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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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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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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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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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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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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반강 (2)

DUMMY



천통표국으로 향하는 우리를 사파무리들이 막아선 다음의 일이다.


절벽에서 화살을 쏘아대는 무리를 포함해서, 사파들의 무리는 정말 끝도 없이 우리들에게 밀어닥쳤다. 이제와서 마차를 포기할 수도 없고, 저 많은 사파무리들을 모두 다 때려눕히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에는 오직···


“전진, 또 전진이다!”


어느새 말 위에 올라탄 임강이 적들의 창을 빼앗아 휘두르기 시작하고, 곧 조승지도 나머지 말 한쪽에 올라 번쩍이는 보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앞에만 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차를 뒤따르는 놈들이 쏟아내는 온갖 흉악한 물건들 - 화살, 창, 암기, 돌멩이 따위들을 막아내는 것은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되었다.


마차 위에 올라선 나는 연신 파초선을 휘둘렀다. 너무 열심히 휘두르다보니 지붕 판떼기도 결국 수명을 다하고 말았지만, 그때마다 마차를 뜯어내 새로운 파초선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전차(戰車)가 지나가는 길마다 윽! 윽! 소리와 함께 짚단처럼 적들이 쓰러졌다.


“으하하하! 이 자식들, 다 덤벼라!”


당연히 임강이겠거니 했는데 다시 들어보니 조승지의 목소리였다. 임강이 창을 들고 휘두르는데 조승지의 역할이 까짓거 얼마나 되겠는가. 싸움은 조자룡이 다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간손미가 기분을 내는 격이었다.


“지름길이나 똑바로 찾아라! 도대체 그 천통표국이란 곳은 언제쯤 도착하는거야?!”


“이 정신없는 와중에 어떻게 길을 찾는단 말이냐!”


생각보다 더 뻔뻔한 조승지의 대답에 기가 막혔다. 그러나 싸움이 지난하게 길어지고, 전차가 같은 숲 속을 빙글빙글 돈다고 느껴질 때 쯤 녀석이 다시 한번 외쳤다.


“알았다! 적들이 제일 열심히 막는 곳이 바로 천통표국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어처구니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럴싸한 조승지의 해법. 묻거나 따질 겨를도 없이 적들이 가장 많고 방비가 두터운 곳을 향해 임강과 조승지가 말을 달렸다.


“으아아아!!!”


두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연신 병기를 휘두르고, 대식은 잘 숨고, 나는 열심히 막았다. 그렇게 무식한 돌파를 계속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냥 뒤만을 바라본 채 쏟아지는 공격들을 막아내던 나는 어느새 숲길이 끝나고 평야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반가움 가득한 임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조승지의 말대로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드디어 호인청의 의뢰를 완료했다는 생각에 활짝 웃음꽃이 피어날 때···


쐐애액– 무언가 엄청난 게 날아오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콰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래로는 말들이 고꾸라지고 마차가 완전히 박살난 채였고, 옆으로는 나의 못난 친구들이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나마 제일 믿음직스러운 녀석인 임강은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쯤 영혼이 나가 있었다.


거친 황야를 헤치며 달려온 전우들이 땅바닥에 철푸덕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공중에서 몸을 접으며 한번 더 도약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대식과 임강을 낚아채 차례대로 옆구리에 쑤셔 넣었다.


조승지까지 구해내기에는 내 옆구리는 두 개 뿐이었다. 아쉬운대로 녀석의 엉덩이를 뻥- 걷어차자, 위태롭게 낙하하던 녀석의 몸이 다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휘리릭- 땅에 착지한 나는 어느 쪽이 임강의 아버지인지 찾아내기 위해 재빠르게 양쪽 진영을 살폈다.


왼편으로는 민둥민둥한 대머리에 터질듯한 근육을 지닌 무인이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외모, 단정하게 옷을 갖춰입은 멋진 풍모의 중년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로도 착각할 만큼 곱상한 외모의 임강이 과연 누구의 아들이겠는가.

둘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백번을 고르라고 해도 백번 모두 오른편의 중년인을 고를 것이다.


