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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2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12.20 17:21
조회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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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282화

DUMMY

알고 싶은 건 알았다.

오엘의 정체도, 목적도.


더 이상 알아낼 정보는 없을 것이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저벅. 저벅.


설진은 숨을 들이켜며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거리가 꽤 되었다. 그런 거리를 좁히고자 천천히 걸었다.

오른에게는 설진의 걸음이 죽음처럼 보일 것이다.

천천히 다가오되, 결코 항거할 수 없는 죽음처럼.


“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

“뭔데.”


걸음이 반 정도를 걸쳤을 즈음, 오른의 입이 열렸다.

저항도 부정도 아닌 의문 섞인 물음이었다.


“설진. 자네는 대체 뭔가.”

“···.”

“자네의 존재는 이질적이네. 그간 수많은 플레이어를 죽여 왔지만, 자네같이 강한 이는 없었어. 자네의 반조차 못 따라가는 경우가 허다하지.”


설진의 정체.

정확히는 무력의 출처.


확실히 타인과는 달랐다.

설진은 단순한 플레이어라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흑막과 싸울 때 고전한다는 흔한 레퍼토리조차 없었다.

그저 압도적이었다.

고전이라 할 만한 상황 없이 오른을 몰아넣었다.


‘···하아.’


설진이 뛰어난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적어도 설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소극적이었던 전투 장면을 떠올리며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넌 이미 망가졌어. 오른.”

“알고 있네. 난 졌고, 자네는 승리했지. 자네는 내 목을 취할 권리가 있네.”

“그게 아니야. 오른, 너는-.”


오른은 중세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현대 사회.


못해도 몇백 년은 흐른 시간이었다.

말인즉 오른은 탑에만 몇백 년을 갇혀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그만하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당초 목표였던 과거 회귀를 실패한 지도 수백 년.

사람이라면 정신이 닳아 없어질 만한 시간이었다.


물론 확신보다는 가설에 가까웠다.

추측에 불과했으며, 한 번 던져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처음부터 절명화를 사용했으면서, 부정할 생각이야?”

“···그건.”

“사람은 신중할수록 행동을 아끼기 마련이야. 아직 제대로 싸워보지조차 않았는데, 시작부터 즉사 스킬을 사용한 것만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겠어?”


신중하되 행동에 거침이 없다.

슌은 오엘을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신중한 것은 본인의 성격이되, 행동에 거침이 없게 된 것은 후천적으로 생긴 습관일 뿐.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아득한 시간이 성격을 갉아먹었다. 신중함이 닳아 없어지고, 행동력만이 남아 설진에게 즉사 스킬을 사용했다.

설진에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신중함이 없어지더라도 오른은 강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플레이어와 싸워 이겨온 거겠지.


“실제로도 너, 아직 싸울 수 있잖아. 다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적당히 싸움에서 졌으니까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할 뿐이야.”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끝.

설진이라는 괴물을 마주함으로써, 오른의 목숨은 끊어질 예정이었다.


“끝까지 공격을 감행하는구먼. 무력이 아니라 그 입도 참···.”

“먼저 물어본 네 잘못이겠지.”


저벅, 저벅.


“그래, 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예기를 품은 단검을 만든 설진은 다시금 마력을 흩트렸다.

쩌적-. 흩날린 푸른 마력의 조각이 둘의 거리를 알리는 듯했다.


“유언을 남기겐 해 줄게. 그리고- 단검이 아니라 검으로 죽여줄 거고.”

“그것참 넓은 배려심이로군.”


유언을 허락한 이유는 오른의 행위가 완전무결한 ‘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설진에게 오른을 비난할 자격 따윈 없었을지도 몰랐다.


‘나도 예전에만 해도···.’


여주인공을 죽여 염원석에 바친다. 그리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불과 몇 달 전 자신이 품은 소원은 그것이었으니까.


단지 양심이 쿡쿡 찔려 허락한 것일 뿐이다. 오른이 악이 아니듯 설진 또한 악이 아니고, 반대로 오른이 선이 아니듯 설진도 선이 아니었으니.

그저 사람에 불과했다.


‘최소한의 양심, 같은 건가.’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걸어간 선발대에 대한, 종래에는 대척점에 서게 된 오른이라는 적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


마력 단검이 아닌 검으로 죽인다는 말 또한 마찬가지.

마력 단검을 주무장처럼 활용하곤 있으나, 설진의 주 무기는 결국 검이었다.


적이 아무런 생각 없는 몬스터나 악인이라면 모를까, 그저 사상의 충돌로 갈등을 빚게 된 오른을 단검으로 죽이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검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목을 베고자 했다.


“유언, 유언이라···.”


한편 약간의 유예를 허락받은 오엘은 상념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민에 빠진 듯했다.


“이거 참. 이런 경우는 처음이로군. 설마 내가 유언을 남기게 될 줄이야.”

“죽기 바로 직전에 유언을 남기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걸.”

“참으로 긴장이 풀어지는 말이로구만···.”


시간이 흘렀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오른이 입을 열었다.


“설진. 자네에겐 플레임 에피소드를 실패한 전적이 있네.”

“맞아.”

“날 죽인 이후 플라임에게 찾아갈 생각이겠지. 구원을 위해.”

“그것도 맞아.”

“내가 죽고 나면··· 그곳에서의 ‘나’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걸세. 다른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겠지. 난 그걸 막으려 할 테고.”


‘탑의 오른’이 죽게 되었으니, 과거는 제대로 흘러갈 것이다.

변함없이 그대로. ‘과거의 오른’이 참여하지 않은 채 반란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의 오른은 반란군이 아닌 플라임의 편.

왕국의 귀족으로서 반란군과 맞서 싸우려 할 터.


