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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3,605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7.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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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내기 바둑

DUMMY

로비로 들어와 노인에게 고개를 숙인 남자.

그는 다름 아닌 한비원 원장이었다.


그를 향해 노인이 말했다.


“그래. 이 원장 시간 맞춰 왔군.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고?”

“전화로 말씀드린 김 회장 건 말고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왜 자꾸 날 찾는 거야?”

“바쁘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꾸······ 아마 급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미친 새끼! 회사나 잘 운영할 것이지. 쯧쯧···.”


놀라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노인은 줄곧 원장을 하대하고 있었고, 원장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한 태도로 노인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아까 대국실 안 상황만큼이나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다음에 이어진 이들의 대화.


“대회는? 1차 통과자 오늘 발표한 거 같던데.”

“예상대로 지원한 세력들이 큰 차이로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탈락자들은 전부 초청한 자들 가운데 있었고요. 근데···”

“그런데, 뭐?”

“지원자 중에 영감님이 등록시킨 마지막 51번 참가자 말입니다. 그 사람은 그쪽에서 나온 사람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하위권에서 아슬아슬하게 통과된 걸 보면······.”

“뭐? 그 애가 통과했다고?”

“네. 회장님. 그런데 왜 그러시죠?”

“흐음······.”


노인은 내가 통과한 게 신기하고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워도 지금 이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던 나보다는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불을 끄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었다.

그러다 석상 뒤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다리가 저려서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허······!’


이제 막 나가려는 찰나,

구석에 있는 CCTV의 빨간 불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



일요일 아침.


어젯밤 일로 흥분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힐 겸 핸드폰으로 잠시 바둑을 두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출전한 대회. 끝을 봐야 한다.

다시 2차전 시작인 월요일 장 준비를 위해 각종 뉴스와 종목들을 점검했다.


내가 주의 깊게 본 건 최근 대북 테마주와 방산주의 흐름.

전에도 분석한 적이 있어서 둘의 연관성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최근 몇 주간 그 공식이 깨지고 있다. 대회에 참가하기 몇 달 전에 본 그 이상한 현상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


남북관계가 호전될 거라는 뉴스는 방산주에는 악재가 된다. 그래서 대북 관련 종목들이 상승할 때 방산주가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방산주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가 호전될 거라는 뉴스가 연일 뜨는데도.

한두 종목이면 이해가 되는데 모든 종목이 그런 것이라면······?


전에도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북에서 미사일을 쏘고 전쟁이 날 것처럼 연일 무력 시위를 했다.

그리고, 당연히 방산주는 폭등.


북한 내부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세력이 아니고서 야 어떻게······.


그 세력들이 지금 방산주를 미리 매집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대북 관련주를 절반만 매도하고 절반은 아직 들고 있는 상태다.

어쩌면 내일 장 그 종목이 오르는 척 하다가 다시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런데 혹시 그 세력들······’


여기 있는 자들 중에 있을까?


*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였다.

한비원 직원이라며 한 남자가 숙소로 나를 찾아왔다.


CCTV에 내가 찍혔을 것이고, 그게 문제가 되는 거라면······


그런데 의외였다.


“영감님이 바둑 한판 두자고 하십니다.”


엥? 왜 갑자기 나와 바둑을······?


전날 밤 일을 떠올렸다.

숙소로 돌아온 뒤 잠들기 전, 나는 한동안 퍼즐 맞추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맞추지 못한 조각들이 있다.

어찌 보면 가장 큰 조각들이 남아있는 셈.


‘오늘 과연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출 수 있을까?’


대국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대국실 한가운데 앉아서 벌써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

전에 함께 바둑을 두던 그 천원(天元) 자리다.

나를 본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흘려보냈다.


“어서 오게나! 나를 찾았다고?”

“네?··· 아 네. 영감님.”

“그래. 왜 찾았지?”


알면서 능글맞게 그러는 걸까?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나 또한 그에 맞게 대응하는 수밖에.


“바둑 한판 두고 싶어서요.”

“음······.”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 노인. 곧바로 흑 돌이 든 통을 내게 건넸다.

나는 돌 아홉 개를 화점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딱


노인이 우상 변 화점 자리에 있는 내 흑 돌에 자신의 돌을 날 일자로 붙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100억이나 걸린 주식대회에서 단지 바둑 한판이 두고 싶어서 나를 찾았다고?”

“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 또한 노인의 백 돌 옆에 한 칸 띄어 협공했다.


-딱


“허!······.”


내 말에 대한 응답인지, 내 돌에 대한 응답인지 모를 감탄사를 노인이 입을 통해 내뱉었다.

그러더니, 방금 놓은 자신의 백 돌 옆으로 다음 백 돌을 붙여 뻗었다.


-딱


“다른 궁금한 게 있어서가 아니고?”

“······그럼 대답해주시게요?”


