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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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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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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Prologue. 주식으로 안 망하는 세 가지 방법

DUMMY

[주식의 세계에서 망하지 않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안 망할 거란 사실이다.]


“뭐야? 씨, 존나 오글거린다.”

“글쎄, 오글거린다기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 같은데···”


며칠 전 내 경험을 웹소설로 써보라고 말하던 자들의 대화다.

한 명은 애널리스트 친구 김한결이고 다른 한 명은 경제부 기자이자, 나와 결혼할 여자 이혜림.


나는 밤새 글을 쓰느라 멍해진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말없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오른손 검지 하나가 없는 김한결이 스마트폰으로 내 원고 초안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려 나간 검지를 대신하는 그의 기다란 중지가 성의 없이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흡사 내 글에 연신 뻐큐를 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뭐? 안 망하는 방법? 존나 돈 많이 버는 방법이라고 해도 볼까 말깐데···”


그래 맞는 말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부터 나는 거절했었다.

그런데 처음엔 이메일을 보내더니, 그다음은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는지 문자와 전화로 나를 귀찮게 해댔다.


*


- 선생님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려 하는데 어떠신지요?

- 제가 무슨··· 주식 전문가도 아닌데.

- 에널리스트 친구분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젊은 분이 수퍼개미보다 더 크게 성공하셨다고.

- 별말씀을요. 근데 무슨 책인데요? 저는 복잡한 전문용어 같은 것은 잘 몰라서···.

- 자서전 같은 겁니다, 선생님의 경험과 스토리가 주로 드러나는.

- ···네?

- 원하시면 저희가 가명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번거롭지 않게 대필도 두고요.


어이없었다. 자서전이라면서 무슨 가명으로 처리를 해? 그렇게라도 내 이야기를 원하는 걸까? 쑥스럽기도 했지만, 뭔가 찝찝하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들이 당시 고민하던 나를 설득했다.


- 우진아, 네 주식 경험담을 담은 자서전 말야, 아는 분 부탁인데 그냥 한번 써보는 거 어때?

- 그걸 누가 본다고···

- 아냐 오빠, 아무리 생각해도 오빠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재밌을 거 같애.

- 아, 그래. 소설로라도 함 써봐! 요즘은 웹소설이 대세니까.


그러면서 가장 유명하다는 웹소설 하나를 내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주었다. 하지만 나랑은 맞지 않아 보였다.


- 근데 이건 다 구라잖아. 난 너무 현실적이고.

- 오빠, 아니거든! 내가 볼 땐 오빠야말로 비현실적인 사람이야.

- 그래 우진아, 생각해 봐라. 너 같은 놈이 어딨니? 100원 벌라구 맨날 만 보를 걷던 놈이 지금은 가만히 앉아서도 100억을 벌잖아.

- 맞아, 불쌍한 개미들을 위해서라도 함 써봐 오빠 응?


불쌍한 개미들!······


팍팍한 삶에 용돈 좀 불려보려고 시작했다가 빚만 불린 자들.

그래서 더 팍팍해진 삶에 지쳐 병나발을 불다 폐인이 되거나 한강으로 간 자들.

하루에도 수십 명이 돈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중엔······


주식으로 패가망신 당하고, 임신한 아내를 남겨둔 채 사라진 개미도 있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그는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엄마는 알고 있었다. 남편이 빚더미 대신에 사망보험금이라도 물려주려고 그랬다는 걸···.


나 또한 내 아비처럼 되기 싫었다. 그 후 엄마는 내게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셨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 중 몇 개만 거스를 수 있고, 몇 개는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 내게 주식은 후자였다.


역설적이게도 내 아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오히려 더 열심히 그걸 해야만 했다.


처음엔 각종 전문 서적을 보았지만 그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론과 실전은 달라. 중요한 건 실전이라고.’


그래서 전국의 난다긴다하는 고수들을 죄다 찾아다녔다. 개중에는 꽤 유명한 슈퍼개미도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도 있었다.


워렌버핏이나 짐 로저스처럼 뛰어난 안목을 지닌 장기투자가도 있었고, 빠른 손놀림과 화려한 트레이딩 기술로 승부를 거는 초단타 스캘퍼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가진 장점들을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실전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


원래부터 자금이 없었으므로 망할 걱정도 없었다. 단돈 삼십만 원으로 하면서 오직 승률과 수익률만 체크했다. 수익이 늘어나도 더 많은 돈을 넣지 않았다.


점점 승률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제 더 큰 돈을 넣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자신감이 붙었을 때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세력을 모르고선 주식 바닥에서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걸.


세력!······

개미들 피를 빨아먹고 사는 주식바닥의 흡혈귀들.


일반 개미들 눈에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HTS창에서만 겨우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그것도 안목 있는 자들의 얘기다.

일반 개미들의 눈에는 그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게 세력이란 놈들이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들은 내게 제 발로 찾아왔다.

생각해 보면 잘된 일이다. 실은 내가 빼앗길 게 별로 없을 때 놈들이 찾아왔으니.

그래서 돌이켜보면 그나마 큰 피해 없이 놈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고.


