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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79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12.21 17:42
조회
181
추천
3
글자
12쪽

283화

DUMMY

툭.


오른의 시체가, 정확히는 목이 베인 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유리가 깨져 흩날리듯 검은 마력의 조각이 파편처럼 내려앉았다.


흑마법을 상징하는 흑색에 잿빛이 섞여들었다. 이젠 파편이 아니라 편린이라 불러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작은 마력이었다.


“···.”


오른의 사망 사실을 선고하고 멈춰버린 시스템 창.

지금도 흩어지고 있는 잿빛 기운.

그리고 그 잿빛 사이에 남겨진 자그마한 구슬.


“설진 님. 저건···.”

“기억 구슬이네요. 유그드라실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오른의 마력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을 띤 기억 구슬이 떡하니 놓였다.

설진은 구슬 쪽으로 손을 뻗으려다, 이내 무엇인가를 깨닫고선 회수했다.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이 기억 구슬은 그냥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그 말씀은···.”

“도움이 될 겁니다.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설진이 오른의 과거를 보는 것보다, 연화가 보는 편이 낫겠지 싶었다.

대강 들어 알고 있는 설진과는 달리 연화는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으니.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워서, 응당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은 탓이다.


시간이 지나 진정된 후 기억 구슬을 열람한다면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설진은 연화에게 구슬의 회수를 맡겼다.


“···그럼.”


그 말이 나온 찰나, 연화가 손을 뻗었다.

지금 몇몇을 제외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다지 지치진 않았다.


육체를 한계까지 몰아낸 것도 아니요, 몸을 희생에 누군가에게 헌신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전투가 일었고 큰 피해 없이 승리한 것이다.


우웅-.


짧은 진동과 함께 황갈색의 마력이 퍼졌다. 일종의 선처럼, 굵은 실을 만들어낸 연화의 마력이 구슬을 감싸며 되돌아왔다.


품에 구슬을 넣은 연화는 다시금 오른을 바라보았다.

시체가 있다면 건지려 했으나, 죽음 직후 곧바로 사라졌기에.

그랬기에 시체 회수는 불가능했다.


“설진아, 괜찮아?”


연화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시연이 말을 걸어왔다.

허업-. 호흡을 고르며 다가온 시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기야 오른이 완전한 악이 아님을 안 지금, 그 자세한 내막을 안 지금 입맛이 씁쓸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죽여야 할 존재기에 죽인 것에 후회하지 않기도 했고.

대척점에 서야 할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다. 격류해야 할 두 요소가 섞여들어 어우러졌다.


“괜찮아요. 이제 와서 괜찮지 않을 이유도 없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다만···.”

“다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설진은 뜸을 들였다.

시연의 표정은 진지했다. 무슨 말을 하든 들어주겠다는 듯했다.


하지만 설진이 내뱉을 말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하나.


“조금 쉬고 싶네요.”


연화가 처음에 말했듯,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따름이다.


“시스템 메시지도 오른을 처치했다는 말 이후 아무런 반응이 없어요. 일단 시간을 두고, 휴식도 취하면서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어, 그래. 역시 그렇겠지?”


그 말을 끝으로 시연은 물러났다.

물러서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채린과 나지리아는 사제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 움직였고,

엘사임은 오른이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연화와 설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터였다. 알고 싶은 것도 굉장히 많을 테고.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다면 자세히 설명해야 하겠지. 최종 보스를 죽여버린 마당에 더 이상 숨길 이유는 없었다.


‘후우.’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옅은 숨결이 입술을 따라 삐져나왔다.


‘···오른.’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른은 플레이어였다.

탑은 플레이어가 해결할 수 없는 목표를 주진 않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선사하곤 했다.


그리고 오른은 그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다.

다름 아닌 같은 플레이어인 설진에 의해서.


‘탑은 뭘 하고 싶은 건지.’


플레이어에게 과거를 바꿀 기회를 준다고는 하지만, 이런 씁쓸하고도 시큼한 결말이 정말 탑이 선사하고자 하는 기회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알 수 없기에 신물(神物)이라는 거겠지.


만일 신이 있다면, 분명 전능하지 않으리라고.

한 번 품었던 생각을 다시 품었다. 그때보다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설진아. 준비 끝났어. 돌아가자.”

“···.”

“설진아?”


설진을 부른 시연이었으나, 대답이 없자 서서히 다가왔다.

툭. 어깨를 건드니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이때까지 자신이 상념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달은 설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러던 중 옆에 있던 시연을 멀거니 바라보더니만,


와락-.


“설진아?”


급작스레 안겨들었다.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붙인 설진은 짧게나마 눈을 감으며 시연의 등을 감쌌다.


“이러고 있어 줘요. 조금만요.”

“···그래, 얼마든지.”


시연은 설진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부하긴커녕, 외려 환영한다는 듯 똑같이 팔을 뻗었다.


시연은 기사였다. 보통의 기사라면 전시 상황에 갑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딱딱해야 했다. 피부에 차가움이 스며드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시연은 그러지 않았다.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 당시, 그때 플라임에게서 얻은 ‘조력의 반지’를 통해 갑옷을 입지 않고서 방어력을 얻는 게 가능해졌다.


시연은 지금 사복 차림이나 다름없었고, 그래서 차가움보다는 부드러움이 스며들었다.

피부에 피부가 덧씌워졌다. 안정감이 들었다. 바깥이었지만, 집에 있는 것만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네.”

