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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36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3.01.04 16:50
조회
161
추천
3
글자
11쪽

293화

DUMMY

“설진, 그대는 무엇을 위해 모험가를 하고 있는가.”


과거, 루이가 란에게 물은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시 란은 과할 정도로 모험가 의뢰를 받고, 처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리고 정말로 인생의 전부가 맞았다. 란에게 있어 돈은 어머니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동아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나 설진은 달랐다.

애초에 지금 시기의 설진은 모험가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보가 공개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뿐, 그리하여 루이는 설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공개된 정보 자체가 없으니, 모를 수밖에.’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단기간에 B급 모험가로 승격했다는 사실만 공개되었으니.

별개로 다른 사실에 대해 알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터였다.


설진은 고개를 들어 루이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띤 흥미의 기색. 보통 귀족이라면 모험가를 자연스레 하대하기 마련인데, 루이의 표정에는 그런 기미가 묻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가득하다면 가득했지, 아랫것을 바라보는 눈은 아니었다.

적어도 모험가도 동일한 선상에 두고 본다는 뜻이겠지.


“무엇을 위해, 라.”


루이의 질문은 질문이었고, 대답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물음이 온 이상 답변해야 했다. 설진은 뭐라 답하면 좋을지 골똘히 고민하며 주변을 훑다, 시야에 들어온 플라임에 눈을 고정했다.


‘무엇을 위해···,’


기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변하지도, 바래지도 않을 그날의 약속이 있었으니.


적절한 답변을 정한 설진은 다시 시선을 틀었다. 밤이 까마득히 내려앉고, 불에 먹힌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적당히 인 바람이 불을 키워주는 윤활유 역할을 맡게 되었을 즈음, 설진이 입을 열었다.


“옛날에 지인과 약속한 게 있어요. 그걸 위해 하고 있는 거죠.”

“그 약속이 무언지 물어본다면, 그건 실례인가?”


설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때로는 대답하지 않은 것이 대답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니.


애초에 상황이 너무 기묘했다. 플라임과 약속을 했는데, 과거에서 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루이라도, 루이 로반델트라도 이상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 뻔했다.

그래서 설진은 약속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로 얼버무렸다. 설진이 더 캐묻기를 바라지 않음을 깨달은 루이는 차차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곳곳에 박은 교란석은 이제 아홉을 넘어갔다. 찬우와 채린이 각자 세 개씩 박아놓은 덕분이었다.


이제 땅에 심어야 할 교란석은 하나. 설진의 손에 들린 것이었다.

다시금 주변을 훑었다. 적당히 홈이 파인 장소가 있나 살피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는지 방향을 틀어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 뒤를 루이가 따랐다. 짧은 대화 이후 이뤄진 침묵에 목소리는 없었지만, 설진을 뒤따르고 있는 걸음 소리만큼은 간헐적으로 들려오곤 했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저 자리를 잡고 앉아, 퍼석거리는 땅을 파헤쳤다.


그렇게 몇 센티 정도를 파고 있으려니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루이였다. 그는 충분한 고민을 마친 듯 턱에 괴었던 손을 치우며 말했다.


“그 약속이란 건, 중요한 일인가?”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엄청 중요한 일이죠.”

“그런가. 그렇군, 누구에게나 중요한 약속은 있는 법이지.”


그리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설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안이 있다는 듯 턱을 까닥였다.


교란석을 파묻은 손을 털던 설진은 되물었고, 머잖아 답이 나왔다.

이미 한 번 봐서 알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장면이었다.


“나와 대련을 해보지 않겠나.”

“대련이요?”


대련. 자신이 루이에게 빙의했을 때, 란에게 제안한 것이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설진은 신기함을 느끼면서도 제안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루이의 제안은 어디까지나 대련이었다. 서로가 상처 입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합을 겨루기 위한 생결.

애초에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기 위해 온 지금 생사결을 펼친다면, 그건 그것 자체로 미친 짓이 아닌가.


“그래, 대결. 간단히 합을 나누자는 거지. 혹시 아는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지. 그리하여 각자가 지향하던 목표에 더욱 가까워질지.”


선의가 섞인 말이었다.

더불어 간단히 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다는 욕심이기도 했다.


검을 쥔 자로서 타인과 실력을 겨루고 싶은 욕구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루이는 이미 설진의 수준을 어림짐작한 상태.


“그대 같은 실력자와 한 번 겨뤄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린과 란, 그 이상이라고.

A급은커녕 S급 모험가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루이의 말에 설진은 알겠다며 답했다.


“좋네요. 그럼 잠시 손을 씻고 올게요.”

“시원시원해서 좋군. 알았다. 그럼 난 저쪽에 가 있지.”


마지막에 영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또 별개의 이야기.

하기야 설진의 수준은 왕실을 전부 아울러도 최상, 아니. 최강이었다.

조금이나마 그 수준을 어림짐작했으니 어찌 영입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다만 설진은 루이의 영입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플라임의 구원, 그리고 일행과 함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탑에서 삶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재회의 시간을 가져 기쁨을 누릴지언정, 영원히 탑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란에게 이런 말을 했으면···.’


동시에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 란에게도 이런 제안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 의미가 없었겠구나.’


그러나 왕실의 구조를 떠올린 설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루이가 원하는 건 인재의 성장이었다. 성장이라는 건 아직 미성숙하다는 의미였고, 미성숙한 사람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란이 지향하는 바람은 달랐다.