만나 본 놈들마다 레벨이 달랐다.

동네 양아치 수준부터 마음만 먹으면 시장을 통째로 삼킬 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세력까지···


‘세력을 이기려 하지 마라!’


주식가의 오랜 격언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덤볐다가 전사한 개미가 어디 한둘이던가! 내 아버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놈들 속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며 놈들의 생리를 파헤치고 연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력들과의 무수히 많은 전장에서 승리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상한 문자의 도움도 받긴 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이젠 좀 조용히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서 아이들은 유학 보내고, 아내와 나는 경치 좋은 전원생활을 즐기다가, 혹시 지루해지면 해외여행이라도 다니면서 그렇게···


그런데,


하아······!


최근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결혼할 여자 때문에 객기를 부린 것이다.


“오빠!”

“···?”


혜림이 평소답지 않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오빠, 지금 가진 돈 다 없어져도, 다시 나 먹여 살릴 수 있어?”

“뭐? 푸하하···”


헛웃음만 나왔다. 내가 가진 돈이 다 없어지려면 이틀에 1억 원씩을 죽을 때까지 소비해야 한다. 둘이 지겨워서 다 쓰지도 못할 돈이다.

설령 그 돈이 다 없어진다 해도 이 피의 전장 - 주식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언제든지 다시 그만한 돈을 벌 수 있다.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나는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당연하지, 혜림아. 넌 날 그렇게 경험하고도 모르겠니?”

“그럼··· 오빠 실력이 녹슬지 않았는지 한 번 테스트해 봐!”

“······?!”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생각이 많아진다더니···

하, 이것이 날 시험하는구나!


그렇게 해서 나가게 된 어느 증권사의 실전투자대회. 실시간으로 수익률이 공개되는 대회였다.


나는 그동안 공개석상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쥐꼬리만한 상금 때문에 공식 대회에 이름을 알려봤자 꾼들에게 이로울 건 별로 없었다.


대회에 출전하고 1주일이 지나자, 증권사 게시판과 댓글 창에 난리가 났다.


- 헐, 대~박! 쟤는 왜 사는 대로 다 오르냐?

- 개 사기네, 이런 장에 벌써 250%야.

- 수익률 실화임?

- 이름 없는 초짜가 수익률 1위라니···

- 주단아가 도대체 누구야?


‘주단아’는 내 닉네임이었다. ‘주식계의 이단아’를 줄인 말이라며 혜림이 지어준 거였다.

본명 대신 대회 닉네임만 공개되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회 2주 차에 접어들자 이젠 종토방에서도 팬클럽을 연상시키는 댓글들이 오갔다.


- 형님, 제게 주식 좀 가르쳐주세요.

- 단아 오빠 사랑해 ♡

-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확인 좀···


대회는 한 달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주식 좀 한다는 자들은 다 모인 대회에서 나는 결국 최고 수익률로 우승했다.


혜림이는 미래 남편인 내 실력에 감탄했다.

문제는 주식계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며 여기저기서 방송 섭외요청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도 주식 관련 책을 내보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분명 한결이 놈의 가벼운 입도 한몫했을 것이다. 친구를 이용해서 주식 방송에 얼굴 한 번 더 내밀어보겠다는 애널리스트다운 발상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대회가 끝난 후 나는 객기 부린 걸 후회하고 있었다. 유튜브와 TV 등 모든 출연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한 출판사의 제안은······


그건 좀 고민이 되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통해 부자가 된다면, 아니 적어도 내 아비처럼 망가지는 이들이 줄어든다면······.


- 그래요. 한 번 써보죠.

- 아이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 근데, 제가 직접 쓸게요, 대필 없이.

- 괜찮으시겠어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실 대필을 두는 것이 오히려 더 번거로운 일이란 걸 알았다. 대필 작가가 쓴 걸 내가 일일이 검수하고 다시 내 기억의 조각들을 첨부하는 일은 이중의 노고였다.


글을 잘 쓸 필요도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돈 때문에 쓰는 것도 아니니까.

얼굴 없는 무명 작가의 글.

누군가 볼 사람은 볼 것이고 안 볼 사람은 안 볼 것이다.

모든 건 독자들의 운이다. 운 좋은 독자는 볼 것이고, 운 나쁜 독자는 뻐큐를 날릴 것이다.


*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우리 오빠 많이 피곤했나 보네!”


내가 밤새 쓴 소설 초안을 읽던 혜림이와 한결이가 어느새 다 읽은 듯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꿈도 상념도 아닌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김한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결아, 아까 말한 도입 부분 말야.”

“그래 너도 좀 그렇지?”

“근데 주식으로 안 망하는 방법이 되게 중요하거든. 이 바닥에서는 망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있어서.”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같은 말이라도 좀 긍정적으로다가···”

“그래 우진 오빠. 그래야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겠어?”

“······.”


썩 내키지는 않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한때 나를 속 썩인 이들이기도 하지만, 과거 고독한 전장에서 세력들과 싸울 때 그나마 함께한 동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마트폰에 소설 도입 멘트를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주식으로 존나 돈 버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건 세력을 아는 것이다······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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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7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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