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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츠 님의 서재입니다.

Reunion : 과거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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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츠
작품등록일 :
2021.04.21 19:20
최근연재일 :
2022.06.17 01:46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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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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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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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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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과거의 인연(5)

DUMMY

“지금 어딜 가는 거야?”


나와 히아신스는 플루이나를 따라서, 성 복도를 걸으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플루이나는 그런 내 질문을 듣더니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연회 정도는 열어줘야겠지”


“연회···말인가?”


“그래, 근처에 있는 귀족이란 귀족들은 다 왔을 테지”


그렇게 걸어가며 말하던 플루이나는, 한 방의 입구 앞에 멈춰 섰다. 플루이나는 그대로 문을 열었고,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도록 하지”


넓은 방 안에서는 수많은 옷과 사용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용인들 사이로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걸어 나왔고, 플루이나와 우리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위대한 서리의 왕, 엘리시온의 지고한 주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프란시스 부인. 먼 거리임에도 곧바로 와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폐하의 명이라면 당연히 와야지요. 게다가 태사 전하와 그 부인되는 분을 꾸밀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고 말이죠”


“아무튼, 잘 부탁하지. 이번 연회에서 가장 빛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폐하께서 원하시는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프란시스는 플루이나와 그렇게 말하면서 사용인들을 향해 작은 신호를 보냈고, 사용인들은 곧바로 나와 히아신스를 향해 다가왔다.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공손하게 행동하세요! 고귀한 분들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내는 게 당신들과 저의 일입니다!”


그렇게 프란시스와 사용인들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와 히아신스를 데리고 탈의실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상의가 벗겨진 나를 향해 다가온 프란시스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원하시는 스타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전하. 최대한 맞추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네 의견을 따르도록 하지. 나는 옷에 대한 감각은 둔한 편이라서 말이야. 또한, 내가 만나본 자 중에서 그대를 따라오는 인물이 몇 없다는 것도 기억하고 말이지”


“폐하의 스승이신 태사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저를 믿어주시다니, 이거 참 크나큰 가문의 영광이군요”


프란시스의 지휘 아래에서 몸을 씻어내고, 옷이 갈아 입혀졌으며, 간단한 화장을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은 피곤함을 느끼며 나는 탈의실을 걸어 나왔다.


“역시, 그대는 차려입은 모습이 훨씬 어울리는군. 평소에도 어느 정도는 꾸미고 다니면 좋을텐데 말이야”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을 보며 의자에 앉아있던 플루이나는 감탄을 내뱉었다. 뒤로 쓸어넘긴 머리카락이나 장신구가 달린 검은 제복은 플루이나의 마음에 드는 듯 보였다.


“언제 해도 이건 할만한 짓이 되지 않는군”


“그래도 1시간 정도면 얼마 걸리지 않은 것이지. 그대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래, 그렇겠지. 원래는 2시간은 훨씬 넘게 걸렸을 테니까 말이야”


“뭐, 나처럼 이미 준비된 의복이 있던 것도 아니니. 하지만 그래도 그대나 나는 히아신스처럼 드레스를 입은 것도 아니지 않나?”


플루이나 또한 하얀 배경에 푸른 문양과 황금빛 자수가 있는 제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나는 그대로 걸어가 플루이나의 옆에 앉았고, 창문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해가 져가고 있네,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연회도 곧 있으면 시작될 것이다. 그대의 동료들도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지”


“애들도 왔단 말이야?”


“그래, 잠깐 날뛰긴 했지만, 일단은 그대의 이름을 팔아서 진정시켰다. 연회에 간다면 곧장 만나러 가는 것이 좋겠더군”


“그래, 그래야 겠어”


“그러고 보니, 네 동료인 그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내 전생이라고 하는 스노우라는 자와도 길게 대화를 나누었지”


“스노우와 대화를 했다라······”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그대와는 어떻게 만났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으며,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에 대해서도······정말 많은 것을 들었다”


“처음에 겁쟁이라고 뭐라 할 때는 언제고?”


“그때는 나 자신이 또다시 스스로의 본능을 억제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서 그랬을 뿐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살아남기 위해서 형님과 누님들 그리고 아버지를 피해 쥐죽은 듯이 살아야만 했으니, 다음 생에는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지”


“스노우는 다를 거야. 그때의 너와는 다르게, 지금의 스노우는 혼자가 아니니까 말이야. 분명, 어떤 역경도 뛰어넘고 정상에 오르겠지. 어쩌면 너마저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한 플루이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벽에 있는 옷장을 향해 다가갔다. 곧바로 옷장을 연 플루이나는 검 한 자루와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이건 내가 그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검집에 들어있음에도 나는 한눈에 그 검이 명검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검은 스노우의 아스트라와도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수준에 놓여있는 검이었다.


