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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츠 님의 서재입니다.

Reunion : 과거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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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츠
작품등록일 :
2021.04.21 19:20
최근연재일 :
2022.06.17 01:46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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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447,698

작성
22.05.25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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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46화. 무림(1)

DUMMY

한진성과 내가 게이트를 넘어 도착한 곳은 거대한 돌산의 까마득한 정상으로 보이는 한 장소였다. 한진성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기지개를 피며 소리쳤다.


“내가 돌아왔다, 무림!!!”


한진성이 그렇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사이, 나는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다른 돌산들도 구름을 꿰뚫을 정도 높아 보였지만, 그것조차도 낮아 보일 정도로 높아 보이는 이곳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까마득히 높은 돌산의 정상임이 틀림없는 이곳에서, 내 눈에 보인 것은 기와집 한 채였다.


“너랑 네 동생이랑 나랑 같이 살던 곳이잖아”


“아! 거기구나!”


한진성은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은 것인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기와집은 내가 무림에서 지내던 시절을 함께한 집이었기에, 나 또한 조금은 감회가 새롭게 느껴졌다.


“······깨끗하네”


“진짜 그때랑 바뀐 게 하나도 없어······”


기와집은 누군가가 지속해서 정성스레 관리한 것인지 정말로 깨끗했다. 연못에는 잉어까지 풀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누군가가 사는 것 같이도 느껴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그대로 집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집의 안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람도 제대로 된 물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남아있는 것들이라고는 내가 사용했던 실제 가구 몇 개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누가 사는 게 맞는 거야?”


“확실히······깨끗하게 관리한 것에 비해, 누군가가 사는 것 같지 않긴 하네”


나와 한진성이 이곳에서 살았던 것이 비록 내 인생 정체로 따지면 엄청나게 최근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세계를 떠난 뒤로 만년에 가깝게 시간이 흘렀기에, 지금까지 이 집이 남아있다는 것이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잠깐·········”


하지만 그 순간, 산 아래서 누군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흉흉한 살기를 가득 뿜어내는 것을 보아선, 이미 우리와 싸울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누가 오고 있어”


“이 기운은 설마······”


한진성은 느껴지는 기운을 통해 무언가 깨달았는지 황급히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나 또한 그런 한진성을 따라 바깥으로 걸어나왔고, 한진성과 대치하고 있는 한 명의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좀도둑들이 감히 천마신교의 성산에 침입하다니···게다가 초대 천마께서 사용하시던 거처에 들어가 도둑질을 해?”


“뭐라는 거야? 여기가 초대 천마의 집이라니?”


“정파 소속인지 사파 소속인지는 모르겠다만······”


남자는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 것인지 강한 살기를 미친 듯이 뿜어내고 있었다. 남자의 주위로 붉은 기운이 솟아올랐고, 남자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더니 그대로 나와 한진성을 상대로 겨누면서 말했다.


“본좌가 직접 천마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벌하도록 하겠다”


한진샹을 스스로를 천마라고 부르는 남자를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웃었다.


“뭐······천마······? 네가 당대의 천마라고?”


“네 녀석······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아니, 그냥 어이가 없어서 말이야”


한진성은 남자의 수십 배에 달하는 붉은 기운을 일제히 뿜어냈다. 남자의 붉은 기운을 단번에 날려버린 한진성의 붉은 기운은 남자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천마를 자칭하는 거야?”


“말도 안 돼, 천마기를 사용하다니···!”


“애초에 여긴 내 집이 아니거든? 형님의 집인데, 뭔 개소리를 하는 건지”


“내 집······? 설마 당신은······”


한진성은 자신의 기운에 압박당해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린 남자를 향해 주먹을 우두둑거리면서 다가가며 말했다.


“아니야 됐다, 그냥 처맞고 대화하자”


“초대 천ㅁ······”


퍽!


“야, 입 닫아. 혀 깨문다”


“그게 아니라······”


퍽!


“입 닫으라니까?”


“······”


퍽!


“천마기도 전력으로 끌어올리고 검강으로도 좀 막아봐라, 이 새끼야. 맞으라고 그냥 처맞는 새끼가 어딨냐?”


