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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3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12.25 16:25
조회
173
추천
3
글자
11쪽

285화

DUMMY

연화에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아니, 어떻게 한다기보단···.’


질문하고서야 알았다.

탑의 클리어는 기정사실이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탑이 클리어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더 이상 회귀하지 않는 건지.


정보다운 정보 없이 연화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기실 연화 본인조차 잘 모를, 아니. 설진보다 모르는 것이 많을 터인데.


“···제게 선택권이 있나요?”


연화는 그리 질문해 왔다.


“저는, 아니.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책망하는 말투라기보단, 회한에 찬 어투였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처지다.

심지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최소 몇백 년. 그만한 시간이 흐르고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몇 번인지 모를 회귀를 반복해 왔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수백의 시간이 흐를 동안 자신이 무엇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연화다.


“이제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겠어요. 느껴지는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됐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다음은···.”

“···.”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그러니까, 방황에 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터.


여주인공이라고 마냥 만능은 아니다. 선례가 그를 증명했다.

플라임은 마법 금지법으로, 엘리나는 교회와의 세력 다툼으로.


그리고 연화는, 가족과의 싸움으로.


“죄송해요. 말이 조금 두서없죠?”

“괜찮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거에요.”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어떻게든 결정이라도 내려야 하는데, 뭘 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안 나서···.”


설야와의 싸움의 화해로 바뀌었지만, 그것이 끝을 의미하진 않았다.

행복한 결말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설야와의 싸움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화해해, 그제야 행복을 찾았나 싶었더니만 오른이 기다리고 있었다.


설진 일행의 도움을 받아 오른을 죽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은 이미 죽은 것이며, 지금의 육신은 미약한 혼만을 넣어 부활시킨 것이고, 방금과 같은 비극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해고도 있다는 진실을.


“연화 님.”


오른을 죽임으로서 탑은 클리어에 가까워졌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아직 정보가 없었다.


탑이 클리어된 이후 연화는 어떻게 되는지.

회귀를 멈추느냐 멈추지 않느냐부터 시작해, 제 육체가 사라지는지 존속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보통 죽은 사람이라 하면 귀신을 떠올리고, 귀신이 떠오르면 성불 쪽으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다마는.

설야와의 전쟁을 끝내고 전쟁의 원흉을 잡았음에도 연화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탑의 연화와 성불이란 단어는 연관성이 없는 모양이었다.


설진은 연화를 바라보았다. 신비롭게만 느껴졌던 녹빛의 눈동자가 밑으로 치우쳐 있었다. 눈동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무리 봐도 대화하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오른을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고.


‘천천히 할 걸 그랬나. 깨어나자마자 말하는 것보단 시간을 두고 말했어야···.’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피해를 수습하는 것조차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사람 마음은 어떻겠는가.

아물기까지, 아니. 최소한 진정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지금 연화에게 필요한 건 아마- 대화보다 휴식이리라.


“잠시 쉬는 건 어떠세요?”

“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하게 된 연화 님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으으, 작게나마 그런 소리를 흘린 연화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직후 후우- 숨을 크게 내쉬더니만,


“휴식··· 말이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렇네요. 휴식··· 일이 끝나면 휴식하는 건 당연한 거였지요.”

“생각이 깊은 건 좋은 일이지만, 과하면 마냥 좋지만은 않죠. 연화 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 연화 님은 휴식이 필요해 보여요.”


휴식이란 단어의 의미가 생소한 듯한, 그런 얼굴.

그런 얼굴을 눈에 담고서야 설진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하긴··· 우리가 오기 전까지는 다크 엘프와 싸우고 있었을 테니···.’


설진이 설야와의 화해를 주선하기 전, 둘은 적대 관계였다.

전쟁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는 단어다. 다크 엘프와의 전쟁에 신경 쓰느라 연화에겐 편히 휴식할 시간이 없었을 터.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설야와 화해했고, 싸움의 원흉인 오른을 죽였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상황이 반대가 되어버렸다.

일이 끝났으니 남는 게 시간이 되어버렸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소식입니다만, 탑을 관리하는 관리자분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탑이 클리어 되었으니 오라고. 초대 같은 거죠.”

“관리자요?”

“슌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리자분이 계세요. 보스도 잡았겠다, 이제 이 탑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더군다나 설진에겐 아직 모르는 것을 알 방법이 있었다.

슌과 만나면 된다. 오른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고, 탑이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진상을 가르쳐줬던 슌이라면 분명 궁금증을 해결해 주리라.


“연화 님은 쉬고 계세요. 저희도 적당한 휴식 이후 슌과 만나고 올 테니까요.”

“아-.”

“알게 된 것이 있으면 알려 드릴게요. 계약 관계잖아요?”


설진은 사근사근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화는 짧은 비음을 흘리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끄덕임. 고개를 한 번 끄덕인 그녀는 작게나마 감사를 표하며 읊조렸다.


“고마워요.”