“헤임 제국 때요?”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설진의 등까지 내려앉고,


“내가 고백한 뒤로 층 클리어에 전념하느라 연애질은 뒤로 미뤄뒀었는데.”

“···.”

“이제 와서 안기는 거구나. 대강 모든 게 끝난 이후에.”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에요.”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대강이라는 거 아니야.”


축축히 젖은 몸이, 피가 묻은 옷이 조금이나마 맞물렸다.


“이제 오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죽었지. 더 이상 층을 누비지 못할 거야.”


오른은 죽었다.

다만, 인간의 기준이 아닌 하늘의 기준에서 죽음은 소멸이 아니다.


“방금 그건 아마도··· 영혼을 회수하는 과정일 거야.”

“시체가 사라진 거요?”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탑이 혼을 통해 과거를 구현하는 것처럼, 지금부터는 오른도 그 과거의 조각이 되어 부활하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설진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설진이 알고 있는 최종 보스 오엘은 없었다.

플레임 왕국 귀족 오른만이 남아 반란군과 맞서 싸우게 될 뿐.


하지만.


“그건 살아있는 걸까요.”


무수히 많은 플레이어가 탑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세 개의 에피소드를 보았을 것이다.

말인즉 에피소드의 시간선은 회귀한다는 의미가 된다.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진행할 때마다 시간은 감아진다. 돌려져 처음으로 돌아가고, 그 상태에서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비극을 재경험한다.


정말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라면-.


설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시연이 설진의 몸을 더욱 세게 앉았기 때문이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지금은 생각하지 마.”


전투가 피로가 풀리기도 전이다.

정신적으로 꽤 많은 타격을 받은 설진이다.


지금 상태에서 생각을 이어간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그걸 인지한 시연은 설진의 입을 막았다. 생각하는 건 지금 이 장소를 벗어난 이후. 적어도 정신이 회복되었을 때부터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냥 안겨 있어. 뭣하면 누워도 되고.”

“누우면 어떻게 돌아가요?”

“후훗. 누나가 들어주기라도 할게.”


기사니까. 갑옷도 입어줄까?

농담조로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서서히 맑아지는 것 같았다.


설진은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웃기로 했다.

최종 보스가 죽은 날이었다. 탑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해결된 날이었다.


더 이상 일행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으니.

아무리 막으려 들어도 작은 걸림돌조차 되지 못하니.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오늘만큼은···.


“···.”


감긴 눈이 떠졌을 때, 설진의 몸은 연나비의 성으로 이송된 후였다.


* * *


“저기, 시연 님? 설진 님은···.”

“잠들었어요. 신체에 무리가 간 건 아니지만, 오른을 죽이고 난 이후 정신이 조금 타격을 입었나 봐요.”

“다친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백 명이 넘는 포위망을 두고서도 멀쩡히 살아남은 애인데, 고작 이 정도로 다칠 리 없어요.”


플라임 왕국 에피소드 당시.

그때 설진은 무수히 많은 적을 앞에 두고서도 죽지 않은, 외려 싸우면 싸울수록 신체 상태가 회복되는 기예를 펼친 적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린 시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연화가 안심하라고 한 말이었다. 다행히 잘 먹혀들었나 보다.


“후흣. 정말로 그럴 것 같아서 무섭네요.”

“에? 정말로 그런 건데···.”

“···.”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준비는 끝났으니, 돌아가도록 해요.”


이어진 침묵이 끝을 고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숲을 떠날 채비를 마치고, 의도치 않은 결전을 성황리에 마무리 지으며, 그들은 연나비의 성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니. 나는 정토로 돌아갔다가 올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럴래? 뭐라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겠네.”

“으으, 그러게.”


다만 설야만은 예외였다.

애초 목적지는 다크 엘프의 영토인 정토였다. 그곳에서 설야와 연화의 화합을 보여줌으로써 결속력을 다질 생각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오른을 만나고, 싸우고, 또 어찌어찌 설진의 결정적인 공세로 죽이고···.


“지금은 미뤄야겠지만, 다음에 찾아갈게. 오른이 죽었어도 일단은 찾아가야겠지. 찾아가서, 화합을 선언해야겠지.”

“응. 부탁해 언니.”


자매의 짧은 대화 이후 설야는 몸을 돌렸다.

이리하여 두 자매는 잠시 서로에게서 이탈의 시간을 가졌다.


“연화 님.”

“네, 시연 님.”

“저희 있잖아요. 같이 생사도 오간 사이고, 오래도 봤는데. 아직도 님을 붙여서 부르는 건 어색하지 않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럼, 말 놔도 돼요?”


연나비의 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시연은 연화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말을 놓자고.

연화는 잠시 생각하더니만,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래? 그럼 그냥 연화라고 부를게.”

“네. 저도 그러는 편이 낫네요.”


다만 시연은 연화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지만, 연화만은 그러지 않았다.

존댓말을 고수하는 건 여전했다.


으음, 짧은 침음을 삼킨 시연이 머리카락을 몇 번 빙빙 돌리며 말했다.


“연화도 편하게 대해도 되는데.”

“저는 이게 편해서요. 어릴 때부터 해온 습관 같은 거라.”

“설야에게는 말 편하게 하면서?”

“아으, 그건 언니 동생 사이라서···.”


연화의 어투는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오던 습관과도 같은 것.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었다.


“그럼 뭐, 하는 수 없고.”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시연.”


다만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시연 또한 웃었다.


둘은 그렇게 돌아갔다.

채린과 찬우, 그리고 루미네르를 들쳐멘 나지리아와 엘사임.

그들과 함께,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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