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34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3.01.02 01:29
조회
158
추천
3
글자
11쪽

291화

DUMMY

이미 엔딩을 겪고, 그 이후의 세계를 사는 엘리나였다.

더 이상 숨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아니. 설진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연나비 때도 그랬다. 자신이 세상의 엔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세상의 당사자에게 털어놓았다.

연화에게 내가 당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설진은 그동안의 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중간중간 빠진 부분이 조금 있었으나 시연이 메꿨다. 오른과의 싸움이 끝나고 정신을 잃은 사이의 일은 시연이 설명했다.


설명은 길었다. 언제 갤지 모르는 안개처럼.

그만큼 탑에서의 일은 깊었고, 또한 고됐다.

그걸 요약해서 설명하려면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최종 보스라는 자를 죽였군요.”


엘리나는 이어지는 설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집중에 집중을 더하고, 최대한 설명을 이해하려 들었다.


“만들어진 이야기 속 등장인물 따위가 아닙니다. 엘리나는 진짜입니다. 죽고 난 이후 만들어졌을지언정 몸 안에 들어있는 혼만큼은 진짜입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비극으로 끝난 일을 바꾸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탑이니까요.”


탑이 만들어진 이유, 탑이 만들어지는 과정, 만들어진 후의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이 플레이어가 되어 탑을 거쳤다는 것, 그중 성공한 사람은 설진 일행뿐이라는 것, 엘리나는 에피소드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


설진은 모든 것을 말했다. 시스템은 침묵했다.

설명하는 이 행위 자체를 용인한다는 의미겠지. 연나비 때도 그랬으니.


시간이 흐르자 설진은 설명을 마무리했다. 속으로 잊었거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나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다.


탑에 대한 설명을 들은 엘리나는 턱을 괴며 침묵했다. 깊고 깊은 상념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가 약간이나마 흐릿하게 돌변했다.


“후우.”


그것도 잠시, 상념에 젖은 머리가 정신을 되찾은 듯 한 차례 숨을 내뱉더니.


“설진.”

“네, 엘리나.”

“당신은 은인이었네요.”


고개를 숙였다. 마치 황녀란 신분을 잊은 사람처럼.

구십 도를 넘어서 아래로. 더 내려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깊숙하게.


“설명은 정말로 잘 들었습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군요.”

“고작 하루 만에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런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네요.”


그리 말하며 다시 크게 숨을 뱉으며 등을 뒤로 밀었다.

순식간에 기울어진 상체와 하늘을 보게 된 얼굴. 엘리나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현재 본인의 상태를 피력했다.


설진은 그 모습을 보고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황녀가 왜 그러냐고 놀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엘리나가 접하게 된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에, 그걸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기에.

설명을 끝낸 설진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엘리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설진. 설진이 이대로 엔딩을 결정하면 저는 어떻게 되지요?”


그러길 잠시, 엘리나는 대뜸 물음을 건네 왔다.

엔딩을 넘어선 세상. 즉, 엔딩 이후에 관해서.


“그대로 여생을 보낼 거에요.”


그 말에 답한 쪽은 시연이었다.

비극이 해결된 그대로 남은 여생을 보낸다. 그러다 죽으면, 에피소드의 모든 주인공들이 죽으면 비로소 탑은 의미를 잃는다.


탑이 의미를 잃는다는 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탑의 소멸.

다시 말해, 여주인공의 죽음과 동시에 탑의 붕괴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대로 남은 여생을··· 이것 참.”

“왜 그래요?”

“적어도 사람 취급은 해주는구나 싶어서 말이지요. 이 탑이라는 건.”


하기야 엘리나의 말이 맞았다.

보통의 이야기는 엔딩과 동시에 사라지기 마련이니. 단지 잔향처럼 마음속에 머무르기만 할 뿐, 이야기 자체는 종결되어 이어지지 않으니.


하지만 탑은 달랐다. 엔딩 이후의 세계가 있었다.

무너진 비극을 해결해 해피 엔딩을 달성한 에피소드. 그리하여 끝난 에피소드에, 남은 여생이라는 외전과 후일담을 남길 수 있었다.


호록, 찻잔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나였다. 탁자 위의 차를 집어든 그녀는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설진.”