그러자 노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여전히 태연하고 너그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분명 CCTV로 내 모습이 찍혔을 테고, 그래서 노인은 내가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해서 선수를 치는 걸 수도 있다.


-딱


“제가 궁금한 건 영감님이 왜 미리 말씀을 안 하셨느냐는 거에요.”


역시 돌을 놓는 노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럼 이렇게 하지.”

“······?”

“나랑 내기하는 걸로.”

“······네?”

“나는 한평생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네. 보아하니 자네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지킬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그러면서 그가 눈을 흘끔 아래로 깔았다 올리며 바둑판을 가리켰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았다.


“바둑 내기요?”

“그래. 만일 이번 판을 젊은이가 이기면 내가 자네에게 이 대회에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해할 만한 얘기를 들려주겠네.”

“그럼 제가 지면요?”

“만일 자네가 지면, 자네가 본 건 어디서도 말하지 않는 걸로. 어떤가?”


그러는 노인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감 같은 게 느껴졌다.


“네. 그러죠.”


그 뒤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고 바둑알 놓는 소리만이 들렸다.


-딱

-딱

-딱

..


노인은 나를 이길 거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좋아하는 바둑 한판으로 내 입을 막고 싶은 거였다.


-딱


하지만, 노인이 모르는 게 있었다.


-딱


나는 그동안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실은 노인을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딱


그래서 그동안 바둑에 집중하기보다는 질문만 많이 했었다. 이곳 한비원과 한비원이 개최하는 이 대회에 대해서 말이다.


-딱


그러니 내가 사실 9점이나 깔고 질 실력은 아니란 거다.

게다가 나는 이제 이 노인의 기풍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매우 집중하고 있고······.


-딱


피강자보(彼强自保).

상대가 강할수록 수비에 힘쓴다는 뜻이다.


-딱


사실 9점 접바둑에서 상수에게 패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깔린 돌을 믿고 경솔하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수비에 힘쓰다 보면 깔려있는 9점 돌의 위력으로 상수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딱


이는 주식투자에서도 마찬가지.

먼저 수비를 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현명한 투자 방법이다.


-딱


역시나 노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노인의 백 돌 또한 점점 놓아지는 시간이 느려지고 있다.


-딱

..

.


*


바둑이 끝나고 공배를 메우는 노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사실 자신의 패배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나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예의상 공배를 다 메우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제가 이겼네요.”


일곱 집 차이였다. 흑 돌이 7집 차이로 이긴 것.


“음··· 실력이 많이 늘었군!”

“별말씀을요.”

“아냐. 오늘은 확실히 뭔가 달랐어.”

“다 영감님 덕분입니다. 오늘은 제가 피강자보 했습니다.”


피강자보란 말에 노인의 동공이 갑자기 확장되더니, 곧이어 너털웃음을 지었다.


“보통이 아니군! 아무튼 내가 깨끗이 졌으니 약속을 지켜야겠지?”

“감사합니다.”


곧이어 노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후회하는 듯한 말이었다.


“자네를 이번 대회에 참가시키지 말았어야 했어.”

“······.”

“하기야, 이렇게 통과하게 될 줄은······.”


말끝에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여는 노인.


“미안하네. 대회에 대해서 미리 말을 못 해서.”

“······.”

“일단 이 대회 참석한 사람들이 궁금한 거 같은데, 우리가 대회 초청장을 보낸 사람들은 지난 2년간 각종 증권사 대회 우승자들이었네. 일부는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도 있고.”

“알고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얘기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래. 그리고 이 대회 지원자들은 말이야······”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의 입을 주시했다.


“자네가 생각한 대로야.”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냥 떠보는 걸 수도 있다.

나는 일단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세력······.”


그러자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짐작대로였다. 하지만 직접 확인을 받으니 몰랐던 사실을 방금 안 거처럼 놀라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럼 지원자들은 나만 빼고 모두 세력이란 말씀이네요.”

“음.”


그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그래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겠군. 개인과 세력 간의 대결이라고.”

“······.”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네.”

“······?”

“그들 중에도 세력들이 있을 수가 있거든. 초청된 개인들 말일세.”


무슨 소리일까?

세력들이 이 대회를 지원하게 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개인들도 세력일 수 있어서 초대했다고?


“그럼 대회를 개최한 목적이 뭐죠?”


가장 궁금한 질문인 동시에 원초적인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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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4번 참가자 +2 23.07.02 127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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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회규정 +2 23.07.01 138 4 9쪽
51 전국 최고의 주식 고수들 +1 23.06.24 175 5 9쪽
50 출전자금 23.06.24 173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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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상한 종목 수상한 세력 23.06.17 208 5 10쪽
46 슈퍼개미 계좌 좀 볼 수 있을까요? 23.06.17 210 5 10쪽
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7 5 10쪽
44 살아남는 법 23.06.17 20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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