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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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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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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60
추천수 :
1,423
글자수 :
30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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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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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혹 (1)

DUMMY


곤히 잠들어있는 친구들을 내버려두고 그녀를 따라 외딴 숲길을 걸었다.


“벌써 세가에서 사람들이 도착했어요. 이 소협의 활약 덕분에 다행히 세가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조가장의 생존자들도, 팽도혁이 이끄는 적기방도 모두 우리를 도우러 와있어요”


그제서야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의 차림새가 눈에 띄었다. 세가에서 사람들이 올 때 갈아입을 옷들과 이런 저런 물건까지 함께 챙겨온 모양이었다. 옷을 말끔히 갈아입고 나니, 어제의 상처입고 지친 듯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여러모로 더 누추해진 내 모습과는 확실하게 상반된 모습. 나는 아직까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의 청춘일 뿐 아니라, 어제의 음주로 인해 싸구려 술냄새까지 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왠지 모르게 신경쓰이는 마음에 살짝 거리를 벌리니, 그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추며 나를 돌아보았다.


“술 냄새가 고약해서 이정도 거리가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같이 걸어요”


“네!”


재빨리 다시 거리를 좁히자 그녀가 품 속에서 천에 둘러싸인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감사의 표시에요. 한번 풀어보세요”


절그럭거리고 묵직한 것을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조심스레 천을 끌러보니, 화려하지는 않지만 딱 보기에도 품질이 좋아보이는 가죽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요? 좀 더 번쩍이는 것을 기대했나보죠?”


“잘 아시면서 왜··· 아닙니다! 너무 마음에 드는군요”


나는 재빠르게 가죽신을 내 꼬질꼬질한 맨발에 끼워넣어 보았다. 가죽신은 이상할 정도로 내 발에 꼭 맞아서 끈을 동여매거나 억지로 구겨넣을 필요가 없었다. 신을 신고 바닥을 굴러보는 나를 보며 백리연이 싱긋 웃었다.


“크기가 잘 맞아서 다행이군요. 세가에서 챙겨온 물건 중에 괜찮은 것이 있길래 가져왔어요”


어제밤 그 정신없고 사방이 어두워진 가운데에도 내가 신을 신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니, 문득 백리연이 참으로 세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부터 내 발의 크기에 맞는 가죽신을 따로 챙겨 이곳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겠는가. 황송한 마음에 거듭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저야말로 그대에게 몇 번을 감사해도 부족하죠. 다시 한번 고마워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백리연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종종 눈을 너무 똑바로 마주치곤 했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나는 어색함을 떨쳐내기 위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어제는 어떻게 된겁니까? 저희와 헤어지고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죠?”


단지 백리연이 위기에 빠졌던 일을 물어보는 일만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남궁세가 무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뒤부터는 묘하게 이상한 일이 많았다. 남궁휘의 행동에 발끈한 나를 빠르게 제지한 것, 묘하게 남궁세가의 편을 드는 듯한 그녀의 행동까지.


백리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맞아요. 하지만 모두에게는 아직 밝힐 수 없었던 이야기가 따로 있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그대와 헤어진 그 직후의 상황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해요”


“너무 긴 이야기라면 다음 기회에···”


여느때처럼 내 말을 한 귀로 흘린 그녀가 또다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호인청이 이끄는 오금상단에게 이진평을 무사히 빼돌릴 것을 부탁한 이후의 일이었다.

아버지 백리율 가주에게 합류하기 위해 천통표국 쪽으로 바삐 달리던 백리연은 곧 끝도 없이 밀려드는 사파무리들에게 포위당했다. 그녀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일당백의 기세로 싸웠지만 적들의 규모는 끝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조차 포기하고 깊은 숲길을 따라 달려야만 했다. 정처없이 달리다보니 점차 그녀의 일행에게 따라붙는 세력들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사파무리들을 따돌렸다고 생각되는 순간,

활로를 찾아 선두에서 정신없이 달리던 그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녀가 뚫어내려는 방향을 예측이라도 한 듯, 각기 칼과 도끼를 어깨에 걸친 두 명의 부랑자가 여유있는 모습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색은 초라하고 제멋대로지만 눈빛은 날카로웠고, 보기 드물게 커다란 병장기를 가볍게 걸치고 있는 모습 또한 범상치 않았다.


따분한 표정으로 나무에 기대어 있던 매부리코가 천천히 몸을 풀었다.