와중 설진을 이름으로 부르더니만,


“네.”

“저는 행복해지고 싶어요.”


돌연 행복에 대해서 거론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행복해지고 싶다니. 교회 세력이 무너진 지금의 에피소드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거라기도 한 건가.


의문이 차올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설진은 엘리나를 올려다보았다. 의문 어린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


호록.


다시, 찻잔을 넘기는 소리가 집무실에 퍼졌다.

차가 입술을 통해 넘어가고, 혀를 거치며 이윽고 식도를 향해 내려갔다.


그렇게 반 잔 정도를 비울 즈음, 엘리나가 입을 열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설진은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엘리나 또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천천히 잔류한 마음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저, 이 엘리나와 같이 일주일을 함께해주시지 않을는지요.”

“···!?”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반응한 건 시연이었다.

오죽하면 들이켜던 찻잔이 흔들릴 정도였다. 당사자인 설진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인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


엘리나는 짐짓 자그마한 탄성을 질렀다.

방금 자신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부탁을 하는 것에 영 익숙하지 않은지라···.”

“이, 이런 부탁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잠시 말이 샜군요. 그러니까, 제 말은 정말로 같이 다녔으면 한다는 겁니다.”


정말로 같이 다녔으면 한다고?


말을 정정한 엘리나였으나 설진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심지어는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도.


한 번 정정했음에도 설진이 이해하지 못한 기색을 보이자 엘리나는 난감하다는 듯 쓰게 웃었다.

쓰게 웃으며 흠흠, 한 번 목을 가다듬는 시늉을 했다. 일순 이목이 모인 찰나 엘리나는 재차 말을 이었다.


“제게 있어 변화는 설진을 통해서였습니다.”


변화.

정확히는 설진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


“교회의 악행이 벌어지고 있는 던전을 찾은 것도, 비리를 캔 것도, 나아가 교회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모조리 설진 덕분이었지요.”


그렇게 설명한다면 맞았다. 교회의 세력을 일일이 제거한 것도, 교황 요한을 죽인 것도 설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저는 그 변화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해냈다는 성취감도, 교회에게 타격을 입혔다는 쾌감도 전부 설진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거에요.”


엘리나는 변화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모조리 설진에게서 온 것이다.


“제게 행복은,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설진.”


엘리나에게 있어 행복은 살아있음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변화함으로써 삶을 느끼고, 삶을 느낌으로써 행복을 겪는다.


그러니까.


“제게 변화를 가져다준 설진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일주일, 아니. 그보다 더 짧아도 좋으니. 함께 밖을 돌아다녀 주지 않으실는지요.”


함께 밖으로.

변화를 가져다준 당신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준 당신과 함께.


설진과 함께 밖으로.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함께 돌아다녀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조금만이라도 좋으니···.”

“뭐에요. 그런 말이었어요?”


그제야 엘리나의 말뜻을 이해한 설진은 풋, 하고 웃었다.

동시에 아직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물도 되지 않은 소녀. 이 세상에서 엘리나는 성인일지라도, 설진의 세상에서 엘리나는 아직 소녀였다.


그런 엘리나가 같이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는 모습이.

밖으로 나가 놀아달라고 하는 모습이 못내 귀엽고 웃겨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 되나요?”


그 모습에 짐짓 불안감을 느꼈는지 엘리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흐려지고, 뚝뚝 끊기는 모습이 꼭 강아지를 보는 듯했다.


부끄러움과 쑥쓰러움이 교차하고 있는 강아지.

실제로 엘리나의 양쪽 볼이 붉게 물들었다. 올린 입꼬리를 내리고, 웃음을 멈춘 설진은 엘리나에게 다가갔다.


스윽.


“···?”

“그거,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엘리나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채, 읊듯이 말을 이었다.


“모든 게 끝났으니까. 더는 클리어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엘리나랑은 꼭 같이 놀아보고 싶었거든요.”


설마 엘리나가 먼저 그렇게 말해줄 줄은 몰랐지만요.

말을 마무리한 설진은 재차 웃음을 띠었다.


조금은 얼떨떨한 듯 입을 살짝 벌린 엘리나가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사람의 기분이 하늘이라면, 아마 지금쯤 낮과 밤이 두어 번 바뀌었겠지.


