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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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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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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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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6.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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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노인과 바둑기원

DUMMY

“······맞다, 슈퍼개미!”


그가 내 계좌를 보고 나서, 놀란 얼굴로 혹시 한비원 출신이 아니냐고 했었다.


'설마 같은 곳? 그럴 리가...'


일단 그곳의 주소를 확인했다.

귀퉁이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충북 XX군 XXX. XXXX]


네이게이션으로 확인해 보니 1시간 거리.

다행히 멀지 않은 곳이다.


며칠 후 나는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



- 휘리릭~ 휘이이익~


운전석 창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창문을 완전히 닫으면 덥고, 열면 싸늘한 날씨.

그래서 조금만 열고 운전했더니, 이제는 바람 소리가 시끄럽다.


창문 너머로 좌우에 울긋불긋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가을 산이 보였다.

붉게 물든 단풍을 곁눈질하는 사이, 자동차는 낙엽이 수북이 쌓인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산등성에 다다르자, 눈 앞에 펼쳐진 늦가을 속 단풍나무의 절경.


“오, 멋지군!”


그나마 이 멋진 풍경이 아니었다면, 가는 내내 후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비게이션은 왜 자꾸 깊은 산속으로 안내하는 걸까? 혹시 주소가 잘못 표기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까부터 적잖이 당황하며 운전을 했다.


사실 바둑기원은 더 가까운 곳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이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뭔가 특별해 보이고 끌렸기 때문이다. 바둑을 주식과 연관 지어 생각한 것도 그렇고.


원장이 분명 바둑도 고수지만, 주식도 고수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나면 이것저것 배울 게 많을 것이다. 주식과 바둑의 연관성도 들어보면 재미있을 거 같고.


그리고 결정적인 건 바로 슈퍼개미가 지나는 말로 했던 그곳이 혹시 이곳인지도······.



***



네비게이션에 깃발로 표시된 목적지가 깜박였다.


‘이런 곳에 바둑 기원이 있다니···.’


주변을 둘러보니 앞은 계곡이고, 뒤로는 온통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입구에 ‘한비원’이라고 쓰여있는 현판이 보이지 않았다면 이곳이 내가 찾던 곳인지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바둑 기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메인 건물 옆으로 4층짜리 숙소까지 있는 걸로 봐서 돈 많은 종교단체에서 세운 기도원이거나 회사의 연수원처럼도 보였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댔다.

대략 스무 대 정도 댈만한 크기였다.

거기에 미리 주차되어있는 고급 외제승용차들이 몇 대 눈에 띄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누군가 다가왔다.


“혹시 예약 손님인가요?”


식당도 아니고 무슨 예약을···?


“아뇨. 예약을 해야 하나요?”


그러자, 남자가 되려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힘깨나 쓸 법한 덩치였지만, 비교적 선한 인상의 40대 남자 경비원.


“그럼 지원자신가요?”

“···네?”

“그러면 곤란한데요.”

“여기 기원 아닌가요? 바둑 기원요.”

“맞긴 합니다만······.”


힘들게 찾아왔는데 혹시 다시 돌려보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1층 입구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주차장 쪽으로 다가오다가 나를 지나쳐 아까 봤었던 고급 외제승용차로 향했다.


한 사람은 얼굴이 번지르르한 게 낯익은 재벌총수처럼 보였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의 비서 겸 운전기사인 듯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더니 차 문을 열어주었다.


방금 나와 대화를 나누던 경비원은 어느새 달려가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회장님 안녕히 가십쇼!”


재벌 회장이 드나들 정도면 꽤 유명한 기원인가 보군!

떠나는 차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경비원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 뭐한데 구경만 하고 가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여긴 예약 없이는 못 들어가요.”

“그럼 화장실이라도 갔다 갈게요.”


사실 소변이 마렵기도 했고, 그걸 핑계로 내부라도 구경하고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경비원의 얼굴은 단호했다.


“그것도 안 됩니다.”

“아니, 급해서 그래요. 아저씨 금방 나올게요.”

“아니, 안된다니까······”


그렇게 실랑이하는 사이 멀리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금까지 낙엽을 쓸고 있었는지 그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있다.


노인도 나를 아까 경비원처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어디서 오셨죠?”

“공주에서 왔습니다.”


다시 하소연 하듯 노인을 향해 말했다.


“여기가 기원인 줄 알고 왔는데, 예약해야 하는 줄 몰랐네요. 전화번호도 없었던 거 같은데···”


그러자, 노인이 안쓰럽게 쳐다봤다.


“모르고 오셨군요. 이를 어쩌나······쯧쯧.”


그러더니 뭔가 고민하듯 하다 말했다.


“그럼 지금 좀 한가한데 들어와서 바둑 좀 두고 가시죠.”

“네? 정말요? 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경비원.


“영감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을 섰고 나는 얼른 노인을 따라갔다.


이 노인은 대체 누굴까? 이 기원의 원장일까?

하지만 보아하니 낡고 헐렁한 생활한복 차림에 빗자루를 든 모습.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원장님이세요?”

“아뇨.”

“그럼···”

“원장님은 오늘 안 계십니다.”


그때 누군가 로비로 들어가는 나와 노인을 향해 물었다.


“영감님, 지원자인가요?”


깔끔한 제복 차림의 한 중년 여성이었다.


‘근데 지원자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아까 경비원도 묻던 말인데···.’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사이 노인은 여자를 향해 손을 내젓고 있었다.


“아뇨, 그냥 손님입니다.”

“그럼 예약 손님도 아니고, 그냥 손님요?”

“네, 노 실장님. 이분은 그냥 지나는 손님입니다.”

“아, 네에···”


노 실장이라는 여자는 머리를 갸웃하고는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노인이 출입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가라는 눈짓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호텔 로비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넓은 응접실.

