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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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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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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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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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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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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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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
12쪽

금화역조

DUMMY



한차례 폭풍이 가시고 난 뒤, 마차에는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난감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던 임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이 소협. 이제 그만 혈도를 풀어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지름길도 찾아야 하고 말입니다”


“음···”


잠시 고민에 빠졌던 나는 손가락을 뻗어 조승지의 혈도를 풀었다. 그러나 혈도를 풀자마자 돌아오는 것은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욕세례일 뿐이었다. 재빨리 그의 혈도를 다시 점하고 나니 마차에 평화가 찾아왔다. 임강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보시다시피 이런 상황이오”


“이 소협께서 승지의 가죽신을 먼저 돌려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는 임강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조승지의 고급스러운 가죽신은 마치 내 발 크기에 맞춰 제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신기 전이라면 모를까, 한번 신고 나니 벗기가 싫을 정도로 편안하고 때깔이 좋았다.


“꼭 승지 것이어야만 합니까? 제 신은 얼마든지 가져가셔도 됩니다”


발을 꼼지락거리는 나에게 임강이 자신의 신을 벗어 내밀었다. 내가 원래 신고 있던 싸구려 신보다는 품질이 꽤 좋은 편이었지만, 조승지의 고급스러운 가죽신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내 발 크기에는 맞지 않았다.


“나도 빼앗을 생각까지는 없었소. 그런데 이 자식이 하도 덤벼들길래···”


입을 쩝 다신 나는 조승지의 신발을 벗어 그의 발치에 밀어놓았다.


“됐지? 또 욕하면 그냥 너 버리고 우리끼리 간다”


눈빛으로 끊임없이 욕하던 그가 결국 지긋이 눈을 감았다. 다소 진정된 듯한 녀석의 모습에 다시 한번 그의 혈도를 조심스레 풀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도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거나 달려들지 않았다. 길게 심호흡을 한 그가 천천히 자신의 가죽신을 다시 신었다. 말없이 창문 밖을 내다보는 그의 모습이 유달리 쓸쓸했다.


“남는 신발이 있으면 좀 달라고 한게 그렇게까지 열받을 일이냐? 나도 홧김에 그런거야. 네가 쓸데없이 욕하고 바득바득 덤벼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억지로 빼앗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나한테 말걸지 마라”


조승지가 차갑게 답했다.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그 말투에 또 한번 욱할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녀석의 앞니가 나에게 송두리째 털린 신세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창 밖으로 집어 던졌을 것이다.


‘하여간 성질이 더럽단 말이지···’


첫 인상처럼 마냥 글러먹은 녀석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왜 굳이 바득바득 우리 마차에 따라온 것인지도 당췌 알수 없었다. 말로는 친구를 위해서라고는 하는데, 이들처럼 서로 안 어울리는 친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터였다.


“둘이 친구인 것은 맞소?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서로 어울릴만한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임강이 곤혹스럽게 웃었다.


“최근 들어 교류가 뜸하긴 했지만, 그래도 백리담 형님을 중심으로 다들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또래 사이입니다”


“아하. 그렇다면 이 녀석이 크면 클수록 싸가지가 없어져서 그대가 멀리하셨겠군”


“그런 것은 아니고···”


임강이 말 끝을 흐리며 조승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승지는 우리의 대화를 무시하고 여전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임강은 갑자기 통증이 밀려오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그 난리통에 간단 말이오. 지금이라도 그만 둡시다”


나는 그를 부축해 마차 바닥에 눕히려 했다. 그런데 임강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자신의 단전 쪽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상··· 이상합니다. 갑자기 단전에 기운이 몰려···”


나름 어느 정도 회복된 줄 알았던 임강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삽시간에 얼굴과 손, 발 등 드러난 모든 부위에서 핏기가 빠져나간 듯 하얘지고, 손과 발이 오그라들며 등이 구부정하게 굽혀졌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거리는 동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 조승지의 안색이 급변했다.


“마차를 멈춰! 너는 빨리 운기조식을 준비해라!”


다짜고짜 명령조로 지시하는 조승지. 그의 표정이 워낙 급박하여 아무도 토를 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식이 황급히 마차를 멈춰세우자 임강이 힘겹게 가부좌를 틀며 운기조식 자세를 취했다. 서둘러 기운을 다스려보려던 그를 조승지가 다시 한번 제지했다. 임강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금화단을 복용했을 때 지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부작용이야. 기를 섣부르게 다스리려 하면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조승지가 입술을 지긋이 깨물더니 말을 이었다.


“임강. 자네는 나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를 믿고 자시고를 떠나, 이미 온몸의 기운이 한곳에 과하게 쏠려버린 임강은 의식을 잃고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조승지는 다급히 그의 한쪽 손바닥을 가슴에 대고 나머지 한쪽 손바닥을 그의 발바닥에 붙였다. 내가 아는 운기조식과는 매우 다른 특이한 자세였다.


