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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3,584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7.0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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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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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익숙한 수법

DUMMY

무언가를 직감하고 호가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빠르게 수직 낙하하는 숫자들!


12

15

12

15

12

.

.


바로 그때 44번의 가운데 손가락이 엔터키를 잽싸게 눌렀다.


-탁

-매수하셨습니다.


여간해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호가창 속에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진 그 규칙적인 숫자 배열들!


‘설마 설마 했는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내 눈앞에 갑자기 커다란 사내의 등짝이 보였다.

등 뒤에 누가 있다는 걸 의식이라도 한듯 그가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여 앞 모니터를 가린 것.


호가창 암호!

그걸 사용하는 곳은 흔치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44번이 남대문 출신이거나 그와 비슷한 세력이라는 건가?


거기 기술자 중 한 사람이 순수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거라면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문제의 호가창 암호라면 다르다. 그 뒤에 누가 있다는 얘기니까.


‘44번도 초대받은 걸까?’


내가 이걸 물어볼 사람은 한비원 노인밖에 없었다.

잘못 얘기했다가 일을 키우느니 그나마 노인에게 슬쩍 묻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비원도 모르고 초대한 거라면 알려주어야 한다. 세력이 뒤에서 도와주는 자가 있다고. 대회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그런데 노인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대회가 시작된 이후 그를 보지 못했다. 대국실 근처를 얼쩡거렸지만, 원장과 전에 본 직원들만 보일 뿐이다.


장이 끝나면 다시 가보기로 하고, 일단 트레이딩이나 열중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1주일 만에 짐을 싸서 집에 돌아가야 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경험이고 뭐고 죽도 밥도 안되는 거고······.


모니터를 보았다.

초록기술이 장 초반 상승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잠시 멈춰 섰다.

별다른 뉴스 없이 아침 장부터 세력들의 움직임이 확인됐으니 이만하면 됐다. 예상대로다.


‘조만간 뉴스 하나 터지겠지.’


추가 매수하기로 하고 몇 호가 아래에서 총 10억 원을 나누어 매수 대기 걸어놓았다.


이제 다른 종목들을 확인할 차례.

어제 초록기술과 함께 10억씩 매수 들어갔던 4종목이 보였다.


[**컴퓨터 ↑1.5%]

[**첨단소재 ↑0.3%]

[**스튜디오 ↓-1.0% ]

[*MP ↑0%]


이것들 역시 나름 이유들이 있는 종목들이다.

어떤 건 신고가 근처에서 최근 세력들의 수급을 보고 들어갔고, 어떤 건 이번 주 발표되는 정부 정책의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들어갔고, 어떤 건 최근 인기 있는 드라마를 보고 들어갔다.


단기간에 수익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 최근 이슈가 되는 종목에 들어가야지.

물론 기대심에 이미 오른 종목들도 있다. 그래서 리스크도 존재한다.

재료들이 소멸하면 금방 꺼지는 게 주식 아닌가.

정신 반짝 차리고 줄 때 먹고 민첩하게 먹고 나올 생각이다.


그런데 아직 놀리고 있는 예수금 40억. 이게 눈에 거슬렸다.


‘이 돈도 굴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뇌리에 스치는 44번 참가자의 종목들.

하지만, 거기 들어가는 건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놈들이 언제 폭탄 돌리기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호해독? 지금은 시간도 없을뿐더러 상당히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남은 돈 일부를 단타 치며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점심 같이 안 드세요?”


뒤돌아보니 50번이 등 뒤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가 내게 친근하게 구는 건 어제 장시간 얘기를 나눈 덕분일 수도 있지만, 하루종일 심심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트레이딩도 못하고 나가만 있었으니.


“잠시만요. 이것만 끝내구요.”


아침에 먹을 걸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들어왔기에 나도 어차피 나가려던 참이었다.


“방금 그거 단타로 먹은 거였어요?”


50번이 내 모니터를 보고 물었다.


“네.”

“생각보다 잘하시네요.”


그의 ‘생각보다’란 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참는 걸로...

HTS를 끄고 일어나 그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인데도 밖은 썰렁했다.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이용하는 참가자들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아침에 이미 대회실에 들어가기 전 간이매점에서 점심까지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끼니를 미리 사 들고 들어갔다.

이유는 물론 주식 장이 끝날 때까지는 모니터 앞을 지키기 위함이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대략 10여명의 사람들.

그것도 대부분 한비원 직원들이거나 대회를 위해 고용된 용역들일 것이다. 안 그러면 그렇게 느긋하게 밥을 먹을 리가 없을 테니.


물론 참가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식사 중 휴대폰으로 계속 주식을 모니터링하는 자들이 있는 걸 보면.

나 또한 마찬가지. 이미 매수한 종목을 알람 설정해놓고 수시로 확인하고 있는 상태다.


“근데 51번님은 주무기가 뭐세요?”