퍽!


“그래, 이제 좀 때릴 맛이 나네”


퍽!


“막아야지! 왼쪽!”


퍽!


“다음은 오른쪽!”


퍽!


“자, 정면이다!”


한진성은 장난기가 다분했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양의 기운을 담아 주먹을 계속해서 휘둘렀고, 남자는 검으로 필사적으로 방어하며 한진성에게서 도망을 다녔다.


“노는 건 적당히 해라, 진성아”


처마에 앉아서 둘의 싸움을 구경하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한진성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 섰다. 남자는 자신을 가볍게 제압하는 한진성이 내 말 한마디에 멈춰 서는 것이 크게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듯했다.


“도대체 당신들께선 초대 천마와 어떤 관계이신 겁니까? 천마기는 천마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천마신공을 극한까지 단련해야만 쓸 수 있는 것인데······”


“넌 천마라는 녀석이 내 기운을 직접 느껴 놓고도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냐?”


“그렇다면 역시 당신께서······!”


남자는 한진성의 정체가 자신이 그토록 말했던 천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강하게 땅으로 3번 내리찍으면서 외쳤다.


“천마 천세!! 만마앙복!! 마도천하!! 당대의 천마, 한천이 초대 천마께 인사드립니다!!!”


“어, 그래 천아. 인사는 적당히 하고, 고개 들어라”


한진성의 말을 듣고 한천은 고개를 들었지만, 그럼에도 엄청나게 긴장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한천은 초대 천마인 한진성을 말 한마디로 다루는 내 정체가 궁금한지 나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천마의 옆에 계신 대협께서는 어떤 분이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천마께서 존칭을 쓰시는 것을 보니, 엄청난 대선배이신 것은 알겠으나, 제가 아직 미진하여 선배님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뭐긴 뭐야, 내 스승님이지”


“초···초대 천마의 스승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 집주인도 형님인데, 몰랐어?”


“전쟁고아 출신이신 초대 천마께서는 무공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졌고, 성인이 돼서는 무림 곳곳의 은둔 고수들을 쓰러뜨리며 성장했다고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집은 초대 천마께서 어렸을 적에 천마신공을 단련할 때 사용하시던 곳이라, 지금도 천마들의 수련지로 사용되는 장소이고요”


“내가 전쟁고아인 건 또 어떻게 알았데. 내가 어렸을 때 동생이랑 같이 형님에게 거둬져서, 여기서 수련한 것도 맡긴 하지 뭐. 그때도 참 좋았는데 말이야······”


한진성은 옛날 추억이 떠오르는지 감상에 잠겼다. 하지만 한천은 한진성의 말을 듣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동생이요?”


“한태진이라고 좀 유명한 녀석이었는데, 몰라?”


“한태진이라면, 설마···! 초대 무림 맹주를 말하는 겁니까?”


“어, 맞아”


“초대 천마와 무림 맹주가 형제였다니······무림맹 놈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법한 일이군요”


한천은 얼마나 놀란 것인지 쉽사리 입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팔을 되찾고 돌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곧바로 그런 한천을 향해 말했다.


“우린 남궁세가로 갈 생각이다. 그곳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남궁세가라······무림맹의 본거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좀 멀긴 하지만, 그곳이면 청해와 사천을 지나 장강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를 겁니다”


내가 하는 말에 한천이 대답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한진성은 그대로 다가가 한천의 어깨에 손을 올려다 놓으면서 말했다.


“형님, 뭘 걱정하는 거요. 우리 천이가 다 알아서 준비해줄 텐데. 안 그래?”


“·········알겠습니다”


“어···표정 안 펴? 불만이라도 있어 보인다?”


“하아······아닙니다”


“야, 너무 그렇게 기분 나빠 하지 마라. 내가 설마 먼 후손인 너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달라고 하는 거겠냐?”


한진성은 그렇게 말하더니 한천에게서 손을 놓고 앞으로 걸어나와 주먹을 휘두르려는 듯이 자세를 갖추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네 경지가 조화경(造化境) 중입 정도 돼 보이는데, 네가 벽을 넘을 수 있도록 내가 작은 도움를 주마”


한진성은 자세를 갖추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공기가 차게 내려앉았고, 한진성은 그 상태로 주먹을 뒤로 강하게 당기면서 말했다.


