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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의 셸터

또 다른 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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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렬천사
작품등록일 :
2013.09.13 10:45
최근연재일 :
2015.05.24 21:42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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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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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2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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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26쪽

3.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14)

첫번째 리메 시작합니다.




DUMMY

14.

위즈는 중첩되는 독의 성질에 대해 설명하고는, 체력이 낮은 시궁쥐에게 충분히 통할 거라는 어필을 했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레비는, 스크롤이 파괴되는 곳을 중심으로 독이 퍼지는 점을 지적했다. 거기에 더해 무사히 빠져나오는 문제까지 겹치자, 일행들은 레비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레비가 보인 반응은 정 반대였다. 망치와 못을 팔아넘기면서, 위즈 혼자서 해보라며 순순히 보내주었다.

“명색이 의뢰인인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빙글뱅글은 당장이라도 방패를 들고 튀어나갈 것처럼 굴었다. 마법사 사쿠라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유저들에게 연일 까이는 바하르칼 용병이지만, 이들도 계약만은 반드시 지킨다.

더군다나 이번 계약서에는 의뢰인의 안전보호도 명시되어 있다.

“잘못해서 W가 죽기라도 하면, 이글아이 스킬북은 불에 타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따라가는 게 어때요? 제 마법이라면 위험한 일이 생길 때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요.”

불안해하는 팀원들과 달리, 레비는 천하태평이었다.

“후후. W는 죽지 않을 거요. 그가 세운 계획은 전면전에 앞서 깔아둔 밑밥일 뿐이오. 정령강화 스킬이 있다면 충분히 몸을 빼고도 남지.”

“하지만 쥐들은 작은 구멍 속에서 튀어나오질 않습니까? 방심하고 있다가 에워싸이기라도 하면, 쥐떼들에게 잡아먹히고 말겁니다.”

“앞서 빅웜을 피해 달아나던 때를 기억하오?”

“당연히 기억합니다.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숫자였지요.”

“그럼 W가 ‘진각’으로 빅웜을 도로 집어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빙글뱅글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순간적인 기지라고 생각합니다. 수직으로 뚫고 들어온 녀석이라, 진각이 통했던 거지요.”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땅속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느냐는 거요. 사쿠라양은 마법사가 맞소?”

당연하다는 듯 사쿠라는 스태프를 들어 보였다.

“그럼 묻겠소. 던전에 들어와서, 탐색을 몇 차례나 했소?”

사쿠라는 곰곰 생각해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00번은 넘게 한 것 같네요.”

“빅웜이 나온 뒤로도 사용했소?”

“그때 특히 많이 사용했어요. 도망치면서도 계속 주시했는걸요.”

“그런데 빅웜을 탐지하지 못했지. 맞소?”

“빅웜은 대지속성이 강해서, 땅속에 있으면 감지가 잘 안돼요. 찾아내봤자 흙이나 돌덩이로 인식했을 거예요.”

“우리 중에 가장 감지능력이 좋은 게 마법사인 사쿠라양이군. 그런 사쿠라양도 미처 찾아내지 못한 빅웜을, W가 어떻게 알고 대처 했을까 생각해본 적 있소?”

레비의 의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이상하긴 했다. 별다른 능력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전사가, 레벨이 높은 자신들보다 감지능력이 뛰어날 순 없는 일이다.

“내 생각에 그는 과격한 방법으로 수련을 하는 중인 것 같소.”

“수련이라니요?”

“다들 아시다시피, 난 순수 무투계 전사요. 스킬은 언제나 최소한으로 사용하지. 그렇게 리얼계만 고집하다보니, 후반부에는 불이익도 많이 받았소.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와는 붙어보지도 못하고 죽지. 하지만 반복해서 힘든 전투를 치르다보면, 근성 스탯이 올라가오. 근성은 행운과 더불어 직접 찍는 게 불가능한 스탯. 근성이 어느 정도 쌓이면, 다른 스탯과 어우러져, 전투에 이득을 주게 되오. 내 ‘거짓죽음’ 스킬도 그중 하나지.”