사방 벽으로는 값비싼 그림들이 걸려있고, 구석마다 희귀 예술품과 조각상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거대한 석상 두 개.

대국실이라고 쓰여있는 방 입구 쪽에 좌우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어두운 흑색이고 하나는 밝은 흰색이었다.


아무리 봐도 딱히 뭐를 형상화했는지는 알 수 없는 기괴한 형상.

단지 바둑판의 흑 돌과 백 돌을 상징하는 걸 수도 있고, 선과 악을 상징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는 사이 노인이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곳입니다. 들어가시죠.”


대국실 앞이었다. 영화관 출입문처럼 보이는 커다랗고 두꺼운 문 위에 ‘대국실’이라는 금색 글귀가 선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로소 이곳이 바둑기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풍경이 보였다. 그것도 고급스런 바둑기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9개. 그 위에는 각각 바둑판과 바둑돌이 올려져 있었다.

게다가 특별한 건 이 대국실이 바둑판처럼 정 사각형 모양이라는 것.

그래서 9개의 원형 테이블은 마치 바둑판 위에 그려진 9개의 화점(花點)을 상징하듯, 정확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노인은 그 중, 중앙 테이블에 나를 안내했다. 바둑으로 말하면 천원(天元) 자리.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밖에서도 몇몇 청소하는 사람들 외에는 본 적이 없다.


노인을 향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칭은 아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부른 거처럼 하고.


“영감님, 저···근데 여기에 왜 손님이 없는 거죠?”

“여기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곳이에요.”

“물론 보통은 다 그렇게 회원제로··· 아, 그럼 특별한 사람들만 회원이 되는 곳인가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눈앞에 놓인 바둑알 통 뚜껑을 열었다. 딱 봐도 상당히 고급스런 문양이 새겨진 바둑알 통이다.


“젊은이.”

“네?”

“몇 급인가요?”


순간, 주눅이 들어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이곳은 왠지 급수 높은 사람들만 회원으로 받는 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게다가 바둑판 앞에 앉은 노인의 모습은 아까 빗자루를 들고 있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왠지 무협지에서 나올 법한, 마치 무공을 통달한 무림 고수의 기운이랄까?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나는 이제 갓 노인에게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입문자처럼 느껴졌다.


“저, 실은 잘 못 둡니다. 그저 실리와 세력을 조금 아는 정도?······”


지난번 인터넷으로 봤던 8급 단계에서의 수준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나마 그냥 8급이라고 말하는 거보다는 덜 부끄럽게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자, 노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그가 흥미로운 눈매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아까 공주에서 왔다고 했는데, 혹시 거기가 고향이오?”

“네.”

“음···나도 싫은 공주가 고향이요.”

“아, 그러세요?”


나도 모르게 반가웠다.

아니 그보다는 다행스럽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노인과 어떤 끈이라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이 낯선 곳에서 낯선 기운에 눌린 나에게 이물감을 덜어줄 될 테니.


“그래서 아까 젊은이를 그냥 보내기 미안해서 들인 거고.”

“아···감사합니다.”

“이름이 뭐요?”

“저는 정우진이라고 합니다.”


순간,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는 노인.

눈치채기 힘들 만큼의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잘못 본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노인이 나를 알 리 만무했으니.


“그럼 영감님은 성함이······?”

“나는 왕창수요.”


노인이 다시 태연한 모습으로 백 돌이 든 바둑알 통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고, 흑 통을 내게 건넸다.


“자, 그럼 아홉 점 깔아드리리다!”


접바둑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9점이나 접바둑이라면 기력 차이가 상당하다는 얘기였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바둑판 위의 9개의 화점에 흑 돌을 한 개씩 올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넓은 대국실 안에는 두 사람의 바둑알 놓는 소리만이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딱

-딱


그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으로는 묵직하고 매끈한 바둑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딱


그동안 두어오던 온라인 바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나무 냄새와 미세한 진동까지.

낯설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어떤 쾌감 같은 것이 코와 손끝을 타고 전해지고 있었다.


-딱


게다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은 빛깔과 무게감을 지닌 바둑돌이었다.

그리고 역시 보통의 일반 기원에서는 보기 드믄 바둑판이었고.


-딱


아니나 다를까, 노인이 이 특별한 바둑알과 바둑판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하듯 늘어놓았다.


-딱


“이 바둑알은 장인이 300세트 한정 제작한 신석(神石) 바둑알이요. 영롱한 빛감과 경도 7 이상의 단단함을 자랑하지.”

“아, 예.”


-딱


“바둑판 역시 최고의 장인이 만든 건데, 재질은 신비자원목이요. 사방으로 보이는 촘촘한 나뭇결이 일품이지 않소?”

“네, 그렇네요.”


그렇게 호응해준 나는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놓듯,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영감님. 아까 제가 들어올 때 예약했는지 지원자인지 묻던데······그게 다 무슨 말인가요?”


나도 모르게 시선은 노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노인은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바둑판 위에 자신의 시선을 그대로 고정한 상태다.

내 흑돌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도 백돌 하나를 올려놓으며 그가 대답했다.


-딱


“원래 전에는 아무나 와서 바둑을 둘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하오.”

“왜 그렇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래서 원장님이 결정한 일이지요.”


이 산속에 누가 그리 많이 몰려온다는 걸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사람들이 없는데. 그리고···


-딱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건 나도 모르오. 원장님 뜻이니.”

“그럼 지원자는 뭔가요?”


그러자, 노인이 바둑판 위에 돌을 놓으려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둑판 위에만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시선이 오랜만에 내 얼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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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4번 참가자 +2 23.07.02 126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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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회규정 +2 23.07.01 13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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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살아남는 법 23.06.17 208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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