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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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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조회수 :
13,599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8.10 18:32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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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기권하겠습니다.

DUMMY

-똑똑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쪽에 바라보니 보이는 건 한비원 노 실장이란 사람.

남색 제복을 입은 걸 보니 그녀도 대회 감독관 중 한 명으로 일하고 있나 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녀의 손에는 물컵이 올려진 쟁반이 들려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노인을 향해 말했다.


“영감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세요.”


노인의 말에 노 실장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말없이 쟁반 위에 올려져 있던 물컵과 약봉지를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이 그걸 먹는 동안 가슴팍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드는 그녀.

한쪽에는 돋보기로 보이는 안경도 들고 있었다.


약을 다 먹은 노인이 말없이 안경을 받아 끼고는 방금 건네받은 서류를 쭉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짓는 노인.


눈썹을 꿈틀댔다.


다시 확인하려는 듯 눈을 치켜뜨고는 안경을 코 위로 밀어 올렸다.

안경 너머로 그의 커진 동공이 그대로 보였다.


*


잠시 후.


노 실장이 돌아간 뒤, 노인이 바둑 한판을 다시 두자며 방금 정리한 바둑알 통을 내게 건넸다.


“운인 줄 알았는데 보통이 아니군!”

“뭘요. 7점이나 깔고 겨우 한 판 이긴 건데.”

“아니 바둑 말고.”

“······?”

“개인이 3차전에 진출한 건 자네가 처음이야.”

“······네?”


그러고 보니 노인은 대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방금 노 실장이 가져온 서류는 2차전 결과지였던 거다.


나는 애써 진정하고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그전에는 개인들 중에 3차전 진출자가 없었나요?”

“있긴 있었지.”

“······.”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결국 그들도 모두 세력이었어. 겉으로만 개인 고수 행세를 했던 거고.”


한비원에서 그들이 세력이란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7개의 화점에 다시 흑 돌을 올려놓았다.

그 사이 노인이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어떤 종목을 샀길래 그런 수익을 올렸나?”


거래용 PC로 나를 감시했다면 아마 알았어야 할 질문이었다.

하지만, 노인이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그의 아랫사람들이 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나 보다.


하기야 하루 전까지 탈락이 유력했던 개인에게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방산주요.”


그러자 노인의 눈썹이 다시 꿈틀댔다.

놀라거나 당황했을 때 나오는 그의 반응 중 하나였다.


방산주는 사실 현재 한비원 에이스 세력들이 작업하는 종목이었다.

그것도 비밀리에 거액의 북한 공작금까지 받아서 작업하는 꽤 비중 있는 종목이었던 것.

그리고 이 종목을 거래할 때는 주로 해외법인을 통해 매매를 진행했다.


-딱


노인은 다시 말없이 바둑만 두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한비원은 세력 잡는 세력.


즉, 한마디로 세력들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세력인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그저 한낱 바둑기원.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다고?


‘하, 재미있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노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도 한비원은 내게 미스터리했다.

종합해 보면 이러한 대회나 한비원 조직을 아는 자들은 오로지 일부 세력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이 바둑기원 하나라는 것.

대회장에 마련된 트레이딩실도 임시로 만든 것일 뿐 원래 있던 것도 아니었다.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이라면 있어야 할, 기술자로 보이는 자들도 따로 없다.

그저 행정 일을 보는 5~6명의 직원들과 주차장 아저씨 그리고 청소부들 뿐이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여기서 직접 나서서 작업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활동하는 한비원 에이스 세력들.

그들이 대신 움직일 것이다.


한비원은 그저 그들에게 먹이를 주며 극비리에 이용할 뿐이고.

그 원동력은 물론 한비원의 막대한 자금과 정보력.


'그렇다면 궁금한 건 도대체 그 먹이들을 누가 가져다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노인이 두는 돌의 의미를 생각하며 바둑돌을 내려놓았다.


-딱


노인 또한 오늘따라 생각이 많아 보였다.

줄곧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 어쩌다 보니 이 녀석에게 너무 많은 걸 오픈했군. 그런데 이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보통 놈이 아니야······.’


*


“다음엔 6점을 깔고 둬야겠군!”


계가를 마친 노인이 머쓱하게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이긴 것이다.


“오늘도 잘 뒀습니다.”


대국장을 나오려는데 노인이 다시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번 대회에서 돈을 보고 들어온 놈들은 돈 때문에 망할 걸세.”

“······?”



***



다음 날 오전 8시 무렵.

숙소 앞에 붙어있는 2차전 최종 결과표.


