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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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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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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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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
글자수 :
308,562

작성
24.06.0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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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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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바람 잘 날 없다.

DUMMY


금화역조단이 무척이나 비싸고 귀한 단약이라고 하지만, 부유한 조가장 입장에서는 그저 내공을 늘릴 목적으로 단약을 복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얼핏 지켜본 조가장주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들의 성장이 더딘 상태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노력이든 안해봤을까. 조승지가 단약의 부작용과 숨겨진 효능, 대비책에 대하여 꽤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다만 그는 임강이 누린 것과 같은 효과를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무공이 아직 저 정도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았겠지.


또래인 임강은 자신과 확연히 비교될 정도로 강한데다가, 하필 자신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한 그 귀한 단약을 먹고 한단계 더 멀리 달아나 버린 셈이 되었다. 조승지가 마냥 임강을 축하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속사정이나 기분 따위야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호인청과의 비밀약조 이후 중요한 고객으로 지위가 격상한 임강을 위해 나는 아낌없이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참으로 축하드리오. 이제 대적할 적수가 없겠구만!”


“감히 이 소협에 비할 바가 되겠습니까? 이제야 염주홍단공(炎州紅丹功)의 오단계에 진입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단혈맹 무리를 상대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조승지를 의식하여 최대한 자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저 때문에 지체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어서 출발하시죠!”


사실 전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순전히 임강 한 명의 의지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미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의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으니 이제 더이상 나의 도움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를 돕지 않기에는 호인청이 약속한 금액이 너무 컸다···


대식이 다시 말을 재촉하여 달리기 시작하자, 훤히 광채까지 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 염주홍단공이라는 것은 그대의 가전무공이오? 몇단계까지 있는 것이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던 임강이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팔단계에 이르면 대성(大成)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면 부친께서는?”


“저희 부친께서는 칠단계이십니다. 대성에 이른 것은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도 몇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팔단계 중에 칠단계라면 거의 최절정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얼마 전까지 사단계에 불과했던 임강의 수준만으로도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기 어려워보였으니, 아직 만나지도 못한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강할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친께서는 그대보다 갑절은 더 강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뭐 그리 걱정을 안해도 되겠구만! 좀 경치도 구경하면서 쉬엄쉬엄 갑시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계라는 것은 내공의 경지를 이르는 것일 뿐, 강함의 척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요. 한창 때에 비하면 저희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고 계시지요”


임강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고 낯빛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얼마 전 고향에서 떠나보낸 늙은 중원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눈빛, 내 손을 꽉 맞붙잡던 쪼글쪼글한 손을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 한켠이 찌르르 했다. 비록 내 진짜 아버지는 아닐지언정,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모셨던 오년의 세월이었다. 후회없이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던가.


나는 임강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대의 마음, 내가 누구보다 잘 아오. 걱정마시오! 이 몸이 꼭 그대를 부친께 데려다줄테니”


“소협···!”


우리 둘은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내내 창밖을 바라보던 조승지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지랄났군, 지랄났어. 아주 쌍으로 지랄이 났어”


이 녀석은 왜 갑자기 시비를 건단 말인가. 위기에 처한 임강을 돕는 것을 보고 이제 사람다운 구실 좀 하려는가 싶었는데, 잠잠하던 지랄병이 또 도진 모양이었다.


“어이, 할 말 있어?”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자 녀석이 우리 쪽을 돌아보며 빈정거렸다.


“두 얼간이가 아주 쿵짝이 잘 맞는구나. 축하하고··· 혹시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얘기해라. 마부석에라도 가 있을테니”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차 천장이 낮은 탓에 자세는 좀 안나오긴 했지만, 팔짱을 낀 채 위협적으로 녀석을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너 말 잘했다. 지름길 안내하려고 따라왔다는 녀석이 왜 마차에만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거냐? 할 일 안해? 괜히 비련의 주인공인 척 분위기만 잡고 있을래?!”


조승지까지 벌떡 몸을 일으키자 좁은 마차 안이 가득 찼다. 우리 둘의 거친 콧김이 서로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임강은 또 한번 맞부딪힐 기세인 우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조승지가 씩씩대며 말했다.


“네놈이야말로 임강을 위하기는 개뿔. 돈에만 관심있는 녀석이 왜 부득부득 따라오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몸께서 똑똑히 보았다. 호인청이 너에게– 읍읍읍!!!”


나에게 입이 막힌 조승지가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자리에서 엉거주춤 엉덩이를 떼던 임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호인청? 호 숙부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 일도 아니오. 아무래도 그대 내공이 늘어나니까 질투에 눈이 멀어 헛소리를–”


“임강, 네 놈도 마찬가지다! 네놈 아버지가 늙고 기력이 쇠하다니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읍읍읍!!!”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 일단 혈도라도 짚어놓으려고 했지만, 입을 한 손으로 막은 상태인데다 녀석이 워낙 거칠게 반항하는 터라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우리를 떼어놓기 위해 임강까지 비집고 들어오자 엎치락 뒤치락 엉망이 되어가던 순간···


쾅—!!!!


마치 산사태라도 난 듯한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마차에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다.


우리 셋은 사이좋게 부둥켜 안은 채 마차 안을 뒹굴었다.