“굉장한 검이네, 검집의 안에 있는데도 그 날카로움이 느껴져”


“이 검은 신기(神器)니까 말이다”


플루이나는 그대로 다가왔고, 나를 향해 그 검을 건넸다. 검을 받아든 나는, 천천히 검집에서 그 검을 뽑았고, 천천히 검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름은 뭐지?”


“역사가 긴 만큼, 이름 또한 하나가 아니다. 그람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고, 발뭉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으며, 어떤 때에는 노퉁이라고 불리기도 했지. 그냥 마음에 드는 아무 이름으로 부르면 될 것이다”


“그래, 그럼······발뭉이라고 부르자”


손잡이에는 푸른 보석이 박혀있었다. 황금색의 실로 이루어진 장식이 달려있었으며, 평범한 검보다도 길이 또한 훨씬 더 길었다.


“그대가 마음에 든 듯하니, 나 또한 기분이 좋지만, 아직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플루이나가 그렇게 말하며 다음으로 건넨 것은 작은 상자였다. 나는 내 손 보다도 작은 그 상자를 곧바로 열었고, 상자의 안에 있는 검은색의 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니벨룽의 반지잖아”


“그래, 소유주의 몸에 오는 충격을, 대신 흡수해주는 반지 형태의 신기이지”


“하지만 전 차원을 통틀어도 하나밖에 없는 반지가 어떻게 환상에 불과한 이곳에 있는 거지?”


니벨룽의 반지, 주인의 몸에 오는 모든 피해를 3번에 한정하여 모두 흡수할 수 있지만, 그 뒤에는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며 새로운 주인을 찾아 사라지는 신기의 이름이었다.


“그대의 말대로 비록 이곳이 환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러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니 나의 영혼을 가진 스노우의 도움을 받아 그 장치들을 활성화한다면, 다른 차원에 숨겨놓은 나의 보물고로 가는 것 또한 가능하지”


“그렇군, 스노우를 이용해 보물고에 갔다 온 건가?”


플루이나는 수천 년간 하나의 세계를 지배한 황제이자, 수십 개가 넘는 세계를 정복한 정복왕이기도 했다. 그런 플루이나의 보물고라면, 이런 높은 등급의 신기가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대의 원래 몸과 무기를 되찾을 때까지, 발뭉과 반지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스노우와 함께 보물고에 다녀온 것이다. 그러니 그대도 사양 말고 받아주었으면 좋겠군”


플루이나는 상자에서 반지를 꺼내, 그대로 내 손가락에 끼웠다. 나는 플루이나가 나를 위해서 물건들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호의를 가만히 받아들였다.


“니벨룽의 반지, 게다가 발뭉이라······”


신기, 코스모스가 만들어지며 함께 만들어진 도구들을 모두 칭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굉장히 귀한 것이었고, 하나하나가 가공할만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니벨룽의 반지와 발뭉은 그런 신기들 중에서도 굉장히 상급에 속하는 신기였다.


“굉장한 걸 받았네”


나는 니벨룽의 반지를 끼고 발뭉을 들고 있는 손을 그대로 창가를 향해 내밀었다. 노을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니벨룽의 반지와 발뭉을 본 나는, 플루이나를 향해 아주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호의는 감사히 받도록 하지”


“부담스럽다고 거절했다면,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화를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대가 거절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로군”


“나도 이제 내 마음에 솔직할 생각이거든. 이 검과 반지가 마음에 들었고, 그러니 가진 것뿐이야”


“좋은 마음가짐이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하면 되겠지”


플루이나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그대로 창가로 다가갔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플루이나의 주변 분위기가 차분하게 내리 앉았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도 느끼고 있겠지”


“······《 그 녀석 》말인가보네”


“그래, 나는 녀석이 내 정신을 빼앗으려고 시도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도 이 근처 어딘가에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겠지”


“설마 차원을 넘으면서까지, 이 게이트에 침입할 줄은 몰랐어”


“어차피 녀석은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내 정신을 아무리 빨리 침식한대도 앞으로 2일은 걸릴 테고, 이 몸을 빼앗기기 이전인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나있을 테니”