1위 1조 222.5% 통과

2위 7조 220.8% 통과

3위 3조 191.2% 통과

..

10위 20조 68.5% 통과

11위 6조 68.1%

..


1위부터 10위까지는 빨간 글씨로 통과라는 글씨가 옆에 쓰여있었다.


그중 10위 20조 68.5% 통과라는 글자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슬아슬하게 소숫점 차이로 우리가 통과한 것이다.


“헐, 통과했군!”


옆에서 와우개미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위표를 바라봤다.


나는 어제 이미 노인을 통해 들었기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이게 다 아우님 덕분이야.”

“아니에요. 형님도 어제 끝내줬잖아요. 형님하고 호흡이 안 맞았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그건 사실이었다.

어제 우리는 환상적인 콤비이자, 하나의 세력이 된 거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세력이라도 그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맞추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욕심 없어.”


와우개미가 어느새 자신의 핸드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고 있던 건 자신의 계좌였다.


그는 어제까지 57억을 벌었다.

2주 만에 그 많은 돈을 벌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게 기록적인 수익이야!”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핸드폰을 열어 계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예수금 포함 총평가금액: 179억 3,500만 원]

[총수익: 79억 3,500만 원]

[수익률: 79.35%]


나는 어제까지 79억을 벌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냈다면 사실 좀 더 벌 수도 있었다.

내가 와우개미보다 방산주에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하루 수익만 놓고 보자면 둘의 수익은 비슷했다.

호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야 둘의 합산 수익률이 높아지니까······.



***



3주 차 대결의 첫 번째 날이 밝았다.


이제 남은 참가자들은 총 20명.

이번에도 1층 대회의실에는 이른 아침부터 통과자들이 모두 모였다.


어제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내 눈에는 이들이 모두 한비원의 에이스 세력이 되고 싶어서 출전한 자들로 보였다.


“여러분 3차전에 진출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단상에서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다시 바뀔지 모를 진행 방식에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번 주는 여기 계신 20명 중에서 9명만이 마지막 4차전에 진출할 것입니다.”


9명?······


20명 중에서 절반을 자르고 10명을 올려보낼 줄 알았는데 굳이 9명인 게 흥미로웠다.


“······이번 주부터는 종목에 제한이 있습니다. 기존에 들고 있던 종목은 모두 오늘 중 매도하시고 새로운 종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건 아무도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변화였다.

침묵 중이던 사람들에게 일순간 동요가 일었다.


-······네?

-헐!

-그게 무슨······.


“그리고 종목 수는 총 다섯 개 안에서 트레이딩을 해야 합니다.”


······모두 팔고 새로운 종목으로 트레이딩을?

그것도 다섯 종목만으로?······


여기저기서 탄식과 함께 질문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 많은 돈을 1주일 동안 총 다섯 종목만 가지고 트레이딩하란 건가요?

-왜 꼭 다섯 종목인가요?


하지만, 감독관의 태도는 전주와는 달리 이번엔 매우 단호했다.


“대회 방식에 대한 불평불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방식입니다.”


-정말 가지고 있는 종목은 모두 팔아야 하나요?


“네 오늘 중으로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종목으로 다섯 종목을 채워야 합니다.”


혹시나 한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니 불만을 표하는 자들로 장내가 더욱 시끄러워졌다.


-하! 좆됐네······.

-그건 게 어딨나요? 그럼 손해 볼 수도 있는데.

-맞아요.


그러자 감독관 또한 더욱 단호해져서 말했다.


“그럼 기권하고 싶은 분은 지금 기권하셔도 됩니다.”


의외의 단호함에 찬물을 끼얹듯 갑자기 조용해진 장내.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옆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와우개미였다.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그를 불렀다.


“형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미소만 짓는 와우개미.

문득 주말에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겠다더니 기권까지 할 줄이야······.


“기권하실 분 더 없습니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감독관의 말이 들리고, 그 말에 누군가 질문했다.


“전화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럼 5분 더 시간을 주겠습니다.”


잠시 후,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자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두 손으로 가리고 소곤대기도 했다.

사실 이건 이들이 세력이라는 증거였다.

개인투자가라면 이렇게 전화해서 누군가에게 물어볼 리 없었다.


채 5분이 지나기 전에 누군가 또 손을 들었다.


-저도 기권하겠습니다!


..뭐야?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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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권하겠습니다. 23.08.10 4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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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대회규정 +2 23.07.01 13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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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출전자금 23.06.24 173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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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상한 종목 수상한 세력 23.06.17 208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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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6 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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