“임강의 아버지이신가보군요. 여기 아드님을 모셔왔습니다!”


온 평야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 멍청한 놈아. 그쪽이 아니다”


엉덩이를 문지르던 조승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이 못생긴 대머리가 임강의 아버지일리는 없고, 대신 성큼성큼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푸른 눈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헉! 설마 저 분이··· 임강, 혹시 혼혈이라서 잘생긴 것이었소?”


하지만 그를 임강의 아버지로 보기엔 표정이 너무 기계같고 무뚝뚝한데다, 우리를 향해 점차 속도를 높여오는 것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온 몸을 부딪힐 기세로 달려오는 사내를 보며 어찌해야 하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뒤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들소처럼 달려온 대머리 중년인이 우리를 지나쳐 색목인에게 달려들었다. 전력을 다해 달려온 두 근육질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다른 병장기를 쓴다거나 피할 생각 따위는 없는 순수한 힘의 격돌. 서로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어낸 주먹이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쾅—!!!


대형 추돌사고라도 난 것만 같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두 사내가 비틀거리며 몇발자국씩 뒷걸음질쳤다. 서로 물러난 거리는 비슷했지만 색목인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대머리 중년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상황을 파악한 임강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흘깃 임강을 바라본 대머리 중년인이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절대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어서 다시 가거라!”


“모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어찌 저 혼자만의 안전을 도모하겠습니까? 저도 아버지의 곁에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그것이 왜 너 혼자만의 일이더냐. 내 뜻을 아직도- 이익!”


대머리 중년인과 색목인이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고 맞붙었다. 임강은 몸을 비틀어 내 옆구리에서 빠져나가 색목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로서는 임강을 말려야 하는 것인지 내버려둬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핏줄이라는 것이 있는데···이렇게 생김새가 달라도 되나?”


조승지가 작고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눈치를 좀 챙겨라. 양자(養子) 아니냐, 양자”


새롭게 임강에 대해 알게된 사실에 나는 다시 한번 입을 쩍 벌렸다. 이렇게나 끔찍하게 서로를 위하는 양자 양부 관계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 또한 중원 세계의 아버지를 열심히 모시긴 했지만, 이렇게 온 몸과 마음을 바쳐 따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두 부자와 색목인이 어지러이 얽혀들었다. 임강의 아버지 - 임풍은 임강이 묘사했던 것처럼 쇠약해 보이지도, 늙어 보이지도 않았으며 온 몸에 정기가 넘쳤다. 그는 색목인을 상대하면서도 때때로 그의 아들을 쫓아내려는 듯이 손을 휘두르거나 발을 내질렀다. 그러나 임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공격을 흘려내거나 막아가며 색목인에게 달려들었다. 임풍은 곧 그를 떨쳐내는 것을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힘을 모아 색목인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임풍의 무공은 그 수준이 매우 높았지만, 색목인은 그보다 더 단단하고 강인한 느낌이었다. 비록 아버지만큼 심후한 내공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더 젊고 날랜 임강이 힘을 보태니 비로소 싸움의 균형이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도련님, 우리··· 우리 계속 이곳에 있어도 되는 걸까요?”


아직까지도 내 옆구리에 끼여있던 대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제서야 싸움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시야의 정면과 양 옆으로는 우리를 쫓던 무리를 포함하여 온 평원에 사파무리가 가득하고, 내 뒤로는 동그랗게 진을 형성한 백리세가의 무인들과 우방 세력의 무인들이 보였다. 우리가 떨어져내린 곳이 공교롭게도 두 세력이 맞붙는 중간지점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내 시야에 더 눈에 띈 것은···


그들의 발치에 널린 수많은 시체들.

형체를 알 수 없이 짓밟힌 조각과 파편들.

핏줄기가 모여 만들어진 강줄기들.


왜 나는 이것들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 것일까.

내 코가 이미 피냄새에 익숙해져버린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은 피만 보아도 가슴이 벌렁벌렁거리던 내가 아니었나.


