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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헌터는 독학으로 강해진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2.27 22:11
최근연재일 :
2023.03.27 16:58
연재수 :
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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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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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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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스승의 은혜(1)

DUMMY

“뭐야 뭐야. 이거··· 찐따 송민우 맞아?”


이론가다웠던 송민우의 모습에 강의실이 어수선했다. 가장 수선을 떤 건 제시카였다.


“가키가키. 어땠어~ 오땠어~ 네가 보기엔 어땠어~ 찐따 뭐야, 왜 이렇게 강의 잘해?!”

“ ··· ···.”


아라가키는 가볍게 무시했다. 이 여운을 곱씹으려면 집중이 필요했다.


‘모든 걸 잘 기억해뒀어.’


모든 장면과 글을 사진찍듯 기억하는 천재. 녹화나 녹음 따위 필요없다.


‘이번엔 어디에 둘까.’


천재의 기억법이란 매우 특별하다. 머릿속에 어떤 장소를 그리고, 물건을 보관하듯 그곳에 기억을 저장한다.

그렇기에 아라가키의 장소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

···


5대양 6대주.

곧 지구.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일본 열도에 저장했고, 송호섭에 대한 기억은 그가 태어난 한국에 저장했다.

그 이후에 일상은 다시 일본에, 헌터 이론은 러시아 대륙에, 일류 헌터, 마법사와의 대련은 미국 땅에.

그리고···

오로지 송호섭의 기억만 있던, ‘혐호하다’란 단어를 품은 한국에 송민우를 심는다.


‘저장은 완벽해. 초단위로 저장해뒀으니 이제 남은 건···’


바둑기사는 대전을 복기한다. 야구선수는 자신의 폼을 검토한다. 그러므로 송민우의 논리적 완결성을 재구성한다.

기술(氣術)의 흐름부터 마법의 술식을 거쳐 생기의 살기화로 마침표를 찍은 순(順 순할 순)의 알고리즘.

다시 생기의 살기화에서 마법의 술식을 거쳐 기술의 흐름으로 되돌아가는 역(逆 거스를 역)의 알고리즘으로.


“ ··· ··· .”


하지만 순(順)과 역(逆) 그 어디에도 재구성할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완벽하고 완결하고 완전한.


어째서 송민우에 이론의 재능이 있는지 이유는 모른다. F급 포텐 각성일까··· 추측할 뿐.

곧 밑작업이 시작되겠지만 이렇듯 기대치 않은 여흥엔 남다른 ‘기쁨’이 있다.


그렇게 격정에 겨워 있을 때···


“아라가키. 점심 뭐 먹지? 여긴 전부 구역질나는 사구려 돼지 잡탕만 있어서···”


제시카였다.

아라가키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죽일까...


강의의 복기가 목표라면 지금의 제시카는 복기를 망치는 장해물.

아라가키의 논리 회로는 언제나 장해물을 제거하도록 유전적으로 설계됐다.

만약 린메이링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쥐도새도 모르게 지워버렸을 것이다.


“아라가키. 실습하려면 배 채워야 하잖아. 난 돼지국밥 싫지는 않은데··· 아라가키 네 뜻을 따를게.”

“명동이나 광화문 쪽으로 가자. 아 익선동도 괜찮아. 음식들이 한국치곤 센치하던데.”


수선떠는 제시카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단지 생각하고 있었다.


─배고프면 먹는다. 열량을 채운다.


이 사고의 알고리즘에는 단 하나의 음식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



“할매요 할매요. 여기 쇠주랑 순대국밥 하나 주이소~~~”


<할미넴 순대국>에 온 신수영. 팔을 흔들며 주문한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부엌에서 할미넴이 국자를 쥐고 나온다. 미간을 지푸리며 뇌까린다.


“이 썩을 년아. 니는 앉자마자 민증부터 까라고 했제?”


이 동네 뭔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항상 밥 먹고 똥 싸는 일처럼 분노한다.


“아 진짜. 여기 3주 내내 출근도장 찍었는데 왜왜왜왜!”