“그럼 W도 레비님처럼 일부러 능력을 제한하고서 싸우는 자라는 건가요?”

“그게 아니면 놀라운 감지능력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소. 어쩌면 생각보다 강한 존재일 수도 있소. 그러니 혼자서 보내도 쉽게 당하는 일은 없을 거요. 여차하면 본 실력을 발휘하겠지.”


◇◇◇◇◇◈◇◇◇◇◇◇◈◇◇◇◇◇◇◈◇◇◇◇◇


남겨진 자들이 나누는 말은 위즈의 귀로 쏙쏙 들어오고 있었다. 땅속에 숨어 있는 핏스톤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전했기 때문이다. 위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도 바보는 아닐 테니 알아챈 것도 당연해. 그나저나 레비의 말대로라면 거짓 죽음은 리얼계 추종자들처럼, 근성 스탯에 신경 써야 얻을 수 있는 거로군.”

위즈는 ‘거짓죽음’ 스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위즈는 사이테리아와 싸우면서 근성 스탯을 얻었다. 환각을 일으키는 독과 스킬에 저항해 가며 싸운 결과다. 에켈산에서 노상강도와 싸울 때는 오르지도 않았다.

“말이 좋아 근성이지……매번 위태위태하게 싸워야 한다는 뜻이잖아?”

거짓죽음 스킬은 탐이 난다. 하지만 그걸 얻자고 죽음을 밥 먹듯이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자신은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만큼 성장이 느리고, 플레이에 제한이 생긴다.

사람들이 무능력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카피캣을 얻었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훔쳐 배운 스킬들은 종류가 다양할지언정 위력은 떨어진다.

그런데 무능력자인 위즈가 세운 목표는 너무나 높다.

메인 퀘스트 클리어.

정확하게는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 하려고 무능력자로 캐릭터를 키우고 있다.

위즈는 이 상태로 유저들을 서포트할 생각이다.

witch가 내준 퀘스트에도 신경 써야 한다. 과거의 유산을 이용해 강자들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미 빌헬름텔을 그 중 하나로 점찍어놓기까지 했다.

이제 위즈는 꾸준히 레벨도 올리고, 스킬도 훔쳐 배우면서 단련해야한다. 무능력자인 만큼 남들보다 레벨이나, 스탯을 엄청나게 올려야 겨우 동수를 이룰 것이다.

그런데 자꾸 죽어버릇하면 안 그래도 약한 캐릭터가 레벨도 못 올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래가지고는 메인 퀘스트 클리어는커녕, 남들처럼 게임을 즐기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휴.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위즈는 고개를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버리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맹독 스크롤에 칼집을 넣었다. 잘 찢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단단한 벽에 대고 망치질을 해 못을 박아 넣었다. 이런 짓을 하면 던전의 몬스터를 자극 시킬 뿐이다. 하지만 스크롤을 고정시킬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어때? 시궁쥐들이 망치 소리를 듣고 몰려오나?”

『열 마리가 이리로 오고 있다.』

“그 정도면 혼자서도 가능하겠네.”

위즈는 모자손에 스크롤을 가득 채웠다. 전부 윈드 커터였다. 잠시 후 통로 끄트머리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붉은 점들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흥. 와라. 쥐새끼들아.”

도발스킬이 있었어도,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동굴을 울리는 망치질 소리는, 미물들의 신경을 긁기에 충분했다. 위즈 혼자 서 있는 것을 확인한 시궁쥐들이 높이 점프해 날카로운 이빨을 박았다.


<로브에 걸린 스톤 스킨으로 총 50의 데미지를 받아냈습니다.>


“가소롭군.”

하나당 5의 데미지. 하지만 시궁쥐의 무서움은 숫자에 있었다. 지금은 10마리라 이정도인 것이다. 게다가 역병을 일으키는 3레벨도 아니었으니, 기고만장할 이유는 없다.

