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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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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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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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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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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작성
24.06.03 06:3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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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1쪽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DUMMY


조승지는 쓰러져있는 임강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금상단의 무인들이 그를 막아섰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시는게요!”


서슬퍼런 그들의 눈빛에 조승지는 차마 더 다가가지 못하고 멈춰섰다.


“그의 상태는 좀 어떤가?”


오금상단 무인들은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볼 뿐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임강의 곁에 착 달라붙어있던 호인청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내상이 보통이 아닌 듯 합니다. 몸이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를 반복하는군요. 저희는 손도 대기가 어렵습니다”


가슴 한쪽이 움푹 패이고 뼈가 부러진 임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몸 안의 균형이 무너진 듯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 것이 아까보다도 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노인에게 창 끝으로 찔렸다면 즉사였을테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조승지는 품에서 작은 함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것을 먹여보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니”


호인청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이제와서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내 신구다”


“.....?”



조승지는 입술을 말아 숭숭 빠진 앞니를 대신하여 재차 말했다.


“그는 내 친구다”


호인청과 무인들이 모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승지는 자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호인청이 조심스레 그에게서 작은 함을 받아들었다. 붉은 색 바탕에 금빛으로 꽃이 여러개 수놓아진 고급스러운 함이었는데, 뚜껑을 열자마자 예사롭지 않은 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비싼거다. 정말 많이”


호인청은 그 말을 듣자마자 냉큼 단약을 들어 혼수상태인 임강의 입술 사이에 밀어넣었다. 단약은 그의 입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더니 마치 물처럼 스며들어버렸다. 숨죽인 채 지켜보던 무인들이 낮은 탄성을 질렀다.


조승지는 경과를 기다리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금화역조단(金花逆調丹)은 그 값이 금자 수백냥에 달하는 귀한 단약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죽은 자도 살린다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있으니, 임강이 입은 상처의 치유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 영험한 단약조차 아직 조 장주의 의식을 돌아오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미동이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어제와 오늘 일어난 모든 일들이 혼란의 연속이었다. 단지 자신의 이빨을 부러뜨린 흉수를 찾는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느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난 다음이었다.


그의 아버지와 측근들이 단혈맹을 도와 백리세가를 배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은 어제 밤에야 알게된 사실이다. 그 전까지 조승지는 그런 계획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아들에게 알리지도 않을만큼 완벽하고 은밀하게 진행되던 일인 것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전혀 믿지 못했던 것일 수도···’


단순히 그가 백리세가의 정혼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백리연과 자신에 대하여 떠들어대는 말들을 자신이 어찌 모르겠는가. 갓난아기 때부터 정해진 인연이었으나, 각자가 성장하면서 보여준 총기와 성취도, 그리고 존재감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내가 언제 그런 여자랑 혼인하고 싶다고 했는가! 쓸데없이 똑똑하고 쌈박질 잘하는 여자따위···!’


조승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들 중 백리연보다 더 예쁘고 교태로운 여자들의 이름을 수도 없이 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앞에 설 때마다 알게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지 백리세가의 핏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돋보이기 시작하던 그녀는 어느새 안휘성을 넘어 중원 무림 전체에 이름을 날리는 후기지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반면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삼류무사 수준을 넘지 못했으니, 아버지 조 장주의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 장주가 정식 혼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백리장주가 허허 웃기만 하던 것이 몇번이나 반복되었던가. 조승지는 언젠가 술만 연거푸 들이키던 아버지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의 머리 속에 배신이 자리잡게 된 것은 그날부터일지도 모른다.


조승지는 가만히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비록 자신을 냉대하고 무시하고 욕을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아버지이다. 더딘 성장에 좌절하면서도 그를 어떻게든 성장시키기 위해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조 장주이고, 그의 이빨이 부러졌을 때나 귀창 사평이 그를 모욕했을 때에도 누구보다 분개했던 것도 조 장주이다. 설사 그 모든 것들이 조 장주 자신의 야욕과 자존심 때문이라 할 지라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랜 시간동안 미동이 없던 조호연 장주의 손가락이 까닥 움직였다. 붉은 기운이 손 끝에 돌아오는가 싶더니, 잠시 후 그의 얼굴에도 희미하게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호흡이 점차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조승지는 그를 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잠시 뒤 조 장주의 의식이 돌아왔다. 가늘게 떨리던 그의 눈꺼풀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두 눈을 깜박였다.


