한한 상태였다.


잔디밭 벤치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 문자의 도움 없이 세력을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그냥 모험이라도 걸까?’


감시하듯 나를 바라보는 감독관을 지나, 다시 대국실로 향했다.


묵직한 문을 살며시 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지만, 발끝에 힘을 주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게 걸었다.


이제는 아까 나올 때와 진행 방향 반대다.

걸어가는 동안 참가자들의 등과 모니터가 보였다.


나를 의식하지 못한 듯 뚫어져라 호가창에만 집중하고 있는 박청강.


-딸칵, 다다닥······.


‘서둘러 봐야 한다’


다행히 모니터 상단에 내가 보려던 종목 이름이 보였다.


[에스로봇]


‘저건······?!’


*


자리에 돌아온 나는 잠시 꺼두었던 모니터를 열었다.


[코세시스] [원게임] [에코전자] [엔에스케이]

[에스로봇] [닥치고AI] [EC일렉트릭] [엘에프솔루션]


단지 우연일까?

박청강이 방금 트레이딩하던 에스로봇도 끼어 있었다.


이 8종목은 모두 내가 다녔던 회사 이름들이다.

이 회사들을 떠올린 건 그동안 내가 받은 이상한 문자 때문이었다.


그 추천 종목들이 결국 모두 운명처럼 내가 다니던 회사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다닌 21개의 회사들 중에서 문자로 이미 추천받은 종목은 총 13개.


그러니 이제 남은 종목은 총 8개였고, 만일 문자가 왔다면 분명 그 안에서 올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매수하려니 두려웠다.


내가 분석해서 들어가는 종목도 아니고, 실제로 문자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종목을 분석해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기야 내 눈에 이제 막 세력이 작업하려는 종목이 좋아 보일 리 없겠지만······.


잠시 후

매수가 체결되었다는 신호음이 연거푸 들여왔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내수가 체결되었습니다.

..

.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다리는 수밖에······.



***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두꺼운 겨울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발자국을 내며 뚜벅뚜벅 걸었다.


건물 뒤쪽으로 가자 산책로가 하나 보였다.


멀리 산등성이 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인적이 드믄 산책로.


나는 그 길을 대회 3주 차가 된 지난주에야 알게 됐다.


내가 산책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종일 매매만 했다면 지금까지도 몰랐을 거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울창한 숲과 아름드리나무들이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흐읍······.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가 콧속을 상쾌하게 비집고 들어왔다. 그것이 다시 폐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 세포로 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숨을 욱하고 참았다.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길게 내뿜었다.


-하아······.


그러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지난 1주일 동안 줄곧 이 시간이면 이 길을 걸었다.


350억이나 되는 돈을 확실치 않은 주식 몇 종목에 넣고 온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핸드폰도 없었으니 지금 내 주식이 당장 오르고 있는지, 아니면 낭떠러지로 급히 떨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게다가 상금 100억이 걸린 세력들과의 대결에서 우승하겠다는 사람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1주일이 지난 지금 문자를 확인해 보니 내가 산 종목들이 똑같이 찍혀있다.


[코세시스] [원게임] [에코전자] [엔에스케이]

[에스로봇] [닥치고AI] [EC일렉트릭] [엘에프솔루션]


어쩐지 쉽더라니······.


다시 숲길을 걸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어느새 눈앞에 탑처럼 생긴 정자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난간 위에 걸터앉았다.


사방으로 내가 방금 걸어 올라온 구불구불한 길과 다양한 능선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익숙한 주식 차트들이 떠올랐다.


주식은 탑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거랑 같다.


큰 수익을 얻으려면, 탑이 있는 정상으로 갈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누구나 다 진짜 정상에서 웃고 내려오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겁이 나서 중도에 포기하는 자도 있고, 누군가는 정상으로 가려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자도 있다.


