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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26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9.01 21:30
조회
354
추천
3
글자
11쪽

211화 - end, 이야기 속 세상(2)

DUMMY

시간은 유수와도 같아서,

단지 한 번의 깜빡임에도 속절없이 흐르곤 했다.


“여름이네요.”


전쟁이 끝난 이래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차디찼던 겨울을 지나 봄이 간드러지고 여름이 찾아왔다.


맑은 하늘이 온 세상을 비추는 듯했다. 저녁으로 접어들 시간임에도 여름의 해는 좀처럼 지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아직 밝았고 날씨 또한 그러했다. 전쟁의 승리를 연이어 축하하듯, 맑고 청명한 하늘이 물감처럼 도화지에 퍼졌다.


스윽-.


엘리나는 집무실에서 몸을 일으켰다. 윤기나는 황금빛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었다. 눈동자가 빛을 받아 빛났다.


그녀는 평소 황녀의 옷차림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다소 두꺼웠던 황녀의 옷과는 다른 얇은 옷.

어깨만을 가린 소매와 무릎 앞까지 내려온 밑단이 더위를 식히는 듯했다. 전체적으로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입은 엘리나는 일으킨 몸을 이끌었다.


저벅, 저벅.


반쯤 가린 가슴은 때때로 시야를 가렸다.

서류 처리를 위해 밑을 바라보면, 종이 대신 다른 게 보이곤 했다.


치마와 옷 틈 사이로 스민 바람은 기분 좋게 밀려들었다.

살결을 스친 바람은 포근했고, 동시에 시원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바람이 더 불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이거, 자주 가지고 왔었죠.”


아삭-.


지나간 일을 되새기듯 엘리나가 말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달랐다. 이젠 과거와 추억이 되어버린 네 명의 모습을 생각하며 손에 쥔 애플하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가끔 실없는 수다도 떨었었고요.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아 자주는 못했지만, 그래도 설진 님과 했던 대화는 재밌었습니다.”


아삭-.


과즙이 입안에 퍼졌다.

애플하임은 삼국 중 하나인 연나비의 특산품.


괜히 특산품임이 아니듯 애플하임은 높은 농도와 과즙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입, 한 입씩 베어 물 때마다 설진의 모습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당신이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혼잣말- 아니, 혼잣말이라기보단 꼭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마치 지금 설진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그녀는 지나간 일을 되뇌며 말문을 열었다. 이젠 지나간 사건들이 엘리나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이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렇잖습니까. 설진 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지요.”


가령 루루라는 토끼 수인을 찾으러 돌아다녔을 때.

그때 엘리나는 설진과 처음 만났다.


평범한 모험가인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되도 않는 정보를 토해냈다. 인상착의, 외형, 생김새를 기억해낼 수 있어 레인저인가도 싶었지만 도적이었다.

수상했고, 그렇기에 의심했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지만요.”


조금 더 말을 보태자면, 그때 당시 엘리나는 민감해져 있었다.

교화과의 세력 다툼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미스테리의 출현이라니. 황녀의 입장으로선 난처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엘리나는 그때 정말로 설진을 다른 나라의 스파이나 자객으로 의심했었다며 작게 웃었다.


아삭-.


애플하임은 반쯤 사라져 있었다.

씹은 겉면이 점차 파먹혔다. 사라졌다.


사과가 사라지는 것처럼 엘리나의 이야기도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 언급되고, 금세 다음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게 요한을 봉인하기까지의 과정까지.

짧은 과거 회상을 전부 마친 엘리나는 다시금 아삭- 애플하임을 물었다.


“요한을 봉인해둔 단절석은 황실 비고에 있습니다. 이제야 소식을 전해 드리게 되는군요.”


옮긴 걸음은 창문 앞에 엘리나를 내려놓았다.

보이는 밖과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살결을 스쳤다.


“설진 님은 말했었죠.”


엘리나가 말했다.


“다음 이야기로 나아가겠다고.”


바람과 말이 섞여들었다. 엘리나의 목소리가 흐르듯 퍼졌다.

확실히 설진은 엘리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헤임 제국에서의 일을 모두 끝마쳤으니, 이제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다만 저는 궁금합니다.”


엘리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엘리나에게 있어 큰 장애물이었던 교회가 없어진 건 맞다.

제국의 오랜 악습이었던 수인 노예 시장이 폐지된 것도 맞다.

이제 한 나라를 다스리기에 적합한 상태가 된 것도 맞다.


하지만, 과연 이게-.


“끝인 걸까요?”


헤임 제국의 황녀, 엘리나의 이야기의 종착지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당장 엘리나의 나이만 해도 열일곱, 아니. 이제 열여덟 살이었다.


죽을 날보다 살 날이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엘리나는 아직 젊었고, 어찌 보면 이제 갓 성인이 된 소녀나 다름없었다.


“황녀 엘리나의 이야기는 이걸로 정말로 끝일까요?”


교회라는 황실의 적대 세력을 이긴 건 맞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정말 황녀 엘리나로서의 이야기가 끝나는 걸까.

한 사람의 인생이 고작 고비 하나만으로 끝나는 걸까.


“이야기를 진행하는 ‘플레이어’인 당신이 다음 이야기로 나아간다면, 끝난 이야기 속 세상에 있는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면···.”

‘···?’

“아니면, 이대로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는 걸까요.”

‘뭐, 야.’


엘리나의 말을 듣고 있던 설진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하나 둘 정도가 아니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엘리나의 발언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이상함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당신이···.’


