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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새글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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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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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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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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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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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혹 (2)

DUMMY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털어놓는 백리연의 얼굴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험난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서 펼쳐진 처절한 투쟁이 아니던가.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스스로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시 한번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팔 다리도 제자리에 붙어있고 얼굴에도 상처가 없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옷을 갖춰입은 그녀에게서 격전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상처를 찾는 건가요? 어깨와 복부 등을 얻어맞은 것 빼고는 괜찮아요”


“하지만 그 부랑자 녀석들에게 그렇게 당하셨는데···”


“그때 바로 남궁휘 공자가 나타났거든요”


나는 잠시 잊고있던 그 재수없는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 남궁세가의 후계자라던···!”


“맞아요. 제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위기에 빠진 순간, 너무나 완벽한 순간에 그가 나타났죠”


아무래도 큰일이었다. 왜 그렇게 남궁세가를 편드나 했더니, 역시나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퀴퀴한 노총각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이 꽃다운 청춘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소저께서는 몇마디 달콤한 말과 행동에 쉽게 넘어가서는 아니되오. 이 험난한 세상, 사람을 볼 때는 매우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단 말이지. 적들을 상대로 그렇게 무자비한 것을 보면 대충 그 음험한 성격이 짐작되지 않소?”


백리연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풉 하고 웃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표정을 다시 바로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걱정해줘서 고맙군요. 하지만 저는 남궁휘 공자에게 홀딱 넘어간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자를 의심하고 있는 거에요”


“의심···이요? 무엇에 대한 의심입니까?”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이죠. 그 자의 행동, 그리고 그 자의 의도. 저는 어쩌면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남궁세가도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뜻밖의 전개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남궁가 같은 대표적인 명문세가가 단혈맹에 연루되어 있을거라니. 혹시 그녀는 의심병에라도 걸린 것은 아닐까? 입을 헤 벌린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것도 바로 그것에 관련된 거에요. 제 이야기를 한번 끝까지 들어보면 제가 왜 그 자를 의심하는지, 어제 제가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이해가 될 거에요”



***



매부리코에게 얻어맞고 저 멀리 날아간 백리연의 몸은 더이상 미동이 없었다.


“이 ㅆ년을···”


흥분한 만두귀 사내가 곧장 그녀에게 달려드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매부리코 사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제지했다.


“죽이지는 말라고 했잖아. 잊었나?”


“이 썅··· 놓으라고. 안놔?!”


만두귀와 매부리코가 서로 엎치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리연은 흐릿해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으려 애썼다.


만두귀는 그나마 상대할 만한 녀석이다. 하지만 얼핏 목격한 매부리코 사내의 움직임은 최소 임풍 단주나 백리율 가주가 직접 나서야만이 제압할 수 있을 법한 고수였다. 그녀는 그를 상대할 만한 또 다른 한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사내는 지금쯤 머나먼 곳으로 떠나갔을 것이다.


‘어떻게든 피해를 입혀야 해. 가급적이면 저 매부리코 녀석을···’


백리연은 그들이 그녀에게 방심하고 다가오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이 죽이려는 것이든, 생포하려는 것이든, 단 한번의 기회라도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더이상 기력도 없고 휘두를 검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만두귀 사내가 거칠게 외쳤다.


“싸우다보면 죽일 수도 있는거지. 보는 놈도 아무도 없는데 이 년이 누구에게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뭐야? 너도 그럴려고 저 떨거지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버린거 아냐?”


“무슨 소리냐. 그냥 죽이고 싶으니까 죽였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다른놈이 하란대로 했다고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고 있냐 이거지. 내가 죽이고 싶으니까 죽이겠다는데 왜 나를 말리는거야?”


매부리코 사내에게서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만족한 듯한 만두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야지”


저벅 저벅 만두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리연은 여전히 그대로 의식을 잃은 척 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매우 암담했다. 차라리 아까 전처럼 마구 흥분해서 달려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부리코에 의해 한차례 흥분을 가라앉힌 상대방에게 기습이 통할지 알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 자신 또한 더이상 의식을 부여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 때였다.


“잠깐!”


매부리코 사내가 다시 한번 만두귀를 제지했다.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또 무슨—!”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던 만두귀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고요한 정적.


땅에 얼굴을 박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백리연으로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르릉-


두 부랑자가 각기 칼과 도끼를 살며시 부여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팟!


그들이 함께 어디론가 도약하는 소리, 칼과 도끼를 세차게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거칠게 숨을 허덕이고 짧은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처음에 백리연은 그들끼리 서로 시비가 붙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들 외에 또 다른 자가 이 시체로 가득한 비탈길에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상대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두귀 사내와 매부리코 사내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거친 숨소리 한번 내지 않을만큼 고수라는 것은 확실했다.


