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판타지

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231,834
추천수 :
5,519
글자수 :
1,674,356

작성
14.02.06 18:26
조회
892
추천
27
글자
26쪽

4. 고통을 먹는 자 (6)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6.

빌헬름텔은 대답하지 않았고, 라미아 여자는 묵묵히 그를 바라만 보았다. 여자는 집요했다. 더 이상 캐묻지도 않고, 그저 눈을 빌헬름텔에게 고정하고 있을 뿐. 대화도 끊기고 움직임도 멈췄다.

동굴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가 지푸라기를 바삭거리며 지나다니는 소리가 났다. 평소라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다.

이 고요한 시간은 빌헬름텔이 만든 것이다.

라미아 여자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는 알고 있다.

어째서 마물인 자신을 구했느냐는 것.

처음엔 새끼를 뱄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는 이유를 떠올렸다. 하지만 실제 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사냥꾼의 터부 때문이 아니다.

라미아 여자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모습.

꺼져가는 생명이 망설임을 밀어내고 그를 부추겼다.

분명 그 행동엔 생명존중 사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빌헬름텔은 그렇게 답할 수 없게 되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겨 마물까지 구해낸 사람이, 동족인 사냥꾼들을 살해했다.

초면에……그것도 전혀 다른 종족이 이렇게 말한다고 믿을 리 없다.

어린 새끼의 목숨은 구하면서, 동족인 인간의 목숨을 거둔다?

철저히 모순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빌헬름텔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 내 아이를 마법사에게 팔아넘길 생각인가?

“그건 아니오.”

- 저들에게는 그렇게 말했지 않은가?

“거짓말이오. 속이지 않았다면, 나도 당신도 아기도 모두 죽었을 것이오.”

- 그렇다면……저들은 그대의 적이란 뜻인가?

빌헬름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전하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 차라리 이런 식으로 이해관계를 끄집어내 설명하는 게 나았다.

‘애초에……바른 일만 하고 살아도 손해를 보는 세상이다. 남을 해칠 리 없는 해독촉매물질을 발견했어도, 그걸 못마땅해 하는 자들이 날 연구실에서 끄집어냈다. 한창 연구해야 할 시간에 이렇게 게임이나 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가 아닌가. 이 라미아 여자에게 시시콜콜 떠들 필요는 없겠지.’

빌헬름텔은 라미아 여자의 말에 살을 붙였다.

“저들은 적이었소. 평소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사냥감을 탐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쓰레기들이었지.”

-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 적이라는 표현은 맞을지도 모른다. 나와 그대를 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으니. 하지만 교류가 있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라미아 여자는 눈치가 빨랐다. 위기의 순간이라 잠재력이 발휘되는 것인지, 아니면 새끼를 지키려는 모성애의 발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너무도 정확하게 참과 거짓을 짚어낸 것이다.

‘설마 라미아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면……쓰러진 뒤의 일을 모두 기억?’

그러고 보니 라미아는 이렇게 말했었다.

‘인간……하는 일을 모두 보았다. 기억한다. 어째서이지?’라고.

전부 보고 듣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라미아 여자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새끼를 안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언제 쓰러졌냐 싶다. 상처와는 별개로 체력이 떨어져 쓰러진 거라면, 출산 직후 저렇게 팔팔한 모습일 수 없다.

‘그렇다면……치료를 위해 다가갔을 때, 제대로 공격할 수 있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소극적으로 공격한 거지?’

빌헬름텔의 머리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 그대는 내가 뭘로 보이는가?

“라미아.”

- 상체는 인간형, 하체는 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들은 뭉뚱그려 라미아라고 부르더군. 하지만 실은 전혀 다른 세 종족이다.

“라미아가 아니라는 거요?”

- 나는 ‘알골 족’. 눈에 마력을 실어, 의지를 구현하는……말하자면 인간들의 마법사에 해당한다. 반면 그대들이 알고 있는 라미아는, 피를 탐하는 몬스터이다. 이렇게 대화도 할 수 없고,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

“그럼 나머지 하나는?”