스페이스 온라인이라는 게임 속 캐릭터인 엘리나가.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했다. 외부인도 아닌,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것만으로도 의문이 가득한데,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이후의 이야기. 엘리나는 설진이 사라진 후의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었다.

아넬에게서 보았던 ‘몇 달’과는 개념 자체가 달랐다.


몇 년, 어쩌면 몇십 년. 엘리나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사라진 캐릭터의 세계를.

그 세계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제가 이걸 알고 있는지 궁금하신지요.”


엘리나는 픽 웃으며 손을 뻗었다.

뻗은 손이 닿은 곳은 창문. 바람이 들어오던 창문을 닫은 엘리나는, 작아진 애플하임을 입에 넣으며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처음은 오엘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엘의 반응 때문이었죠.”


오엘은 흑마법사였다.

황실 간부들에게 퍼진 내용은 그것이 전부이나, 엘리나에겐 달랐다.


“황녀의 목을 노리려는 파벌이 있단들 오엘의 반응은 이상했거든요.”


오엘은 엘리나의 목을 노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다가왔다.

어릴 적 아버지인 황제가 살아 있을 때도 엘리나 자신만을 노렸으며, 감정 하나 없이 극히 무건조한 태도로 다가왔다.


마치 이 일을 몇 번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훈련이라도 받은 것 같았다.


“저는 황녀입니다. 헤임 제국 에피소드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플레이어 이기는 주인공이 없다고 한들, 그렇다고 주인공의 능력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요.”


그렇기에 이상함을 감지하는 건 금방이었다.

어릴 적 느낀 이상함의 기류를, 교회와의 전쟁에서 확신했다.


“오엘은 모종의 이유로 황녀인 저를 노리고 있다. 그것은 설진 님의 공세를 무시하고서라도 이뤄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 듯 보인다.”


여기까지가 알아낸 정보라면,


“저는 오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엘은 제 공격의 궤도를 전부 꿰고 있었으니까요. 그에 반해 설진 님의 공격에는 대처가 느렸었죠.”

“그렇다는 건 설진 님 또한 외부인이라는 이름의 플레이어라는 뜻이 되겠죠. 오엘처럼, 언젠가 제 목을 거두어 갈 플레이어.”

“아, 제 목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이야기할까요.”


여기까지가 알아낸 정보에서 기반한 추측.

그리고 지금부터는, 추측에서 비롯된 의문이었다.


“오엘은 설진 님의 공격에 대처하기 힘들어 보였지만, 왜인지 설진 님은 오엘의 공세에 유연한 대처를 보였다··· 이건 아직 모르겠으니까 넘어가지요.”


엘리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있었다.

단순히 오엘이란 플레이어가 최종 보스이고, 설진은 게임 속에서 최종 보스와 수많은 격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엘리나는 거기까지는 모르는 듯했다. 하기야 그녀는 오엘이 최종 보스라는 사실을 모르고, 설진이 탑 속 오엘이 아닌 게임 속 오엘과 잦은 격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애초 오엘과 설진이 플레이어라는 추측을 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거기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건 온전히 황녀 엘리나의 뛰어난 두뇌에서 비롯된 추측과 가설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럼 중요한 건 왜 오엘은 제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고, 왜 설진 님은 황실의 편에 서 교회와의 전쟁에 개입했느냐인데···.”

“단순한 변심일까요. 아니라면 두 가지의 엔딩이라도 있는 걸까요.”

“저를 죽였을 때와 살렸을 때의 엔딩, 그리하여 나눠지는 엔딩 말이죠.”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리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 시점에서 바람은 불지 않았다.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은 오직 엘리나의 목소리로 채워졌으되, 그녀의 말이 없을 때면 놀랍도록 조용했다.


“정리하자면 간단합니다.”

“이 세계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고, 그 이야기를 클리어하기 위한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 제 목숨을 노리려 하는 오엘같은 자와 그 반대로 지키려 하는 설진 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이상한 감각입니다. 저는 분명 살아 있는 인간이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인데, 만들어진 이야기의 등장인물이라니요.”


스윽-.


“분명 먹을 수도.”


이젠 씨밖에 남지 않은 애플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행동할 수도.”


다시 걸어 창문으로 향했다. 드르륵-. 창문이 걸렸다.


“걸을 수도, 만질 수도 있는데. 만들어진 가짜라니요.”


그녀의 목소리는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엔딩 전, 엘리나와 함께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설진 님.”


다시, 엘리나의 입이 열렸다.


“당신 같은 플레이어가 없는 이야기의 시간선은 어떻게 될까요.”


건조하기만 했던 목소리에 생동감이 불어넣어졌다. 그러나 그 생동감은,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동감이었다.


“유지되기는 하는 걸까요? 혹여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엘리나가 말했다.


“단순히, ‘기억’만을 주입 당한 채 흐른 시간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요.”


엘리나의 말이 잠시 멎었다. 침묵은 길었다.

1초가 1분처럼 느껴졌다. 바람은 다시 불기 시작했고, 엘리나의 걸음은 재차 의자로 향했다.


스윽-.


몸을 숙인 엘리나는 두 손을 모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죄송합니다. 설진 님.”


쓸어내린 얼굴에서 생기가 줄어들었다.


“분명 보고 있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여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설진은-.


‘슌···.’


한 남자를 떠올렸다.

다음 상점 스테이지에선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겠다는 한 남자가.


‘만나야 해.’


만나야 했다. 무조건.

무조건, 슌을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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