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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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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쏘울
작품등록일 :
2023.05.14 20:21
최근연재일 :
2023.09.09 13:34
연재수 :
7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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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7
추천수 :
362
글자수 :
332,534

작성
23.07.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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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세력들을 찾으려는 거였네

DUMMY

노인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 대회를 개최한 목적은 세력들을 찾으려는 거였네.”

“······세력들을요?”

“그래. 그것도 쎈놈들로다.”


헐!


어쩐지 처음부터 이상했다.

이런 바둑기원에서 주식투자대회를 하는 것도 그렇고, 상금이 지나치게 큰 것도.

상금이 크면 세력과 고수들을 대회에 끌어들이기는 쉬울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럼 이 대회가 일반 주식투자대회가 아니라 세력들을 위한 대회였단 말인가요?”

“세력들을 위한 대회가 아니라. 그놈들을 찾기 위한 대회라고.”

“······?”

“그런데 가끔 개인 고수들 중에도 뒤가 구린 놈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혹시 몰라서 그자들도 초청한 거였네. 이번엔 별로 없어 보이지만······.”


어젯밤 한비원 원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지원자들이 대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1차 탈락자들은 모두 초청자들이었다고 했다.

그 말은 당연히 상위권은 대부분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고, 개인 고수들은 탈락하거나 하위권에 있다는 얘기.


그건 그렇고 굳이 세력을 찾는 거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력들을 찾아서 뭐 하시게요?”

“교통정리 해야지.”

“···네?”

“못된 놈들이 이 주식시장을 교란하고 있어. 그래서 이 대회를 미끼로 놈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지. 죽일 놈들은 죽이고. 살릴 놈들은 살리고······.”

“······?”

“물론 이 주식시장에서 말일세.”


헐! 자신이 무슨 세력들의 심판관이라도 된단 말인가?

만일 사실이라면, 자못 멋진 위인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한마디로 자기 돈 들여가며 이 대회를 개최해 놓고는 단지 정의를 위해 세력들을 잡아서 족치겠다고?


“영감님이 어떻게 놈들을 정리하겠단 말씀이죠?”

“그야 어려울 것 하나 없지.”

“······?”

“대회를 통해 놈들의 속성을 알아내면······.”


음..


뭔지 알 것 같았다. 바로 그 대회용 PC.

그래서 다른 디바이스로는 거래를 못 하게 제한한 거였어.


한비원에서 그 PC들로 참가자들의 거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러면 그 뒤에 어떤 놈들이 숨어있는지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금 규모는 어떤지. 실력은 어떤지, 습성은 어떤지······.


50번 참가자가 자기 노트북으로 거래하다 탈락했다. 결국 대회용 PC는 일종의 감시 도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력들을 족치기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그다음은요? 놈들의 정보를 알아낸 다음엔 영감님이 놈들과 싸우기라도 한단 말씀인가요?”


그러자 느릿느릿 입꼬리가 올라가는 노인. 기어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푸허허!”

“······?”


나는 이때만 해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사실 초대된 자 중에 그에게 대적할만한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세력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나는 놈들을 이용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네. 그 돈은 어차피 불쌍한 자들의 돈일 테니······”

“······.”

“난 살 만큼 살았어. 돈도 모을 만큼 모았고.”


아까는 긴장했던 탓일까? 그 말을 하는 노인의 얼굴이 이제야 뭔가 다름을 느꼈다.

거무튀튀한 낯빛에 검버섯의 경계가 묘연하고, 날카롭던 눈매는 오늘따라 살짝 무디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못 보던 사이 많이 핼쑥해진 얼굴. 병원에서 갓 나온 사람 같다.


“난 단지 말년에 좋은 일 좀 하려는 것뿐일세!”


말투 또한 뒤로 갈수록 기력이 달린다. 그러니까 왠지 진심 같다.


‘설마. 내가 뭐라고 거짓말까지 하며 허세를 부릴 리가······.’


