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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3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12.19 17:4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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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글자
11쪽

281화

DUMMY

오른.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 당시, 처음으로 만난 악역.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반란군. 혈연 봉건제의 한계라는 가당치도 않은 이념 아래 나라에 반기를 든 귀족 마법사였다.


‘이게 뭔···.’


슌에게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오엘은 과거의 시대를 직접 겪은 경험자라고.


그리하여 암울한 과거를 바꾸기 위해, 염원석을 기동시키기 위해 탑에 잔재하는 모든 여주인공을 죽이려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한 정체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해봐야 왕국이나 황실의 기사, 혹은 연나비의 엘프 중 하나라 생각했다.


‘오엘이 오른이었을 줄은-.’


설마 오엘의 정체가 플레임 왕국 반란군의 수장 오른이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정체에 설진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오엘, 아니. 오른의 목적은 탑을 벗어나 회귀해 과거를 바꾸는 것.


하지만 탑에서의 오른은 반란군이었다.

반란군이, 어찌 왕을 위해 회귀를 결심한 건지.

뒤늦게나마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건지.


‘뭐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른?”

“···네놈은 대체 무엇인가.”


설진은 눈앞에 있는 오른을 바라보았다.

그때와 같았다. 게임에서도, 탑에서도 본 오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반란군께서 대체 뭘 보고 회귀를 결심한 거지? 설마 뒤늦게라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셨나?”

“···.”

“과거로 회귀하기 위해 탑에 잔재하고 있는 진짜를 죽인다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하나, 오른?”


그래서 물었다.

떠오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입을 열었다.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단지 두려움이 들이찬 오엘의 표정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입술만이 그의 침묵을 긍정할 뿐.


의문에 대한 답을 쉽게 찾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설진은 한숨을 내쉬며 마력 단검을 꺼내 들었다.


상황은 일행 측이 유리했다.

설진 하나만으로도 오른에게 치명타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는데, 여주인공인 연화와 여주인공급인 설야마저 가세했다.


더불어 시연과 채린, 엘사임까지.

루미네르와 찬우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현재 전력만으로도 오엘을 죽이는 건 충분하고도 남았다.


“반란군··· 이라.”

“···?”


팽팽해진 상황이 폭발로 치닫을 즈음, 오엘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 가라앉은 음성이 숲 지대를 나지막이 두드렸다.


“지금은 그런 꼴이었나.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네만.”

“설마 지금 와서 반란을 부정하는 건 아니겠지.”

“아닐세. 반란 자체는 긍정하고 있네. 단지 그게 자네가 알고 있는 시기와 엇갈린 것 같기에 그런 것이네.”


시기와 엇갈렸다.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말.


서로의 생각과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았다.

교차하지 않고서 영원토록 이어지는 선들을 보는 듯했다.


“으음. 자네, 탑이 보여주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과거.”

“맞네. 과거일세. 실제로 있었던 일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런데 왜 반란을-.

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설진이 입을 열려는 찰나, 오른의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탑은 과거를 보여주나, 그 목적이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세. 오히려 그 반대지. 플레이어는 과거를 바꾸어야 한다네.”

“잠깐만요!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영주 연화. 당신은 모르는 이야기. 알되 몰라야 하는 이야기라네.”


탑, 과거.


알지 못하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연화가 의문을 표했다. 하기야 연화의 입장에서 그런 단어는 전부 생경하게 느껴질 터였다.


자신이 이미 한 번 죽었다는 것조차 모를 테고.

죽은 육신에서 옅은 혼만을 건져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를 테지.


“연화 님.”


무시하고 넘어갈까도 싶었으나, 설진은 입을 열었다.

오엘이 죽는다면, 아니. 죽지 않아도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이야기다.


탑의 인물이 실제 인물과 아무런 관련 없이 만들어지기만 한 것이라면 모를까, 연화와 설야는 옅게나마 본체의 영혼을 품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으니, 밝히는 게 옳을 것이다.


“비단 연화 님만이 아닙니다. 설야도, 나지리아도, 엘사임도. 모두 죽은 인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인물이죠.”

“그 과거의 잔재 중 몇몇의 혼을 회수해 구현한 것이 바로 탑일세. 탑에 들어오는 외부인들은 전부 플레이어라 일컫고 있지.”

“참고로 저기 있는 오엘, 아니. 오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른은 플레임 왕국의 귀족이었으나, 모종의 경위로 플레이어가 되었죠.”


그렇게 생각하고서 입을 열었다.

중간에 오엘이 부연 설명을 첨한 걸로 봐서, 완전히 싸울 생각을 버린 듯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적의로 시작했던 감정은 두려움에서, 두려움에 정착했던 감정은 점차 체념으로 변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이봐. 인간. 방금 그 말이, 나랑 언니가 이미 죽었다는 게···.”


설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서도 부정하고 있는 건지.


설진은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꼬아 설명하는 것보다, 한 마디로 일축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저와 제 일행, 그리고 저기 있는 오엘을 제외하면 모두가 귀신이라는 겁니다. 죽어서 저승 비스름한 곳으로 온 귀신이요.”


중세 시대는 사후 세계와 귀신이란 주제가 성행하던 시대였다.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알아듣기 편할 것 같아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 말했다.