“그때, 날 죽지 않도록 해줄 수 있겠나?”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일세. 난 반란군과 맞써다 죽을 위기에 처했고, 그 순간 탑에 들어오게 되었네.”


오른은 반란군과 싸우며 죽을 위기에 처했다.

죽음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오엘이 탑에 들어오게 된 계기.


“탑은 그 계기마저 재현하지 않을 걸세. 이미 확인했네. 내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으면, 재현된 오른은 반란군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하네.”


그러나 경위는 재현할 수 있어도, 실제로 탑에 들어올 수는 없다.

이미 탑에 들어온 상태에서 한 번 더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그 말인즉,


“결국 살려달라는 거잖아. 반란군과 싸우다 네가 죽지 않게끔.”

“하하, 정답이네. 유언이라 해서 남겼네만···.”

“이건 유언이 아니라 부탁이잖아. 쯧.”

“···부탁함세.”


마지막 말은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쓰러진 상태에서 고개를 재차 숙인 오른이 말을 이었다.


“살고 싶은 것도 살고 싶은 것이지만, 난 내 눈으로 왕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싶네. 옆에서 왕녀님을 도우며 삶을 보내고 싶네.”

“···.”

“그래서, 들어주지 않을 건가?”


스릉-.


유언도 들었겠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의미가 없었다.

설진은 한숨을 내쉬며 검을 들어 올렸다.


“곧 죽을 사람이 욕심은 많아서.”

“···고맙네.”


기력을 소진한 시연이 헐떡거리며 오른을 응시했다.

마력이 고갈된 듯, 채린이 힘없이 손을 내리고선 오른을 바라보았다.


아직 상황이 완전히 납득된 건 아닌지, 설야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설야를 연화가 뒤로 안았다. 오른의 죽음에서 최대한 멀어지려 하는 모습이었다.


나지리아는 묵묵히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들었으며,

겨우 정신을 차린 찬우가 입술을 뻐끔거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루미네르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쓰러져 있었다.

찬우는 그런 루미네르에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외며, 탑의 최종 보스의 결말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악당이지 그랬어.”


차라리 오른이 악이었다면.

정말 사익만을 위해 여주인공의 목숨을 취하려 다녔다면.


···그랬다면 이렇게나 찝찝하지도 않았을 텐데.


후우.


그렇게 생각한 설진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낮의 시간이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대지는 따스했으며 숨결은 살랑였다.


“악이었다면, 미련 없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을 끝으로,


촤아악-!!


길었던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일격이, 작렬했다.


그 어떤 공격보다 단조로운 검격이었다.

횡으로 향하는 일직선 베기. 일거에 시행된 검로가 목을 갈랐다.


단숨에 목을 끊어버린 검이 끈적한 핏물을 머금었다. 차악-! 절도 있게 휘둘러진 검이 검면에 묻은 피를 말끔히 털어냈다.


“···후.”


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끝난 날이었다.

보스는 죽음을 맞이했으며, 연나비는 존속될 것이다.


더 이상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진을 막을 이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탑, 72층]

[최종 보스 오엘 사망]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작게나마 정보를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간단명료한 요약이었다.


설진은 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원래라면 한 번 큰 전투가 있고 난 이후, 몸이 버티지 못해 기절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하다고 느꼈다. 정신이 갉아 먹혔을 때를 제외하면 오른은 설진에게 상처다운 상처를 입히지 못했으니.


‘오른.’


고개를 돌렸다. 죽은 오른이 보였다.

눈을 감은 오른의 표정은, 조금이지만 편안해 보였다.


스윽-.


오른을 뒤로하고 숙인 몸을 일으켰다. 회수한 검이 검집에 패용되고, 땅에 떨어져 있던 마력 단검의 잔재가 말끔히 사라졌다.

단지 푸른 알갱이만이 미세하게 남아 흩날리고 있을 뿐.


“설진 님.”

“인간-.”


오른이 죽고 난 이후, 처음으로 다가온 이는 연화와 설야였다.


“설진 님···.”


연화는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간략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의문이 해결될 리는 없었다.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설명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터.


복잡한 듯한 얼굴의 연화를 보고서 설진은 고개를 까닥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듯한, 일종의 신호였다.


뒤에서는 설야가 연화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설야는 오른과 제대로 된 싸움을 벌이지 못했는데.

이미 오른은 죽어버렸으니, 다크 엘프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실없는 의문을 떠올리며 공상에 잠긴 찰나, 연화의 입이 열렸다.


“일단은-.”

“일단은?”


무언가를 참은 듯한.

애써 꾹 참고서 내뱉은 듯한.


“돌아가도록 해요.”


몇 마디 말을 삼키며, 연화는 그런 말을 건넸다.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참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오른과 싸우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지금은 장소도, 상태도 좋지 않으니-.”

“···.”

“그러니까 일단, 휴식부터 하도록 해요.”


그 말에 설야는 조금은 놀란 듯 보였으나, 이내 수긍의 자세를 보였다.


싸움의 흔적은 결코 적지 않았다. 필시 생사를 오갈 정도로 격렬한 전투가 오갔으리라 생각한 설야는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까요? 연화 님.”

“네. 우선 휴식부터···.”


휴식부터 취하고 나서 이야기하려던 연화였다.

그렇게 말하려 했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설진 님.”


어느 한켠에서, 무언가 복받친 듯 설진에게 물음을 건넸다.


“저는, 저인가요?”


짧고도 짧은 질문에 담긴 의미는 참으로 복잡했다.

그 말에 설진은 잠시 생각하더니만,


“···연화 님이 연화 님이라 생각하신다면.”


그리 말을 건넸다.

복잡한 의문이었고, 복잡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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