“천마신공은 간단히 말해서 올바른 것을 상징하는 무공이다. 마도의 정점에 오른 무공에서 올바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건 정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에게도 꺾이지 않을 만큼 곧고 굳세다는 뜻이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야말로 파천(破天)이라는 단어가 천마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 파천(破天)이다. 세상 어디에서든지 나를 내려다보는 하늘을 부수는 것을 목표하는 것이 나의 무공이다.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 않으며, 끊임없이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고,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


한진성은 자신의 주먹을 반 바퀴 오른쪽으로 회전시켰다. 동시에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자 주변 공기가 일제히 한진성의 주먹으로 모여들더니, 한진성이 완전히 주먹을 펴자 모여든 공기는 일제히 주변으로 다시 퍼져 나갔다.


“올바르게 숨 쉬고, 올바르게 걸으며, 올바르게 내질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천마(天魔)의 파천(破天)이다”


한진성이 말을 하면서 휘두른 주먹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한천은 충격을 받은 듯 굳어버렸다. 하지만 곧장 정신을 차린 한천은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한 시진 이내로 준비를 마치고 길을 안내할 안내원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만나 봬서 영광이었고요, 선배님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걸로 말을 마친 한천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금방 엄청난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한천의 자리를 한진성은 뿌듯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말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는 걸로 봐선 역시, 내 후손답게 나쁘지 않은 재능이란 말이야. 죽기 전에 최소 현경(玄境)의 경지까지는 갈 수 있겠어”


“너도 저러던 시절이 있었지”


“추억이구만”


나는 그대로 걸어가 집의 처마에 몸을 기대앉았다. 한진성은 내가 앉아있는 것을 보더니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거나 발을 차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한진성의 모습에서, 한진성이 어렸을 적에 녀석의 동생과 함께 이곳에서 보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날 그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하기 직전인 너희들을 구해온 것이 기억에 나는군”


“뭐, 어떻게 하겠어. 전쟁고아인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칠 수밖에 없었는걸. 게다가 그날은 유난히 운이 없었을 뿐이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못하도록 톱으로 팔이 잘린 너와 그런 너를 보고 태진이는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지”


“그 날 우리를 왜 구한 거야?”


“······봤거든”


나는 머릿속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팔을 잘린 어린 한진성과, 그런 한진성을 보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한태진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임에도, 팔이 잘리며 고통스러울 텐데도······아무런 비명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빈틈을 찾고 있는 너의 그 두 눈동자를”


나는 마을 사람들 사이로 선명하게 빛나는 어린 한진성의 두 눈동자가 생각이 났다. 당시의 나는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강한 생명력이 전해지는 눈동자를 지나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게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살고 싶다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너희들이 살 자격이 있다고 느꼈고······”


당시의 나는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며 소리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다가오는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나는 그대로 걸어가 살고자 하는 아이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한쪽 손을 내밀면서 물었다.


『 “살고 싶으냐” 』


“그래, 그때의 내가 너희를 살린 이유는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 “그래, 살고 싶다 말하는 너의 의지. 나에게 잘 전해졌다” 』


한진성은 내가 추억에 잠겨있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더니, 뭐가 그렇게 웃긴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허공을 향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형님은 단순히 여흥이었을지 몰라도, 당신의 내게는 구원이나 다름없었어. 형님을 우리는 이곳으로 데려와 밥을 줬고, 잠을 재워줬으며, 무공을 알려줬으니까”


“그런 놈이 곡괭이를 들고와서 사람이 자는 사이에 머리를 내려찍냐?”


“아, 그건 좀 봐달라니까. 그렇지만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들을 구해주고서, 이런 곳으로 끌고 왔는데 어떻게 형님을 단번에 믿겠어”


“나는 그것마저도 살아남고자 하는 너의 발악이라 생각해서 넘어갔었지”


“나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머리를 곡괭이로 몇 번을 내리찍었는데, 멀쩡하게 일어나서 이제 만족했냐고 묻는 데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한진성과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한천이 보내준다던 안내인인 것인지, 누군가가 접근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왔네”


돌산을 올라와 나타난 것은 검은 머리에 눈 밑에 점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치마의 한쪽 부분을 잡고 들어 올리며 공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천마 천세. 만마앙복. 마도천하. 마교의 부 교주, 천미려가 초대 천마께 인사드리옵니다”


“······천미려?”


