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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새글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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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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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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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작성
24.06.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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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혹 (3)

DUMMY

백리연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야기가 끝난 줄도 모르고 멀뚱 멀뚱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멍청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여기까지에요”


“흠···”


나는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남궁세가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백리연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그 사람과 남궁세가 전체에 대한 거대한 의혹이었다. 그녀가 남궁휘에게 홀라당 넘어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 정도까지 진지하게 의심할 만한 근거가 되는지는 솔직히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내 반응이 신통치 않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남궁휘 공자는 우리가 걱정되어 그 먼거리를 단숨에 달려왔다고 했었죠. 하지만 그들이 도착해서 한 일이 무엇이었나요? 사파세력과 혈투를 벌이는 우리들을 보고 그들이 한동안 관망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에요”


문득 몸을 숨긴 반강을 찾아내려 전장의 기운을 더듬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내가 발견했던 것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한데 엉켜있는 기운들과는 관계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평야를 관조하고 있는 꺼림칙한 기운. 아마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이 남궁휘 녀석의 기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적들의 세력을 두 쪽 내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반강을 바로 죽이자고 주장한 것도 남궁휘 녀석이구요. 그 사실들만으로도 그들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는 사라지는 것 같은데··· 어쩌면 더 멋지게 등장할 순간을 찾느라 망설였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저같은 훌륭한 심성을 가지신 분들이야 이해할 수 없으시겠지만, 치졸하고 비겁한 인간들은 가끔 그러기도 합니다”


“그것 뿐이 아니에요. 남궁휘 공자에게 어느 쪽이냐고 물었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바로 남궁휘 공자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무인이었단 말이죠. 누구보다 남궁휘의 생각과 의도를 잘 아는 자였을텐데, 그 자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어느 쪽이냐는게 그저 방향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대는 직접 듣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 그리고 분위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그녀가 단호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돌이켜보면 저를 구했던 순간도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에요. 외딴 숲길에 아무런 기척없이 홀로 나타났던 것. 그것도 정확하게 저 혼자만이 살아남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를 알아보는 듯 했던 매부리코 사내의 말들, 그들의 입을 막으려는 듯한 태도···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이곳 전장에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요?”


백리연은 이미 스스로가 내린 결론에 도달해있는 듯 했다. 나는 대체로 그녀의 말을 존중하는 편이었지만, 그녀가 잔뜩 열을 올리며 털어놓는 이야기에는 딱히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왜 그런 것일까?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질려있기 때문이다.

신물이 나기 때문이다.

이곳 무림에서 벌어지는 온갖 의혹들과 음모들을 더이상 알고싶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이런 감정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왜 그런 의혹들을 그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어제 다들 모여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한참동안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려웠던거죠”


나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두려움.

그녀에게서 들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던 단어이다.


“그 자가 혹시나 정말··· 정말 제 생각대로 단혈맹과 손을 잡은 세력일까봐, 혹여나 자신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우리에게 손을 쓸까봐 두려웠어요”


“......”


“그 자의 무력은 가늠할 수가 없어요. 부랑자들을 단칼에 도륙한 것을 보면, 평야의 전투에서는 오히려 그가 힘을 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미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남궁휘와 그가 이끄는 남궁세가 무인들을 절대 이겨낼 수 없었을 거에요. 저는 더이상 제 가족들, 함께 자라온 이들, 마음을 나눈 이들을 잃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요”


자신의 두려움을 털어놓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하루밤 사이 수많은 주변인들을 잃어야 했던 그녀이다. 애써 굳센 척,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그녀의 정신과 마음이 온전할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제 의심이 깊어질수록 더욱 더 태연하게, 그리고 그를 믿는 듯이 행동할 수 밖에 없었죠. 그가 반강을 데려가려 할 때에도, 임풍 단주와 얼굴을 붉힐 때에도 그의 편을 들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에요. 만약 임풍 단주같은 분에게 저의 생각을 말했다면 그 성격에 가만히 있었겠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당장 멱살을 잡고 네놈의 속내를 밝히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겠죠”


앞 뒤 가릴것 없이 목소리부터 높이는 임풍의 모습을 상상한 백리연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것은 절대 그가 모자라거나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솔직하고, 돌아가는 법이 없으며, 눈 앞의 부조리에 정면으로 돌파해나가는 사람 말이다.