엘리나의 얼굴에서 기쁨이 스쳐나간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못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도리 저은 시연과, 어색하게 웃은 설진은 덤이었다.


집무실의 벽면. 창문은 닫았기에 바람이 들어오진 않으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더 청명해 보였다.

창문 밑 화원은 오색을 틔워내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엘리나와의 첫 재회는 함께 외출을 약속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다시 재회가 시작될 터였다.

언제 만나도 즐겁고 행복한 재회가.


“어디로 가 볼까요? 저는 잘 모르니까, 엘리나가 정해줘요.”

“그럴, 게요. 네, 열심히 정해 올게요.”


하늘이 청명했다.

오색 꽃잎이 아름다웠다.


좋은 날이었다.


* * *


청명한 하늘 아래, 둘은 바깥을 돌아다녔다.

어디든 좋았다. 배경이 멋져 관광하기 좋은 곳도 좋았고, 공연하고 있는 마술사를 보는 것도 좋았고, 간단한 게임을 하는 곳도 좋았다.


중간중간에 엘리나가 정체를 들킬 뻔했을 때도 있지만, 아무튼.


“모자, 더 푹 눌러써야 하지 않겠어요?”

“이걸로는 부족해 보일는지요. 으으음···.”


모자를 더 눌러쓰는 편이 좋지 않겠냐는 말에 엘리나는 고민의 기색을 띠었다.

고민하기를 한참, 마침내 그녀는 손가락을 위로 가져다댔다.


“인지 부조화.”

“어?”


대뜸 제 얼굴을 부조화시켜 가려버린 엘리나를 보고서 설진은 당혹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나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이제 됐을 겁니다.”


‘이제 문제없지?’라는 의미를 자랑스레 피력했다.


그새 마검사로서의 실력이 늘기라도 한 건지.

자연스럽게 인지부조화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수준급이었다.

역시 재능은 재능인가 싶기도 했고.


타인의 재능에 가장 감탄하면 안 되는 인간은, 엘리나의 마법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마법을 사용한 것에 곤란함을 느꼈다.


이대로 엘리나가 남은 여생을 보내게 놔뒀다간.

문제가 있으면 마법으로 해결한다는 인식을 심어뒀다간···.


“엘리나.”

“네? 왜 그래요 설진.”


아주 조금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마법. 너무 무턱대고 쓰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설진이 할 일은 조금 더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놀면서, 그리고 조언하면서.

설진은 바깥을 걸었다.


오늘의 하늘은 개어 있었다.

여전히, 좋은 날이었다.


원해 바라않던 해피 엔딩이란 것이 사무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 전환 공지입니다. 22.09.26 210 0 -
공지 제목, 소개글 변경 공지입니다 21.12.09 643 0 -
300 300화(완) 23.01.12 346 6 12쪽
299 299화 23.01.11 180 3 11쪽
298 298화 23.01.10 172 3 11쪽
297 297화 23.01.09 165 3 12쪽
296 296화 23.01.08 164 3 11쪽
295 295화 23.01.06 169 3 11쪽
294 294화 23.01.05 154 4 11쪽
293 293화 23.01.04 161 3 11쪽
292 292화 23.01.03 154 3 12쪽
» 291화 23.01.02 159 3 11쪽
290 290화 22.12.31 170 3 11쪽
289 289화 22.12.29 159 3 12쪽
288 288화 22.12.28 167 3 12쪽
287 287화 22.12.27 156 3 12쪽
286 286화 22.12.26 163 3 11쪽
285 285화 22.12.25 174 3 11쪽
284 284화 22.12.22 180 3 12쪽
283 283화 22.12.21 181 3 12쪽
282 282화 22.12.20 169 3 12쪽
281 281화 22.12.19 167 3 11쪽
280 280화 22.12.18 168 3 12쪽
279 279화 22.12.17 169 3 11쪽
278 278화 22.12.15 178 3 13쪽
277 277화 22.12.14 174 3 11쪽
276 276화 22.12.13 172 3 11쪽
275 275화 22.12.11 178 3 12쪽
274 274화 22.12.10 167 3 11쪽
273 273화 22.12.08 181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