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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7,749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3.01.09 12:16
조회
165
추천
3
글자
12쪽

297화

DUMMY

람피스 후작이 죽었다.

오른을 대신한 반란의 주동자가 쓰러진 것이다.


촤아아악-!


피가 튀었다. 사방으로 비산했다. 흐드러진 살점과 이분된 몸이 후작의 죽음을 나직히 증거하는 듯했다.


“후작은 죽었다. 반역자는 마땅한 벌을 받았다.”


설진은 검을 집어넣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장을 쳐야 하는 법이고, 지금 설진은 적장의 목을 베었다.

람피스 후작이 죽었으니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

구심점을 잃은 레지스탕스는 이제 허망하게 무너질 터였다.


고개를 돌려 사방을 훑었다.

어안이 벙벙한 레지스탕스의 모습.


하기야 눈 깜짝할 사이에 람피스 후작이 죽었다. 상황 자체에 분노하거나 승복하는 것보단, 그저 당혹스러워하는 감정이 더 큰 듯 보였다.


“하.”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서 있는 이들.

레지스탕스의 대부분이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설진은 한 차례 조소했다. 오른이 죽은 이후 연기는 그만뒀지만, 아무래도 다시 한 번 펼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저벅, 저벅. 날아간 람피스 후작의 목을 향해 걸었다. 손을 뻗어 머리채를 잡는가 싶더니, 이내 모두가 볼 수 있게 들어 올렸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


다소 험악한 목소리를 섞으며 고하듯 말했다.


뚝뚝 떨어지는 피. 삐져나온 눈알. 흙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

마지막까지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후작의 얼굴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아무리 멀리 있는 이들이라도 볼 수 있도록 높이.


그러자 전장이 침묵으로 휩싸였다. 레지스탕스 병사들을 떨쳐내고 있던 루이도, 하물며 병사들조차도 시선이 위로 올라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기 버려.”


그러한 소강상태를 깨뜨린 것 또한 설진의 목소리였다.

싸늘하다 못해 온몸이 에일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레지스탕스들이 하나둘 무기를 버리고 있었다.


마력을 머금은 듯 빛나고 있는 검도,

길게 내뻗어진 은빛의 창도,

활시위가 서너 번 당겨진 듯 보이는 활도.


후두둑-.


가릴 것 하나 없이 모조리 떨어졌다. 일말의 저항의 여지조차 주지 않은 설진은 엎드린 채 손을 올리라 명했고, 레지스탕스는 설진의 말을 따랐다.


팅-!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놈이 있네.”


물론 모두가 일제히 부복한 것은 아니었다. 패배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고, 레지스탕스 중 몇몇도 개중에 속했다.


목을 노리고 쏘아진 화살을 튕겨낸 설진은 곧바로 마력 단검을 만들었다.

조준의 과정은 필요치 않았다. 화살이 날아온 순간부터 설진은 궁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으니.


슈욱-! 던진 단검은 곧장 궁수를 향했고, 미간에 틀어박혔다. 정중앙에 틀어박힌 단검을 허망하다는 듯 바라본 궁수는 이내 쓰러졌다.


절명이었다. 궁수의 죽음 이후 저항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그저 두려움에 떨며 설진의 시선이 향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


‘···끝났네.’


이리하여 플라임 왕국의 비극이 막을 내렸다.

레지스탕스의 반란 진압은 물론이요, 파이어 퍼니쉬먼트의 사용 자체를 막았다는 고무적인 성과와 함께.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을 사용하지 않고도 반란을 끝낸 건 희소식이었다.

덕분에 플라임은 마법 금지령을 내리지 않아도 될 테고, 그렇게만 된다면 왕국이 쇠락할 일도 없을 테니까.


하나둘 구속되고 있는 레지스탕스들을 바라보며 설진은 몸을 돌렸다.

이걸로 끝. 탑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맺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제···.’


플레임 왕국의 비극이 무위로 돌아갔다.

최종 보스 오른은 죽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헤임 제국와 연나비의 결말은 이미 만들었으며, 이제 남은 건 거의 끝나가다시피 하는 플레임 왕국이었다.


근 1년. 탑에 온 이후 지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기도 했다.


돌린 다리를 놀리며 걸었다.

왕국으로 향하는 길은, 예전과는 달리 편안했다.


* * *


플라임에게는 그간 알아낸 사실을 모조리 전달했다.

헤임 제국에서도, 연나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랬나. 회귀라는 초자연적인 현상도 그렇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건만··· 만들어진 세계라는 거였나.”

“그렇죠 뭐. 하지만 그렇다고 탑이 모든 걸 만들었다고 보기엔 애매해요,”


그때도 했었던 이야기였다.

탑은 이미 죽은 인물의 혼을 재료 삼아 과거를 재현한다는 것, 그러니까 지금의 플라임은 가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모든 것이 조형된 것은 아니니까, 너무 자괴감을 가지지 말라고 한 말이었다.


“음? 아니, 내가 생각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러나 플라임의 반응은 두 여주인공과 달랐다. 약간이나마 혼이 들어있으니 진짜라는 말을 듣고 안심했던 둘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내가 궁금한 건 탑이란 건 대체 어떤 원리로 지어졌고, 어떤 방법을 써서 혼을 거둬들였냐는 것이다.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는 주제지 않나.”

“아··· 그렇긴 하네요.”

“후훗, 검사인 그대와는 달리 나는 마법사지 않나. 겪어본 적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싶은 건 마법사란 족속들의 기본 소양이지.”


마법사는 본래 지식 탐구에 큰 흥미를 느낀다.