***



아무래도 산이 무너진 것이 맞았나 보다.

마차 지붕이 쩍 갈라지며 커다란 바위덩이가 우리 한복판에 떨어져내렸다. 그 뒤를 이어 크고 작은 바위들이 쉴틈없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바쁘게 손과 발을 놀려 바위들을 쳐내고 나니, 부서진 지붕 틈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절벽 위에서 원숭이떼 마냥 빼꼼 머리를 내밀고 우리를 내려다보는 한 무리 무인들도 보였다.


“기습이다!”


누군지는 알 길이 없지만, 대충 전형적인 사파무리들 마냥 사악하고 못되게 생겨먹은 이들이었다. 절벽 위에서 바위를 굴러 떨어뜨렸던 이들이 이번에는 대뜸 활을 들이밀었다. 산적처럼 생긴 우두머리가 팔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쏴라!”


하늘을 가득 메우며 화살비가 쏟아져내린다. 그 와중에 조승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단혈맹에 합류한 사파무리들이다. 백리세가에게로 합류하는 길을 차단하고 있는거야!”


“...이 설명충아! 암튼 알아서 막아!”


임강과 조승지는 내버려두고 너덜너덜해진 지붕 판떼기를 뜯어 마부석으로 훌쩍 넘어갔다. 널찍한 판떼기를 파초선(芭蕉扇) 마냥 크게 휘두르자 말들과 마부석 쪽으로 쏟아지던 화살들이 후드득 박혀들었다. 그런데 마부석에 앉아있어야 할 대식이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누군가에게 당하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대식아! 대식아!!!!!”


걱정스러운 마음에 크게 외쳤는데,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대식 녀석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기 있는데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대식이 어느새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 몸을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요 며칠 사이 험한 꼴을 많이 당해서인지 이제는 기습을 당하고도 당황한 기색이 없다. 할 말이 없어 엄지손가락 한번 추켜 세워주고, 다시 한번 판떼기를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조승지와 임강이 마차 위에 훌쩍 올라서며 각기 검과 팔뚝으로 화살들을 막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허접한 조승지이지만 그래도 화살로부터 제 한 몸 보호할 정도는 되고, 임강 또한 몸 상태가 온전히 회복되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조승지의 비싼 보검도, 임강 팔뚝에 메어져 있는 철판도 내가 휘두르는 파초선의 위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급한 대로 손에 잡은 것이 화살이나 암기류 따위를 막아내기에는 최적의 병기였던 셈이다. 내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줄기 줄기마다 화살들이 기운을 잃고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좋구나!!”


내친 김에 판떼기를 둘로 쪼개 양 손에 나눠잡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랐다. 두 날개를 퍼덕이며 바람을 일으키니 절벽에서 아무리 화살비가 쏟아져내린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風醉舞演舞. 풍취무연무. 바람에 취해 춤추고 또 춘다.


일종의 부채춤이라고나 해야할까. 이리저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나름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좌,우, 위, 아래 방향을 가리지 않고 바람을 쏟아내며 춤추다보니 어느새부턴가 더이상 화살이 날아들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춤추던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한쪽 다리를 치켜올린 채 우뚝 멈춰섰다.

마치 비상을 앞둔 학처럼 멋들어진 자세를 취한 가운데···

사방은 고요하고,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 것이 느껴졌다.


절벽의 녀석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고,

임강은 항상 그래왔듯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그 와중에 조승지가 나를 애써 비웃었다.


“추하다, 추해!”


“......”


활짝 벌리고 있던 두 팔과 다리를 천천히 내렸다. 좀 늦었긴 했지만 팔짱을 낀 채 위엄있는 자세로 절벽 위를 노려보았다.


“어이, 더 해볼테냐?”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은데, 의외로 절벽 위에 있는 녀석들은 아직도 도망가거나 물러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유심히 우리를 지켜보던 두목 녀석이 허리춤에 매여 있던 고둥을 입에 대고 뿌우— 커다란 소리를 내었다.


곧 두두두 땅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앞쪽의 숲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절벽 위에 매복해 있던 녀석들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 이 사악한 무리들··· 내공이 상승한 효과를 시험해 볼 기회가 바로 찾아왔군!”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임강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그의 얼굴이 붉게 불타오르며 주먹을 불끈 쥐더니,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버릴 기세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우아아아아아아!!!”


지축을 뒤흔드는 커다란 함성에 임강이 우뚝 멈춰섰다. 함성이 들려오는 것은 흔들리는 나무숲 뿐 아니라 좌우 양 옆, 심지어 우리가 지나쳐온 온 뒷쪽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숫자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무인들이 숲과 길을 가득 메우며 달려왔다. 급기야 절벽 위에서는 또 다시 녀석들이 화살을 재며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빙글- 뒤로 돈 임강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마차로 달려왔다.


“이런 놈들 따위에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달려서 돌파하죠!”


허겁지겁 자리에 앉은 대식이 말들을 재촉했다. 절벽에서는 화살이 쏟아지고, 사방에서 흉악한 무인들이 창과 검을 신나게 흔들어대며 우리를 쫓았다.


아! 어쩜 이 몸의 팔자는 이렇게도 바람 잘 날이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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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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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7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6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41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5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9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7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9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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