- 나가 족이다. 바깥세계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 고고한 자들이지.

빌헬름텔은 여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눈에 마력을 실어서 의지를 구현한다는 것을.

눈을 쳐다본 적이 있는가 없는가. 생각해보니 쳐다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득 구석에 치워놓은 사냥꾼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상황, 저 마물에게 조종당해 저들을 죽여 버린 것일지도 몰라.’

게임 속에서 타인을 조종하는 법은 꼭두각시술 말고도 무수히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매혹의 마법. 신화속의 메두사를 닮은 마물이니 그런 걸 써도 이상할 게 없다.

그의 속내를 눈치 챘는지 알골족 여자가 입을 열었다.

- 그대를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 일부러 넘어졌고, 닿지도 않을 걸 알면서 손톱을 휘둘렀다. 그대는 점점 가까이 왔고, 나는 간절히 염원했다. 내 상처를 치료하라고. 하지만 주문이 발동되기도 전에, 그대는 내 상처를 살폈다. 게다가 시키지도 않은 불까지 피우며 소란을 피우더군. 그때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대는 마법에 걸리지 않았다. 걸 필요가 없었지.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 인간이여. 어째서인가? 그대들은 우리들을 싸잡아 라미아 같은 마물과 같은 취급을 해왔다. 그런데 어째서 날 살려낸 것이냐?

“구해주어도 뭐라 하는군…….”

- 날 우습게 보는 것인가? 이래봬도 나는 한 가문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다.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맹독을 뿜어버리겠다. 나는 진실을 듣길 원한다.

“진실이라? 진실을 듣고 싶소? 간단하오. 난 새끼를 뱄기 때문에 당신을 구한 거요. 그렇지 않았다면 활을 쏘았을 거요. 그리고 저들을 죽인 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걸 알기 때문이오.”

- 생명을 귀히 여기는 긍휼함에……생존본능인가.

알골 족의 여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조용하던 동굴에서 인기척이 무수히 일어났다. 빌헬름텔은 얼굴을 굳혔다. 한두 명이 아니다. 어림잡아 수십 명 이상이 근처에 있었다. 그 소리는 동굴 벽 너머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 빌헬름텔은 동굴 벽에 손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아무런 저항도 없이 팔뚝까지 쑥 들어갔다.

동굴 벽에 파문이 번지며 희미해지고, 전혀 다른 풍경이 드러났다.

빌헬름텔이 서 있는 곳은, 반구형으로 움푹 파인 공간의 한가운데였다. 주변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좌석이 있었고, 그곳에 무수히 많은 알골 족이 앉아 있었다.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노천극장을 닮아있었다.

- 300년의 기다림 끝에, 그의 후예가 찾아왔다!

- 와아아아!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 그가 구한 알골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노란색이었던 눈동자의 색이 진홍색으로 바뀌었고, 키도 훨씬 커진 상태.

분명한 건 새끼를 낳은 여자와, 눈앞의 여자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

“이게 어떻게 된 거요?”

- 나는 알골 족의 여왕, 하르페 르네시아다. 그대는?

“빌헬름텔.

- 300년 전, 항마전쟁이 끝나자 올코너스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했지만, 혹여 그릇되게 사용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의 관문을 만들어 시험을 거치게 했다. 그것이 이제까지 그대가 경험한 일이다.

300년 전 올코너스는 마물전문 사냥꾼이었다.

마물의 생태와 습성에 통달하여 그가 못 잡는 마물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는 다른 지역의 사냥꾼들이 눈에 띄자 이상하게 여기고 은밀히 뒤를 밟았다. 그리고 라미아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습지도 아닌 일반 평야에서 라미아를 잡는 게 이상했으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쫓기는 라미아는 새끼를 배고 있었다. 그럼에도 쏘아 죽이려하는 것에 올코너스는 분노했다. 그래서 다른 사냥꾼들을 쏘아 부상을 입히고, 라미아를 구해냈다.

- 그게 내 어머니, 나자 르네시아였다.

