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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5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3.01.03 19:14
조회
154
추천
3
글자
12쪽

292화

DUMMY

일주일이 흘렀다.

시간은 마치 개화와 만개를 반복하는 꽃잎 같아서, 한 번 돌아볼 때면 속절없이 흐르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엘리나와의 일주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재밌었지.’


일주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이걸 위해 해피 엔딩을 추구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엘리나와 함께 밖을 나가고, 돌아다니고, 여유를 즐긴다.

그 단순한 행위가 일곱 번 반복된 거지만, 설진은 일곱 번 중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우면 즐거웠지.

그간의 일주일은 정말로 특별한 시간이었다.


비단 설진만이 아니었다. 채린도 찬우도, 나타벨과 리아엘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나 찬우가 만든 흔적이 발군이었는데, 정식으로 사귄다고 공표한다고 했다. 기사 리아엘라와 사제 한찬우는 이제 연인 사이라고.


축하한다면 축하할 일이었다. 설진은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주며 앞날을 빌어 주었다.

이미 탑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예고까지 한 마당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재회는 있을지언정 이별은 없었다.


시연은 아넬과 아메르의 소식이 궁금했는지, 일주일의 시간을 모조리 그들을 찾는 데 썼다.

사흘을 넘길 즈음 시연은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남은 나흘을 회포를 푸는 데 사용한 그녀는 아쉬움과 후련함이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쉬워요?”


이러나저러나 결국 일주일은 지나간 상황.

한 번 진 꽃잎은 다시 피지 않는 법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무르는 건 불가능했다. 단지 복기하는 것만이 가능해서 추억 한 켠을 아련히 간직할 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나간 시간에 한정되는 말이었다.


“다시 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요.”

“아으. 알고 있는데도 이제 이별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러네.”


설진이 바라는 소원은 탑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권한.

그것만 있다면 언제든 재회할 수 있을 터였다.


지나간 시간을 재경험하고 싶다면 앞으로의 시간에 그때의 색을 섞으면 될 일이다.

잠깐의 이별은 단지 물감을 준비하는 시간. 준비가 끝나면,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과거의 색은 더욱 짙어진 채로 미래를 덧칠할 터.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고, 설진은 그리 말했다.


“우으읏차.”


밤이 과할 정도로 깊어지면 아침이 찾아오는 법이다.

뚜둑거리는 관절을 꺾으며 기지개를 켠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점심 즈음에 출발할 거지?”


침대에서 빠져나오면서, 간단히 이불을 정리하며 물어 왔다.

설진은 맞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일행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에피소드를 끝내러 가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야죠. 준비도 해야 하고.”

“그래··· 그렇겠지.”


준비라는 단어를 꺼낸 설진을 본 시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준비라 함은 설진과 시연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에피소드를 의미했으니.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


플라임 왕녀가 여주인공으로 나오며, 처음으로 실패한 에피소드였다.

해피 엔딩을 만들어갈 틈도 없이 절망만을 엮어낸 에피소드였다.


설진의 정신 상태가 조금만 더 일찍 고쳐졌더라면, 못해도 플라임의 법안 창안을 막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만 했다면 적어도 배드 엔딩만은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후우···.’


역시, 플라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머리가 상념에 젖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설진은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플라임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 또한 어린 왕녀였다. 미숙했기에 실수했고, 실수를 이겨낼 수 없어 자살을 결심한 왕녀였다.


‘약속, 이제 지켜야지.’


플라임이 왕실 밖을 향해 걷는 모습은 참담하기만 했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 해피 엔딩을 만들어준다는 결심을 했음에도.


‘지킬 수 있게 됐으니까.’


기약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법이니, 그리고 스스로가 그렇게 다짐했으니.


바야흐로 지금.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가, 개변의 시간을 맞으려 하고 있었다.


* * *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 여생을 보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엘리나의 말은 잘 알았어요.”


연나비의 연화와 같은 반응이었다. 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긍정했다.

어찌 보면 지금도 연나비 때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황실의 적대 세력인 교회는 사라졌고, 수인과의 외교 안건을 다시 진행하려는 상황.


아마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터.

더없이 해피 엔딩에 어울리는 시작이었다.


엔딩과 시작이라는 단어가 같이 들어갔음을 떠올리자 설진은 잠시 주춤했다.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했다.

앞으로도 얼굴을 보고 지낼 소중한 이들이니 말이다.


“다음에 올 때, 제국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기대하면서 올게요.”

“후후, 부디 그래 주시면 고마울 것 같군요.”

“그럼-.”


시스템 창을 열었다.

그때와 똑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엔딩을 결정하겠다고 묻는 메시지, 그 아래에 있는 예와 아니요의 선택지.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엘리나가 바란 사항이었다.


후우. 숨을 들이켰다. 엔딩을 결정하라고 시스템이 말하곤 있지만, 따지고 보면 한 사람의 여생을 결정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것만을 생각하면 손이 조금 떨리곤 했다. 흔들리는 손이 지금 설진이 하는 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엘리나가 원하는 엔딩이라면.

엔딩 이후에 살아갈 세계라면.


툭, 떨리는 마음을 딛고서 손을 뻗었다.

단 한 번. 시스템 창을 누르는 간단한 과정.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단지 그것만으로 누군간의 여생이 결정되었다.