위즈는 로브를 물고 버둥거리는 시궁쥐를 떼어냈다. 지저분한 머리를 버둥거리며 시궁쥐가 찍찍거렸다. 위즈는 녀석을 땅바닥에 매쳐서 끝장을 내버리려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 녀석들에게 맹독 스크롤을 달아야겠다.”

위즈는 녀석의 꼬리에 맹독 스크롤을 감은 뒤, 바닥에 던졌다. 시궁쥐는 자신의 꼬리에 감긴 이물질을 날카로운 이빨로 쏠았다.

퍽.

보랏빛 가루가 튀면서 시궁쥐는 마구 날뛰다 죽어갔다. 10초조차 못 채운 짧은 시간 벌어진 일.


<시궁쥐를 해치웠습니다.>

<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꼬리는 금방 뜯어내버리는군.”

이번에는 몸통에 감아보았다. 여러 번 접어서 두꺼워진 것을 둘러버리자, 시궁쥐는 허리를 굽히지도 못하고 어기적거렸다. 이물감이 느껴지니 자꾸만 이빨을 들이밀지만 닿질 않는다.

위즈는 나머지 녀석들의 몸통에도 맹독스크롤을 감아두었다. 그리고 꼬리를 매듭지어 미리 박아둔 못에 매달아두었다.

“제법 쓸 만하겠어.”

남은 맹독 스크롤을 들고 위즈는 더 깊숙이 들어갔다. 3분 정도 걷자 핏스톤이 경고를 보내왔다.

『시궁쥐들이 그대를 인식했다. 거리가 10m도 안 되니, 곧 떼 지어 몰려나올 것이다.』

위즈는 맹독스크롤을 구겨서 몇 개 던지고, 윈드 커터를 날렸다. 맹독이 자욱하게 퍼지며 전방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위즈는 빠르게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다.

찌찍찍찍! 쥐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시궁쥐를 해치웠습니다.>

<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5의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체력이 낮다보니 시궁쥐들은 독 가루를 뒤집어 쓴 것만으로도 죽어갔다. 하지만 독 가루의 지속시간보다, 시궁쥐들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 정도는 위즈도 예상하고 있었다. 순차적으로 찢겨진 맹독 스크롤은, 착실하게 시궁쥐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가끔씩 점프해서 달려드는 녀석들은 단검으로 쳐냈다. 대충 쳐낸다고 쳐냈지만, 시궁쥐들은 어김없이 두 토막이 나버렸다.

“어느 게임이나 쥐는 약해 빠졌구나.”

그렇게 차근차근 해치우며 뒷걸음질 치기를 1분. 천장의 틈과 좌우의 벽 틈새에서 시궁쥐들이 튀어나왔다. 위즈는 금세 쥐떼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틈은 없었는데?”

위즈는 무작정 쥐떼를 잡으러 간 게 아니다.

지나온 길은 횃불을 들어 찬찬히 살피면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레비 역시 동굴의 구조상 시궁쥐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다.

“유저가 진입하면서 구조가 바뀔 수도 있는 건가?”

레비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크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레비는 위즈에게 숨은 실력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모자손은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윈드 커터가 길게 꼬리를 이으며 쏘아졌다. 거기에 걸린 시궁쥐들은 생채기를 입고서 물러섰다. 위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검으로 쳐낼 때보다도 절삭력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설마 시궁쥐에 마법저항이 있나?”

다시 한 번 윈드 커터를 날려보니 마찬가지였다. 붉은 살이 드러날 정도로 상처를 입었지만, 두 토막 난 시궁쥐는 어디에도 없었다. 목을 노리면 원킬도 가능했던 노상강도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차이가 크다.

“별수 없나?”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맹독을 쓰면 함께 중독되고, ‘별 하늘 아래 어둠 가시밭’을 쓰기엔 시시한 적이다.

결국 단검을 한 자루 더 꺼내들어 양손에 쥐고서 마구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만약 근처에 누군가 있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위즈를 숙련된 전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위즈의 검술은 완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위즈는 전사가 아니다. 아무 직업도 고르지 않은 무능력자. 그런 위즈가 검술을 펼칠 수 있는 건, 당연히 스킬을 배워서가 아니다.

