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45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12.26 17:25
조회
163
추천
3
글자
11쪽

286화

DUMMY

-[클리어 선언을 외친 뒤, 제 모습을 떠올려주세요.]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됩니다. 편하실 때 오시면 좋겠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 본 메시지. 그 말에 따라 나직이 읊조렸다.


“클리어.”


클리어.

그래, 클리어였다.


오른은 죽었고, 연화와 설야는 화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나은 결말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 상황 전체가 과거를 재현한 것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미 한 번 죽은 이들의 혼이 솎여 만들어진 탑.

몇 번인지도 모를 회귀를 통한 반복.


그러한 내막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이제 연화는 알고 있지만.

지금 직면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단순히 알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를 얻어야 해.’


무엇을 해야 회귀를 멈출 수 있는지 알아야 했다.

무엇을 해야 비극을 끊을 수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슌이 필요했다. 시스템 메시지에 적힌 글을 따라 슌을 만나야 했다.


옆에 서 있는 시연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굳은 것이 보였다. 비단 시연뿐만이 아니었다.

채린도 찬우도.

그리고 설진 자신조차도.


드물게도 긴장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진정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지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


그걸 알기에 설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후우. 후우.

몇 번인가 더 심호흡을 내뱉은 후,


‘슌.’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뿔과 꼬리였다. 산양의 뿔, 묵빛을 머금은 꼬리, 그리고 어둡게 물든 밤처럼 칙칙한 날개의 형상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이어서 태도가 떠올랐다.

예의 있는 신사처럼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네 오는 슌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의 외모부터 시작해 대략적인 키와 몸무게를 어림잡으려 할 즈음,


팟-.


하는, 무언가 반전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플레이어 여러분.”


고개를 숙인 슌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 *


“오랜만··· 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아직 헤어진 지 한달도 되지 않았으니까요.”

“슌.”

“네, 설진 님.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나, 탑의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슌.”

“지구상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신 겁니다. 설진 님은요. 비극적인 과거를 개변하고 최종 보스를 죽이다니. 참으로 거룩한 업적입니다.”


슌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조금 과장해 끊임없이 흐르는 폭포수 같았다.


평소대로의 말투가 맞았다. 말이 조금 많을지언정, 예의를 차린 신사 느낌의 악마. 영락없이 설진이 알고 있는 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날개, 왜 그래요?”


말투는 슌이 맞았다.

하지만 말투 이외의 것이 달랐다.


딱 절반, 날개가 찢어져 있었다.

막말로 누가 자를 대고 자르기라도 한 듯했다.


“···.”


설진이 날개를 지적하자, 그제야 슌의 말이 멎었다.

표정도 변해 있었다. 상점 스테이지 이래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얼굴이, 복잡함과 착잡함이 마구 깃든 심정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싶다.


“벌을 받았습니다. 정보를 너무 일찍 풀어버려서 말이에요.”

“잠깐, 그럼 그때 우리에게 알려줬던 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연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오히려 흐린 끝말이 점차 작아지기까지 했다.

날개에 시선을 둔 그녀는 이어지는 말에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지요. 오엘, 아니. 이젠 오른이라 불러야 할까요. 오른의 목적과 정보는 게임이 끝날 때쯤 풀어야 하는 극비였으니까요.”


오른이 죽기 전까지 극비로 유지되어야 하는 정보를, 슌은 풀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날개가 찢겼다. 다는 아니었지만 날개 반절이 뜯겨나간 그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해 보였다.


외려 반절만 뜯겨서. 전부가 아닌 반절만 뜯겼기에 보는 입장에서는 더욱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너무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원해서 한 일이고, 모습만 이럴 뿐 실제로 고통은 일절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때문에.”

“채린 님. 채린 님의 가능성을 보고 정보를 푼 것도 있지만, 완전히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다른 마음이 더 컸습니다.”


심각한 눈동자로 응시하는 채린에게 손사래를 친 슌은 말을 이었다.

다른 마음이라 말한 입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러길 잠시, 재차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슌까지 포함해 다섯이 있는 장소는 저번의 흰 방이 아니었다.

친숙한 카페였다. 크진 않지만 적당한 크기의 조명이 은은히 빛을 바라고, 휴식처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느긋한 분위기의 장소였다.


집중해야지만 들릴 정도로 작은 음악이 곁들어지고, 양껏 고조된 분위기가 이목을 끌어 시선이 몰리게 될 즈음, 슌의 입이 열렸다.


“오른은 플레이어였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플레이어였지요.”


슌은 몇백 년 전부터 탑의 관리역을 맡아온 악마.

그렇기에 오른도 슌의 관리 아래에 있는 플레이어였다.


“처음에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비극적인 과거를 바꿀 기회를 얻자 기뻐하며 도전하고 또 도전했지요.”


도전히 빈번히 실패하지만 않았다면, 설진과 같은 재능이 있었더라면 탑을 금세 클리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오른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탑이란 기물을 극복할 만큼 큰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빈번히 실패하는 상황 속에서, 저는 오른에게 언질을 줬지요. 탑에 비밀에 대해 힌트를 던졌습니다. 물론 간접적으로요.”


오른은 금세 힌트의 의미를 파악했다.

동시에 탑에 대한 비밀을 깨달은 것이다.


탑은 죽은 이들의 혼으로 만들어낸 연극이라고.

단순히 과거를 재현해냈을 뿐인 기물에 불과하다고.


그것이 계기, 추후 오른이 오엘이란 이름의 최종 보스가 되는 계기였다.

슌의 말을 듣고 있던 설진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오른이 최종 보스가 되는 건 알겠다.

이제 그 과정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왜 슌에게 있어···.


“가여웠습니다.”