싸움은 얼마 가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던 만두귀 사내의 입이 무언가에 의해 틀어막혔다.


촥- 무언가 액체가 튀어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털썩.


매부리코 사내가 고통에 신음하며 물었다.


“너는 왜–”


촥.


또 한번 무엇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다시 한번 사방에 정적이 흘렀다.


백리연은 자신을 거의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부랑자들 - 만두귀와 매부리코가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 혼자서는 절대 이겨낼 수 없었던 상대이다. 그들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보아도 누군가의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저벅 저벅 그녀를 향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든 그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정신은 이미 아득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군이 아니라 또 다른 적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녀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부여잡은 채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애썼다.


흐릿한 시야 너머 마침내 자신의 앞에 선 사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꼬맹이 시절 이후로는 거의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눈에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남궁세가의 후계자, 남궁휘.


‘다행이다. 우리 편이야’


긴장의 끈이 풀어진 순간, 그녀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그녀는 생각했다.

생존을 위해 정신없이 싸우고 있을 때에는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질문들이었다.


그녀의 길을 가로막았던 부랑자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 또한 단혈맹의 일원이었다면, 왜 굳이 그녀를 쫓던 사파무리들까지 한꺼번에 베어냈던 것일까?

그녀를 사로잡으라고 한 자는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가지 의문이 더 있었다.

저 멀리 있어야 할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이 외딴 숲길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마지막 순간 매부리코 사내가 그에게 말하려던 것은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뒤엉켜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풀리지 않을 의문들 따위에 사로잡혀있을 여유가 없었다.


‘세가 사람들에게로, 아버지에게로 가야해!’


어지러이 떠돌던 질문들을 걷어내고 마음을 뾰족하게 하나로 모았다.

곧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다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수많은 무인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세가의 무복을 갖춰입은 무인들이었다.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그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한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무리의 맨 앞에는 자신을 구해냈던 남궁세가의 대공자 - 남궁휘가 말에 탄 채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거지?’


그녀는 자신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우선 조용히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먼 곳에서 나는 소리가 차츰 그녀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과 함성소리, 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 처절한 전투의 소리였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던 그녀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굳혔다.


‘뭐하는 거야. 왜 지켜만 보고 있는거지?’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백리세가의 전장이라면, 남궁세가 무인들이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히 기척을 지운 채 마치 관전자인것 마냥 평야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말없이 평야를 내려다보던 남궁휘가 나직히 말했다.


“친다”


백리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그들은 조금 전 이곳 전장에 도착했을 것이고,

남궁휘에게는 전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저 그 뿐일 터였다.


그 때, 또 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되물었다.


“어느 쪽을 말씀이십니까?”


남궁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휙 돌렸다. 기척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재빨리 눈을 다시 감았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한참동안 머무는 것이 느껴졌다.


“......”


그녀를 바라보던 남궁휘가 마침내 시선을 거두었다. 남궁휘가 말을 달려 나가자, 그를 따라 모든 남궁세가 무인들이 하나가 되어 질주했다. 숲을 벗어나 속도가 붙은 말들의 편자소리가 지축을 울렸다.


홀로 남겨진 백리연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번쩍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레 몸을 움직이자 아득한 통증과 함께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자신이 커다란 의문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궁휘가 공격하려는 것이 과연 어느 쪽인지에 대한 의문을.

그녀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뒤늦게 몸을 날리려던 그녀의 몸이 땅바닥을 굴렀다.

그녀가 절박하게 외쳤다.


“안돼, 안돼!!!”


하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가 닿기엔 전장은 너무나도 멀었다.


백여필의 말이 질서정연하게, 그러면서도 맹렬한 기세로 평야를 질주했다. 한창 정신없이 뒤섞여 싸우던 무리들이 모두 멍하니 멈춰설 정도로 대단한 기세였다.


멀어져가는 무인들 너머 남궁휘가 번쩍 치솟아 올린 검이 보였다. 백색의 검날이 석양을 받아 번뜩였다. 그가 하늘 높이 치켜올렸던 검을 찍어내리자, 마치 번개가 치는 듯한 섬광과 함께 사파무리들이 반쪽으로 갈라졌다.


그제서야 온 몸의 긴장이 풀린 백리연이 풀썩 주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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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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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격전 +2 24.06.13 985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7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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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반강 (4) +2 24.06.10 1,040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5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6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8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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