“아버님, 아버님!!”


한참 동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황급히 그의 입가에 귀를 가져간 조승지가 그의 질문에 답했다.


“사평은 한 팔을 잃고 도망갔습니다. 임강··· 그리고 그 녀석이 결국 이겨냈습니다”


조 장주의 입술이 한차례 더 달싹였다. 그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조승지는 주위에 가득한 시체와 피를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조가장 무인들의 것이었다.


“···.대부분 죽고 다쳐 몇 남지 않았습니다”


조 장주가 눈을 감았다. 그의 눈썹이 희미하게 떨렸다.


잠시 후, 오금상단 무인 쪽에서 떠들썩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임강의 의식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조승지가 조심스레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임강의 상처가 중해 금화단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가보처럼 내려오던 진귀한 단약을 외인에게 내준 것이니 평소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아들의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려 손을 더듬었다. 조승지는 그의 손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지금은 만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그럼요. 이정도 상처야 금방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조승지는 애써 밝게 대답했다. 사평에게 입은 상처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의식을 차린 것조차 기적이다. 어찌 어찌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무인으로서 활동하는 것은 커녕 말을 타거나 걷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조승지는 그런 말을 구태여 보태지 않았다.


그러나 조장주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가문이··· 조가장이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이번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조 장주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의 실수다. 잘못된 패에 판돈을 걸었어”


“......”


“단혈맹의 힘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뱀같이 교활하고 변덕스럽기도 하지. 때문에 그들과의 거래는 항상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그 결과가 이와 같구나”


백리세가를 배신했고, 단혈맹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세가의 주력 무인들 대부분이 몰살당했고 장주 본인도 겨우 살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앞으로 조가장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침묵에 잠긴 두 부자에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어느새 의식이 돌아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임강이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고 힘겹게 가슴팍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의 뒤에 선 호인청은 그가 언제 쓰러질지 몰라 안절부절한 눈빛이었다.


“승지. 부친께서는 어떠신가?”


자신의 몸조차 성하지 않으면서 임강이 우선적으로 걱정하는 것은 조금 전까지 그를 죽일 기세로 몰아붙였던 조승지의 부친이었다. 조승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임강은 몸을 가누기 힘든 처지이면서도 어렵게 자세를 취해 포권했다.


“조 장주님. 귀한 단약을 나눠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대방의 과(過)나 자신의 공(功) 대신 감사를 먼저 표하는 임강. 그러나 조 장주는 눈을 감아버린 채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라, 마침 다 모여 계셨군!”


때마침 문제의 그 녀석이 돌아왔다.

귀창 사평을 쫓아 숲속으로 달려갔던··· 자칭 순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장사치 이진평이었다.


오금상단의 무인들, 조가장의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켜 그를 맞았다.

비록 말은 없었지만 모든 이들의 눈빛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상태가 괜찮은 거요? 두 발로 멀쩡히 서있네?”


그가 반갑게 어깨를 두드리자 임강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호인청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본 이진평이 민망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다.


“도련님—! 무사하셨군요!!!”


두 팔 벌리고 달려온 대식이 그에게 물었다.


“그 살벌한 노인은 어찌되었습니까? 혼자 돌아오신 것을 보니 역시···”


대식이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돌아온 이진평의 대답은 모두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뭐가 역시라는 거야? 그냥 보내줬다”


심드렁한 그의 대답에 대식, 임강, 호인청, 조승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척 누워있던 조 장주마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보냈다구요? 놓친 것도 아니고 그냥 살려서 보냈다는 말씀이세요?”


“어차피 팔도 잘린데다 내상도 심해 무인으로서 생명을 잃었어. 굳이 잡아 족칠 건 또 뭐냐. 살 사람은 살고 갈 사람은 가는 거지”


“잡아놨으면 뭐 정보라도 빼내거나 인질로 써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럴만한 정신이 있는 사람이 있나? 다시 잡아올까?”


그가 휘휘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입을 쩍 벌린 채 이 상식을 벗어난 사내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임강마저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자, 더이상 그에게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이가 없었다.


그가 조승지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묘한 긴장감과 함께 사방이 조용해졌다. 이 사단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들이 마침내 다시 대면한 셈이 아닌가. 비록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조승지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마주보았다.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자신 또한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목숨을 빚진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파국에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찌 그에게 청구서를 내밀 수 있겠는가. 문득 앞니가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니 느껴져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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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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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9 25 12쪽
»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2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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