밥을 먹다 말고 50번이 내게 물었다.


“주무기요?”

“네. 사람들마다 다 주무기가 있던데요. 단타하는 사람들은 늘 단타만 하고, 스윙하는 사람들은 또 맨날 그런 것만 하고.”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이것저것 짬뽕이죠. 그런 50번님은 시외 거래 말고는 안 하시나요?”

“······.”

“아 참. 미안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못 한다고 했죠.”


문득 그가 안쓰러웠다. 오전에 단 10분만 거래하려고 이런 대회에 참가한 건 아닐 것이다.


“심심하지 않나요?”

“오늘은 숙소에서 게임했어요.”

“노트북으로?”

“네. 혹시 구하기 힘든 표 티켓팅 할 일 있으면 얘기하세요.”


뜬금없이 그게 무슨 얘기일까 했는데, 역시 노트북 얘기.


“제 노트북은 아무리 경쟁이 심한 티켓팅도 거의 다 할 수 있어요.”

“아···.”

“지난번엔 단 3분 만에 마감된 콘서트 티켓을 저만 50장이나 샀어요.”

“왜 그렇게 많이?”

“프리미엄 받고 팔려구요. 하하하”

“그렇군요. 암튼 노트북에 뭔가 좋은 프로그램이 깔려 있나 보군요!”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에요.”

“······?”

“제 손이 겁나 빨라요. 타자 1,000타에, 티켓팅은 50초면 끝나죠. 보통 빠른 애들이 100초 나오는데.”


그러면서 자랑스러운 듯 다시 어깨를 으쓱하는 50번 참가자.

그사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전화기가 울리고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네 형님.”


*


식사를 마치고 매점 앞에서 와우개미를 만났다.

두 사람 손에는 방금 산 커피가 들려있다.


“잘 돼가?”

“저야 그렇죠 뭐. 형님은 어떠세요?”


그러자 와우개미는 대답 대신, 뭔가 재미있는 소식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누굴 봤는지 알아?”

“누굴 보셨는데요?”

“박청강.”

“···네? 그 슈퍼개미 박청강 말인가요?”


설마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대회에 참가하는 줄 몰랐다. 물론 상금 규모만 보면 그와 어울리는 대회이긴 하지만.


“그럼 그 사람도 1번 방에 있는 거예요?”

“그래.”


와우개미는 15번이라서 1번부터 17번까지 배정받은 1번 방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첨에는 마스크를 써서 못 알아봤는데, 오늘 보니까 확실히 그 사람이 맞더라고.”

“헐···사실은 저도 몇 달 전에 그 사람 만났어요.”


그러면서 석 달 전 박청강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한 달 수익만 놓고 싸우는 거면 형님이 나을 거예요.”

“물론 이런 대회는 장기투자가보다야 단타쟁이가 낫지. 그런데······”


와우개미는 뭔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정말 단타를 못 할까?”

“그게 무슨 말이죠?”

“같은 방에 있던 누군가 그러더라고. 박청강이 옛날에 이 대회에 우승자였다고.”

“······네?”


박청강이 내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내게 한비원 출신이냐고 했던 말.

그러고 보니, 결국 그가 말한 한비원은 지금 이곳이 확실한 듯 보였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한비원 출신’이라는 말속에 담긴 뜻. 그게 단지 대회 출전 경험이나 우승자를 의미하는 건 아닐 것이다.


“아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럼 이따 저녁에 보세!”


와우개미는 그렇게 말하고 불편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대회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네 형님. 저는 화장실 들렀다 올라갈게요. 성투하십쇼!”


그의 등 뒤에 대고 크게 인사를 한 뒤 나 또한 급히 매점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썰렁한 바깥 날씨.

그나마 점심 먹으러 나왔던 몇몇 참가자들도 이제 모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시 집중해야할 시간.

남은 세 시간 동안 집중해서 트레이딩을 하려면 아까부터 더부룩했던 속부터 비워야 한다.


본관 건물 안. 1층 로비를 지나 오른쪽 귀퉁이를 돌면 나오는 구석진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자마자 습관처럼 꺼내든 핸드폰. MTS 화면을 열려는 찰나, 조용한 화장실에 남자 둘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대화 소리가 나를 또 한 번 자극했다.


‘······이건 또 뭐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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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수상한 지원자들 23.07.08 113 6 10쪽
» 익숙한 수법 +1 23.07.05 119 5 9쪽
54 44번 참가자 +2 23.07.02 126 6 9쪽
53 눈먼 돈 주워먹기 23.07.01 132 5 9쪽
52 대회규정 +2 23.07.01 137 4 9쪽
51 전국 최고의 주식 고수들 +1 23.06.24 175 5 9쪽
50 출전자금 23.06.24 172 5 9쪽
49 이상한 주식투자대회 +1 23.06.18 20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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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슈퍼개미 계좌 좀 볼 수 있을까요? 23.06.17 209 5 10쪽
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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