위즈는, 아니 편재는 실제 검을 다루는 법을 안다.

힘주어 콱 틀어쥔 단검이, 막 뛰어오른 시궁쥐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하얗게 빛나는 검날이 시궁쥐의 머리를 뚫고 턱으로 빠져나왔다. 위즈는 단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 거친 움직임에 시궁쥐의 시체가 빠져나와 멀리 날려갔다.

반대쪽의 단검은 느슨하게 쥐어져 있다. 흐느적거리는 손목이 이리저리 꺾이며 시궁쥐들을 튕겨냈다. 가끔씩 단검을 타고 올라오는 녀석들은 윈드 커터로 날려버렸다.

오른손은 확실히 목숨을 끊어놓는 반면, 왼손은 방어에 치중했다. 자연스레 시궁쥐들이 왼쪽으로 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놈들이 한꺼번에 뛰어올랐다.

위즈는 단검을 쥔 양손에 뿌득 힘을 주었다.

“정령강화!”


<정령강화(바람속성)을 사용하셨습니다.>

<무기에 적용.>

<3분간 공격속도가 증가됩니다. [1초당 1회]>


단검의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 실제 현실에서 검을 쓰던 감각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근접하는 속도가 나왔다. 한꺼번에 달려드는 개체수가 늘어난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집중력 스탯 111은 국 끓여먹는 게 아니다.

이미 위즈의 눈은 단검이 지나야 할 길을 훑고 있었다.

이윽고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단검이 휘저어지자, 시커먼 덩어리가 둘로 나뉘어 추락했다.

확인할 것도 없이 즉사. 바깥으로 넓게 휘둘러진 단검을 끌어 모으며 추가로 두 녀석을 베고, 뭉쳐진 녀석들은 단검을 쥔 모자손으로 끊어 쳤다. 간혹 어설프게 다리만 잘린 녀석들에게는, 한 번씩 칼질을 추가해주었다. 그 동작은 위즈의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즈는 오고무를 치는 무녀처럼,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단검을 내뻗고 회수했다.

단검이 지나는 궤적엔 어김없이 시궁쥐가 걸려 있었다. 발을 노리는 녀석들은 진각을 밟아 터뜨려주고, 반동으로 뛰어올라 윈드 커터로 전열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맹독 스크롤을 감아 벽에 박아 둔 시궁쥐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이제까지의 칼놀림이 빈틈없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톱니바퀴와도 같았다면, 지금은 흡사 믹서속의 칼날과도 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세도 오래가진 못했다. 단검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정령강화가 풀리려는 징조였다. 위즈는 다시 정령강화를 걸며, 남은 시궁쥐의 숫자를 확인했다.

‘대충 절반 정도? 많이도 잡았군.’

불과 3분 동안 이룬 일이라고 보긴 힘들었지만, 전혀 불가능 한 일도 아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시궁쥐의 저돌성과, 실제 검술 유단자인 위즈의 적극적인 공격이 합쳐져 만든 결과다.

어찌나 많이 잡았는지 경험치 게이지도 절반이 넘게 찼다. 나머지 절반을 마저 잡으면 레벨업을 하게 생겼다.

“레벨 16이 머지않았군.”

그때, 시궁쥐들의 몸이 붉게 물들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죽음의 공포에 빠진 시궁쥐들이 각성, 집단공격기를 준비 중입니다.>

<1분간 시궁쥐들은 움직일 수 없으며, 무적상태를 유지합니다.>


“몬스터 주제에, 그것도 쥐새끼 따위가 집단공격기를 쓴다고?”

위즈는 녀석들을 밟고서라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강화유리에 가로막힌 것처럼 나아갈 수 없었다.


<포위된 상태이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습니다.>


“허?”

위즈는 턱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런 정보는 솔티 워터에도 올라온 적 없다.

그걸 알았다면 미리 대비를 해두었을 것이다. 레비가 일부러 가르쳐주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위즈는 곧 부정했다.