그게 왜 슌에게 있어 이유 중 하나인지 물어보려던 설진보다, 슌의 목소리가 조금 더 빨리 튀어나왔다.


‘가엽다고?’


느닷없는 단어에 절로 의문이 생겼다.

가여움이라니. 대체 슌은 오른에게서 뭘 느끼고 있는 건지.


“빈번히 실패하던 모습이, 탑의 비밀을 알고 절규하는 모습이, 결국 모든 것을 되돌리고자 스스로 최종 보스가 된 모습이, 그리고 그럼에도 실패해온 모습이 말입니다.”

“···.”

“저에게 오른은 최종 보스라는 배역을 맡은 플레이어지만, 동시에 불쌍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슌이 오른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전무했다.


염원석의 발동을 도울 수도, 직접 곁으로 가서 탑의 클리어를 도울 수도 없었다.

탑의 중간 관리자기에 플레이어의 행동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오른은 최종 보스. 그를 도와준다는 건 다른 플레이어들의 클리어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짓이나 진배없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슌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안식이지요.”


안식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하곤 있지만, 그게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작게나마 울리고 있는 나긋한 음악이 한순간에 묻힐 정도로 말이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 굳었나요?”


와중 슌은 의자를 빼며 자리에 착석했다.

앞선 얘기를 하고서도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연기일까, 아니면 정말로 좋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마냥 실없지만은 않은 생각을 이어나가던 설진이 반문한 것은 그때였다.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단지 끝나가기 때문에 풀어야 할 정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니까요.”

“오른이 편히 죽었다고 생각해요?”

“물론이지요. 그 정도면 평안한 안식이라고,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편히 죽었다.

적어도 그 정도면 평안한 안식이다.


‘오른.’


그 말에 설진은 오른의 최후를 떠올렸다.


아주 조금은 홀가분한 듯한 표정.

설진의 검에 단칼에 베여 죽은 모습.


평안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깔끔하긴 했다고.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어 깔끔하긴 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짝짝.


“자, 이 이야기는 그만할까요?”


생각이 깊어진 설진을 보고서 슌이 박수를 치며 이목을 모았다.

실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오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려던 설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아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탑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의문이 말이죠.”


오른에 대한 간략한 과거사는 이제 그만.

애초 설진이 슌을 만나고자 한 이유가 탑의 클리어에 대해서였다.


알아야 할 주제가 나오자 설진의 눈동자가 돌변했다. 순식간에 집중력을 되찾은 그는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탑이 클리어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정확히 어떤 의미로 질문하시는 걸까요?”

“계속 회귀하는 건지, 아니면 멈추는 건지 말이에요.”


으음, 한 차례 비음을 흘린 슌은 턱을 괬다.

무언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


그렇게 몇십 초 정도 흘렀을까, 슌은 생각이 끝난 듯 입을 열었다.


“게임에는 세이브와 로드 기능이 있는 걸 알고 계십니까?”


그걸로 끝이었다.

슌은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잠시 고민한 모양이었고, 그 한마디만으로 설진은 탑의 클리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세이브와 로드.

그러니까, 클리어 후의 세계를 결정하는 건 플레이어라는 의미다.


“원하는 시간선으로 이동할 수도, 아니면 그대로 이어갈 수도 있지요. 다시 시작하는 걸 원한다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스토리를 이어나가길 원한다면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플라임도 엘리나도 연화도.

그리고 그들의 세계도.


어느 시간선에서 끝낼지는 모조리 플레이어가 결정한다는 의미였다.


‘···.’


최악은 아니라는 점에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여주인공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잡함을 느껴야 할지.


어느 반응을 보여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순간 신이라도 된 것 같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슌의 설명을 들은 설진은 입술을 몇 번 잘근거리더니만, 이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염원석 말입니다.”

“아, 네. 어찌 보면 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이지요.”

“슌은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종 보스를 잡는다면 여주인공의 희생 없이 염원석을 발동시킬 수 있을 거라고.”


여주인공의 구원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마냥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기물 염원석. 그걸 손에 넣기 위한 지분도 존재했다.


그래서 물었다.

탑의 클리어 이후 다음으로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염원석의 발동 조건이란 건 뭐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비정기 연재 전환 공지입니다. 22.09.26 210 0 -
공지 제목, 소개글 변경 공지입니다 21.12.09 644 0 -
300 300화(완) 23.01.12 347 6 12쪽
299 299화 23.01.11 180 3 11쪽
298 298화 23.01.10 173 3 11쪽
297 297화 23.01.09 165 3 12쪽
296 296화 23.01.08 165 3 11쪽
295 295화 23.01.06 169 3 11쪽
294 294화 23.01.05 154 4 11쪽
293 293화 23.01.04 162 3 11쪽
292 292화 23.01.03 154 3 12쪽
291 291화 23.01.02 159 3 11쪽
290 290화 22.12.31 171 3 11쪽
289 289화 22.12.29 160 3 12쪽
288 288화 22.12.28 167 3 12쪽
287 287화 22.12.27 156 3 12쪽
» 286화 22.12.26 164 3 11쪽
285 285화 22.12.25 174 3 11쪽
284 284화 22.12.22 180 3 12쪽
283 283화 22.12.21 181 3 12쪽
282 282화 22.12.20 169 3 12쪽
281 281화 22.12.19 167 3 11쪽
280 280화 22.12.18 168 3 12쪽
279 279화 22.12.17 170 3 11쪽
278 278화 22.12.15 178 3 13쪽
277 277화 22.12.14 174 3 11쪽
276 276화 22.12.13 172 3 11쪽
275 275화 22.12.11 179 3 12쪽
274 274화 22.12.10 168 3 11쪽
273 273화 22.12.08 181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