알면 알수록 기뻐하고, 모르면 모를수록 자책한다.


눈앞의 플라임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모르는 것을 탐구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보이는, 실로 마법사란 직업에 걸맞는 성격을 지닌 듯 보였다.


‘이게, 아니긴··· 한데.’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연 건데.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플라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녀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미소를 지어 왔다.


“물론 설진, 그대에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고맙게요?”

“결국 이 말도 나를 안심시킨다는 명제를 깔고 들어간 것이지 않나.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 배려를 받았으니, 여인으로서는 기뻐할 일이지.”


하기야 따지고 보면 ‘약간이마나 혼이 섞였다’는 말은 모조리 여주인공이 너무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발로한 것이다.

배려는 배려니 고마움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걸지도 몰랐다.


설진은 플라임이 준비해 준 다과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서 플라임이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해 모조리 답변했다.


대답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슌과 시스템을 통해 탑이란 기물에 대해 전부 알았으니까.

모르는 것을 지어내는 거라면 모를까, 아는 것을 말하는 것쯤은 문제없었다.


“음, 그렇다면 설진···.”


문제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플라임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에는 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와 약혼을 맺는 건 어떤가.”


이런 농담조가 섞인 질문에는 답하기가 참 곤란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설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채린도 있고, 찬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이미 연인 사이인 시연도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할진대, 이런 말을 들으면.

플라임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 답해야 할지.


아무리 농담인 것을 알아도··· 아니, 농담 맞나?

은근 진심이 섞인 것 같아서 더욱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흠흠.”


플라임의 질문 이후 울린 목소리는 설진이 아닌 시연에게서 나왔다.


“왕녀님. 이미 설진은 저와 관계를 맺은 사이입니다.”

“어머, 우리 사이에 왕녀님은 무슨. 그냥 플라임이라 불러줬으면 한다만.”

“설마 이미 연인인 남자를 뺏을 정도로 악한 사람은 아니겠지요. 왕녀님?”


그건 좀 많이 곤란한 질문임을 자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존칭을 담아서까지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시연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그런 시연이 귀여워 보여서, 설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때 연나비의 침실에서 했던 것처럼 조심스레 머리를···.


“으읏, 설진아?”

“아, 죄송해요.”


놀란 듯 달뜬 숨을 들이켠 시연이었으나,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다만 때와 장소를 가려달라는 의미를 담아 소심하게나마 항의할 뿐.


“···쳇.”


그리고 그것이 플라임에게는 완곡한 거절이 되었는지, 두 이를 붙이며 그런 소리를 내었다.


“왕녀님이 웬 쳇이에요, 쳇은.”

“쳇, 아쉽구나.”

“그러니까 더 악당 같은데요.”

“가끔 사람은 악당이 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지.”


설진의 지적에 뻔뻔스레 대꾸한 플라임은 음음,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나는 언제나 설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있어. 언제라도 마음의 문을 열어줄 의사가···.”

“역시 나한테는 설진이밖에 없어어···!”

“오빠 인기 되게 많네요.”

“형, 조금 부러워요.”


그리하여,


설진에게 만져진 머리를 슥슥 쓸어내리고 있는 시연과.

조금이지만 볼이 붉게 물든 채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시연과.

턱을 괸 손으로 숨기곤 있지만 입꼬리가 올리간 시연은 연인을 지켜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간이 더 지난 끝에 이야기는 마지막을 달렸다.


탑이란 세계의 진실을, 또 때로는 자그마한 농담조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대로 할게요. 플라임.”

“그래, 부디 부탁한다.”


설진은 이대로의 결말을 원하느냐 물었고, 플라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지스탕스가 반란에 실패한 세상. 만물을 통제하는 억압의 눈을 사용하지도 않고 파이어 퍼니쉬먼트의 사용을 막은 세상.


그것만 해도 가장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

비록 미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만큼은.


지금만큼은 플라임에게 있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일 테니까.


‘···그럼 이대로.’


설진은 숨결을 구하려 다녔던 일주일을 생각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이걸로 전달할 것은 전달했으니, 플레임 왕국에서의 일은 모두 끝난 것이다.


[엔딩을 결정하시겠습니까?]


벌써 세 번째로 보는 물음이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시스템에게 고개를 끄덕인 설진은 손가락을 뻗어 ‘예’의 선택지를 골랐다.


그걸로 끝. 이제 삼국의 모든 엔딩이 결정되었다.

비극이나 슬픔 하나 없는 행복으로.

그리하여 여생을 살아갈 수 있게끔.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시 올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에요.”

“그때를 기약하고 있겠다. 기대하고도 있을 거고.”


이미 다시 탑으로 방문하리란 말과 함께 재회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설진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플라임에게 전달했고, 플라임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언제 와도 된다는 듯 기끼이 환영해 주었다.


“다시 봐요. 플라임.”


지구를 떠올렸다.

탑이 만들어낸 과거의 지구가 아닌, 설진이 살고 있었던 현재의 지구를.


마법이 없어지고 과학이 자리 잡은 세상.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 설진이 살고 있었던 그 세계를 간절하게 떠올렸다.


지구를 생각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슌의 말을 믿으며.

넷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지구를 떠올렸고.


우웅.


짧은 진동과 함께 시야가 점멸했다.

끝으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 순간,


“···.”


설진이 눈을 떴다.


“···여긴.”


익숙했다. 중세 시대 건축물이 아닌, 현대의 건축물.

스위치로 켜고 끌 수 있는 형광등이 있는 집. 기계가 발달해 간단한 조작으로 대부분을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바야흐로 설진의 집.


돌아왔다.

다시, 현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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