또 일부는 정상인 줄 알고 기뻐하며 인증샷을 찍고 내려오지만, 잠시 뒤 그다음 탑으로 오르는 자들을 보며 또 배를 아파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 탑의 정상은 아무나 오르지 못한다.


탑의 정상에 오른 자들의 면면을 보면 애초에 그 탑을 설계한 자들이거나, 일부 용감한 자들.


아니, 용감하다기보단 어쩌면 무모한 자들일 수 있다. 또는 극히 운 좋은 자들이거나······.


-지이이이잉


그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 발신자: 왕 영감


“네 영감님.”

“바둑 한판 둬야지!”

“네. 내려가요.”

“그럼 어서 와서 얘기해 주게. 어떻게 알았는지.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걸······.”


*


지난 한 달간 진행된 한비원의 주식투자대회.

그 최종결과가 한비원 로비 입구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1위 51번 600.8%

2위 11번 586.4%

3위 18번 456.5%

..


‘내가 1위라니!······.’


내 번호 51번이 맨 위에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로비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좌우에 세워진 거대한 석상 두 개가 나를 내려다봤다.


그것들을 지나 묵직한 대국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


-딱


내가 최종 우승하자, 박청강을 비롯한 상위권 세력들은 물론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협작까지 했는데도 내가 우승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딱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나와 바둑을 두고 있는 이 한비원 노인.


다른 자들은 나를 세력으로 알고 있었지만, 노인만이 내가 세력이 아닌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평범한 개미 한 마리가 세력들이 겨루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그가 만든 이 대회 역사상 유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딱


“정말 기가 찰 노릇이군!”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내가 우승한 걸 두고 놀라서 하는 얘기라면 이미 할 만큼 한 노인이었다.


지금은 지난 1주일간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일 때문일 것이다.


-딱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는 세력이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주식으로 돈 벌고자 하는 자 23.05.14 181 0 -
72 개미가 에이스 세력이 되다 23.09.09 25 2 9쪽
» 세력들의 반란 23.09.06 30 1 9쪽
70 핸드폰 없이 합시다 23.08.29 29 2 9쪽
69 돈을 보고 덤빈 놈들 돈으로 망한다? 23.08.24 32 2 9쪽
68 어차피 오를 종목 23.08.19 40 1 9쪽
67 세력들 속의 개미 한 마리 23.08.16 45 1 10쪽
66 기권하겠습니다. 23.08.10 45 1 10쪽
65 노인의 정체가 궁금해 23.08.09 44 1 11쪽
64 세력들처럼 싸워라! 23.08.05 51 2 11쪽
63 혹시 김정은하고 친구야? 23.08.02 60 5 11쪽
62 입계의완 23.07.29 61 4 10쪽
61 2인 1조 23.07.26 66 5 10쪽
60 세력들을 찾으려는 거였네 23.07.22 84 2 10쪽
59 내기 바둑 +1 23.07.19 87 4 11쪽
58 초대 받은자와 지원자 23.07.15 100 5 10쪽
57 부정행위 +1 23.07.12 107 4 10쪽
56 수상한 지원자들 23.07.08 113 6 10쪽
55 익숙한 수법 +1 23.07.05 119 5 9쪽
54 44번 참가자 +2 23.07.02 126 6 9쪽
53 눈먼 돈 주워먹기 23.07.01 132 5 9쪽
52 대회규정 +2 23.07.01 137 4 9쪽
51 전국 최고의 주식 고수들 +1 23.06.24 175 5 9쪽
50 출전자금 23.06.24 173 5 9쪽
49 이상한 주식투자대회 +1 23.06.18 206 5 10쪽
48 노인과 바둑기원 23.06.17 208 5 12쪽
47 이상한 종목 수상한 세력 23.06.17 208 5 10쪽
46 슈퍼개미 계좌 좀 볼 수 있을까요? 23.06.17 209 5 10쪽
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6 5 10쪽
44 살아남는 법 23.06.17 208 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