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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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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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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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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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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남궁세가 (2)

DUMMY


하얀 검날에 꿰뚫린 몸이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쿵—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바라보다 불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벌떡 몸을 일으키는 나의 손목을 누군가 잡아챘다.

그 낯선 감촉에 흠칫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백리연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던 나를 발견하고도 작은 눈짓 한번이 전부였던 그녀이다.

그런 그녀가 왜 하필 지금 이 순간 내 길을 막아서는 것일까.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서지 마세요”


“하지만–”


“부탁이에요. 나중에 제가 다 설명드릴께요. 지금은 부디-”


다급하게 속삭이던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누군가 우리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그녀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어떤 말이 담겨있을지 아직 나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어두운 저 편을 바라보았다.

바닥을 뒹구는 저 거구의 시체.

그 시체에 꽂힌 검날을 보니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단지 패배했다는 이유로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노예- 색목인이었다.

내가 반강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구해내었고,

경각에 달렸던 목숨을 조승지가 열심히 간호하여 살려놓은 색목인.


비록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적이라고는 하지만

걷는 것조차 힘겨워보였던 이를 이렇게 죽이는 것이 맞는 일이었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구역질나는 상황에서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최소한 나 말고 한명은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네 이 녀석. 이게 무슨 짓이냐?”


굵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임강의 아버지, 빡빡머리 임풍이 눈썹을 치켜올린 채 남궁세가 녀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었으면 바지적삼을 축축히 적실 정도로 위협적인 얼굴.


남궁휘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사방에 흩어져있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묘한 분위기가 평야에 감돌았다.


잠시 침묵하던 남궁휘가 그에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염주홍권 임풍 단주시로군요. 미리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짓이냐고 하심은··· 어떤 맥락으로 하는 말씀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손속이 과하지 않았나? 죽이지 않고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글쎄요. 저는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남궁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은 지금 무림을 전복시키려는 세력들의 수괴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박멸해내는 것이 우리의 과업이지 않습니까?”


“누가 그것을 모르느냐? 나에게 정의에 대하여 가르치려는 것이냐?”


“······”


“이 녀석들과 하루 종일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이 나다. 이 녀석을 쓰러트리기 위해 누구보다 더 많은 주먹을 휘두른 것이 나란 말이다. 이 상처들이 보이지 않느냐? 내 주먹에 묻은 이 피가 보이지 않느냐?”


단지 그의 주먹만을 볼 일이 아니다. 이 전장에 피를 뒤집어쓰지 않은 자가 있겠냐만, 유독 임풍의 온몸은 검붉은 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임풍과 색목인이 처절하게 싸우던 광경을 떠올렸다. 치졸하고 괴이하게 싸우던 반강이나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그야말로 사나이답게 후퇴없이 주먹을 주고 받지 않았던가. 어찌보면 무식해보일 정도로 말이다.


자신과 사력을 다해 싸우던 상대방이 갑자기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 임풍이 허탈해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전투를 하는 것과 살육은 다른 것이야. 설령 전투 중이었다하더라도 뒤통수에 칼을 꽂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 터인데, 지금은 승패가 모두 결정나고 위협적인 상황도 아니었지 않나? 네 녀석이 한 것은 그냥 살인이나 다름없어. 그렇지 않느냐? 너의 행동이 사파무리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


남궁세가 무인들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에 반면 남궁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임풍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궁휘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던 무인이 임풍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임 단주께서 무언가 착각을 하고 계신 모양이군. 대공자께서는 남궁세가 차기 가주의 신분이오”


임풍이 땅에 침을 탁 뱉었다.


“제에미. 차기 가주가 뭐가 어쨌다는 거냐? 나는 오금상단의 12대 단주다”


‘오우··· 상남자!’


나는 임풍에게 크게 감탄하여 어둠 속에서 몰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남궁세가의 차기 가주에게 저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아무리 무림에 대하여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어도 남궁세가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임풍은 상대방이 그 어떤 배경을 가졌던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거침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보다못한 백리율 가주가 황급히 끼어들었다.


“임 단주, 부디 예를 지켜주기 바라오. 아무리 전투가 끝난 상황이라 하더라도, 분명 저 자가 적들의 수뇌를 빼돌리려 하지 않았소? 그가 던지지 않았으면 아마 내가 검을 날렸을 것이외다”


“하지만–”


“단주님!!!”


