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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1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9.02 21:30
조회
366
추천
3
글자
12쪽

212화 - end, 이야기 속 세상(3)

DUMMY

그녀가 다시 말문을 연 건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여전히 창문은 바람을 부르고 있었다. 밤이 되지 않은 오후였으며, 달이 찾아오지 않은 하늘이 구름을 칠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후우···.”


시작은 숨이었다.

호흡이라기엔 불안정하고, 한숨이라기엔 감정이 섞이지 않은.

그런 숨이었다.


“현재로선 착잡한 마음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이 한순간에 부정당했다. 걸음을 내딛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심지어는 숨을 쉬는 것조차도.


모든 것이, 모조리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녹아든 일상과 생활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기분일 터.


그 사실을 알기에 엘리나는 숨을 내쉬었다. 다시 내뱉은 숨은 호흡보다, 한숨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눈동자가 떨리듯 움찔거렸다. 엘리나는 손을 쥐락펴락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발을 움직여 바닥을 밟았다.


“이것도, 이것도 모두···.”


가짜이고, 거짓되고, 의미가 없다 못해 헛된 일.


이야기 속 세계의 등장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캐릭터는, 그중에서도 엘리나는, 또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황실과 교회 간의 세력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전쟁을 통해 해결이라도 할 수 있지, 이건···.


“뭘 해도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짜니까요.”


조작된 세계. 트루먼 쇼보다 더 가짜이고, 모조(模造)인 세계.

그런 세계 속에서 엘리나는 깨달았다. 가짜는, 가짜임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죽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엘리나의 눈길이 옮겨 갔다.

왼쪽 선반. 그곳에는 자그마한 단검이 있었다.


천 위에 놓인 단검 끝에는 녹빛 액체가 발려 있었다.

액체의 정체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필요할 리가 없었다.

생각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직관적이었으니까.


저건 독이었다.

그것도 사람 하나를 능히 죽일 수 있을 만큼 지독한 독.


엘리나는 진심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부정당했는데 살아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차피 가짜니까, 사람들을 이끌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나가 가짜이면, 다른 모든 것도 가짜가 된다.

아넬도 아메르도 리아엘라도 나타벨도.

헤임 제국이라는 이름의 나라도, 영토도.

플레임 왕국도 연나비도.


허상을 위해 헌신할 정도로 허상은 바보가 아니었다.

차라리 끝내버리는 게 더 낫겠다고, 허상은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죠··· 설진 님.”


그러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제국을 떠난 플레이어를 보니 그럴 수가 없어졌다.


“설진 님은 황실과 교회의 분쟁이라는 이야기 속 황실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죽으면 설진 님도 분명 좋은 생각을 품을 순 없겠지요.”

“가짜가 품은 가짜 감정이라도 되는 걸까요.”

“설진 님이 슬퍼하는 모습을 떠올리자니, 죽고 싶지 않더군요.”


집무실 의자에 앉은 엘리나는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옆에 덩그러니 놓인 깃펜을 집어 들더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진 님.”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정리하듯 종이에 글을 남겼다.

거짓된 생각, 가짜 몸, 허상으로 얽힌 세계···.

흡사 마인드맵이라도 보는 것 같았다. 엘리나는 지금 당장 떠오른 단어를 종이에다 옮기며, 막무가내식으로 생각을 쏟아냈다.


쏟아낸 단어는 점차 결론을 도출했다.

이제껏 있었던 일을 한데 엮어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엘리나에겐 이 과정이 더없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저는 이제껏 가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열여덟에 이르는 지금까지.

그녀는 가짜의 삶을 살았다. 그간 있었던 일은 진실이되 거짓이며, 그저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래야만 했던 이야기에서 변수가 일어났다.

바로 설진과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개입함으로써.


“진짜를 만난 후 생긴 가짜의 생각은 ‘진짜’인 걸까요?”


사각- 사각-.


그리 말한 엘리나는 다시금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사각-.


왼쪽에는 가짜라는 소제목을 붙인 뒤 엘리나의 이름을.

오른쪽에는 진짜라는 소제목을 붙인 뒤 설진의 이름을.


두 이름이 서로 선을 이뤄 합쳐졌다.

여태껏 가짜에 더 가까웠던 엘리나의 이름이, 조금이지만 진짜에 다가갔다.


“그토록 격렬한 감정을 느낀 건 설진 님을 만났을 때가 처음이었는데···.”


설진을 만난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유례없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교회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되자, 억눌리고만 있었던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완전히 잘못 짚고 있었다.

이건 희망이나 바람 같은 감정이 아닌, 진짜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아니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저게 과연 진실인지도 잘···.”


생각한 것들을 전부 종이에 쏟아낸 엘리나는 다시금 말을 뱉었다.

이번엔 망설임이었다.


가짜는 진짜를 보고 난 이후 여태껏 겪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에 가까운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또한 착각일지도 몰랐다. 만들어진 감정이 순차적으로 열람되어, 캐릭터의 몸에 깃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


가짜 캐릭터와 진짜 플레이어.

그 사이에 대해 고찰한 결과를 말하던 엘리나의 입이 돌연 멎었다.


애초에 너무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제야 엘리나는 지금 자신의 말이 두서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각이··· 후우. 머리가 조금 아프네요.”


지금 엘리나가 한 이야기는 전부 고차원적인 이야기였다.

비유하자면, 2D가 3D에 대해 거론하는 격.