“네, 천마님 천미려랍니다”


한진성은 천미려를 보더니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고, 한진성은 두 눈을 몇 번이나 비비더니 다시금 천미려를 향해 물었다.


“내가 아는 그 천미려는 아니지······? 그냥 이름만 같은 것뿐이겠지?”


“······천마님”


“어···어······”


한진성이 당황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은 천미려가 그대로 다가오더니 한진성의 뺨 위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설마, 저를 잊으신 건가요?”


“역시···너···시발···내가 아는 그 천미려냐?”


“저랍니다. 당신만의 부 교주, 천마님의 유일한 반려인 천미려에요”


“말도 안돼, 내가 여기를 떠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아? 그 미친 스토커 년이 살아있을 리가······”


“우리 멍청한 천마님······세상에는 흡성 대법이라는 것도 있고요. 그 외에도 조건만 맞추면 영생에 가까운 삶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뭐, 물론 그 과정에서 혈교(血敎)랑 일월신교(日月神敎)를 없애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한진성이 돌처럼 굳어버린 것을 본 천미려는 한진성에게서 물러나더니 내게 다시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청천이시여”


“지금은 설우현이라는 이름이야. 그렇게 부르면 돼”


“아, 알겠습니다. 우현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지요”


“어쩐지 너무 깨끗하게 관리된다 했더니, 이 집이 오랜 시간 존재한 것도 네가 관리해준 것이었구나”


“우현님과 천마께서 사용하시던 장소였던 만큼, 이 정도의 관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교라는 단체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간섭하면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고요”


천미려와 대화를 하던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천미려가 올라온 길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백 명은 넘는 수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저것들도 네가 기른 거냐”


“아, 우현님과 천마님이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제가 직접 기른 무령단이라는 이름의 암살자들입니다. 나와보렴, 애들아”


천미려가 무령단의 이름을 부르자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주위를 둘러싸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젊은 여자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전부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한 상태였다.


“아, 참고로 무령단주 빼고는 말을 하지 못한답니다. 모두 혀가 잘려나간 상태거든요”


“······네가 한 것이냐”


“적에게 잡혀도 정보를 불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요”


천미려가 그렇게 말하고 있던 그때, 무령단들의 사이로 작은 체구를 가진 한 여자가 걸어나왔다. 여자는 내 바로 앞에서 걷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소리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령단의 대장, 무령단주입니다”


“이름은 뭐지?”


“······없습니다”


“없다고?”


“저희는 그저 도구. 도구에게 이름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름이 없으면 내가 부르기 불편해”


감정을 잃은 눈으로 그저 말을 하는 무령단주를 본 나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무령단주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다 놓으면서 말했다.


“오늘부터 너의 이름은 무영(無景)이다”


“·········무영······”


“잘 섬기도록 하거라. 그분들이 이제부터 너희 무령단의 주인이 되실 테니”


천미려의 말을 들은 무영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감정 없는 눈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보던 무영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새로운 주인이시여”


“그래, 무영아 나도 잘 부탁한다”


천미려는 무영을 바라보는 나를 보며 다가오더니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무령단의 다른 아이들도 지금의 혈마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하긴 하지만, 이 아이는 특별하답니다. 제가 고르고 고른 인재를 아기 때부터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개조시켰고, 천마님과 비슷한 세월을 계속해서 단련시켰거든요”


“그래, 그래 보여. 경지만 따지면, 진성이와 동급인 절대자의 경지에 올라있는 게 맞아. 신격의 길의 끝에 오른 자들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네”


“뭐, 그래도 천마님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하더라고요. 여러 가지 짓을 더 해봤는데, 이 이상으로 강해지지도 않았고”