“하지만 녀석도 바보는 아니야. 너나 한진성, 마리아와 똑같은······아니, 솔직히 그 이상의 존재이니까 말이야. 아마, 뭔가 생각해놓은 수단이 있겠지”


“하지만 내 정신이 망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해도 나는 왕이다. 설령 하찮은 마수의 몸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나는 왕으로서 살 것이고, 왕으로서 죽을 것이다”


플루이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단히 차분했다. 감정에 동요 하나 없이, 오히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때 약속했지 않나. 내 최후는 오로지 그대의 손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이지”





*                *                  *                 *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시간이 흐르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단장을 마친 히아신스를 이끌고 프란시스가 나타났다.


“원래, 여인의 단장은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모자란 법이지요”


프란시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플루이나의 말에 답했고, 히아신스가 뒤를 이어서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어떤가”


히아신스는 아래로 갈수록 점점 밝은 회색으로 변하는 검은 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런 검은 드레스에 박혀 있는 보석들은 마치 은하를 수놓은 것처럼 찬란하게 빛났고, 게다가 그녀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금으로 만든 실 형태의 줄들까지도 히아신스의 아름다움을 배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히아신스에게로 홀린 듯이 다가갔다.


“아름다워”


“당신···?”


“마치, 모두와 함께 있던 그 시절의 모습 같아”


드레스를 입은 히아신스를 볼 때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절인, 과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그대로 히아신스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나와 함께 해주겠어?”


내가 하는 말을 들은 히아신스는, 내가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겹쳐 올리면서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다, 어떤 순간이든 당신과 함께할 것이니”


나와 히아신스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플루이나는 곧바로 다가가 문을 열더니, 그대로 망설임 없이 바깥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그럼 준비도 다 된 것 같고, 슬슬 연회장으로 가지”


플루이나를 따라 우리는 연회장을 향해 걸었다. 복도를 걸으면 걸을수록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고, 우리는 얼마 안 가서 연회장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현아!”


“히아신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곧장 한버들과 스노우를 포함한 일행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게다가 일행들도 연회에 참석할 생각인 것인지, 전부 히아신스나 나처럼 몸단장을 한 상태였다.


“으으, 형님은 이거 답답해서 죽을 것 같지 않아? 도대체 이런 옷을 뭐하러 입는 거야?”


“네 세상의 옷에 비해서는 불편한 편이기는 하지”


“그래도 조금만 참아요, 진성”


한진성은 불편한 듯 제복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스노우와 한버들 그리고 마리아는 이런 옷들도 익숙한 듯 보였다.


“대화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군”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잠시 기다려주던 플루이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연회장의 입구 앞에 서있는 병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문을 열어라”


그런 플루이나의 말을 들은 병사는 곧장 걸어가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고귀하신 황제 폐하와 태사 전하, 그리고 그 일행분들께서 들어가십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리자 수많은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대화를 하던 모든 이들은 말을 멈추고, 우리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위대한 서리의 왕, 엘리시온의 지고하신 주인을 뵙습니다””””””


플루이나는 중앙에 길게 깔린 레드 카펫 위를 걸어가기 전,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뒤에 서 있던 스노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앞으로 나와 보아라”


“······나 말인가?”


“그래, 내 환생인 너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테니 말이다”


스노우가 앞으로 걸어 나오자, 플루이나는 스노우의 허리와 어깨를 손으로 직접 눌러서 펴주면서 말했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라. 그리고 너의 앞에 있는 모든 이들이 너의 발아래 있다는 것을 느껴라. 그렇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그리고 네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위해서 태어난 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플루이나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차분하고 진중했던 플루이나의 분위기는 어느샌가 강한 압박감이 되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었다.


‘마치, 고개를 들면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것 같군’


그런 플루이나의 기세를 느꼈는지, 연회장에 있는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 준비됐다면 걸어가라. 이곳이 너의 지배의 길이다”


플루이나는 스노우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스노우는 망설였지만,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 발짝 한 발짝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나는 스노우의 분위기가 점점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야,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 성장하고 있잖아?”


“아무래도 스노우의 내면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네요. 자아의 성장 또한 신격의 길에 오르기 위해서는 중요한 부분이긴 하죠”


한진성과 마리아도 스노우의 분위기가 변하는 것을 느꼈는지, 강한 감탄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노우가 레드 카펫의 끝에 도착했고, 플루이나는 그런 스노우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말했다.