하르페의 어미는 알골 족, 당연히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올코너스는 라미아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챘다. 문제는 상위 마물도 말은 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더더욱 살려두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새끼를 밴 존재를 사냥하는 건 금기.

결국 그는 나자를 동굴에 데려와 보호해주었다. 그 덕에 나자는 무사히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나자는 은혜를 베푼 올코너스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이 쇠약해진 상태. 길어야 1달을 넘기지 못할 상태였다.

- 그 점은 어머니, 당신께서 더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남은 힘을 내게 넘기고 숨을 거두셨다.

알골 족은 태내에서부터 지식의 전수가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눈도 뜨지 못할 만큼 어려도, 어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올코너스는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미를 잃은 하르페를 딱히 여겨, 가까이 두고 보살폈다.

그리고 10년이 되던 해.

어떻게 알았는지 동족들이 하르페를 찾아왔다. 그날 하르페는 알골족의 여왕이 되었다.

여왕이 된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게이트를 열어 올코너스를 마계로 초대하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하지 못했던, 은혜를 갚는 일을 하기 위해.

“마계? 이곳이?”

- 그렇다. 알골 족은 마계의 주민. 인간들의 표현대로라면 마족에 해당한다. 허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족이라 하여 무조건 인간을 적대하진 않는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빌헬름텔은 얼굴을 굳혔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레드 오션에는 다양한 퀘스트가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과 관련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마족에게 퀘스트 보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다.

사냥꾼이 새끼를 밴 사냥감을 불쌍히 여겨 살려 보내주었다는 정도는 훈훈한 미담일 테지만, 그 사냥감이 마물이라면 손가락질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게임 속에서 마족은 적대 세력일 뿐이다.

레드 오션을 계승한 게임인 더 오션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래서 빌헬름텔은 난처했다. 분위기상 뭔가 보상을 주려는 것 같은데, 그걸 받으면 옴짝달싹 못하고 마족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다.

‘어째서 위즈님은 이런 퀘스트를 하라고 떠민 것일까?’

괜히 위즈를 원망하기도 했으나, 이 상황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어차피 취직을 하면 게임이고 뭐고 할 시간이 안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딱 일주일만 하다가 접지 뭐…이런 생각을 해서다.

‘어차피 오래할 생각은 없다. 마족의 퀘스트를 깨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게다가 이미 돈까지 받았으니, 위즈님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하르페가 구불구불 물결치는 칼날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손바닥을 그었다. 붉고 끈적거리는 피가 후드득 쏟아졌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돌로 된 바닥이 녹아들었다. 엄청난 강산이었다.

- 그때 올코너스에게 제공된 것은, 로열 블러드의 힘이었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도 같은 것을 주려한다.

‘이런 것에 닿으면 죽게 될 수도…….’

빌헬름텔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과연 마족, 과격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르페는 손을 뻗어 바닥에서 단단하게 뭉쳐진 검붉은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덩어리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머금어 섬뜩한 기운을 뿜었다.

- 들어가라.

하르페가 다른 손을 내젓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통나무집의 벽면이 드러났다. 그녀가 앞장서 통나무집으로 들어섰다. 내부엔 아무런 집기도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입구와는 반대쪽으로 난 뒷문.

그곳에는 화장실만한 작은 뜰이 있었다. 빌헬름텔은 따라 들어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비좁은 곳이건만, 자라고 있는 나무 하나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르페는 조심스레 허리를 굽혀 손에 든 덩어리를 땅에 파묻었다. 그러자 나뭇가지 끝에서 연녹색의 빛이 흐르더니, 쭉쭉 늘어나 빌헬름텔의 앞까지 내밀어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나뭇가지의 끝에서 작은 구슬 같은 게 맺힌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옅은 초록에서 점차 검게 물들더니, 나뭇가지에서 똑 떨어져 나왔다. 빌헬름텔은 엉겁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내었다.


<‘맹독의 정화’를 습득했습니다.>


- 이제 난 돌아가겠다. 그 힘을 바른 일에 쓰길 바란다.