W라는 이름으로 계약했으니, 저들은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다.

인육만두사건이나 에켈요새 침공 등등으로 이미 쌓인 원한도 제법 된다.

그걸 알면서도 W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허튼수작부리지 말라는 경고를 위해서다.

여기엔 이글아이 스킬북이 걸려 있으니, 바하르칼 측에서도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숲속에서 짐승들을 괴롭힐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위즈가 당황하자 핏스톤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무리를 지어 집단생활을 하는 생물들은 대부분, 위기상황 때 힘을 합쳐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를 가지고 있다. 시궁쥐라고 해서 그런 게 없을 리 없다.』

“곰이나 늑대들을 건드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당연히 혼자였겠고?』

“난 파티를 잘 이루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늑대에게 10번을 잇달아 물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10번이나 물리고 어떻게 살아남아?”

『그렇게 자기보다 약한 존재가 덤비는데, 무리를 불러들일 생각을 했을까?』

“이런 사달이 난 게, 시궁쥐보다 내가 강해서라는 거야?”

『당연한 거다. 뭉쳐서 숫자로 압박하는 패턴은 야생동물일수록 더하다. 쥐들은 떼 지어 다니며, 늑대는 사냥과 육아를 공동으로 담당하지.』

“그럼 진즉 쓸 것이지,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하나하나 죽이는 정도로 이렇게나 많은 동족들이 희생될 줄은 몰랐나보지. 그보다 포션이나 장비하는 게 어떤가?』

“이미 그러고 있어!”

위즈는 모자손에 든 스크롤을 모두 빼내고, 포션들로 가득 채웠다. 입에는 마력회복 포션을 물고, 다른 한손에는 체력회복 포션을 들었다. 무슨 공격이 들어올지 알 수 없으니, 포션빨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이윽고 시궁쥐들의 몸에서 붉은 빛이 수그러들었다. 위즈는 온몸을 경직시키는 한편 곧 들어올 공격에 대비해, 정령강화를 신발에 걸어두었다. 빈틈이 보이면 진각을 밟아서 폭발적인 속도로 빠져나올 속셈이었다.

헌데 시궁쥐들은 그 자리에서 혀를 빼물고 엎어져버리는 게 아닌가.

“죽었어?”

『이건? 피해라 위즈! 소환이다!』

핏스톤이 경고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거대한 존재가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위즈에게 휘둘러댔다. 압도적인 힘 때문에 가로막은 위즈의 몸이 멀리 날려갔다. 날려간 쪽은, 들어온 길이 아닌 던전의 끝과 통하는 막다른 길이었다.

“좋아할 상황은 아니지만, 상대할 놈이 하나가 되니 그나마 낫군.”

위즈는 휙휙 소리가 나게 단검을 휘두르고 교차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벽을 살짝 긁어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근처의 벽에 단단한 바위라도 박혀 있었는지, 단검이 긁고 지나가면서 불똥까지 튀었다.

“끙……다행히 이는 안 나갔군.”

이번엔 방정맞게 굴지 않으면서 신중하게 간격을 쟀다. 이렇게 위즈가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거대한 존재는 위즈를 공격하지 않았다.

으르렁 소리대신, 끙끙 앓는 소리가 울렸다.

“뭐야 저건?”

위즈는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걷어차 밀어 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에 뒤덮인 커다란 덩치였다. 그리고 통나무처럼 굵은 다리 끝에는 시커먼 발톱이 달려있다.

“발톱 길이가 내 손가락만하네.”

조금 전의 후려치기 공격을 떠올린 위즈는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무기를 놓치게 되면 밀려나는 정도로 끊나진 않을 것이다. 그때 횃불이 치익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꺼지기 전에 본 바로는, 바닥에 고인 어떤 액체 때문인 것 같았다.

어차피 횃불 없이는 전투고 도망이고 힘들었으므로, 위즈는 여분의 횃불을 꺼냈다. 불붙인 횃불을 높게 쳐들며 위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거대한 덩치는 어쩐지 익숙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

축축하게 젖은 눈망울과 마주한 위즈는 어이가 없어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았다.