평면이 입체를 떠올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더 나아가 입체에 대해 추론하고, 나름의 가설과 결론을 내린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머리가 아프려야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한 것이었다. 규격 외의 범위와 세계를 인식했는데, 아프지 않는다면 그건 오히려···.


“···.”


엘리나가 머리를 부여잡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두통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모양. 손을 뻗어 물병을 잡은 그녀는 절반에 가까운 물을 넘기고서야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다시 입이 열렸다.

앉았던 몸이 재차 일어섰다. 저벅-. 왼쪽 선반으로 걸음한 엘리나는 손을 뻗어 예의 단검을 집었다.


독이 묻어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잡은 단검에 마력을 흘려보내어, 발린 맹독을 전부 제거해 냈다.


“말했듯이, 지금 당장 죽을 생각은 없습니다.”


독기를 씻어낸 단검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그것만으론 모자랐는지 천으로 몇 겹을 두르고서야 엘리나의 손이 멎었다.


“그저 설진 님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벅, 저벅.


엘리나 또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벌써 몇 번을 왔다갔다하는 건지.


격한 움직임과 이동 빈도가 유독 눈에 띄었다.

설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짜인 걸 깨닫고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몸을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서 알게 모르게 절박함과 급박함이 느껴졌다.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염치불고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요.”


엘리나는 앉은 자리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들었다.

아니, 종이가 아니었다.

노트였다. 그것도 꽤 두께가 되어 보이는 두꺼운 노트.


“저는 앞으로 일기를 쓸 겁니다.”


노트의 첫 페이지를 넘긴 엘리나가 말했다.

완전히 새것이었는지 공책을 채우고 있는 건 허여멀건 공백이었다.


사각-.


날짜와 시간, 그리고 날씨.

이윽고 제목을 붙이길, 1일차라는 단어를 크게 기입했다.


물론 황실에도 기록 도구는 있었다.

역사를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기록관도 존재했다.


다만 그들은 큼지막한 사건만을 다뤘다. 거기에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은 추호도 넣지 않는지라, 그저 역사책의 한 페이지처럼 기록될 뿐이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그 일에 어떻게 반응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역사를 요약하기보단 제 개인적인 소견을 쓸 겁니다.”


그러나 엘리나가 쓰겠다고 말한 일기는 달랐다.

사사로운 감정을 넣지 않는 기록관과는 달리, 오히려 감정을 넣겠다고 선언했다. 개인적인 감정과 느낌과 소견을 넣어 쓰겠다고 말했다.


“플레이어가 없는 이야기 속 세계.”


그런 세계 속, 엘리나는 한 가지를 실험하고자 했다.


시간의 흐름은 어떠한지, 존속될 수는 있는지.

그저 플레이어가 다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기억만을 주입 당한 채 캐릭터가 등장하는 건 아닌지.


“그걸 확인하기 위한 일기입니다. 이 일은 극히 비공식적으로 진행될 것이며, 저 또한 비밀을 엄수하겠습니다.”


추후 다시 설진과 만나게 되었을 때, 일기의 내용은 엘리나의 결론 도출을 도울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의문점에도 답을 찾을 수 있을 터.


“···.”


그렇게 설명한 엘리나는 깃펜을 내려놓았다.

이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하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탁입니다. 설진 님.”


입가가 모아졌다. 웃음을 짓고 있되 그건 웃음이 아니었다.

쓴웃음이었고, 선웃음이었으며 기쁨 없는 미소였다.


“이미 저는 설진 님에게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복에 겨울 정도로 행복을 느꼈고, 덕분에 분에 넘칠 정도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지요.”


이건 어디까지나 스토리의 내용이 아닌, 엘리나의 개인적인 부탁.

즉, 플레이어가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해피 엔딩을 만든 이야기였다.

플레이어가 다시 개입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엘리나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들을 필요도, 들을 이유도 없는 부탁이기에.

자신이 지금 얼마나 허황된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단순히 제 개인적인 욕심입니다. 제가 진짜가 아닌 가짜인 이상, 그럼에도 얼마만큼이나 나아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그런 욕심.”

“한순간의 꿈이라 치부하셔도 좋습니다. 그저 지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넘겨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설진 님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고마워하겠지요. 지금도 그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바람이,

웃음이,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이 시점에서 설진은 직감했다.

50층. 엔딩 스테이지의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머잖아 끝날 터였다. 헤임 제국 에피스드와 엘리나는 이제 넘겨두고, 다음 에피소드인 연나비에 집중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연나비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이미 헤임 제국은 만족스러운 결말을 이뤘다.


뒤돌아볼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다음으로 넘아가, 다른 이야기를 클리어해야 했다.


연나비에서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많았다. 그곳은 엘프들의 세계. 그리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내분의 세계.

비운과 허탈함만이 가득한 흑백 세계. 그곳이 바로 연나비였으니.


그러니까, 이제 헤임 제국은 끝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그런데, 왜.


‘···행복.’


엘리나, 왜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지.

괜히 착잡한 심경이 들었다. 복잡함이 떠밀리듯 다가왔다.


설진은 엘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 이야기라는 건 결국 타인의 의해 만들어진 스토리였다.

그 스토리 속에 갇힌 인물들이 이뤄내는 이야기였다.


인물이, 자신이 인물임을 깨달은 시점에서 이미-.

완전무결한 행복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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