단기간에 큰 돈을 모아 드래곤의 부산물을 구매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루이는 일찌감치 란과의 엇갈림을 깨달았을 뿐, 단지 교차했을 뿐이다.

서로의 바람과 이상이. 각자 원하는 것이 달랐던 것이다.


단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둘 모두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난 비참한 결말이겠지.


* * *


대련은 간단하게 진행하기로 했다.

간략하게 몇 합을 나누기로. 단지 그뿐이었다.


스윽-.


설진은 눈앞에 선 루이를 응시했다. 동시에 좌우로 늘어진 관객들이 보였다.


설진을 응원하고 있는 시연과, 그 반대인 로엘리아.

대련을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는 플라임.

그리고 설진의 움직임을 관찰해보려 눈을 부릅뜬 채린과 찬우가 있었다.


“흐음. 어떻게 시작할까.”


루이는 설진과의 거리를 재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먼저 공격할지, 아니면 오는 공격을 받아칠지 고민하며 잰걸음을 옮겼다.


짧은 순보가 초 단위로 움직였다. 공격이냐 수비냐. 둘 중 하나를 생각하던 루이는 설진보다 먼저 몸을 놀렸다.

루이의 선택은 전자. 속공이었다.


‘루이와 싸워보는 건 처음인데.’


게임에서 루이는 설진의 빙의 대상이었다. 빙의 대상이 아닐 때에는, 든든한 아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비록 대련일지언정 눈앞의 루이는 잠시나마 설진의 적의 역할을 맡았다.


처음에는 봐주면서 할까도 생각했지만, 플라임을 떠올리고서는 생각을 바꿨다.

그녀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특출난 구석이 있어야 했다. 비로소 특기가 있어야만, 타인은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짓쳐오듯, 바람 이상의 속도를 보인 루이가 가볍게 스텝을 밟았다.

재빠르게 설진의 지척까지 접근하더니 손목을 꺾는다.


꺾임과 동시에 회전하는 검. 설진의 허벅지를 노린 검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 왔다.

대련인 만큼 급소 외의 신체 부위를 타격하는 모습. 설진은 그 모습에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대련임을 상기하면서도,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스르륵-!


뒤로 뺀 다리, 동시에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다음 동작.

오른 방향으로 꺾은 설진의 몸이 밀물처럼 쏠려나갔다.


찰나, 가볍게 질주한 다리가 되튕기듯 방향을 꺾었다.


“···!”


조금은 놀란 듯한 루이의 얼굴과 함께, 재빠른 방향회전을 보인 설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마찬가지로 노리는 곳은 허벅지. 기동력의 저하를 위해 넓적다리를 노리며 섬광처럼 휘둘렀다.


“이크.”

“더 갑니다.”


이제는 조금 놀란 수준이 아니다. 복잡하게 꼬인 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듯, 자연스럽게 그지없는 몸놀림에 당혹을 느낀 루이는 급하게 몸을 물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느샌가 루이를 쫓아 다시 따라붙은 설진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허벅지였다. 똑같은 부위인 넓적다리를 노리려던 검이 챙-! 맞물리는 소리를 내었다.


‘허벅지가 아니라 다른 곳을 노렸다면···.’


못해도 치명상이었음을 깨달은 루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손속을 두어야겠다든가, 봐주면서 하겠다든가 하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튕겨냈네요?”


설진은 약간 감탄했다는 듯 탄성을 흘러더니,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동시에 역시구나 싶었다.


왕녀 플라임을 지키는 검. 루이의 실력은 설진의 상정 이상이었다.

보통이었으면 방금의 두 검격으로 끝낼 공격을, 루이는 견뎌냈다.

쳐내기까지 했으며 상처를 허용하지 않았다.


돋아난 흥미는 설진의 몸을 더더욱 기민하게 만들었다.

기민한 발걸음.

기척을 옅어지게끔 한 그가 다시금 공세를 준비했다.


타다다다-!


한편 설진의 접근을 바라보고 있는 루이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오른쪽으로 갔나 싶으면 왼쪽으로 가 있고, 왼쪽으로 가 있나 싶으면 오른쪽으로 가 있었다. 과장되게 말해 환영 마법이라도 쓰는 건 아닌지 싶었다.


물론 저것이 환영이 아님임은, 루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환영이 아닌,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루이가 선망했던 경지였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으니까.


‘설진은.’


그 사실을 깨달은 찰나, 루이는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나보다 한 수 위다.’


어쩌면 두 수, 아니. 세 수를 넘었을지도.

거기까지 닿은 생각이 서서히 사라졌다. 대신 마음을 채운 건 편안함.


설진이 자신보다 몇 수는 위라고 생각하니, 외려 부담이 없어졌다.

루이는 재차 눈을 떴다. 관조했다. 방향을 읽고자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좌측 하단!’


하단세, 즉. 허리춤을 노리고 들어온 설진의 검격이.


팅!


다시, 검과 검이 맞물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억센 파도가 일점으로 축약되듯, 거셌던 설진의 검이 한 차례 막힌 것이다.


씨익-. 공격을 막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루이의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이 정도라면 저항다운 저항은 해볼 수 있을 터. 적어도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패배하리라곤 생각지-.


“그거, 가짜였어요.”


생각지 않았는데.

어느새 우측 중단세를 노리고 있는 설진의 검을 보자, 생각이 끊겼다.


그 순간 루이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검을 비스듬히 기울여 단면으로 옆구리를 내리치는 설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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