하르페는 자신이 연 구멍으로 들어갔다. 노천극장에 모여 앉은 알골 족들의 모습이 흐려졌다. 마계와의 게이트는 완전히 사라졌다. 조금 전 자신을 향해 쭉 늘어난 나뭇가지도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빌헬름텔은 꿈을 꾼 것 같았다.


◇◇◇◇◇◈◇◇◇◇◇◇◈◇◇◇◇◇◇◈◇◇◇◇◇


위즈는 오두막을 열고 나오는 빌헬름텔의 모습을 보고 중얼거렸다.

“성공인 모양이네요.”

- 그런 것 같군.

위즈의 말을 받은 건, 핏스톤이 아니었다. 이곳의 주인 올코너스였다. 그의 모습은 마치 흑백 영화의 등장인물 같았다. 다만 채도가 낮아서, 배경이 반투명하게 비쳐 보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올코너스는 300년 전의 인간.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없다.

그는 유령이었다.

- 하르페에게 맹독의 정화를 얻은 것 같으니, 이젠 내 차례군.

싱긋 웃던 그는 빌헬름텔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어?”

빌헬름텔은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팔다리가 의지를 거슬러서 움직여댔기 때문이다.

“위즈님! 제 몸이 멋대로!”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몸을 맡기세요.”

‘망자와의 친화력’을 이용해 올코너스의 유령과 대화를 나누었던 위즈다. 올코너스가 빙의한 이유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이 생전에 쓰던 무기를 넘겨주려는 것이다.

“빌헬름텔 님은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올코너스의 유령이 있어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시면 됩니다. 절대 나쁜 짓은 안 할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빌헬름텔은 긴장을 풀고 몸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조금 전보다 움직임이 더 부드러워졌다.

“올코너스가 고맙다고 하네요.”

“별말씀을.”

빌헬름텔에게 빙의된 올코너스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낡은 활과 화살 하나를 들고 왔다. 활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살짝 당기기만 해도 삐걱대는 골동품이었다. 300년의 세월을 거친 물건이라 실용성은 제로였다. 하지만 화살은 달랐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어려 있어서, 뭔가 사연이 있어보였다.

“이건 특수 화살이군요! 고정 데미지 2만!”

“굉장하군요.”

위즈는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빌헬름텔이 오두막에 들어가 알골 족에게 시험받는 동안, 위즈는 몬스터를 처리한 뒤 모습을 드러낸 올코너스에게 한가지 제의를 받았다.

그것은 근접전에 약한 아처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전수받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가르쳐준다는 게 아니었다.

조건이 있었다. 두 가지의 조건이.

먼저 올코너스의 후예가 알골 족의 시험을 통과할 것.

이것은 빌헬름텔이 ‘맹독의 정화’를 얻은 것으로 해결되었다.

‘이제 남은 하나는, 올코너스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

시험의 내용은 간단했다. 빌헬름텔이 아처로서 배짱과 궁술실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시험을 위해서는 도우미가 필요했다. 위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한 병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리위에 올려두었다.

“어? 어어?”

빌헬름텔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오두막에서 들고 나온 활에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화살촉이 향하는 방향은 위즈. 이건 그의 의지가 아니다. 그에게 빙의된 올코너스의 뜻이다.

“올코너스는 빌헬름텔님의 배짱과 궁술실력을 보고 싶어 합니다. 머리 위에 얹어놓은 포션이 보이죠? 그걸 쏘아 맞추면 됩니다.”

“하지만 이 화살, 고정 데미지 2만짜리 화살입니다! 잘못하면 위즈님이…….”

“이야기 속 영웅인 빌헬름텔은, 아들의 머리위에 올려둔 사과를 쏘아 맞췄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빌헬름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입술을 깨물더니, 활과 화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딴 퀘스트 포기하겠습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어서, 그것도 같은 편을 쏘라니. 뭐 이런 괴팍한 유령이 다 있답니까? 보상 같은 거 안 받으렵니다. 내말 듣고 있지? 올코너스 개자식아!”