“지금 느낀 그 고양감이 바로 지배한다는 것이다. 왕으로서 네가 걸어가야 할 숙명이지”


“나는······아직 잘 모르겠다”


“상관없다.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잘한 것이니”


스노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한 플루이나는, 그대로 걸어가 레드 카펫 끝에 있는 거대한 왕좌에 올랐고, 팔을 괴며 앉으면서 말했다.


“모두 고개를 들어라”


플루이나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고개를 든 사람들은 공손하게 그대로 플루이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절경이로군, 이 연회장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녀의 지배 아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정도의 힘이 있는 녀석이지. 내가 본 모든 왕 중에서도 제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풍경을 정면에서 보고 있는 스노우는 어떤 느낌일지······”


나와 히아신스는 그렇게 말하며 플루이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팔을 괴고서 사람들을 가만히 살피던 플루이나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손을 들어 올렸다.


“황실 기사단장 메르세데스, 지고하신 왕의 부름을 받습니다”


플루이나가 손을 들어 올리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메르세데스가 플루이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플루이나는 무심한 눈으로 메르세데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탑주를 불러오라는 것은 어떻게 됐지?”


“폐하께서 명하시는 대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래, 그럼 지금 이곳으로 불러라”


“기사 메르세데스,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메르세데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로브를 입고 있는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대로 플루이나의 앞에 무릎을 꿇은 그 남자는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마탑장, 하멜 루이스가 지고하신 황제폐하께 인사드리옵니다”


플루이나는 그런 루이스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플루이나의 시선만으로,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너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물을 것이 있어서 그렇다”


나는 플루이나가 말하고 있던 그때, 조용히 한버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버들은 갑자기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잘봐둬 버들아, 지금 플루이나는 너한테 말하는 거기도 하니까”


“나한테?”


“그래, 스노우가 성장할 수 있게 도운 것처럼, 너 또한 성장할 수 있게 도우려는 거야”


“······”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은 한버들은, 더욱 집중해서 플루이나와 루이스의 대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너는 마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마법은 진리를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게 바꿔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낱 인간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니, 그런 방식으로 체험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법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법을 단서로 삼아, 모든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는 탐구를 거듭하는 모든 자들이 마법사입니다”


“그럼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 마법사는 존재할 수 있나?”


“단언컨대,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 자를 마법사라 부를 수 없습니다. 검을 들고 휘두른다고 검사가 아닌 것처럼,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 자체가 마법사의 본질입니다. 진리에 대한 열망이, 모든 마법사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니까요”


“·········그래, 충분하다. 이만 물러서도록”


단 3가지의 질문이었지만, 한버들은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마치 돌처럼 멈춰버린 한버들은 무언가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진리를 탐구······마법을 사용하면서 느꼈던 부족함과 허무함이 그런 이유에서 온 것이었어. 그렇다고 한다면, 내가 느꼈던 마나의 흐름이 흘러가는 그곳에 있던 존재가 진리에 맞닿아 있다고 한다면······”


한편으로, 대화를 마친 루이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사람들의 사이로 들어가며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사이로 사라져 가는 루이스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 마법사라니, 전설로만 전해지는 《 진리의 마법사 》처럼 진리를 모두 탐구해낸 자가 아닌 이상······아니, 진리의 마법사는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러니 진리를 탐구하지 않는 마법사는 없는 거야”


루이스가 사라지자, 플루이나는 다시 장내를 살펴보았다. 갑작스러운 자신의 기행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본 플루이나는,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오늘, 짐이 한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자그마한 이해를 바라지. 이상해 보일지는 몰라도, 이 모든 것이 연회가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었다”


플루이나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몇몇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플루이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그럼, 연회를 시작하지”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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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9화. 과거의 인연(6) 21.12.11 31 0 25쪽
» 28화. 과거의 인연(5) 21.11.26 38 0 20쪽
31 27화. 과거의 인연(4) 21.11.16 37 0 20쪽
30 26화. 과거의 인연(3) 21.11.16 32 0 21쪽
29 25화. 과거의 인연(2) 21.11.04 43 0 19쪽
28 24화. 과거의 인연(1) 21.10.31 28 0 17쪽
27 23화. 새로운 동료 21.10.18 37 0 23쪽
26 두번째 이야기 - 히아신스의 과거 21.10.09 31 0 25쪽
25 22화. 토너먼트(5) 21.10.03 30 0 16쪽
24 21화. 토너먼트(4) 21.09.21 3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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