“끝났어요. 엘리나.”

“다시 한 번 감사드리지요.”


헤임 제국 에피소드의 엔딩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청명했고, 정원의 꽃잎은 오색이었다.

감히 좋은 날이라 칭해도 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에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엘리나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점에서 오는 허탈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모두 들이차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설진은 쓴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직 출발하기까지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엘리나가 진정되고도 남을 터.


그리하여 기다렸고,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순간.


우웅.


“그럼, 다음에 봐요.”


다시, 일행의 시야는 점멸해 있었다.


* * *


연나비와 헤임 제국은 아름다운 엔딩을 맞았다.

더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을 정도로.


하지만,


[플레임 왕국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10층입니다]


설진이 겪은 첫 번째 에피소드.

플레임 왕국만큼은 달랐다.


‘플라임···.’


엔딩이 결정된 이후인 25층이 아닌, 10층에 도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설진 일행은 플레임 왕국 구원에 실패한 것이다.

그뿐이랴. 고통을 멈추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끊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플라임의 파멸을 앞당긴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발버둥치는데, 외부인인 자신은 그런 발버둥을 무위로 취급해버리고 있으니. 그녀의 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했을는지.


‘이번에는··· 다를 거야.’


물기에 젖은 감정을 애써 삼키며 다짐했다.

그래,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약속했었다.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오면, 그때는 꼭 플라임을 구원해주기로.

기약 없게만 보였던 시간이 흘러 기회가 왔다. 바꿀 수 있는데, 그럴 능력이 있는데 주저앉아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심호흡을 마친 설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다. 눈앞을 메웠던 일렁거림이 잔영처럼 흩어지고, 검게만 보였던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10층이라면 아마··· 레지스탕스의 소탕···.’


동시에 10층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과 시연이 루이와 릴리에로 빙의하고, 란, 린과 함께 레지스탕스의 기지를 습격해 괴멸시킨 사건.


그때를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이와 릴리에, 란과 린, 설진 일행.

그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플라임 왕녀가 존재했다.


‘빙의는 하지 않은 건가?’


과거와 다른 상황에 설진은 의문 어린 시선으로 사방을 훑었다.


분명 그때는 루이와 릴리에로 빙의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빙의가 아닌, 원래의 몸 그대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중이다.


“왕녀님, 이들은?”


과거와는 다른 상황에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루이가 입을 열었다.

그는 란과 린을 포함해서, 설진 일행을 가리키며 정체를 묻고 있었다.


“이쪽이 란과 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고용한 A급 모험가들이지. 그리고 저쪽에서부터 유설진, 주시연, 강채린, 한찬우. 저들은 현재 모험가 길드 판에서 부쩍 떠오르고 있는 B급 모험가들이다.”


플라임은 그리 말하며 란과 린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특히나 강조하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인간을 상대하는 데 능한 자들은 아니지만, 몬스터, 그리고 어두운 밤을 대처하는 데 능한 자들이지.”

“왕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는 모험가니까요. 야영에는 골이 날 정도로 익숙하고, 또한 능숙합니다.”


지금 시간은 밤이었다.

소리가 어둠에 먹히고, 시야마저 암흑에 잡아먹히는 시간.


그런 시간이고 숲이란 장소일진대, 야영에 뛰어난 모험가를 대동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루이는 플라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상체를 돌려 란과 린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 왔다.


“그리고 설진··· 이라 했나. 그대들도 잘 부탁하지.”

“잘 부탁해요.”


이어 설진 일행과도 간략한 인사를 나눈 뒤,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란과 린의 인도에 따라 일의 분배가 시작되었다.


텐트를 설치하는 일, 불을 피우는 일, 곳곳에 교란석을 설치하는 일.

공교롭게도 설진이 맞은 일은 교란석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저벅, 저벅.


조금은 축축하게 젖은 땅이 발끝을 파고들었다. 갑갑한 감촉을 느끼며 적당한 장소를 탐색하고 있던 와중, 무언가를 발견한 탓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그랬지.’


그것도 잠시, 루이로 빙의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줘요. 제가 할게요.”

“···내가 미덥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

“농담이다. 확실히 내가 하는 것보단 전문가인 그대가 하는 편이 낫겠군.”


귀족임에도, 루이는 교란석을 심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장소 선정도 적당한 것이 경험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설진은 속으로 쓰게 웃으며 루이에게서 교란석을 받아들였다.


땅을 파고, 교란석을 심는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련의 과정을 마친 뒤 다음 장소를 탐색한다.


교란석은 열 개 정도를 심어야 비로소 효과를 발휘하는 광석.

그래야지만 야밤의 몬스터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역시 따라오는구나.’


설진이 장소 탐색을 위해 이동하고자 했을 때, 루이도 그를 따라왔다.

빙의 당시 자신이 한 행동과 비슷했다. 루이가 따라오는 것을 알게 모르게 모른척한 설진은 자리에 앉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퍼석-.


조금은 거친 땅의 감촉이 손에 잡히고, 헤집어지기를 반복했다.

적당히 파진 구멍에 교란석을 심었을 즈음, 루이의 입이 열렸다.


“설진. 그대는-.”


자신이 란에게 했던 것처럼,

루이도,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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