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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3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3.01.05 16:24
조회
153
추천
4
글자
11쪽

294화

DUMMY

퍼어억!


검의 단면. 검날에 밀려난 루이의 몸이 뒤로 늘어졌다.

많이는 아니었다. 딱 설진에게 연격할 시간을 주되, 루이에게는 제대로 된 대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였다.


짐짓 루이는 소름이 돋았다.

이건 고작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폄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갖은 경험과 인고의 시간 끝에 겨우 체득할 수 있는 거리 조절이었다.


‘신인이 아니야··· 절대.’


동시에 짐작했다.

저건 절대로 신인한테서 나올 수 있는 기예가 아님을.


검의 단면으로 한 차례 밀쳐낸 후,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설진을 보며 루이는 몸을 일으켰다.

왜 더 공격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덕택에 정비할 시간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반격을 위해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부터는 전력을 담아 움직이겠노라 다짐하며 재차 싸움의 막이 열리려는 순간,


“루이. 수고했어. 신인이 엄청 잘 싸우네.”


릴리에가 그에게 다가왔다.


“릴리에?”

“마력도 안 썼으니까··· 대강 봐준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어땠어? 저 설진이라는 모험가는?”


릴리에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련은 끝났고, 자신은 패했음을.


루이는 흥분했던 몸을 애써 진정시켰다.

쉽게 진정되지 않자 심호흡을 반복했다. 후아. 후아. 다섯 번의 숨을 내뱉고서야 그는 겨우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널 몰아붙였으니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만일 기회가 되면 왕실 쪽 사람을 보내 영업 제안을 해 보는 것도 괜찮···.”

“릴리에.”


시종일관 말을 잇는 릴리에가 입을 다문 건 그때였다.

루이는 짐짓 심각한 목소리로, 동시에 진중함을 담은 음성을 내뱉었다.


“나, 안 봐줬다.”

“응?”


가감 없는 사실이었다. 마력만 쓰지 않았지, 루이는 전력으로 대련에 임했다.

설진이 최대한 약속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짧은 시간이나마 선생이 되어줄 생각이었다.


“말 그대로야. 나, 전혀 안 봐줬어.”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루이는 봐주지 않았다.

봐주지 않았음에도 밀어붙여진 것이다.


그러니까 루이는, 패한 것이다.

설진에게. 신인이라 일컫어지는 모험가에게.


“···뭐?”


그제야 대련의 진상을 들은 릴리에의 눈동자가 커졌다.

믿을 수 없는 말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서 들었다는 듯한 반응이다.


“뭐? 아니, 잠깐만. 저, 정말로?”


루이가 누구인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암살자의 재능을 가진, 왕국의 다섯 손가락이 아니던가.

그런 루이가 설진에게 패했음을 긍정했다. 봐준 것도 아니고, 컨디션이 나쁘거나 저조한 것도 아닌데.


그런 릴리에의 생각이 이어지려는 찰나, 루이는 하나의 추측을 내뱉었다.


“신인이 아니야. 절대로 신인일 리가 없어.”


설진은 신인이 아니다.

지금 상황을 가장 잘 납득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못해도 모험가 이전에 전쟁터에서 구른 사람일 텐데··· 너무 젊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텐데. 대체 이건 또 무슨-.”


그러나 신인이 아니라고 가정했을 때도 문제가 생겼다.

그는 젊었다. 전쟁터에서 구른 노장이나 중년도 아닌,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경험을 쌓을 시간이 없는 건 당연, 그만한 실력을 갖출 시간조차도 없었을 텐데.

정말로 루이처럼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건지. 그것도 루이의 재능을 압살해버릴 만큼의 큰 재능을 지니고 있는 건지.


“허. 릴리에.”


정말로 그럴 것 같아서 루이는 뭉친 숨을 뱉었다.

만약 루이 이상의 재능을 가진 게 사실이라면,


“일이 커질 것 같다.”


왕실은 고용이 아니라, 모셔와야 할 판국이 될 테니까.


* * *


대련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간단히 합만 겨루는 과정이었다.

길게 끌면 외려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설진은 뒤로 밀쳐난 루이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짝짝.


옆에서 자그맣게 박수를 보내는 시연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고개를 돌려 플라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흥미 위주로 대련을 지켜보고 있는 플라임이었지만 대련이 끝나자 그녀의 표정은 달라졌다.

물론 흥미도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다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


“그래, 설진이라고 했나.”


왕국의 번영을 위해 군주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인재욕이지 않을까.


“네. 맞아요. 플, 왕녀님.”


플라임이라 부를 뻔한 목을 애써 가다듬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 있는지라, 조금만 방심하다가는 플라임을 플라임이라 부를 것 같았다.


버리지 못한 미련을 고리삼아 그녀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볼 것만 같았다.

애써 과거의 감정을 지워낸 설진은 가까스로 화답했다.


깊어진 밤이 찾아온 새벽을 나지막하게 알리는 듯했다.

들리는 것은 나무의 흔들림과, 나뭇잎이 땅에 묻혀 스러지는 소리 정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잠시 말을 조금 나누지.”

“알겠습니다.”


자연만이 내었던 소리에 인간의 미성이 스며들었다.

섞이고, 스몄다. 플라임의 목소리가 설진의 귀를 슬며시 두드렸다.


저벅, 저벅.


둘은 풀숲을 헤치며 걸었다. 곱다기보단 시린 바람이 뺨을 스치고, 고요하기보단 스산한 밤이 눈앞을 먹먹히 만들었다.


툭.


얼마 걷지 않아 플라임은 걸음을 멈췄다.

끊겨버린 걸음. 이후 앞발을 한 박자 돌리는 발걸음.