“네년 얼굴이 쇠주 먹을 상이가. 마빡에 피도 안말랐는데.”


현재 신수영의 나이는 만 19세. 하지만 나이에 비해 3살쯤 어려보인다.


“궁금해서 그라는데. 네 와 술 쳐먹노? 헌터는 술맛도 모른다메?”


헌터는 알콜 분해 능력이 가히 사기적이다. 술을 물로 받아들인다.


“맛은 느껴. 근데 취하지 않을 뿐이지.”

“그럼 취하지 않을 거면서 와 마시는데?”

“그거야 순대국엔 쇠주라고 돌아가신 아빠한테 들었거든요. 할망구~”

“......”


눈을 치켜떴던 할미넴은 무안한 듯 국자로 머리를 긁적였다. 망자를 들먹이면 하마도 참지 않지 않는다.


“거 쪼매만 기다려라. 바로 국밥 말아줄테니.”

“예스. 오늘은 욕 안하고 넘어가서 땡큐베리 감사.”


술에 취하진 않지만 분위기엔 취하는 신수영. 죽은 아빠 살려내라며 술주정을 개같이 부렸었다.

그때문에 할미넴은 신수영의 사정을 원하지도 않는데 알게 된 것이다.


몇 분 뒤 순대국밥이 나오고


─호르르릅.


국물 한 숟가락. 순대국의 뜨듯함이 초봄의 냉기와 굳은 몸을 녹인다.


─스스스스.


뜨거운 국밥 한 숟가락. 어떤 보약 보다도 몸을 든든히 하고 허기를 지운다.


─꼴깍


화룡 정점 소주 한 잔. 말해 뭐해.


“캬 좋다 좋아.”


왠 선머슴처럼 술 한 잔을 꿀꺽하며 송민우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완성한 생기의 살기화. 바로 이것이다.


그렇게 강의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 송민우는 오징어쭈꾸미가 아니었다.


“흠··· 사자...는 아니고, 늑대도··· 아니고, 매는··· 당연히 아니고··· 그럼···”


고양이. 그래 고양이다. 하악질하는 고양이 정도는 되겠다.

도대체 뭔짓을 했길래 그 정도의 이론적 토대와 전달력을 가진 걸까.


“그건 분명 스폰으로 가질 수 없는 거였어···”


이쯤되니 신수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모르지. 복수할 맛 나겠어.”


복수할 상대가 강할수록 사이다는 청량한 법.

바로 있을 실습에서 보여줄 것이다.

너는 그 이론을 만들고 발현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였겠지만 난 단 3시간만에 가능하단 걸. 그만큼 너와 나의 재능은 개미들의 주식 매수매도가(價)만큼 격차가 크단 걸.


“흐흐흐. 네 놈이 가르친 모든 것이 네 사지를 능지처참할······”


어딘지 사극톤의 대사를 남발하고 있을 때 누군가 정면으로 걸어왔다.

오늘 강의에서 처음 본 냉온달이었다. 그의 팔을 잡고 있는 사람은 민시아였다.


“저기 혹시 마음이 봤어?”

“마음이? 그 안내견?”



뭔가 잘못됐는지 냉온달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음이가 사라졌거든. 그래서 지금 찾고 있는데··· ”

“아 그래? 못 봤는데. 근데 걔 안내견 아니야? 이렇게 주인 내팽개쳐도 돼?”


이상하게도 민시아의 표정은 개 잃는 사람치곤 꽤나 여유로웠다.


“온달아. 너무 신경쓰지마. 그 네 발 달린 짐승은 도와줄 사람 생기면, 나 두고 도망가버려··· 사실 안내견보단 헌터견에 가깝거든. 그냥 우리 밥이나 먹자. 수영이랑 같이.”


민시아가 해맑게 웃어자 냉온달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할 수 없지.”


둘은 자연스럽게 신수영 앞에 앉았다.


“엉?...”


난 앉으라고 한 적 없는데.

반주는 소주애호가들의 취미이자 고독.