“그건, 저 녀석이 이상한 거야. 저 녀석···넌 모르겠지만 지금 내 집에 있는 녀석들까지도 더 강해질 필요성을 못 느껴서 초월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거지, 깨달음 만큼은 이미 초월자와 비슷한 수준이니까. 그러니 같은 경지인 절대자들보다도 몇 배나 강한 거고, 자기보다 경지가 높은 무량같은 초월자와 대적할 수 있는 거기도 해”


“역시 천마님이세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으신 분이시죠”


천미려가 뺨을 붉히며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며, 나는 무영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손을 때냈다. 무영은 아쉬운 듯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런 무영을 뒤로 한 채로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한진성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슬슬 정신 차려라, 진성아”


“·········형님”


“이제 슬슬 출발해야지”


“그냥 우리끼리 가자. 미려랑 같이 가는 건 진짜 에바야. 제가 얼마나 미친놈인지는 형님도 잘 알잖아?!”


“그래도 우리끼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야”


“아, 진짜···!”


그런 한진성과 내 대화를 들은 것인지, 천미려가 다가와 한진성의 팔을 잡으며 들러붙었다. 한진성이 기겁하며 도망치려 했지만, 천미려는 요염한 손길로 한진성의 팔부터 목 주변까지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에이, 천마님~우리 천마님은 좋으시면서 또 그런다. 제가 천마님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아세요?”


“아···알았어···! 알았으니까, 떨어지라고!”


둘이 서로 티격태격 대는 것을 잠시동안 지켜보던 나는, 둘을 두고서 무영을 함께 돌산을 내려가기 위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영아, 남은 무령단원들은 모습을 숨기고 따라올 수 있게 해”


“그것이 주인님의 명이시라면···”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고, 다른 모든 무령단원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숙였다.


“이름없는 망령들은 지금부터 그림자에 몸을 숨겨 주인님을 뒤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무령단원들은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무령단원들이 사라지자, 상당히 핼쑥해진 얼굴을 한 한진성이 천미려와 함께 돌산을 걸어 내려가는 나와 무영을 향해 다가왔다.


“그냥 빨리 갑시다, 형님. 빨리 끝내는 게, 내 정신 건강에 더 도움이 되겠어”


“알았으면, 적당히 하고 빨리 오기나 해”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우리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집을 뒤로한 채로 남궁세가를 향해 가기 위해 돌산을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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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4화. 변화(1) 22.05.03 35 0 20쪽
47 43화. 기습(2) 22.04.25 30 0 20쪽
46 42화. 기습(1) 22.04.14 27 0 19쪽
45 41화. 사후처리(事後處理) 22.03.28 26 0 16쪽
44 40화. 서리의 의미(3) 22.03.07 27 0 23쪽
43 39화. 서리의 의미(2) 22.03.01 25 0 18쪽
42 38화. 서리의 의미(1) 22.02.17 27 0 18쪽
41 37화. 세번째 이야기 - 스노우의 과거(2) 22.02.07 28 0 19쪽
40 36화. 세번째 이야기 - 스노우의 과거(1) 22.01.31 30 0 22쪽
39 35화. 스노우(3) 22.01.17 59 0 16쪽
38 34화. 스노우(2) 22.01.09 28 0 21쪽
37 33화. 스노우(1) 21.12.30 47 0 18쪽
36 32화. 습격(3) 21.12.21 36 0 18쪽
35 31화. 습격(2) 21.12.16 34 0 21쪽
34 30화. 습격(1) 21.12.11 40 0 19쪽
33 29화. 과거의 인연(6) 21.12.11 32 0 25쪽
32 28화. 과거의 인연(5) 21.11.26 38 0 20쪽
31 27화. 과거의 인연(4) 21.11.16 37 0 20쪽
30 26화. 과거의 인연(3) 21.11.16 32 0 21쪽
29 25화. 과거의 인연(2) 21.11.04 44 0 19쪽
28 24화. 과거의 인연(1) 21.10.31 28 0 17쪽
27 23화. 새로운 동료 21.10.18 37 0 23쪽
26 두번째 이야기 - 히아신스의 과거 21.10.09 31 0 25쪽
25 22화. 토너먼트(5) 21.10.03 30 0 16쪽
24 21화. 토너먼트(4) 21.09.21 36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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