조금이지만 금이 간 얼굴이 보였다. 연화만이 아닌, 설야도 마찬가지.

오엘을 죽이겠다는 적의는 옅어진 지 오래였다.

지금 그들을 채우고 있는 건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래, 그래서. 시기가 엇갈렸다느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지.”

“간단하네. 탑에서 벌인 반란은 내가 한 것이 맞지만, 과거에서 나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네. 오히려 플라임을 도운 충신이었지.”

“재밌는 소리네. 신빙성이 있어서 더 열받기도 하고.”


신빙성은 확실히 있었다.

슌의 말. 정확히는 진정한 의미로의 구원을 위해 과거 회귀를 바란다는 오른의 목적을 알게 된 순간부터 어느 정도 근거는 존재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자가 플라임을 해할 이유는 없으니까.

신하된 자로서 왕녀를 해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럼 플레임 왕국은 왜 멸망한 건데.”


오른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면, 플라임 왕국은 왜 멸망한 것인가.


아직 그쪽 의문이 남아 있었다. 오른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의 말을 들은 순간 새로이 생긴 의문이었다.


오엘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반란이 일지 않았음에도 플라임 왕국은 멸망했다.


전혀 일관성이 없는 주장이지 않나.

이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갑작스러운 타국의 침략이 일었다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쇠퇴했다는 색다른 개소리를 펼쳐야 했다.


“나는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네.”

“하?”

“내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을 뿐.”


그러니까, 탑이 아닌 과거의 세계에서는.

오른의 반란이 아닌 다른 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그리하여 플라임 왕국이 쇠퇴하고 종래에는 멸망했다고?


“내가 반란을 일으킨 건 온전히 탑에서만이네. 탑에서 과거의 사건을 무기 삼아 휘둘렀을 뿐, 과거에서 멸망을 주도한 것이 아니네.”

“···과정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반란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법 제한법이 발의되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다시 봉기를 일으켰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타국의 침입으로 플라임 왕국은 멸망했다.

오른은 그렇게 말했다.


“헤임 제국은 요한의 지배 아래 놓였고, 연나비는 연화와 설야의 싸움 끝에 자멸했지. 그게 실제로 일어난 과거의 이야기일세.”

“자멸?”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설야가 반문했다.

하기야 과거에는 자멸했을지언정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연화와 설야는 관계를 회복했고, 더 나아가 엘프와 다크 엘프의 화합을 추진하고 있었으니까.


“쯧. 생각해 보게. 거기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세계수에 가지 않았더라면, 거기서 기억 구슬을 찾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서로 싸우고 있었을 걸세.”

“···.”

“방식이 다른 거네. 방식이. 나는 자네들을 죽여 염원석에 바친 뒤, 소원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려 했을 뿐이고. 저쪽 플레이어들은···.”


말하다 말고, 오른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러던 중 뭔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멎었다.


“···이봐. 플레이어.”

“설진이다.”

“그래, 설진. 염원석을 기동시키기 위해서라면 둘이나 되는 여주인공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탑의 100층을 클리어하면 염원석이 주어진다.

염원석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여주인공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렇다면,


“너는 무슨 소원을 위해 탑을 오르고 있고, 또 누구의 ‘목숨’을 바칠 생각인가.”

“···.”


설진은 잠시 주춤했다.

염원석의 발동 조건.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일행과의 마찰조차 있었을 정도다.

어찌어찌 미루고 미뤘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후우.’


많은 상념과 생각이 지나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생각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뭐,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 단순히 게임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한 건 아니야.”

“그런가. 그것참 다행일세. 적어도 내가 악은 아니구만.”


아마도 오엘은 설진을 보고서, 제 가치관에 의문을 품은 모양이었다.


오엘이 보기에 설진은 아무런 대가 없이 에피소드의 해피 엔딩을 위해 노력하는 플레이어.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리하여 오엘 자신이 악인 양 착란이 생긴 것도 무리는 아닐 터.


“근데 슌이 그러더라고.”

“···.”

“널 죽이면 염원석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고.”


다만 설진은 그리 선량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대가 없이 선만을 부르짖는 용사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주인공의 목숨을 바쳐 고통 없이 자살할 계획을 세웠다. 과거, 설진은 자살을 바랬으나 정작 용기가 없어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


탑의 인물이 실존인물이었음을, 지금도 어느 정도 혼이 남아있음을 확인한 순간 설진은 망설였다.

자신의 소원을 위해 남을 희생시킬 수 있겠느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법한 의문을 가졌다.


그런 와중 슌이 말했다. 최종 보스를 죽이면 여주인공을 희생하지 않고도 염원석을 기동시킬 수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어찌어찌 우연으로 맞물린 결과였다. 설진의 행동이 선처럼 보일지언정, 실상은 그저 우연으로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생긴 것뿐이었다.


“뭐, 피차 궁금증은 거의 다 풀었으니까···.”


싱긋.

설진이 웃었다.


이번 전투 중, 가장 진실된 웃음이었다.


“죽어줄래?”

“···저항한다면?”


그 말에 설진이 답했다.


“죽여야지.”


간결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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