그녀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그대에게 길게 하는지 궁금하겠죠? 그대가 이곳 무림의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말이죠”


“하하하···”


뜨끔한 나는 미처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와 만난 것은 고작 며칠이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꽤나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아니,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려 백리세가의 가주의 식객 요청을 보란듯이 거절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는 알아요. 오직 돈에만 관심있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진실로 그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정말 돈만을 쫓는 사람이었다면 그대가 어찌 이곳에서 우리 가족들을, 친구들을 대신하여 맞서 싸웠겠어요? 그대와 세가 앞에서 헤어질 때만 해도 나는 확신하지 못했죠. 하지만 지금은 알고있어요”


그녀가 다시 한번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숲 속에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를 얼마나 보았다고 그렇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듯이 이야기 한단 말이오”


까칠한 나의 대답에도 백리연은 상관없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해요. 하지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그대를 더 붙잡지 않고 순순히 보내드리는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


“제가 언젠가 한 말을 기억하시나요? 因緣是前途未卜之事. 인연시전도부지사.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고. 그대는 바라는 대로 곧 이곳을 멀리 멀리 떠나게 되겠지만, 분명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올거에요. 저는 알 수 있어요”


확신에 차있는 그녀에게 일부러 퉁명스레 답했다.


“중원이 무슨 동네 장터도 아니고··· 내가 이 동네를 떠나고 나면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대는 내 잘생긴 얼굴을 미리미리 많이 봐놓으시는 것이 좋겠소.”


백리연이 배꼽을 잡고 깔깔대며 웃었다. 내 기분이 나빠질 때까지.


때 아닌 아침 산책은 끝이 났다. 그녀는 다시 산을 내려가고, 나는 다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아직도 술에 취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자빠져있을 불쌍한 청춘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무성한 나무 사이로 멀어져가던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멀리 멀리 도망가보세요!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는지 한번 보기로 하죠”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막무가내이다.

아침 햇살이 그녀가 가는 길을 환하게 비췄다.



***



어느 마을의 외진 구석, 숲과 맞닿아 있는 곳에 위치한 낡은 객잔.


남궁휘가 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자, 객잔 문이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열렸다. 객잔 안을 삼엄하게 지키던 무인들이 말없이 목례했다. 남궁세가 무인들이 통째로 빌린 객잔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적막했다.


그는 텅 빈 객잔의 식탁에 앉아 홀로 뒤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있게 식사를 하던 그가 마침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안절부절 그를 바라보던 주방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에게 연신 인사했다.


남궁휘는 객실로 올라가는 대신 마구간 쪽으로 향했다. 말들이 쉬고 있는 곳 근처에는 자그마하고 허름한 창고가 있었다. 입구를 지키던 남궁휘의 그림자가 옆으로 물러나며 드르륵 문을 열었다.


남궁휘는 무심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한쪽 손이 잘려나가고 얼굴은 처절하게 으깨진 반강이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하얗던 의복은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의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밧줄이 단단하게 동여 매여져 있었다.


“나가라. 주변 반경을 싹 비울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인 그림자가 문을 닫고 나갔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은 자그마한 촛불 하나가 밝히고 있었다. 남궁휘는 작고 삐끄덕거리는 의자에 앉은 채 널부러진 반강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사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을 지키던 무인들이 모두 수 장 밖으로 멀어져갔다.


남궁휘는 주변의 기척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반강 또한 비참하게 엎어진 자세 그대로 아무 미동이 없었다.


남궁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식은 한참 전에 돌아왔을 텐데. 그렇지 않나?”


반강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두 눈을 껌벅거리던 그가 곁눈질로 남궁휘를 확인하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낭비할 시간이 있나? 어서 빨리 무림맹에 날 가져다 바쳐야 할 것이 아닌가”


입 안이 모조리 터져나간 듯 그의 목소리는 어눌하고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남궁휘가 빙그레 웃었다.


“이런,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고있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멀쩡했던 모양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의식을 차리고 있었던 거지?”


반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궁휘는 고개를 젖힌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음··· 백리세가 녀석들과 대화할 때 무림맹을 언급했었던 것 같군.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네놈의 그 덩치 큰 수하가 너를 구출하려다 비참하게 죽었을 때부터 말이야. 확실히 몸을 빼낼 수 있다고 확신할 때까지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건가?”


“......”


남궁휘가 허리를 숙여 반강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한 뒤 속삭였다.


“역시 듣던대로 교활하기 짝이 없군. 삼사(三蛇)”


큭큭큭.

널부러져 있던 반강이 소리내어 웃었다.

그는 밧줄에 꽁꽁 매여져있는 몸을 힘겹게 뒤집었다.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함몰되어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한참을 끅끅대며 웃던 반강이 퀭한 눈으로 남궁휘를 바라보았다.

촛불에 흔들거리는 남궁휘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가 낮게 속삭였다.


“자네야말로 듣던대로야. 오사(五蛇).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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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5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7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1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6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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