◇◇◇◇◇◈◇◇◇◇◇◇◈◇◇◇◇◇◇◈◇◇◇◇◇


“너무 늦는 것 아닙니까?”

“메신저에 등록도 안 되어 있으니 생사확인도 못하고. 죽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빙글뱅글과 사쿠라의 걱정을 들으니, 레비 역시 슬슬 불안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말마따나 함정의 설치가 성공하든 실패해서 도망치든, 그것도 아니면 죽었든 어떤 식으로든지 결말이 났어야 한다.

“슬슬 움직여 봅시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구해줄 생각으로 레비가 몸을 일으켰다. 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되돌아오는 위즈를 만날 수 있었다

“마중 나오셨군요.”

“혹시 쥐떼에 둘러싸인 건 아닐까 걱정했소. 무사해서 다행이오. 그런데…….”

말끝을 흐린 레비가 시선을 내렸다.

“지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지금 타고 있는 건…….”

“맞습니다.”

위즈는 둥글넓적한 머리통을 탁탁 쳤다.

“보시다시피 곰이지요.”

시궁쥐가 떼로 죽어가면서 소환한 것은, 필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곰이었다.

다만 보통 곰과는 달리 오랫동안 생존하여, 레벨업을 경험한 엘리트 몬스터라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엘리트 몬스터는 던전에서 능력치가 30%까지 상승한다. 원래대로라면 1:1로 붙는 순간 위즈에게 가망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곰은 싸우기를 포기했다.

정확하게는 위즈와 싸우길 포기했다.

“어? 이 곰 울고 있는데요?”

눈가의 털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을 본 사쿠라는 기가 막힌 듯 눈을 부릅떴다. 그 말을 듣고 다른 이들 역시 확인해보니, 역시나 곰은 울고 있었다.

“이 게임이 NPC의 감정표현이 풍부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몬스터까지 이럴 줄을 몰랐소.”

경험 많은 레비조차 처음 보는 기사(奇事)인지, 한참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곰은 사람들의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이리저리 고개만 돌리다가,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우어엉. 곰답게 울부짖는 소리였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니 더욱 처량해보였다.

“조금 전 눈물이 수도꼭지라면, 이건 폭포수로구먼. 폭포수.”

위즈는 곰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뚝 그치지 않으면 처 맞는다?”

울음을 뚝 그친 곰이 입매를 바르르 떨었다. 사쿠라는 곰이 불쌍하다며 동정했고, 빙글뱅글마저 탄식을 흘렸다.

“허. 얼마나 맞았으면…….”

레비가 물었다.

“설마 곰을 소환해 시궁쥐를 처리한 거요?”

곰을 타고 온 것을 보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하다. 곰은 다리가 짧아서 걷는 속도가 느리고 흔들림도 심하다. 게다가 넓은 몸통은 지방이 많아 승차감도 나쁘다. 그런데도 위즈는 불편한 기색이 없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하루 이틀 타본 솜씨가 아니다.

세 사람은 말로 얼러서 곰을 굴복시키는 모습까지 보았다. 그러니 위즈를 상당한 수준의 테이머로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게 사실은 아니지만, 위즈는 굳이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의뢰가 끝나면 이들은 결국 윗선에 보고할 것이다.

이들은 바하르칼 용병. 나중에 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은 자들이다.

“나쁘진 않군. 그럼 던전의 끝은 보았소?”

“네. 상자를 통째로 들고 왔습니다.”

위즈는 곰이 끌고 온 상자를 가져왔다. 녹슨 자물쇠가 채워진 허름한 상자였다.

더 오션의 던전은, 처음 발견하는 사람에 한하여 높은 확률로 보물 상자를 발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때는 값어치가 높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걸 알면서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자물쇠를 열 방법이 위즈에겐 없기 때문이었다.

“자물쇠를 여는 건 도적이나 트레저헌터 뿐이지.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오.”

레비는 인벤토리에서 망치와 정을 꺼내들었다. 위즈에게 판 것과 똑같은 장비다.