눈짓으로 대답을 대신한 설진은 몸을 일으켰다. 어찌어찌 연화와 이야기를 나누긴 했다만, 자신도 휴식이 필요한 듯했다.


머리가 아닌 몸이 요구하고 있었다.

연나비 에피소드에 들어 휴식다운 휴식 없이 싸움에 임했으니, 어찌 보면 이게 당연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탑에 들어온 이래 식량과 식수는 필요 없을지언정 수면은 필요하니.

수면이 필요하다는 건 피로를 느낀다는 의미니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아, 개인실 잘 쓸게요. 휴식 후 슌과 만나고 올 테니, 그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세요.”

“네, 새겨들을게요.”


끼이익-.


설진은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와 나무가 맞물리며 자아내는 소리. 귀에 틀어박히는 맞물림이 이야기의 멈춤을 선언하는 뜻했다.


“아, 오빠. 같이 가요.”

“형, 저도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채린과 찬우는 연화에게 고개를 숙인 뒤, 설진을 따라나섰다.

조금 있다가 따라가겠다는 말을 건넨 시연은 짤막하게 손을 흔들었다.


“···.”

“어때?”


회의실의 인원은 한순간에 줄어들었다.

단숨에 반토막, 그 이상이 나버린 회의실엔 둘만이 남았다.


시연과 연화.


“생각했던 것처럼 냉혹한 사람은 아니지?”


말을 놓자고 했던 시연의 시선이 돌아갔다.

설진이 나간 문. 그곳을 향해 고정되다시피 했다.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형형색색 눈동자를 스쳤지만.

개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사랑일 것이다.


설진이 나간 문을 바라본 시연의 눈에는 사랑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연인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보는 사람이 눈부실 정도로 포근한 미소를 게워낸 시연은 연화에게 물음을 건넸다.


“네. 그런 것 같아요.”

“거봐. 전투에서의 설진이랑 일상에서의 설진이는 다르다니까.”

“그러게요. 오른과 싸울 때는 분명···.”


오른과 싸울 당시 설진은 괴물이었다.

아니, 괴물이란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로 강했다.


어처구니없었지, 그리 생각한 연화가 조금이나마 몸을 떨었다.

확실히 그때의 장면은 뇌리에 틀어박혀 잊히질 않았다.


“정말로 무서웠는데요. 같은 편이 제가 보기에도 말이죠.”

“그거, 나도 처음 볼 때는 놀랐다?”

“시연도요?”


팔이 잘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재생하는 능력이라니.

재생도 재생이지만 태도가 더 문제였다.

표정 하나,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웃을 수 있는 건 아마 설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제가 다 놀랐을 정도니까요.”

“고통··· 이라. 뭐, 어느 정도는- 음.”


다음 말을 이으려 했던 시연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내용이 없었다. 듣지 않는 것이 훨씬 좋은, 들으면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내용투성이였다.


“아,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네?”


그래서 시연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대화 주제에 크게 벗어나지도 않고, 그나마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팔이 잘리고도 웃는 거, 그거 사실 연기다?”

“어··· 정말요?”

“반 정도는 연기가 맞아. 싸울 때는 기세도 무력 못지않게 중요하니까. 상대의 기세를 죽여놓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특히 헤임 제국의 요한과 싸울 때는 절정이었다.

공격당하지 않았는데도, 설진은 스스로 팔을 잘랐다.

그러고서 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웃었지.


직접 못 것은 아니지만 시연은 그렇게 들었다. 설진의 성정을 생각하면 실제로 그랬을 것 같기도 해서, 작게 헛웃음을 틔워내며 연화와 말을 주고받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연화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이 보였다.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역시 대화만 한 게 없지 않을까.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는 대화는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한번 말을 꺼내버리니 말할 주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채린과 찬우의 능력이라든지, 시연 자신의 능력이라든지, 설진과 만나게 된 계기라든지, 때때로 다른 에피소드의 이야기를 섞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것도 휴식이라면 휴식일까.


“고마워요. 재밌는 이야기 잘 들었어요.”


적어도 연화가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면, 그건 휴식이 맞을 거다.

시연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곧 있으면 깜깜한 밤이 찾아올 터, 슬슬 취침 준비를 해야 했다.


설진이 휴식을 요했듯 그건 시연도 마찬가지니.

공급과 미몽방위를 두 번씩이나 써버린 반동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뻗어 시연의 근육을 살라먹고 있을 정도로.


“다음에는 연화에게서 말을 좀 듣고 싶은데.”

“저요?”

“응. 재밌는 이야기 있으면 좀 알려 줄래? 어릴 적 설야와의 추억이라든지, 좋아하는 거라든지. 뭐든 좋으니까.”

“아하··· 그럼 다음에는 제가 한 번-.”


재밌는 이야기를 알려드릴게요.

연화는 그리 말했다. 처음과는 달리 경계심이 옅어진 모습이었다.


“나중에는 설진 님과도 사담을 나누고 싶어요. 설진 님이 해주시는 설진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도 싶고요.”

“일단 말을 놓는 것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아으, 그건···.”


휴식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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