고독을 즐기기 위해 혼자 온 것인데···


“근데 네들 소주 좋아해?”

“어 좋아해.”

“나도 좋아해. 난 항상 마음이가 술친구 해줬어.”


경계 가득하던 안색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렇게 마음이의 행방불명으로 모인 셋은 술친구가 되었다.


“근데 이번 송민우 강의 쩔지 않았어? 와··· 솔직히 가상 레이드 이후에 나 완전 팬이었는데 이번 강의로 또 한 번 충격! 대박!”


그런데 술이 좀 들어가자 냉온달이 찬물을 끼얹었다. 귓구멍이 시렸다. 신수영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팬은 무슨. 펜은 칼보다 강할 뿐이지.”

“왜. 솔직히 너도 좀 쩐다고 생각했잖아. 그래서 녹화까지 한 거 아니야?”

“아 그건···”



괜히 찔려서 가방 밖으로 삐져나왔던 공중캠을 밀어넣었다.


“아 됐고. 야 그냥 마시자. 실습이나 신경써야지.”


점심을 다 먹으면 앞으로 한 시간. 그 안에 생기의 살기화를 마스터할 생각이다.


“아 진짜 짜응나네.


그때, 어디선가 엥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이런 돼지 똥통 빠진 냄새나는 걸 먹겠다고. 아라가키 그러지 말고 우리 익선동으로 넘어가자. 내가 거기서 고급 와인에 프랑스 코스 요리 대접할게.”


그 망발을 일삼는 년에게 본능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건 순대국밥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 귀여운 순대국밥이가 듣지 못하도록 뚝배기를 양손으로 덮었다.


“제시카···”


또 제시카였다. 저 트롤은 왜 또 여기 있는 거야.

뭐라 쏘아붙이려는데···


“네 뭐라 씨부르는 거가.”


부엌에서 튀어나온 할미넴이 제시카의 턱 밑으로 국자를 들이밀었다. 치이익, 뜨꺼운 수증기가 아우라처럼 둘 사이로 퍼졌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분위기는 첨예했다.


“아 확 씨 열받네. 이곳에서 50년 장사하는 동안 인종 차별한 적은 없는데 네년 주둥아리는 차별 좀 받아야겠다.”

“아 뭐냐 존나 짱나. 할멈 할멈 주둥아리나 잘 놀려 내가 누군 줄 알고.”

“뭐?!! 네년 그 주둥아리 돼지 내장처럼 썰어줄까.”


할미넴이 국자를 치켜들고 제시카에게 달려들었다. 한국할매의 섬뜩함에 미국 소녀가 뒷걸음질쳤지만 그것도 잠시···


“아 씨발. 할매 난 몰라. 갓뎀. 당신이 자초한 거야!”


발출과 동시에 생기는 「공간」에 담겼고, 그것은 쳇바퀴 돌듯 회전하는 「시간」에 증폭됐다.


─생기의 살기화


트롤이라 하여도 명문가의 자제.

자비는 없었다. 죽여도 상관없다. 저런 한국 늙은이는. 자신의 아버지는 <아미>의 육군 중장이니까.

생기의 살기화가 할미넴의 인중으로 치달았다.


─콰지지직.


그 순간, 사람 하나가 둘을 가로막았다. 왼손엔 칼을 든 할미넴의 손을 잡고, 오른손은 제시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동 없는 칼과 소멸한 생기.


“가키······”


제시카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아라가키는 사자처럼 미간을 지푸렸다.


“쓸데 없는 짓.”


그 기세에 눌려 제시카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마치 공연이 끝난 무대처럼 가게 안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는 청아한 소리.


“할머니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냉정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 거기 있는 모두가 입을 벌렸다.


“그그그··· 그렇다면 뭐···”


할머니는 손에 들린 칼을 뒤로 감췄다. 괜히 머쓱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니는 순대국밥 좋아하나? 우리집은 순대국성애자들만 받는다.”


