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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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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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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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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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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88화

DUMMY

연화의 바람은 간결했고, 또한 간단했다.

아무런 변화 없이 이대로 에피소드를 끝내길 원하고 있었다.


“그게 연화 님이 바라는 거라면요.”


설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보면, 그녀가 바라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설진은 오른을 죽였고, 엘프와 다크 엘프 간의 화합을 이끌어냈다.


기억을 조작해 자매를 전쟁으로 엮었던 최종 보스 오른이 죽고, 악화되었던 두 자매의 사이를 회복시켰다.

이른바 연나비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정도로 최고의 마무리였다.

이대로 엔딩 이후의 세계가 펼쳐진다면 그것만큼 괜찮은 결말도 없을 터.


고개를 끄덕인 설진은 시스템 창을 펼쳤다. 탑을 클리어한 이후 시스템에게서 받아온 조작창이 하나 있었다.

엔딩을 결정짓는 창이었다.


이대로 이어갈지, 아니면 다시 시작할지.

적어도 이번 에피소드에서 설진이 고를 선택지는 전자였다.


[연나비의 엔딩을 결정하시겠습니까?]


그리 묻는 시스템 창을 향해 답했다, ‘예’라고.

이어지는 조작 속 설진은 연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설진은 느끼지 못할 감정을 느끼고 있겠지.


몇백 년 동안 지속된 비극의 반복을 끊어낸 것이니, 당연히 느끼는 것도 클 터. 숨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 지금의 방에서 설진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확인했습니다]


확인했다는 듯 문장을 나열한 시스템 창을 다시 응시했다. 이걸로 연나비 에피소드는 끝. 반복도 회귀도 없는 완전무결한 끝이었다.


물론 끝이 죽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금의 끝은, 비극의 종결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끝이 맞을 터.

이제 남은 건 여생을 살아가게 될 연화의 이야기. 엔딩 이후의 세계선이었다.


“뭔가 달라진 건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직은 얼떨떨한지 연화는 손을 떨며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감회에 젖은 듯 주먹을 꽉 쥐더니.


“무언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은 있어요.”


강한 확신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무언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바뀐 건데?”

“시연.”

“아하하. 앞으로 확인해 봐. 지금 당장은 크게 와닿지 않을 순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옆에서는 시연이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아 말을 건넸다.

공식적인 일이긴 하나 지금 연화와 일행의 분위기는 사적에 가까웠다. 편한 분위기, 조금은 안락한 기분이 공기에 섞여 흐르는 듯했다.


“네, 고마워요. 시연.”

“감사하는 건 좋은데, 저기 진짜 일등공신이 있지 않아?”


고맙다는 말을 건넨 연화를 보고서 시연은 설진을 보며 눈짓했다.

따지고 보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설진 덕분이었다. 설진이 없었더라면, 일행은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터였다.


설진이 있고 일행이 없는 건 상상할 수 있지만, 설진이 없고 일행만이 있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설진이 탑의 클리어에 기여한 바는 컸다.

최종 보스 오른을 단신으로 몰아붙였을 정도니 말이다.


“아, 그렇네요.”


시연의 말에 연화는 탄성을 흘렸다.

직후 바로 뒤를 돌아보더니, 설진과 시선을 맞췄다.


“설진 님.”

“저도 편하게 불러도 되는데요.”

“후후. 그럼 설진.”


회의실에서 나눴던 시연과의 잡담은 연화의 마음을 연 듯했다.

웃으며 그리 답할 정도니. 연화는 약간 숙인 고개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희도 편하게 불러도 돼요.”

“아, 네. 저, 저도 괜찮아요.”


부르기도 전에 편히 대해달라고 말한 채린과 찬우를 바라보며,


“그럼 채린, 찬우.”


이름을 읊조리며,


“정말로 고마워요.”


진심을 담아 한마디 말을 건넸다.

짧고 담백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마저 짧지는 않았다.


오히려 깊었다. 고마움과 감사를 표현하는 그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깊었다. 광활한 숲이 엘프의 심장에 스며든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오늘은요. 오늘은 말이죠-.”

“연화?”


이어지는 말은 조금 끊겨서 들렸다. 설진은 무언가 문제가 있느냐는 의미를 담아 연화를 불렀고, 이윽고 끊겼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정말로 행복한 날이에요. 복에 겨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요.”


끝까지 말을 완성한 연화의 눈에 자그마한 눈망울이 맺혔다.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 줄기가 옅은 곡선을 그리나 싶더니, 이내 느리게 낙하했다.


하강한 눈물은 뺨과 턱을 스쳤다. 울고 있는데,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서, 너무나도 기뻐서 흘리는 눈물 같았다.


“사실 일주일 동안 설야를 만나고 왔어요. 화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이대로 가면 연나비에 들어와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얘기도 나눴죠.”

“···.”

“가장 마음에 걸리던 게, 탑이 끝난 이후 저흰 어떻게 되느냐였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설진이 그걸 해결해주니까···.”


이젠 정말로 같이 살 수 있겠다고.

자매끼리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연화가 웃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다. 이상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툭툭.


조심스럽게 연화의 어깨를 두드렸다. 진정과 축하의 의미를 담아서.


기실 연화에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이건 설진에게도 기념적인 날이었다.

게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피 엔딩을, 탑에 들어와서조차도 보기 힘들었던 해피 엔딩을 기어코 완성시킨 것이니까.


화면 속에서 접했던 인물이, 이젠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연화가 웃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짠하면서 기뻤고, 기쁘면서도 즐거웠다.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해냈다는 성취감? 갖은 고생을 딛고 온 수고?


아마 이 감정은, 하나만을 담은.

정말로 기쁜 마음만을 담은 순진무구한 행복이리라.