기사에 나왔던 그 이름 없는 자선 사업가가 그럼 한비원 원장이 아니라 이 노인?

그게 아니라면 이 노인이 결국 한비원의 실제 원장이거나······.


더 물으려는 찰나, 노인이 먼저 선수를 쳤다.


“이제 됐네.”

“······?”

“이 대회에 대해서 몇 가지 얘기해준다고 했으니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네?”

“바둑 한판 이긴 걸로 너무 많은 걸 바라서는 안 되지.”


벌써 끝낸다고?

급히 먹다 체한 사람처럼 아직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뭔가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단호했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잠깐만요. 영감님. 그럼 제가 다음에 또 이기면 더 많은 얘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일어나려던 노인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러지.”

“감사합니다.”

“대신······”



***



다음 날 아침.


40명의 1차 통과자들이 오전 7시 30분부터 1층 대강당으로 다시 모여야 했다.

이번에도 사전에 고지 없이 모이라고 한 걸 보면, 이유는 예상대로일 것이다.


“이번 2주차 경기 진행 방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참가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감독관을 향했다.


“이번에는 2인 1조로 한 팀이 되어 싸우시게 될 겁니다.”


-뭐라고?

-2인 1조래······

-팀 대항이란 건가?

-이런 젠장!

-재밌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탄식을 내뱉고, 누군가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망한 그룹 중 한 명이 물었다.


“2인 1조면 둘이 합친 수익률로 순위를 매긴다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이번 주에는 팀별 합계 수익률로 순위를 정합니다. 그래서 총 20개 조 중에서 10개 조가 다음 단계로 올라갑니다.”

“그럼 잘하는 사람들끼리 한 팀 먹으면 불공평한 거 아닌가요?”


이 말에 동조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러게. 수익률이 누적된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잘하는 놈들끼리 서로 팀 먹으면 좋은 거잖아.

-맞아.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죄송합니다. 대회 규정이라······”


젊은 감독관은 진땀을 빼고 있었지만, 바로 옆 나이 든 감독관은 단호했다.


“자자, 조용히 하시고 지금부터는 서로 맘에 드는 사람들과 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실, 나는 어제 노인의 말을 토대로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불만을 표하는 자들은 대부분 하위권에 있는 초대받은 개인들이고, 질문하지 않는 자들은 대부분 상위권에 있는 지원자들. 즉, 세력에 속한 자들이리라.


그리고 한비원 측의 이런 대회 진행 방식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봐도 꼴찌와 다름없는 나와 같은 조를 하고 싶은 참가자가 없어 보인다는 것.


“자, 20분 안에 짝을 찾지 못한 참가자는 임의로 짝을 지을 예정입니다.”


감독관의 말이 떨어지자, 서로 눈치만 보던 참가자들도 짝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보니 목에 커다란 진주목걸이를 한 중년 여자가 보였다.


“죄송한데, 형제님. 지난주 몇 등 하셨나요?”


전에 만난 적이 있던 그 보살개미였다.


“38등 했는데요.”


그러자, 아무 말 없이 옅은 미소만 흘리고 쌩 가버리는 보살개미.


그 뒤로도 몇 명이 더 그렇게 다가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핸드폰과 내 가슴에 붙은 번호표를 번갈아 보며 지나갔는데, 아마 숙소에 붙어있던 1주차 등수 표를 찍어와서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주위를 둘러봤다.


멀리 익숙한 갈색 벙거지 모자가 보였다.

44번 사내다. 역시 지난주 1등답게 벌써 누군가와 짝을 이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흠, 저건······’


그 반대편으로 보이는 또 한 명의 낯이 익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오늘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 토요일 대국실에서 노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데다, 가슴에 달린 참가번호 11번이 그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웠다.


‘그도 세력이었다니······.’


개미들의 우상인 자가 실은 개미들 피를 빨아먹고 사는 세력이란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는 분명 노인에게 그의 밑에서 일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 대회에 지원했다고······.