새삼스레 속이 울렁거렸다. 피를 보아서가 아니라, 어느덧 이 광경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듯한 나에 대한 울렁거림이었다.


“네 말이 맞다. 가자”


이곳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토록 간절했던 임강의 소원도 들어줬으니 해야 할 도리도 다 한 셈이었다. 대식과 함께 조용히 몸을 빼내려는 찰나, 조승지가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어딜 간다는 거냐”


나는 내 팔목을 잡은 녀석의 손과 눈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어쭈. 네가. 감히···?”


조승지 녀석은 내 매서운 눈빛에 살짝 움츠러들었으면서도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저 녀석들을 제압해야만 한다. 너는 할 수 있어. 그렇지 않느냐?”


“대신 싸워준다는 말은 한 적 없다. 내가 끼어들수록 계속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길 뿐이야. 이쯤에서 나는 정말 빠져야겠어”


“이들을 여기서 막아내지 않으면 백리세가와 다른 우방세력들이 모두 여기서 전멸당할 수 있어. 그래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냐?”


“글쎄. 네놈같이 한번 배신했던 가문의 녀석이 할 말은 아니지 않나?”


나는 즉시 그 말을 뱉은 것을 후회했다.


조승지 녀석이 애초에 싹퉁머리가 없고 성격은 거지같은데다, 아버지의 배신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피를 봐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는 지금의 녀석에게는 너무 모질고 가혹한 말은 아니었을까.


조승지의 얼굴이 새하얗고 붉게 변했다. 그러나 분노와 수치감으로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도··· 여전히 그는 단단히 잡은 내 팔목을 놓지 않았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아라. 사람들을 얼굴을, 눈빛을 봐! 그들이 과연 버텨낼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이들을 내버려두고 떠날 수 있느냐?”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녀석의 말을 따라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동그랗게 진을 형성한 백리세가와 우방세력들은 사방을 가득 메운 사파무리들에 비해 그 수가 현격히 적었다. 온 몸 가득 느껴지는 것은 짙은 피로감이었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의 눈빛 저 깊숙한 곳에서는 절망이라는 감정이 점차 그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세가의 무인들 한 가운데서 누군가와 손을 맞대고 운기조식하고있는 백리담이 보였다. 그와 똑닮은 중후한 인상의 사내는 아마 그의 아버지라는 백리율 가주일 것이다. 백리연은 어디에 있나 싶어 시선을 돌리려던 순간, 하필 때마침 눈을 뜬 백리담과 눈을 딱 마주쳤다. 백리연과 달리 시종일관 나를 탐탁치 않아하던 녀석이지만, 나를 발견한 그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희망이 한가득이었다.


“제길···”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뒤로 돌았다. 몇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임풍과 임강 부자가 주먹을 휘날리며 색목인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힘과 내공 면에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수준의 대결이었지만, 우직하게 정면으로만 부딪히고 있으니 세기의 바보같은 대결이기도 했다.


“일단 백리세가 부자가 기운 차릴 때까지만 좀 도와주도록 하지. 어때?”


조승지가 비로소 내 팔목을 놓아주었다.


결국 또 이렇게 싸움판에 뛰어들게 되는 거다.


세상 일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변노인의 말도 생각나고, 내가 풍파를 몰고 다니는 관상이라던 허총관의 말도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나는 호흡을 길게 내쉬었고···


風吹草不動. 풍취초불동. 바람이 불어도 수풀이 흔들리지 않는다.


세 명의 신형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사이로 바람같이 파고들었다. 갑작스레 눈 앞에 내가 나타나자, 임풍 부자와의 격전 와중에도 내내 흐트러짐이 없었던 색목인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이 푸른 눈의 외국인에게 뭐라고 인사를 건네야 할까. 한 때 열심히 공부하긴 했었는데 완전 까먹고 잊던 인사말이 갑자기 생각났다.


“How do you do?!?!”


대답은 들을 것 없이 나의 발끝이 녀석의 턱을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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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남궁세가 (1) +1 24.06.17 930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0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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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4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 반강 (2) +2 24.06.08 1,087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0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6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49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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