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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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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1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0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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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후유증

DUMMY

나는 사월로 돌아왔다. 내가 이 풍경을 그리워할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유성호텔 건물을 보자,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우스운 일이다. 여기가 내 고향이라니.


공간 이동 마법으로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것 역시도 우스운 일이다. 공간 이동 마법이 실패하는 바람에 육체가 갈가리 찢겨 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우스운 게 한 가지 더 있었다. 지금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월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실감하고 나니, 이상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


그리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한동안 안 보이길래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네?"

"누구 말로는 나를 죽이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던데."


마리포사 알루나는, 제 딴에는 힘껏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읽힌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그녀의 사소하다면 사소한 비밀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그 비밀은 완전히 세상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심해 주는군.


"꼴이 말이 아니야, 뭐라도 좀 먹여야겠네."


그녀는 나를 만월정의 가장 좋은 방에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목을 꺾어 천창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말끔하군."


불과 얼마 전에 완전히 부서졌었는데. 그때 부서진 건 천창뿐이 아니었다. 지붕이며 안쪽의 정원, 주차장까지 엉망진창이 됐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정도면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군.

아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어야겠지.


마리포사는 우유 한 잔과 토스트 두 개가 놓인 쟁반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가 만월정인지 세 번째 눈동자인지 모르겠는데."

"급한 대로 이거라도 밀어 넣으라고. 도대체 며칠을 굶은 거야?"


"기억이 안 나. 내 꼴이 그렇게 처참한가? 그래도 본판이 있으니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미친 소리 지껄이네."


나는 기다란 의자에 드러누웠다. 천창을 통해 밤하늘을 그대로 올려다볼 수 있었다. 당연히 별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월에 그런 낭만 같은 건 없었으니까.


"뭔데?"

"뭐가?"


"왜 그러고 있는지 말하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으면 어떻게 할래, 마리?"


마리는 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알기 쉽게 고개를 저어 주었다.


"네 이야기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은 비밀?"

"응."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의 입을 막아야겠지."


뻔한 대답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딱 이 정도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입을 막자고 루토 시칼트라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데? 배부터 좀 채우든가."

"한숨만 자려고."

"여기서?"

"응."


원래 같으면 부채로 나를 때리면서 쫓아낼 때가 됐는데. 그 달라진 태도가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확실히 모든 게 예전과는 달라졌군.


"최근에 사월에서 누군가 약물을 사용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 들은 적 없어?"

"약물을 사용한 범죄라니?"


"말 그대로야. 강력범죄자가 약에 취해 있었다든가. 아니면 피해자를 약물에 취하게 한 다음 강도질을 했다든가. 닥치는 대로 관계있는 거."

"최근에 들은 건 없는데, 한번 알아볼게."


마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두고 자리를 떴다. 자겠다고 말해 뒀으니 누군가가 나를 방해하러 오지는 않겠지.


머리 위에 펼쳐진 밤하늘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천창은 너무나도 쉽게 깨질 존재처럼 보였다.

뭐,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꿈에는 공간 이동 마법에 실패해 산산조각이 난 실비나, 대로변에서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마법 총을 쏴대는 스승님, 그리고 송장이 되어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는 도달이 나왔다.


태양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인간처럼 보이는 형체가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그건 인간이 아니라 레몬이었다. 레몬의 공허해 보이는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에 네 이름을 써라, 이엘 알체이라."


그 손가락 끝을 보려다가, 나는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식어버린 토스트를 먹고 우유를 마셨다.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만월정을 떠나 차에 올라탔다. 치안관리부 청사로 가야 했다. 사사야 타테지아와는 안타레스에 도착한 첫날 한 번 대화한 게 전부였으니까. 나는 안타레스에 있는 동안 그녀의 통신을 받지 않았다.


"연락이 잘 안되더군요, 알체이라 씨."


이상한 일이었다. 그 고압적인 태도 하며, 사람을 압박하는 샛노란 눈동자까지. 내게 아무런 감정도 가져다주지 못하니 말이다.


그녀는 내가 내민 서류를 찬찬히 넘기며 읽었다. 그건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과 루토 시칼트라가 쓴 감정 증명서였다.


"사월의 팔경 지구에서 발견된 보석을 증거품 a, 오월의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에서 발견된 보석을 증거품 b라고 칭한다. ···증거품 a와 증거품 b는 모조품임을 확인함."


치안관리부 부장은커녕, 황제가 와도 이 감정 증명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사사야 타테지아는 서류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왠지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면 체념한 사람처럼.


"그렇군요. 결국 전부 가짜라 이거네요. 그것도, 그냥 가짜 돌이 아니라 얼핏 보기에는 진짜처럼 보이도록 누군가가 조작한 가짜."

"제가 사월을 떠나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죠. 유리오 알첸브라임을 팔경 지구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다고."


"분명 그랬었죠."