‘하나, 끝났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다른 에피소드 또한 남아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엘리나를 떠올렸다. 헤임 제국의 황녀인 그녀는 교황 요한을 죽이는 데 성공했음에도 행복하지 못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조형된 존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어서.

진짜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가짜라고 제 자신을 인식하고 있어서 말이다.


플라임의 경우는 더했다. 플레임 왕국의 왕녀인 그녀는 성취도 행복도 느끼지 못한 채 배드 엔딩을 맞이했다.

당시 능력이 부족했기에 막지 못한 비극이었고, 그리고 이제는 능히 막아낼 수 있는 불행이기도 했다.


연나비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아직 두 개의 에피소드는 끝나지 않았다.

설진이 해야 할 일은 조금 더 남아 있었다.


* * *


연나비를 뜨는 시각은 일주일 후로 정했다.

그간 수고했다는 의미를 담아 자신에게 얹은 휴식이기도 했고, 다른 엘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연나비를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설진, 시연, 채린, 찬우.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아퀴넬과 나지리아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일행에게 감사를 표했다.

세계의 진실. 그러니까 연화, 설야와 함께 탑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과연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짜이되 가짜가 아닌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들었으나, 둘은 설진이 생각한 것보다 곧은 심지를 가지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게다가 완전히 가짜인 것도 아니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거면 됩니다. 비극을 지우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기록되면 그걸로 족합니다.”


원래의 시간선. 즉, 비극으로 끝났어야 할 과거가 바뀌었다.

아퀴넬은 그 점에 미루어 오히려 기뻐했다.


행복하게 삶을 보내고, 그리 기록되면 족하다고.

그렇게 말한 아퀴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나마 행복을 빌었다.


“아퀴넬과 똑같은 생각이다. 그대들은 어찌 보면 비극으로 끝났어야 할 결말을 바꾸어 준 은인이니, 감사하는 것이 도리겠지.”


나지라아도 아퀴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을 건넸다.


시연은 나지리아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격려했다. 나지리아는 아퀴넬과 같은 포지션인 전위. 그간 수없이 많은 공격을 감당해왔을 테니.

그런 기사에게 건네는 나름의 경의와 격려였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 후에 떠나신다고 들었어요.”

“엘사임 씨.”

“짧은 시간이지만, 벌써 이렇게나 정이 들어버렸네요.”


다음 날, 채린과 찬우는 엘사임과 루미네르를 찾았다.

일주일 후에 떠난다는 말을 건네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회포를 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야기는 마를 줄은 몰랐다.


설야와 싸울 때, 오른과 싸울 때,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때 당시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전쟁은 무섭지만, 종전을 맞이한 전쟁은 무섭지 않다.

모든 것이 끝나서인지 넷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만 했다.


“저는 채린 님과 찬우 님이 떠나도 기억할 거에요. 마음속에서 영원히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게끔. 그런 기억이 될 거에요.”

“아하, 괜히 낯간지럽네요. 그렇게 대단한 걸 한 기억은··· 오히려 대단한 건 오빠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 눈에는 채린 님이 영웅이에요. 같은 마법사로서 존경하고 싶어요.”


주제가 종점으로 접어들었을 즈음, 또 다른 주제가 튀어나왔다.

채린은 마법사, 엘사임도 마법사였다.

마법사끼리 만났으니 나눌 이야기는 저절로 생겨날 터.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둘을 본 찬우는 쓰게 웃었다.

어쩐지 몇 시간은 귀가 아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보다 대단하더군. 그 괴물의 저주를 대체 어떻게 해제한 거지?”

“단순히 마력을 많이 사용했을 뿐이에요. 별 대단한 재주는 없어요.”


채린이 엘사임과 대화를 나누듯,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찬우와 루미네르는 같은 사제였다. 마법사끼리 만나도 이야기가 마르지 않는데, 둘이라고 별수 있으랴.


오히려 둘 사이의 실력 차이가 극명하기에 대화의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루미네르는 찬우에게 조언과 배움을 청했고, 찬우는 남은 시간을 루미네르와 보냈다. 가르침의 시간이었고 참으로 보람찬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일주일,


“설진 님··· 이 아니라. 설진.”

“푸흣.”

“우, 웃지 말아주세요.”


떠날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한 설진은 연화를 찾았다.


“흠흠,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오늘 저녁에 떠날 생각이에요. 그동안 정말로 즐거웠어요.”


일주일의 시간은 짧고도 길었다.

참으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자신이 구원한 과거의 인물과 일상을 보내고, 행복을 느끼다니. 아마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설진 일행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요. 이제 슬슬 드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기억하고 있으시네요.”

“당연하죠. 처음부터 설진이 목적은 염원석이라 그랬으니까.”


연화에게서 오른의 기억 구슬과 염원석을 넘겨받았다.

자그맣게 떨리는 손이 꼭 이별의 아쉬움을 방증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우리-.”


한 번 운을 떼더니 잠시 침묵.

말이 잘 나오지 않은 자신이 갑갑했던 모양인지, 가슴을 몇 번 친 연화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이제 못 보겠죠?”


하기야 이걸로 연나비 에피소드는 끝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작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다신 만나지 못할 사람을 떠나보낸다거나, 하는 것들처럼.


“···.”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글쎄요.”


정말 누군가가 바라고 있다면.

또한 바라는 것을 이룰 기물을 가지고 있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누군가가 작별을 바라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작별이 아닌, 재회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어쩌면 말이죠. 연화. 우린 생각보다 이르게 재회할 수도 있어요.”


설진은 그리 말하며 웃었다.

사라진 소원을 대체하는, 죽음이 아닌 삶에 가까운 소원이 생긴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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