빌헬름텔이 가운데 손가락을 허공에 세워들었다.

“목숨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다!”

올코너스의 유령이 허리를 붙잡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가엔 맑은 액체마저 고여 있다. 그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 크큭! 이 녀석 마음에 드는군 그래! 이렇게 한결같은 놈이 굴러들어오다니. 난 정말 운이 좋아!

사실 올코너스가 알고 싶었던 건, 배짱도 궁술실력도 아니다.

옳다고 생각한 길을 끝가지 걸을 수 있느냐는 것.

단순히 생명이 소중히 여기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망설임 없이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빌헬름텔은 올코너스가 빙의된 상태를 단숨에 풀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위즈의 설명을 들은 빌헬름텔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정이 있다고 해도……너무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올코너스가 주는 보상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군요. 제 짐작이지만, 밸런스 파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에, 여러 번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흠…….”

올코너스는 다시 빌헬름텔에게 빙의되었다. 그리고 오두막을 지나쳐 물가로 향했다. 시냇물이 시작되는 수원지(水原地)였다. 차가운 물속에 텀벙거리며 들어가 물이 솟는 돌 틈을 더듬자, 얇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만져졌다. 빌헬름텔은 그것을 꺼내들었다.

“이것은?”

비닐처럼 투명한 한 쌍의 장갑이었다. 역시나 손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알아서 장갑이 착용되었다. 그러자 빌헬름텔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네이쳐스 아크’가 ‘빌헬름텔’님에게 귀속되었습니다.>


===================================

[네이쳐스 아크 (성장/귀속 아이템)][내구도: 무한]

항마전쟁에 참전한 영웅, 올코너스가 사용한 장갑입니다.

정령에게 사랑받는 자-알시오네와 세계최강의 witch의 합작품.

물리방어력: 80

마법방어력: 80

효과-0 : 착용한 상태에서는 현재 스탯의 20%를 늘려줍니다.

효과-1 : 화살에 정령이 깃들게 하여, 다양한 효과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마력 20소모]

- - - [현재 가능한 계열 : 바람, 화염, 냉기, 대지, 전격]

효과-2 : 파이널 웨펀-‘네이쳐스 아크’를 소환해 스페셜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쿨 타임, 24시간]

- - - 파이널 웨펀을 사용하면, 24시간 동안 스탯 보너스 효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

[사용가능한 스페셜스킬]

[회귀본능: LV.40부터 사용가능]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에서 올코너스가 창안한 일종의 카운터 어택!

상대의 공격을 거슬러 오르는 화살을 발사합니다.

- 명중할 경우 치명상을 입혀서, 1000을 넘기는 체력은 무조건 깎여나갑니다.

- 1000미만의 체력을 가진 적은, 이 공격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1000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일격필살 효과]

- 일격필살로 쓰러뜨린 적은 무조건 루팅이 가능합니다.

===================================


“성장형 귀속 아이템?”

모든 수치들이 시간이 레벨업을 하면 할수록 증가하는 게, 성장형 아이템이다. 게다가 귀속이라는 건 거래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뜻. 다른 게임에서는 인위적으로 귀속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지만, 더 오션에서는 불가능하다.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게 귀속 아이템. 그리고 그런 아이템들은 대개 좋은 능력치를 가진 보물들이었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잘됐네요. 잘됐어요.”

위즈가 축하해주었지만, 그 말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득템을 전혀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런 걸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장형인데다가, 귀속까지 되는 아이템을 얻을 확률은 0.000000001%.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된다. 그런데 그런 아이템이 손에 들어오자 빌헬름텔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만약 이게 귀속템이 아니라면, 성장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수 천 만원에 팔릴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네이쳐스 아크를 팔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네이쳐스 아크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스탯이 20%나 증가한다. 추가되는 방어력도 거의 사기적인 수치. 이것들이 성장하면서 더 늘어날 것을 감안해보면 이미 충분히 사기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동레벨의 유저들과 함께 사냥터를 가면, 압도적으로 전투가 쉬워질 것이다. 전투 효율이 높으니 돈을 모으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하르페에게 얻은 ‘맹독의 정화’를 섭취해 얻은 효과까지 합하면, 다른 유저들과 단순 비교해도 우위에 서 있게 된다.

