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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27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31 18:30
조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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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진실

DUMMY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전부터 다른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했다.


혹자는 연구자란 언제나 그런 상황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연구자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니었다. 떨리는 몸과 호흡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한 소녀를 내 연구실로 불렀다. 그녀는 오늘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안타레스는 마음에 드나요?"

"이엘과 똑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네요."


소녀는 뚱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쓴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있었다면 우리 인류는 더 엄청난 일을 해냈을 텐데.


"거두절미하고 물어볼게요.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학교라는 건, 여기, 그러니까 아레인스터를 말하는 건가요?"


그녀가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나는 혹시나 보여서는 안 될 물건이 그녀의 눈에 띄지는 않을지 잠깐 걱정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주머니에 들어 있으니까.


"그래요. 학교에 다니고 싶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장학생이라면 학비도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왜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하시죠?"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는 사이잖아요. 소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그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소녀에게 아레인스터 입학을 권한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알첸브라임 양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뒷조사로 알아냈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이가 몇 살인지, 어떤 학교에 다녔는지, 그런 것들 말이에요."


"저는 마법적인 재능이 훌륭한 학생은 아닐 걸요, 아마도. 그런 사람들도 아레인스터에 다닐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마법 학교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마법이라는 말에 주목하죠. 하지만 사실 밑줄을 그어야 하는 부분은 학교라는 단어랍니다."


소녀는 열네 살에 집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지냈다. 친척에게 몸을 의탁하기도 했고,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신을 따르는 순례자들 일행과 함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저에게 왜 그런 제안을 하시죠? 시칼트라 씨는 저에 대해 잘 모르시잖아요."

"알첸브라임 양을 아레인스터로 데리고 오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그게 옳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모든 소년소녀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은 학교 밖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모두가 많은 걸 배워야 하는 건 아니다. 많은 걸 배운 인간이든, 그렇지 않은 인간이든, 인간은 모두 똑같다.


"아레인스터는 안전한 곳이에요. 물론 완전히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마법을 다루는 인간은 결코 완벽하게 안전해질 수 없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에 매우 좋은 공간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다면 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말이죠?"


진실을 말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나는 문득 내게 연락해서 연구소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 줬던 치안관리부의 조사관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내게 그 이야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심호흡을 했을까.


"안타레스에서 위험한 일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아레인스터에 있으면 그런 일들로부터 지켜줄 수 있어요."

"위험한 일이란 뭘 말씀하시는 건가요? 용병들이 제 총을 노리는 거? 아리나딘의 사자라는 녀석이 저에게 접근했던 거?"


거짓말을 해도 되는 순간이다. 사실 거짓말을 할 것까지도 없다. 그저 가볍게 긍정하면 될 뿐이니까. 하지만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내가 진실한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혼자 숨기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의 여정에 계속 함께하고 싶다면 그것 또한 알첸브라임 양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부디 진지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군요."


소녀는 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야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어른으로서 강제하듯 말하는 건 어떨까. 그녀를 설득할 가능성이 더 높은 건 그쪽인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알체이라 씨를 좀 불러줄 수 있겠어요?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요."

"그러죠, 뭐."

"제가 드린 제안, 꼭 진지하게 고려해 보세요."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고개를 까딱이고는 방을 떠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냈다. 이건 불과 몇 시간 전에 이엘 알체이라가 나에게 준 물건이었다. 오늘 하루를 전부 쏟아부어 이 돌에 대해 조사했다.


"시칼트라 씨."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방에 들어선다.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네요, 알체이라 씨."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한 나는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알체이라라는 이름은 누가 지은 건가요? 혹시 이쉐 알첸브라임 씨가?"

"어떻게 아셨죠?"

"이름을 발음하는 방식이 비슷하니까요."


이엘은 슬쩍 시선을 위로 올렸다. 이 화제에 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뭐, 그렇죠. 예전에는 성이 없었으니까요. 스승님이 본인 성과 비슷하게 적당한 이름을 붙여 준 겁니다."

"알첸브라임 양에게 아레인스터에 입학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알체이라 씨는 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글쎄요, 유리오가 학교에 다니고 싶다면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저 애가 그걸 좋다고 덥석 물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확실히 두 사람에게서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유독 사이가 좋지 않은 내 자매 한 명을 떠올렸다. 그녀와 나 사이의 유대감이 저들 사이의 감정보다 강할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그렇게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모든 걸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죠.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언가를 숨기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니까요. 아이라고 해도 되겠죠? 제가 빠르게 임신과 출산을 시도했다면 알첸브라임 양 정도 되는 딸이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열여덟 살은 애죠."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는 많이 나누셨나요? 그럴 시간이 없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습니다. 꼭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그는 연구실 문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나 역시 책상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제가 저 애를 꼭 찾아야 했던 건지도 확신이 없네요."

"무슨 뜻일까요?"