그 말에 아라가키는 잠시 탁자의 순대국을 내려보았다. 재미난 놀이가 생각난 아이 같았다.

그 놀이를 누구랑 같이 할까. 누구와 해야 재밌을까.


생각과 시선이 미친 곳에 신수영이 있었다. 신수영은 눈을 꿈뻑거렸다. 뭐뭐─··· 그러나 머무름은 집요했다.

시선을 거둔 아라가키는 문장을 다듬듯 입을 달싹이며 대답했다.


“많이 좋아해요. 우리 엄마도 좋아했거든요. 사랑했던 엄마를 꼭 닮은 사랑스러운 딸인 걸요.”

“ ··· ··· .”


순간, 신수영의 얼굴은 피가 빨린 사람처럼 새하얘졌다.


사랑했던 엄마─···

사랑스러운 딸─···


그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



같은 시각. 서울 종로구 종로 157 야서르니신사 기념 공원 (종묘광장공원)


야구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담배를 꼬나물었다. 녹슨 지포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고개를 들어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미세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흩어졌다.

그가 어렸을 땐 서울의 하늘은 푸르렀고, 이곳엔 세계문화유산 종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땅이고, 이주민인 일본인이 토착민인 자신을 꼬나본다.


─삐이이이!


“거기 시민분 담배 끄십시오. 이곳은 신성한 곳으로 금연입니다···!”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온 일본인 관리. 그가 정면으로 마주한 사내의 모습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양쪽 볼에 난 엑스자 흉터. 평생을 시구창에서 산 듯한 인상. 몸집조차 무식하게 크다.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뿐. 그의 ‘신분’을 알아본 관리인이 말했다.


“이런 조센징. 여기가 어디라고 담배나 피우고.”


─삐이이잉!

─삐이이잉!!


사내는 눈동자만 움직여 관리를 쳐다봤다. 저 호루라기 소리가 참 거슬렸다.

파리를 생각했다. 엥엥거리는 ‘물건’엔 손바닥이 약이다.

그는 사고의 과정이랄 것 없이 손을 처들었다.


"일본인도 술게임을 하나?"

"뭐라는 것이냐? 이노무 조센징이···"

"말발바닥 개발바닥."

"뭐?!!"

"개발바닥 뱀발바닥.”

“무슨 수작인 것이냐. 뱀이 발이 어딨다고. 이이이이!”


관리인이 3단 봉을 꺼내들었다. 착, 착, 착, 소리를 내며 펼쳐진 봉이 사선을 그으며 그의 어깨를 때렸다. 남자는 아랑곳없이 양손을 넣다뺐다.


“흐흐흐 뱀발바닥 곰. 발. 바. 닥."


관리인의 눈동자에 가로로 찢어진 웃음이 맺혔다. 뒤이어 시야가 암전됐다.


─퍽.


파리채처럼 휘두른 손. 관리인의 하관이 박살나고 풍압이 치솟는다. 관리인의 배때지가 터지고 뇌수가 튀어오른다.

이 요사스러운 해부가 사내는 만족스럽다.


이 남자의 이름은 마동털

<3대 테러 집단> 인천을 뒤덮은 「먼지」의 2인자이자 <마동 형제> 중 둘째.


“즐거우십니까?”


마동털이 관리인의 눈알을 밟아 터트릴 때 정면에서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들자 고깔을 쓴 남자가 서있었다.


“왔나. 이토 마그나자우라.”


마술사처럼 빼입은 마그나자우라가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시체는 증발했고 피는 씻겨나갔다.


“네 짓이었나. 사람 죽인 것치곤 너무 잠잠해.”

“물론입니다. 즐거우셨다면 되지 않겠습니까. 에피타이져는 메인이 아니지요.”


온 사방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평화로웠다. 손에 손 잡고 삼삼오오 거니는 가족들.

마그나자우라의 마법 「투명 장막」은 여전했다.

마동털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넌 언제나 쓸 데 없는 짓을 일삼지. 일본인 종특인가?”

“무슨 그런 말씀을. 듣는 일본인 기분 나쁩니다.”