"왜 과거형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사사야 타테지아가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그제야 그녀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충 틀어 올린 머리카락에 맨얼굴. 며칠이나 밤을 새웠는지 옷에도 구김이 여기저기 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팔경 지구 살인 사건이 아니죠. 치안관리부 조사관 연쇄 실종 및 살인 사건이지. 그 사건은 알체이라 씨가 사월을 떠나 있는 동안 종결됐어요."


"종결됐다니."

"사건 관련 자료는 행정관에게 청구하세요, 궁금하시다면."

"또, 윌 로체스티아 조사관을 만나고 싶습니다만."


내가 사월로 바로 돌아온 건 사실 그 일 때문이었다. 윌 로체스티아를 만나 인형의 집에 관해 물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인형의 집으로 가자,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사야 타테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로체는 사표를 냈어요. 청사에는 나오지 않을 거예요."

"사표를 냈다고요?"


그러고 보니, 말이 짧다. 이 여자는 항상 말을 벌떼처럼 쏘아 대고는 했는데. 기력 없어 보이는 얼굴에 한껏 짧아진 말. 웬만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길하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여기서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나? 그 사실을 떠올리면 딱히 두려울 게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치안관리부 차장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정상적으로 말이 통할 만한 건 그 여자밖에 없겠군. 물론 굳이 다시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아직도 여기 취조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이가 갈렸으니까.


"리요는 여기 없어."

"도대체 여기 있는 사람은 누군데요?"

"나, 나지. 알체이라 씨, 나는 끝까지 여기를 지키고 앉아 있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피곤하다. 여기 더 있어 봐야 의미 있는 정보를 들을 일은 없겠는데.


"유리오 알첸브라임은 이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는 거죠?"

"그래요. 이엘 씨. 당신을 귀찮게 할 일도 없겠죠, 아마도. 아, 아닌가.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 건이 남아 있었지. 그렇지만 잘 모르겠는걸. 이미 해결됐다고 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현장에서 나온 시신들의 사인은 빠짐없이 조사했어요. 연구소장은 유노 이보나가, 나머지 연구원들은 타라 란테가 살해했지. 이 사건을 더 이상 들이 판다고 뭔가 나오겠어요?"


나와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에도 수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군. 내가 이대로 입을 다물면 이 사건은 이대로 끝난다. 범인, 동기, 그리고 살해 방법. 모든 게 증명된 것처럼 보일 테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든, 그러지 못하든 여기가 내가 서 있는 현실이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사건 자료는 청구해 두죠."

"그래요, 알체이라 씨. 또 차를 마시러 오세요. 언젠가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그런 날이 오겠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부장을 내버려 두고 집무실을 떠났다. 집무실 책상에는 내가 내리꽂았던 나무 꼬치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저런 게 추억이며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까.


청사 1층에서 치안관리부 조사관 연쇄 실종 및 살인 사건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30분가량 기다리자 자료는 두꺼운 서류철이 되어 돌아왔다.


"윌 로체스티아 조사관은 왜 그만뒀습니까?"

행정관에게 묻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로체 조사관님은 아마 안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녀의 연락처나 집 주소 같은 건 알지 못했다. 그건 그녀를 찾기 위해서는 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도 비서가 있었으면 좋겠군. 처음으로 그런 바람을 갖게 되었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일을 요연하게 정리해서, 우선순위를 정한 다음, 하나하나 내 앞에 찬찬히 내밀어 주는 거지.


만약 내 비서 같은 게 있다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시킬지는 뻔했다.


"화분에 물을 줘야지."


사월에 돌아오고 나서 내 방에 가지 않았다. 거기에는 물을 줘야 할 화분이 없으니까. 내가 책임져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화분은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스승님의 집이 있는 곳은 중앙 지구에서 그리 번화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중앙 지구 자체가 당장 10여 년 전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이 개발됐으니, 그 사이에 집값이 많이 올랐겠지. 누군가는 저런 위치에 있는 집이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할지도 모를 터였다.


어쨌든, 스승님의 집은 치안관리부 청사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천천히 걷기로 했다. 내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감각은 지금의 내게 아주 중요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했으니까.


스승님의 집 정원에는 그네가 하나 있었다. 유리오가 어릴 때는 내가 종종 그 그네를 밀어주었다. 성인도 앉을 수는 있는 크기였지만, 유리오가 크고 나서는 그네를 타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색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네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먼지가 쌓여 있었을 텐데."

"생각보다 깨끗하던데. 네가 청소했니?"

"안 한 지 좀 됐어."


레몬이 그네 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물뿌리개를 들고는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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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맹금류와 작은 새 22.10.07 3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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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발라딜로와 기묘한 상자 22.10.04 49 4 13쪽
124 정보 교환 22.10.01 27 4 13쪽
123 금연 구역 +1 22.09.30 40 4 13쪽
122 하산 +1 22.09.29 44 4 12쪽
121 불행에 대하여 22.09.28 49 4 13쪽
120 귀농한 사냥꾼의 삶 22.09.27 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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