맹독의 정화를 먹고 얻은 능력은, 활쏘기를 비롯한 모든 공격에 독을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

게다가 모든 독에 80%의 내성을 지니게 되며, 20%의 확률로 독을 흡수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아니 밭뙈기 째로 굴러들어온 상황.

이미 빌헬름텔은 표정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보다 못 한 위즈가 다가와 어깨를 흔들었다. 그때서야 빌헬름텔이 정신을 차렸다.

“좋은 건 알겠는데, 그렇게 멍하니 서있기만 해서는 뭐가 좋은 지 알 수 없잖아요?”

“대련합시다!”

“그렇게 나와야죠.”


◇◇◇◇◇◈◇◇◇◇◇◇◈◇◇◇◇◇◇◈◇◇◇◇◇


대련을 마친 위즈는 빌헬름텔이 얻은 힘의 위력을 떠올렸다.

먼저 물리방어력과 마법방어력이 각각 80이나 더해져서, 위즈의 공격이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화염의 발자국을 중첩시켜 지근거리에서 날린 코로나는, 겨우 200의 체력밖에 깎지 못했다. 스크롤로 만든 주문 역시 안 통했다. 윈드 커터와 플레임 플라워는 데미지 제로.

심지어 맹독 스크롤은 빌헬름텔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네이쳐스 아크는 위즈를 한방에 보내버렸다.

사거리를 시험해보기 위해 500m 가까이 도망쳤지만, 화살은 위즈의 코로나를 뚫고 끝까지 쫓아왔다.

그 놀라운 사거리를 확인한 위즈는 한 가지 놀라운 생각을 해냈다.

‘어쩌면 회귀본능이야말로 이번 일을 해결할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생각에 잠겨 있던 위즈는, 누군가 어깨를 건드리자 고개를 들었다. 빌헬름텔이었다.

“이젠 말씀해주시지요. 이런 물건을 대가로 제가 도와드릴 일이 대체 뭡니까?”

“시에니투스는 중립도시. 설사 범죄자라 하여도 그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범죄조직과 해적들이 드나드는 곳이지요. 과거 레드 오션에서, 빌헬름텔님은 그런 자들과 같은 편에서 전쟁을 한 적이 있지요?”

“아……넴코르 해전 말씀이시군요.”

바위섬 넴코르 근처에 출몰하던 유령선과 벌인 싸움이 바로 넴코르 해전.

당시 유저들 사이에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건, 해군과 해적들이 연합전선을 펼쳤기 때문이다. 앙숙인 두 세력이 손을 잡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넴코르 근처는 일종의 교역로로서, 상선이 빈번하게 지나는 해로다. 그런데 유령선이 떴다하면, 상선이 모조리 격침되고 사람들도 모두 죽어나갔다. 근처에 얼쩡거리던 해적선도 마찬가지.

피해를 입은 선박이 50척을 넘어갈 때쯤, 어느 모험가 직업을 가진 유저가 유령선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는 폭풍에 휩쓸려 물에 빠졌는데, 당시 파도가 높아 수영 스킬 마스터라도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유저는 물에 빠져죽을 생각을 하고, 얌전히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때 물속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은 구멍이 숭숭 뚫린 낡은 선박으로, 처음엔 침몰한 배로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잠수함처럼 물속을 가로질러가, 무수히 배들이 가라앉은 넴코르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언데드 선원들이 기어 나와, 물속에 가라앉은 화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언데드가 물욕을 품을 리 없다. 언데드가 물건을 옮기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모험가 유저는 자신이 본 장면을 편집해 솔티워터와 마린블루에 올렸고, 많은 유저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유령선은 네크로멘서가 소환한 것이라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해군과 해적이 손을 잡은 것이다.