움직임이 끝을 고해 발이 멎었을 때는,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다.

한순간에 플라임과 독대의 시간을 가지게 된 설진은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과거에서도 마주하지 못했던 상황에 짐짓 의문이 생겼다.


“그래, 설진.”


플라임은,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들어주겠나.”


무엇을 하려고 설진을 불러냈을까.


휘잉,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에 휘말렸다. 졸지에 휘몰아치게 된 나뭇잎들은 설진의 주변을 훌훌 날아다녔다.

산만해진다는 생각이 들 무렵 바람이 멎었다. 휘몰아치던 나뭇잎도, 찬 바람을 느끼던 피부도 잠시나마 가라앉았다.


그리고, 플라임의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


“위프 게이트를 타고 이곳에 오기 전, 꿈을 하나 꾸었지.”

“꿈이요?”

“비극을 담은 꿈이었다. 현재 플레임 왕국을 습격하는 정체불명의 집단을 격퇴하나, 그 이후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 왕국이 비극의 길을 걷는 꿈.”


만일 눈앞에 있는 이가 왕녀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불경죄로 체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이는 플라임. 플레임 왕국의 왕녀였다.


그래서 말이 이어졌고.

설진은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왕실에 반기를 두는 적대 세력은 격퇴했는데, 왜 왕국은 멸망하는지.”


아직 레지스탕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시기.

플라임은 레지스탕스를 격퇴하는 꿈을 꾸었고, 격퇴 후 쇠락하는 꿈을 꾸었다.


“그저 꿈이라 그런 것 아닌가요?”

“그래,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설진은 모른 체하며 플라임의 말에 호응했다.

그저 꿈일 뿐이니 기우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평범한 호응의 말이었다.


허나 플라임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꿈은 아니라 주장하는 듯했다.

설진은 쓴맛이 도는 혀를 삼켰다. 다시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로 돌아온 지금, 적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애초에 설진을 불러낸 것만 봐도 그랬다. 정보 공유의 말이라면 모두의 앞에서 하면 될 터인데, 굳이 자신만을 불러내어 이 말을 하고 있으니.


“설진.”

“네.”

“꿈에서 어떤 얼굴을 봤다. 남자였고, 적당한 체격을 가졌고, 또한 암살자이며 단검이 아닌 장검을 쓰는 자였지.”


탑은 과거를 재현하는 신기다.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은 죽은 인물의 혼을 수집해 육체의 쓰는 것.


육체는 바뀔 수 있을지언정 혼은 그렇지 않다.

신체와는 달리 특별한 개념을 지녔다.

말 그대로 영혼이기에, 잊히는 기억 없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혼의 모든 기억이 육체로 일맥상통하지는 않는다.

혼이 기억하는 모든 것이 육체로 전달된다면, 인간은 필시 고통스러워 할 테니. 심한 경우 머리가 터져 죽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그 모습이 참 누구랑 닮았더군. 오늘 보고서야 확신했지.”


하지만 말이다.


아주 미량의 기억이라면.

파편조차 못 되는 편린의 기억이라면.


거기에 아주 조그마한 기적을 추가한다면,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왕녀님.”

“그때처럼 불러도 좋다.”


혼에 고이 저장된 기억이 육신으로 옮겨가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터.


“왕녀님이 아니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그때처럼, 플라임이라 불러주겠나.”


비로소 왕녀에게 있어, 세간에선 회귀라 칭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정확히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하여 일어난 건지 연유조차 몰랐다.


다만 확실한 것은 플라임은 1회차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


“물론 전부는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단편에 불과한 기억··· 아니. 조각이라 칭하는 게 더 옳을 정도로 작은 기억들이야.”

“가장 크게 기억하고 있는 건 뭔데요?”

“마지막···.”


플라임이 마지막을 언급하자, 설진은 입을 꾹 닫았다.

헤임 제국과 연나비는 해피 엔딩을 맞았지만, 플레임 왕국만큼은 달랐다.


탑에 처음 들어서 힘도 정신 상태조차도 완전치 않았던 시절 마주한 것이 플레임 왕국이었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리하여 설진은 플레임 왕국을 구원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뼈아픈 과거를 회상하자 괜스레 입맛이 썼다. 최후를 애써 웃음으로 장식해낸 플라임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설진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대들은 항상 신출귀몰했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고, 뜻하지 않게 도움이 되어 주었어. 그렇다면 혹시···.”

-“경들은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음에도 설진과 시연을 찾아낸 플라임.


-“경들, 경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겠지?”

-“그렇다면 웃겠다. 적어도 그대들에게만큼은 웃고 싶다.”

-“웃으며 헤어지고 싶다. 웃으며 기다리고 싶다.”


그 사실을 알자마자 웃음으로 최후를 장식한 플라임.


-“다음에는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대들과 같이 말이지.”


그리하여 그녀는 다음을 기약했다.

어쩌면 플라임에게 있어 회귀란 기적이 일어난 이유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찰나, 설진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너무나도 큰 공상이었고 억측이었다. 아직 마땅한 증거조차도 없는 지금 괜한 생각은 삼가두고 싶었다.


대신 플라임을 바라보았다.


어떤 연유로 과거를 기억하고 있든, 플라임은 플라임이었다.

한 번 나눈 약속은 아직 간직되어 있었다.

빛이 바래지 않은 채 고이 보관되어 있으니, 지금은 그걸 꺼낼 때였다.


“마지막이면··· 좋은 기억은 아니겠네요.”


설진의 말에 차마 부정하지 못하는 플라임을 보며, 재차 다짐했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마지막에 웃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품으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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