계속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내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 박청강.


못 본 체하는 걸까?

하지만, 만난 지 석 달이 넘었으니 잊어버릴 수도 있다. 그에게는 단지 많은 팬들 중 한 명이었을 테니.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그······”

“정우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혹시 저 기억 못 하세요?”

“······아, 네 당연히. 근데 죄송합니다. 제가 바빠서요.”


마스크를 위로 밀어 올리고는 서둘러 자리를 뜨는 박청강.

잠시 후 군중 속에서 누군가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세력은 세력을 알아보는 법인가?

결국 그렇게 상위권에 있는 세력들은 그들끼리 짝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할 즈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우리끼리 해야겠군!”


와우개미였다.

먼발치서 절뚝거리며 혼자 걸어오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형님, 죄송해요.”

“뭐가?”

“제 등수가······.”

“38등이나 36등이나 거기서 거긴걸 뭐.”


멋쩍게 웃는 와우개미.


“실은 처음부터 아우님한테 먼저 오고 싶었는데, 일부러 안 왔어.”

“······?”

“아우님이 나보다 순위 높은 사람과 함께 하면 좋을 거 같아서······.”



**



오전 8시.


대회를 위해 일부러 개조한 듯 보이는 곳에 20개 조가 4개의 방에 나누어 들어갔다.

1주 차와 다른 점이라면 조마다 칸막이와 커튼이 쳐져 있다는 것.

그래서 같은 팀원들끼리는 서로 붙어서 모니터를 볼 수 있지만, 다른 팀들 모니터는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20조는 3층의 한 트레이딩룸을 배정받았다.

안에 들어가니, 잠시 후 감독관의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는 매일 매일의 실적과 순위가 공표될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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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주식으로 돈 벌고자 하는 자 23.05.14 181 0 -
72 개미가 에이스 세력이 되다 23.09.09 25 2 9쪽
71 세력들의 반란 23.09.06 30 1 9쪽
70 핸드폰 없이 합시다 23.08.29 29 2 9쪽
69 돈을 보고 덤빈 놈들 돈으로 망한다? 23.08.24 32 2 9쪽
68 어차피 오를 종목 23.08.19 41 1 9쪽
67 세력들 속의 개미 한 마리 23.08.16 45 1 10쪽
66 기권하겠습니다. 23.08.10 46 1 10쪽
65 노인의 정체가 궁금해 23.08.09 45 1 11쪽
64 세력들처럼 싸워라! 23.08.05 52 2 11쪽
63 혹시 김정은하고 친구야? 23.08.02 61 5 11쪽
62 입계의완 23.07.29 62 4 10쪽
61 2인 1조 23.07.26 67 5 10쪽
» 세력들을 찾으려는 거였네 23.07.22 85 2 10쪽
59 내기 바둑 +1 23.07.19 88 4 11쪽
58 초대 받은자와 지원자 23.07.15 101 5 10쪽
57 부정행위 +1 23.07.12 107 4 10쪽
56 수상한 지원자들 23.07.08 114 6 10쪽
55 익숙한 수법 +1 23.07.05 119 5 9쪽
54 44번 참가자 +2 23.07.02 127 6 9쪽
53 눈먼 돈 주워먹기 23.07.01 132 5 9쪽
52 대회규정 +2 23.07.01 138 4 9쪽
51 전국 최고의 주식 고수들 +1 23.06.24 175 5 9쪽
50 출전자금 23.06.24 173 5 9쪽
49 이상한 주식투자대회 +1 23.06.18 207 5 10쪽
48 노인과 바둑기원 23.06.17 208 5 12쪽
47 이상한 종목 수상한 세력 23.06.17 208 5 10쪽
46 슈퍼개미 계좌 좀 볼 수 있을까요? 23.06.17 210 5 10쪽
45 슈퍼개미 박청강 23.06.17 207 5 10쪽
44 살아남는 법 23.06.17 209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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