“가슴에 숨을 가득 담고 호흡을 멈추게. 몸을 순환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해야 하네. 좌수우구(左收右吐). 왼손으로는 쓸어담고 오른손으로는 뱉어내. 집중해야 해. 집중!”


조승지의 다그침에 임강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조승지의 말을 몇번 되뇌이더니 곧바로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낯선 자세에 감을 잡지 못한 듯 몇차례 휘청이던 그가 곧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대식과 나는 숨죽인 채 임강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단전에 몰렸던 기운이 서서히 가슴을 향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임강이 쓰던 무공마냥 붉은 빛을 띄는 기운이었다.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조승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슴으로 떠오른 기운을 그의 손바닥이 흡수했다. 팔과 어깨, 머리를 느릿하게 훑으며 지나간 기운이 반대편 손바닥을 지나 발바닥으로 흡수되었다. 그 과정이 몇번씩이나 반복되었고,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붉은 강줄기가 몸을 일주천 할 때마다 그의 몸에서 불타오르는 기운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


‘운기조식만으로 이렇게 된다고···?!’


그 광경을 보고있자니 내가 알고 있는 운기법이 혹시 틀려먹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노인에게 배운대로 하루 종일 몰두해봤자 몸이 상쾌해지는 느낌 말고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 우리 앞에 가부좌를 틀고있는 임강이 시시각각으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무공에 일천한 대식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그를 따라 한쪽 가슴에 손을 얹고 발바닥에 반대편 손바닥을 대어보았다. 그러나 역시 아무 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괜시리 발바닥이 간지러워 벅벅 긁고 있으려니 대식이 나를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운이 너무 빠른 속도로 임강의 몸을 휘돌아 이제는 그의 몸 자체가 하나의 붉은 덩어리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 그 기운이 서서히 잦아드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임강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나왔다. 마치 그의 온 몸이 불길에 휩싸인 것만 같아, 마차가 불에 타오르지 않을까 걱정해야할 정도였다.


“···.!!!”


나와 대식은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조승지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인 듯, 임강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에게 속삭이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운기조식이라는게 원래 이런 거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다시는 말도 섞지 않을 듯 했던 조승지가 마른 침을 삼키며 답했다.


”그럴리가 있냐. 아마도 금화역조단(金花逆調丹)의 기운을 완전히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금···금 뭐?”


금(金)자를 들으니 귀가 쫑긋 세워진다.


“금화역조단. 도대체 몇번을 말해줘야 아는 것이냐. 우리 가문에 가보처럼 내려오던 단약이다. 아마 전 중원을 모두 통틀어도 그 수가 몇 개 되지 않을 것이야”


조승지의 말에 다시 한번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모름지기 진귀한 보검, 희귀한 영약없이 어찌 무림과 강호를 논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눈 앞에서 임강의 내공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을 목격한지라 군침이 싸악 돌았다.


“어이. 그런 좋은 게 있었으면 나한테도 좀 나눠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조승지가 입을 꾹 닫은 채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때, 운기조식을 마친 임강이 기다란 숨을 내쉬며 깨어났다.


“....!!!”


그의 안광은 형형했고 몸에는 기운이 넘쳤다. 바로 조금 전까지 커다란 상처들과 내상으로 힘들어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그의 표정에 당혹감과 기쁨이 넘쳤다. 몇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승지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승지, 정말 고맙네!”


조승지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임강을 걱정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가 임강의 손을 놓고 다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대체로 무관심한 나조차 그의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반응에 잠시 주춤했던 임강이 나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감사를 표했다.


“이 대협.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


“사실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임강이 조승지를 흘깃 바라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답했다.


“아까 사평에게 당한 뒤, 승지가 준 단약을 먹은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에는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던 단약의 기운이 갑작스레 응집하며 단전으로 치닫더군요”


그는 조금 전의 긴박한 상황을 떠올랐는지 침을 한차례 꿀꺽 삼켰다.


“이전까지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승지가 가르쳐준 대로 기의 흐름을 만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운을 온전히 흡수하고 난 지금은··· 몇년치의 내공이 한꺼번에 상승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임강이 스스로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자신의 몸을 다시 한번 살폈다. 반짝이는 그의 눈과 광채나는 피부만 보더라도 그의 내공 수준이 크게 도약했음을 알 수 있었다.


관심없는 듯 창 밖을 보고 있던 조승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디 구명(救命)을 목적으로 하는 단약일 뿐이다. 내공 증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지극히 드물게 발생한다고 알려져있지만, 도대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발생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지. 그야말로 기연(奇緣)이라 해야할 것이다. 아무래도 너의 선천적인 체질이나 내공심법하고 연관이 있을지도···”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묻어나는 조승지의 말투.


녀석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그 또한 금화역조단을 복용해본 적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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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화역조 +1 24.06.05 1,191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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