서운하다는 듯 마그나자우라가 입을 삐죽였다.


“됐고. 갔다온 일이나 보고해라.”

“예엡.”


마그나자우라가 손바닥을 폈다. 마력이 응집되기 시작하며 빛무리가 일었다. 그 속에서 음성이 흘렀다.


─「먼지」의 이인자이자, <마동 형제>의 차남 마동털. 그대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허나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오늘 거사를 눈감아주는 것뿐. 무운(武運)을 빈다. 일본의 피로 그들의 신사를 물들이길.


다급한 음성 만큼이나 메시지는 빠르게 끝났다. 빛이 사그라들고 마그나자우라는 마동털의 반응을 살폈다. 스산하게 내려앉는 침묵 속에서 이젠 분노마저 바닥이었다.


“「열기」 새끼들은 언제나 신중하지. 나같은 놈들만 앞에서 피흘리고.”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그쪽도 나름 사정이 있겠죠.”

“됐고. 뭐 「가뭄」 쪽이야 안 봐도 뻔하고··· 결국 우리뿐인가.”


<3대 테러 집단> 중 「열기」와 「가뭄」은 마동털 같은 과격주의자를 혐오한다.

마동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야구르트 판매원, 탑골 공원 노인, 노숙자, 던전 노동자, 물품 행사 모델. 분장한 조직원들이 알게 모르게 눈을 마주쳤다.


“어차피 기대도 안했다. 거사는 우리들로 족해.”

“예. 모두가 뜻을 따를 겁니다.”


마동털은 옛 종묘의 입구로 걸어가 다시 담배를 물었다. 「투명 장막」에 갖힌 연기가 유독 매웠다.


서울 한복판에서 유일하게 고요와 침묵을 담당했던 곳. 경건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세계적인 건축가조차 홀로 관람하기 원했던 곳.

바로 이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이젠 명성은 사라졌다. 온갖 초식성 몬스터들로 사파리가 된 지 오래다.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무엇보다 치욕스러운 건 이곳이 야서르니 신사란 사실이다.


“마동목님과 이준 선생께서 많이 노여워하십니다. 지금 《광야》의 정예사들이 찾고 있고요. 일을 지체하면 발각될 겁니다. 붙잡히면 사형이···”


《광야》는 「먼지」 「열기」 「가뭄」을 아우르는 상위 조직이다.


“그 아저씨는 익숙하니까 신경쓰지마라. 어차피 여기가 죽을 자리다. 잡힐 일은 없다.”

“예. 그럼 전 미리 들어가 세팅해놓겠습니다.”


마그나고자우라는 장막을 거둔 뒤 모습을 감췄다. 그것을 신호로 조직원도 움직였다. 약 30분 뒤 거사는 거행된다.


마동털은 물고 있던 담배를 버린 후 발로 짓이겼다.



*



서울 야서르니 신사(옛 종묘)


울창한 숲 사이로 빛이 내리쬐고 비단처럼 그림자가 일렁인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은 잔잔하고, 바닥은 푹신하다.


생긋한 풀이 뒤덮은 땅.

그 끝자락에 세워진 야서르니 신사.


한국에 일본 전범을 기리는 신사가 세워진 이유를 시민들은 모른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모른다.

그저 세워졌으니 세워졌구나라고 생각할 뿐. 태어났으니 사는구나, 처럼.


오로지 【역사】에 대해 아는 이들만이 아는 진실이었다.



*



“아 썅썅썅···”


초식성 몬스터들이 뛰노는 그곳에 왠 희귀한 생물 하나가 나뒹굴고 있다.


“씨팔년 썩을 년 개년, 일천사백육십오년년년을 년이라 욕쳐먹고도 성에 안찰 년.”


─많이 좋아해요. 우리 엄마도 좋아했거든요. 사랑했던 엄마를 꼭 닮은 사랑스러운 딸인 걸요.


그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 귓가에 멤돈다. 신수영은 정녕 역겨웠다.