그때 빌헬름텔은 해적들과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 보낸 특사였다.

“원래부터 해적들과 친분이 있으셨으니, 그런 일을 맡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레드 오션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해킹으로 초기화되고, 게임 이름마저 더 오션으로 바뀐 지금은 남남입니다. 친분 같은 건 남아있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만났고, 어떻게 호감도를 올렸는지는 기억하시죠?”

“그렇긴 하지만……해적들을 만나서 무얼 하시려고요?”

“레드 오션 시절에는 레미라가 사라져버려서, 마법사들이 많이 힘들어했지요. 더 오션으로 이름이 바뀐 이 게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바하르칼이 우위에 서는 방법은 그게 최선이니까요. 그래서 이번만은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고, 안티 바하르칼 세력들이 단단히 대비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랑 해적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안티 바하르칼 세력만으로는, 절대 바하르칼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해적들을 레미라 수호전쟁에 끼어들도록 만들 생각입니다. 그래서 빌헬름텔님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작가의말

위즈의 첫 동료, 빌헬름텔.

이제부터 힛&런은 그의 차지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99 시러스
    작성일
    14.02.06 19:27
    No. 1

    힛&런이긴한데 회귀본능이 아주 ㄷㄷㄷㄷ 잘보고 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3 이장입니다
    작성일
    14.02.06 23:37
    No. 2

    이런글...참을수없네요.
    안볼수가없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엘자르
    작성일
    14.02.07 12:53
    No. 3

    건필 하세요.. ^^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근데 빌헬름텔 너무 사기적인 아이탬을 얻은것 같음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7 작전명테러
    작성일
    14.02.07 16:37
    No. 4

    영웅퀘스트하다보면 다른 귀속 성장아이템도 얻고 나중엔 풀셋을 얻겠죠? 세트효과있을려나 ㅎㅎㅎ 암튼... 해적왕 영웅도 있을려나 그런 넘있으면 구워삶으면서 내편으로 해서 반바하르칼 타도를 한다면 좋을텐대 암튼 잘보고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3 티케이
    작성일
    14.02.10 15:23
    No. 5

    재밌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또 다른 셸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4) +2 13.11.30 1,023 23 27쪽
33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3) +2 13.11.29 1,151 30 21쪽
32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2) +3 13.11.28 1,049 25 20쪽
31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 +4 13.11.23 1,521 20 19쪽
3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ED) +1 13.11.22 1,147 22 15쪽
2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8) +1 13.11.19 1,217 24 34쪽
2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7) +1 13.11.16 1,514 29 24쪽
2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6) 13.11.15 1,556 28 23쪽
2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5) +1 13.11.13 1,751 28 21쪽
2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4) +1 13.11.12 1,143 25 14쪽
2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3) 13.11.11 1,134 31 21쪽
2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2) +2 13.11.08 1,562 39 18쪽
2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1) +1 13.11.07 2,192 36 23쪽
21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0) 13.11.06 1,139 36 18쪽
20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9) +1 13.11.05 1,531 31 22쪽
19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8) +3 13.11.02 1,113 23 20쪽
18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7) 13.11.01 1,203 32 23쪽
17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6) 13.10.29 1,151 31 23쪽
16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5) 13.10.28 1,143 27 14쪽
15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4) 13.10.26 1,476 36 17쪽
14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3) +1 13.10.25 1,585 36 16쪽
13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2) +1 13.10.24 2,419 40 21쪽
12 2. 제3법칙 - 작용/반작용 (1) 13.10.22 2,117 32 15쪽
11 1. 계절이 바뀌는 때 (ED) +1 13.10.19 2,871 138 19쪽
10 1. (9) +1 13.10.16 1,911 42 23쪽
9 1. (8) 13.10.14 1,703 29 23쪽
8 1. (7) +1 13.10.05 3,286 60 25쪽
7 1. (6) 13.10.04 2,228 42 22쪽
6 1. (5) 13.10.02 2,266 39 17쪽
5 1. (4) 13.09.29 2,359 42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