어느새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선 백리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밤공기를 가르는 그 뾰족한 목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손목을 내려다 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잡고 있던 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오늘 남궁가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저 뿐만 아니라 이곳에 남아있는 모든 이들이 무사하지 못했을거에요. 어쩌면 이들 중 절반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지금 단주님의 말과 행동이 우리의 은인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백리율 가주에게까지 눈을 부라리며 대들 기세였던 임풍이다. 그러나 그는 창백한 얼굴의 백리연이 목소리를 높이자 당황하여 눈을 꿈벅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사건의 당사자인 남궁휘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속내를 알 수 없이 무표정했던 그의 얼굴에는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그가 임풍과 백리율, 백리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정중히 포권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전투의 혈기가 가라앉지 않은 탓에 잠시 흥분을 했던 것 같군요. 제 행동에 지나친 점이 있다면 용서해주시기를···”


대 남궁세가의 차기 가주가 먼저 허리를 굽히고 들어온 상황이다. 백리율 가주와 백리연의 매서운 눈치를 받은 임풍이 마지못한 기색으로 마주 포권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상황이 돌아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그들끼리 아무리 지지고 볶고 사과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이미 색목인의 목숨은 저 멀리 다른 세상으로 날아간 것을.


다시 한번 미동이 없는 색목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서생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패배한 반강을 보호하거나 보살피려 하지 않을 때,

유일하게 그 주인을 탈출시키려 시도한 것이 색목인이다.

그것이 자신을 직접 죽이려고 했던 비정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가 이렇게 단숨에, 그리고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을 알면 반강은 어떤 생각이 들까?



어수선했던 상황이 봉합되고 나자, 남궁휘가 색목인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검을 뽑아냈다. 어둠 속에서도 하얀 빛을 내뿜는 매끄러운 검날에는 단 한방울의 피도 묻어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옆에서 나뒹굴고 있는 반강에게로 향했다. 이 난리통에도 그는 여전히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백리가주님께서는 이 자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었습니까?”


뜻밖의 질문에 백리율 가주가 미간을 좁혔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나지 않았나. 어떻게 처리할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네”


“살려놓으면 괜히 단혈맹의 무리들이 구하러 오거나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까?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확실히 처리를 하고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궁휘는 여전히 자신의 검을 검집에 집어넣지 않은 채였다.

그의 검 끝이 반강의 목 언저리에서 위협적으로 까딱거렸다.

백리율 가주가 그에게 동의하는 순간 바로 반강의 목을 베어낼 것처럼.


겨우 누그러졌던 임풍이 또다시 얼굴을 험악하게 찡그렸다.


“도대체 저 녀석은 문제가 뭐야? 왜 이렇게 다 죽이지 못해 안달이야?”


“단주님!”


또 다시 험악한 말을 내뱉는 임풍을 백리연이 재빠르게 자신의 옆으로 잡아당겼다. 임풍은 어어- 하면서 마지못해 그녀에게 끌려갔다. 임강과 백리연이 양 옆에서 그를 단단히 붙잡자 그는 어처구니 없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백리율 가주가 남궁휘에게 답했다.


“그대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살려놓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더 크지 않겠나? 우리는 아직 이 자의 배경이나 단혈맹에 대하여 너무나도 몰라. 심문을 한다면 무언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네”


“이 정도 무리를 이끌던 자가 과연 무엇을 털어놓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는 일이지. 만약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후에 단혈맹 세력과 협상을 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백리율 가주가 자신의 의견에 쉽사리 따라주지 않자 남궁휘가 어깨를 으쓱하며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 넣었다. 하지만 더 많은 피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검을 다시 집어넣는 움직임이 굼벵이같이 느렸다.


“반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여전히 이 자의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될까 걱정되는군요”


부담이 되더라도 그것은 백리가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비록 남궁세가가 이번 전투의 승리에 꽤 큰 기여를 했다고는 하나, 남궁휘가 해야할 걱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서 그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이 자를 당장 죽이지 않으실 것이라면, 저희 남궁가에게 맡겨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


“뭐라!?”


다른 이들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역시나 성미급한 임풍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를 붙잡고 있던 임강과 백리연이 질질 끌려갔다.


“우리가 잡은 녀석이다. 이 녀석을 왜 네놈이 데려간다는 것이냐?”


남궁휘가 임풍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임풍 단주님께서 직접 이 자를 잡으셨습니까?”


“그건 아니지만···그것과 이 문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이 자를 직접 잡아낸 자의 의견을 듣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 자에게 가장 큰 처분 권한이 있지 않겠습니까? 도대체 누구입니까? 아까 백리가주님께서도 본인이 아니라고 하셨었는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는 남궁세가 녀석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까 전부터 녀석의 말은 단 한마디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처분 권한이니 뭐니 하는 말만 들어도 이 녀석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문제의 본질은 누가 적들의 수뇌를 직접 잡았느냐가 아닐 것이다. 녀석이 의도적으로 대화의 흐름을 그렇게 유도하고 있을 뿐.


백리연의 만류가 아니더라도 이런 녀석과는 당췌 얽히고 싶지 않았다. 재빠르게 백리담의 옆구리를 찌르자,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의 손짓발짓을 본 백리담이 인상을 팍 찌푸렸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백리담을 남궁휘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백리담이 한 손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임풍의 한쪽 손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임강이었다.


“형님, 그 자는 저와 임강 아우가 합공하여 가까스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남궁휘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명백한 불신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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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0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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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3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6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0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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