우주적으로다가 사지를 찢어도 모자란다. 그러나 이미 귀여니에게 경고를 받은 상황..


“수영아··· 저기··· 이제 곧 실습 끝나는데··· 몬스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


민시아는 풀을 뜯으며 땡깡 부리는 수영에게 물었다. 마음이는 수영의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이미 실습은 시작된 지 오래. 생기의 살기화로 몬스터를 잡으라는 과제가 내려졌다.

하지만 실습도 뭐고, 신수영의 상태가 이 지경이었다.


“빨리 하자. 우리 이러다 꼴찌하겠어.”

“아 몰라 몰라. 안해 안해.”

“야 근데···”


옆에서 듣고 있던 냉온달이 옛종묘의 담벼락 끝을 가리켰다.


“꼴지는 저 쪽이 할 거 같은데?.”


신수영은 나뒹구는 와중에도 냉온달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봤다.. 팔짱을 낀 채 기대선 아라가키가 보였다.


“응? 뭐지?”


눈이 게르스름하게 떠졌다. 저 능력 좋은 녀석이 이런 실습에서 가만히 있진 않을테고··· 흠···.

순간, 생각이 어딘가에 미쳤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흐름과 술식의 조화를 못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아라가키의 재능은 마법적이라고만 밝혀졌다.


“뭐야. 저년 기는 못 다루는 거 아냐?”


그 희열에 신수영을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민시아와 냉온달에게 일갈했다.


“언넝 잡읍시다, 우리. 하하하하”


희열 희열 무희열 말고 희열이 있다의 유희열이다!!! 아라가키 저년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


퍼어어어어엉─


그때였다. 폭발이 일었다. 버섯구름 모양의 거대한 폭발.


“뭐야 뭔데! F급의 이벤트야?”

“그그게 아닌 거 같은데··· 콜록 콜록.”


화염 폭풍은 검은 연기 속으로 옛종묘를 집어삼켰다. 시야는 잠식되고 매캐한 연기는 호흡을 방해했다.


“콜록 콜록─ 뭔 일이냐고.”


기침을 해대며 신수영은 눈 앞을 팔로 저었다. 눈을 찡그리고 기력과 마력으로 바람을 일으켜도 시야는 여전히 어두웠다.


캬아아아아악─!


뒤이어 터진 비명. 혼란에 휩싸인 몬스터와 시민들이 뒤섞인 아비규환.


─우우우우우웅.


이내 신사 공원의 끝과 끝, 꼭지점 네 곳에서 빛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제야 시야가 개였다.


“다들 괜찮아?”


신수영이 자빠져 있던 민시아를 부축해 일으키고, 냉온달에 상태를 살폈다.


“콜록─ 괜찮아. 마음이는?”

“마음이는 여기 있어.”


코를 킁킁거리며 제 주인을 찾던 마음이를 끌고와 민시아의 손에 목줄을 쥐어졌다.

폭음이 잦아들자 상황을 살폈다. 잘려나간 팔, 바닥에 흥건한 피. 거기다 불에 타 죽어 숯뎅이가 된 시체.

명백한 테러였다.


위이이잉──.

순간, 주변을 밝히던 빛기둥이 발광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광원은 눈이 타들어갈 듯 눈부셨다. 이윽고 기둥 끝에서 시작된 빛줄기가 정중앙에 모여들고, 중심부에서 은막이 내려왔다.

야서르니 신사 공원을 뒤덮은 돔, 완벽한 결계.


시시시시식─!


결계가 형성됨과 동시에 날카롭고 맹렬한 무언가가 대기를 질주했다.


“이건······.”


그것은 생기의 살기화였다.