자물쇠의 이음매에 정을 가져댄 레비는 망치로 가볍게 몇 번 톡톡 쳐보더니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잘 보시구려.”

레비는 냅다 망치를 후려 갈겼다. 쩡! 쨍강. 불똥이 튀면서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상자에 달린 자물쇠는 부서진 채 바닥에 뒹굴었다.

“더 오션은 참 재미있는 게임이오. 이런 녹슨 자물쇠정도는 이런 편법으로 부술 수도 있으니까.”

“아…그거 건축가들이 쓰던 스킬 비슷한 거로군요?”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연장을 들고 장시간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 자연스레 스킬이 생긴다오. 대단한 건 아니지. 전사들도 오랜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 숙달시켜서, 검술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니.”

“하지만 그런 검술은 쓰레기입니다. 훈련장에서 배우는 것보다 약해 빠졌지요.”

“맞아요. 마법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결국 검술과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물론 검술이나 마법은 그렇게 무턱대고 배우는 건 추천하지 않소. 다만 이런 잡다한 기술의 경우는 한두 개 정도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니까, 게임하면서 얻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요.”

빙글뱅글과 사쿠라는 부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위즈는 레비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런 식으로 얻은 필사 스킬덕분에 여기까지 캐릭터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상자를 열어야 하는데, 다들 너무 해이해진 것 아니오?”

걸쇠를 벗기고도 레비는 곧장 상자를 열지 않고 일행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 죄송합니다.”

던전에서 챙긴 상자가 반드시 좋은 것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뭔가 독이 뿜어져 나오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파티 하나를 위험한 장소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위즈 역시 그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뒤로 몰러났다. 포션도 꺼내 들었다.

일행이 단단히 준비한 모습을 본 레비는 상자를 열어젖혔다.

“그럼 열겠소.”

녹슨 경첩이 접히며 상자 속이 드러났다.

녹이 슨 무구 몇 개와 지도 몇 장. 그리고 돈이 들어 있는 주머니가 나왔다.

“우리 의뢰주께서는 이걸 어찌 처리하고 싶소?”

위즈는 상자속의 내용물이 뭐가 나오든 욕심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공평 분배하죠.”

“그래도 되겠소? 보다시피 귀해 보이는 것도 없는데다, 여럿이 나누면 양도 적어질 텐데.”

“첫 던전이니만큼 남들 하는 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소.”

의논 끝에 낡은 가죽장갑과 혁대, 지도 한 장이 위즈에게 돌아갔다. 주머니 속의 돈은 정확히 4등분해서 나눠가졌다. 아이템의 분배를 마친 네 사람은 출구로 이동했다. 던전의 끝에는 시작점으로 통하는 포탈이 열려있었다.

그렇게 던전공략을 마치고 밖에 나온 세 사람은, 다음 의뢰를 이행하려고 채비를 서둘렀다. 위즈는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만 여기 머무르면 안 되겠습니까?”

“던전도 공략했는데 무슨 볼일이 남았소? 보다시피 여긴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요. 사냥감도 없고, 쉬기에 적당한 장소도 아니지. 무엇보다 안드리크로 가려는 게 아니오?”

“계약서에 호위임무만 있는 건 아니죠.”

위즈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계약서의 한 구절을 짚었다.

[둘째. 던전 공략 전문가들은, 1차례씩 돌아가며 W와 대련을 할 것.]

레비가 미소 지었다.

“그 곰과 함께라면 승산이 있겠군.”

“아뇨. 이놈과는 이별입니다.”

위즈는 곰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 쳤다. 곰은 걸음아 나살려라 하면서 도망가 버렸다.

“저는 실제 검을 익힌 사람입니다. 저런 미물의 도움은 거치적거리기만 합니다.”

단검을 양손에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자, 공기가 찢기며 날카로운 소리가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레비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정령강화 스킬 없이 그 정도요?”

“그렇습니다.”

레비는 빙글뱅글과 사쿠라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상대해보고 싶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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