나는 그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엘 알체이라는 분명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그는 내 자매와 교제한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안타레스에 처음 왔을 때와 달리 그에게서는 희미한 해방감 같은 게 느껴졌다. 그건 아마 그가 찾아 헤매던 소녀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이 만남이 꼭 이루어져야 하는 거였을까, 하고.


"내가 기억하는 유리오의 마지막 모습은 완전히 어린애였죠. 그래서 그 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유리오에게는 제가 유일한 보호자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만나 보니 현실의 유리오는 쑥쑥 자라 있었죠. 제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안전한 집을 떠난 어린 소녀를 걱정하는 마음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문제는, 제가 그 애를 찾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저는 사진을 뿌리고 다녔고 주변 사람들에게 유리오의 안부를 물었죠. 하지만 사월을 떠나지도 않았고 그 애의 행방을 찾아 제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는 그냥 유리오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의무감만으로는 안 되나요?"

"찾아서 뭘 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라도 보내려고 한 건지, 그 애가 안전한 곳에 있기를 바랐던 건지, 어린애가 내 통제권을 벗어났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그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주머니를 뒤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의 주머니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던 게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뭐가 나올지 모르는 마법사의 모자,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 어쨌든 그가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않았으면 했다.


"안타레스에 아리나딘의 사자가 나타났더군요. 몸을 반으로 쪼갰습니다."

"그게 진짜 몸이던가요?"

"가짜였습니다. 파리스 씨 말로는 머리 안쪽에 무언가가 들어 있을 거라고 했었죠. 그래서 꺼내 왔습니다."


이엘이 주머니에서 돌을 하나 꺼냈다. 영혼석과는 다른, 누가 봐도 평범한 돌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하지만 저게 평범한 물건일 리 없지.


"아리나딘의 사자라고 자청하는 녀석들,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수상해요."


안 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는 내 흐름에서 계속 벗어나고 있었다. 내가 몇 살 때였던가, 학교 유리창을 깬 적이 한 번 있었다. 그게 그리 엄청난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유리창을 깬 사실을 고백하기 전까지 얼마나 두려웠던가.


차라리 누군가가 먼저 캐물어 줬으면 했다. 저 유리창을 깬 게 너냐? 하고.


"시칼트라 씨도 하라딘이라는 약물에 대해 아십니까? 누군가 그걸 안타레스의 제 숙소로 보냈더군요. 그리 적지 않은 양이랍니다. 왜 이런 걸 나한테 보냈을지 계속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네, 그게 뭐죠?"


이런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제국 사냥꾼 두 명을 마주쳤다고 제가 말했던가요. 그중 한 명은 눈에 띄게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술이나 혹은 약물에 취한 것 같았죠. 아마 절대로 맨정신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사람이 약에 취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건가요?"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지 않을까요?"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었다.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수록 내가 이엘 알체이라에게 사실을 고백할 가능성은 작아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괜히 머리카락을 넘기고, 시선을 내려 구두 굽을 살펴보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내 표정을 읽을 수 없을 테니.


"알체이라 씨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요."

"중요한 이야기군요."


지금까지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당황한 적이 있었나? 해야 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망설인 적이 있었나? 입을 열어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기로 했다.


"알체이라 씨가 맡겼던 영혼석을 분석했어요. 혹시 마법 총 말고 일반 총에 관해서도 지식이 좀 있나요?"

"잘은 모릅니다. 기본적인 상식은 있지만요."


"발사된 총알에는 흔적이 남죠. 그 흔적을 통해 그 총알이 어느 총에서 발사된 건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 알체이라 씨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제가 아는 내용이군요."


"마법 무기로 만들어진 영혼석에도 그런 흔적이 남아요. 마력흔(魔力痕)이라고 하죠.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흔적은 아니지만요."


그는 턱을 괸 채 가만히 내 말을 들었다. 연구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알체이라 씨가 맡긴 영혼석에서도 마력흔이 나왔어요. 그 영혼석이 어떤 무기로 만든 건지 알아냈습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돼. 하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말을 잇지 않는 게 그에게는 오히려 대답이 된 것 같았다.


이엘 알체이라는 양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렸다.


"······알첸브라임이군요."

"수십 번을 다시 확인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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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금작
    작성일
    22.09.01 12:53
    No. 1

    100화 축하드립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심권
    작성일
    22.09.01 18:48
    No. 2

    언제나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100화까지 즐겁게 쓰게 되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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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이 싸움이 끝나면 22.10.06 31 3 13쪽
126 마법의 헤어드라이어 22.10.05 37 4 12쪽
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119 뻐꾸기 사냥 +1 22.09.26 66 4 12쪽
118 북쪽 끝 +1 22.09.23 44 4 13쪽
117 사자와 사도 +1 22.09.22 51 4 12쪽
116 인질극 +1 22.09.21 75 4 12쪽
115 결코 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 것 +1 22.09.20 50 4 12쪽
114 꼬리 잡기 +1 22.09.18 5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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