전개와 캐릭터, 개연성에 대한 조언, 지적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쪽지와 댓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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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시간과 방의 정신(2) 22.04.21 46 1 12쪽
60 시간과 방의 정신(1) 22.04.20 47 1 12쪽
59 1이 2를 쌈싸먹음(2) 22.04.19 44 1 13쪽
58 1이 2를 쌈싸먹음(1) 22.03.20 55 1 18쪽
57 공학자(2) 22.02.25 51 1 16쪽
56 공학자(1) 22.02.25 51 1 13쪽
55 폭풍의 언덕 작전(3) 22.02.13 55 1 14쪽
54 폭풍의 언덕 작전(2) 22.02.04 59 1 17쪽
53 폭풍의 언덕 작전(1) 22.02.02 60 1 18쪽
52 폭풍의 전야(3) 22.02.01 61 1 17쪽
51 폭풍의 전야(2) 22.01.31 70 1 17쪽
50 폭풍의 전야(1) 22.01.30 68 1 21쪽
49 도박결의(3) 22.01.29 74 1 23쪽
48 도박결의(2) 22.01.26 63 1 21쪽
47 도박결의(1) 22.01.25 71 1 20쪽
46 액션 베이스볼(3) 22.01.22 65 1 20쪽
45 액션 베이스볼(2) 22.01.19 75 1 14쪽
44 액션 베이스볼(1) 22.01.18 71 2 15쪽
43 메가잭팟(3) 22.01.17 86 2 22쪽
42 메가잭팟(2) 22.01.15 82 2 22쪽
41 메가잭팟(1) 22.01.15 100 1 21쪽
40 이 망할 놈의 엠티(3) 22.01.14 82 1 20쪽
39 이 망할 놈의 엠티(2) 22.01.14 69 1 20쪽
38 이 망할 놈의 엠티(1) 22.01.12 75 1 15쪽
37 헌터의 밤(4) 22.01.03 78 1 20쪽
36 헌터의 밤(3) 22.01.02 86 1 14쪽
35 헌터의 밤(2) 21.12.31 96 1 16쪽
34 헌터의 밤(1) 21.12.31 98 1 18쪽
33 스승의 은혜(4) 21.12.28 102 1 16쪽
32 스승의 은혜(3) 21.12.27 86 1 15쪽
31 스승의 은혜(2) 21.12.27 88 1 13쪽
» 스승의 은혜(1) 21.12.27 102 1 20쪽
29 F급의 제자들(4) 21.12.27 110 1 18쪽
28 F급의 제자들(3) 21.12.27 104 1 17쪽
27 F급의 제자들(2) 21.12.27 111 1 15쪽
26 F급의 제자들(1) 21.12.27 118 1 18쪽
25 F급의 경매(2) 21.12.27 114 1 16쪽
24 F급의 경매(1) 21.12.27 119 1 20쪽
23 F급의 아카데미(4) 21.12.27 121 1 18쪽
22 F급의 아카데미(3) 21.12.27 136 1 20쪽
21 F급의 아카데미(2) 21.12.27 133 1 20쪽
20 F급의 아카데미(1) 21.12.27 151 1 19쪽
19 합의(3) 21.12.27 150 1 14쪽
18 합의(2) 21.12.27 154 2 16쪽
17 합의(1) 21.12.27 193 2 16쪽
16 강남 세브란스 병원 던전 러쉬(4) 21.12.27 188 2 20쪽
15 강남 세브란스 병원 던전 러쉬(3) 21.12.27 192 2 17쪽
14 강남 세브란스 병원 던전 러쉬(2) 21.12.27 213 2 17쪽
13 강남 세브란스 병원 던전 러쉬(1) 21.12.27 235 3 11쪽
12 항복 21.12.27 248 3 13쪽
11 1번 시나리오(2) 21.12.27 257 4 17쪽
10 1번 시나리오(1) 21.12.27 307 3 13쪽
9 분식집 대박 21.12.27 375 5 13쪽
8 합류(3) +2 21.12.27 432 5 15쪽
7 합류(2) 21.12.27 570 7 24쪽
6 합류(1) 21.12.27 976 11 15쪽
5 복수(2) 21.12.27 1,111 13 14쪽
4 복수(1) 21.12.27 1,470 15 14쪽
3 각성(2) 21.12.27 1,912 18 13쪽
2 각성(1) +3 21.12.27 2,449 2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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