만두귀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녀석이 코를 후비적 거리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귀여운 아가씨. 어딜 가시나?”



***



“-잠깐!”


나는 황급히 백리연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외쳤다.


“그 놈들이 그···그··· 소저를 뭐라고 했다구요?”


백리연이 아미를 찌푸리며 답했다.


“왜 하필 이 부분에서 끊는 거에요? 현장감을 되살리기 위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더이상 제 말을 끊지 마세요”


“...네. 계속하시죠”



***



백리연은 바싹 긴장하여 검 손잡이를 꽉 부여잡았다. 최근 며칠간 이어진 강행군,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지속된 전투로 인해 체력은 바닥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 또한 첩첩산중. 눈 앞에 나타난 이 두명의 부랑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고수!’


이 정도의 위압감을 내뿜는 고수라면 분명 이름이 알려졌을 터인데, 커다란 칼과 도끼를 쓰는 이 자들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사실 정체가 중요한 상황은 아니다. 어떻게든 이 자들을 피해 달아나거나 제압해야 하는 상황.


멈춰 선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자, 껄렁한 자세로 서있던 부랑자들이 서서히 양 옆으로 간격을 벌렸다. 그들의 자세는 매우 독특했다. 매부리코 사내가 든 커다란 칼은 땅에 질질 끌렸고, 만두귀 사내가 들쳐 멘 거대한 도끼는 그의 몸에 완전히 가려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백리연은 검 끝을 세운 채 가만히 그들을 노려보았다. 뒤늦게 도착한 사파무리들이 둥글게 그녀와 백리세가의 무인들, 그리고 두 부랑자를 에워쌌다. 사파 무리들 또한 부랑자와 한 패거리는 아닌 듯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뒤만 잘 막아줘. 이들은 내가 상대한다”


무인들에게 지시한 백리연이 앞으로 나서자 칼을 질질 끌던 매부리코가 피식 웃었다. 만두귀가 콧구멍을 후비던 손을 옷에다 닦으며 말했다.


“어라, 귀여운 아가씨치고 제법–”


파팟!


백리연이 지체없이 검을 찔러넣으며 곧장 격투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검이 첫번째로 향한 곳은 커다란 도끼를 등에 메고 있던 만두귀였다. 무거운 도끼라 파괴력은 뛰어나도 자연히 속도는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은 너무나도 신속하고 괴이했다.


만두귀가 마치 넘어질 것처럼 몸을 앞으로 숙이니 도끼가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백리연이 방향을 비틀어 검을 찔러넣었지만, 그는 도끼를 지렛대로 활용해 자연스럽게 몸을 튕기며 그녀의 검을 피해냈다. 다시 한번 빙글 돌아온 도끼가 그녀가 있던 곳을 쾅- 내리찍었다.


백리연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도끼가 땅을 찍은 순간 사방으로 비산하는 돌멩이와 나무조각들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아주 잠깐 소매를 휘저었는데, 그 사이 만두귀가 또 다시 쇄도하며 도끼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도끼가 어깨를 스치는 순간, 그녀의 검이 번쩍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올랐다. 두 남녀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만두귀가 자신의 귓볼을 손으로 더듬었다. 납작했던 귀가 잘려나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매부리코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었고, 이제 외로운 만두귀가 된 사내가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이런 빌어먹을 년이···”


“아까는 귀엽다며? 다음엔 반대편이야. 아니면 그 더러운 코를 먼저 잘라줄까?”


백리연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절대 무사하지 않았다. 도끼가 그저 스쳐지나갔을 뿐인 왼쪽 어깨가 마비라도 된 듯 욱신욱신거렸다. 만두귀가 또다시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며 달려들었다.


매서운 기세로 회전하는 도끼를 피해내며 간간히 검을 찔러넣는 형태의 전투가 지속되었다. 백리연은 호기롭게 둘 모두를 상대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전투가 시작되고 나니 만두귀 한명을 상대로도 쉽지 않았다. 매부리코 사내는 아직 칼을 들어올리지도 않은 채 그들의 전투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 성질 급한 사파인들이 백리세가의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난전이 일어나고, 좁은 비탈길에 어지러이 함성이 울려퍼졌다. 그 사이 백리연에 의해 귀 한쪽이 마저 잘려나가게 생긴 만두귀가 다급히 외쳤다.


“임마! 언제 도와줄거야? 이 년 보통이 아니다”


매부리코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휴, 시끄러워”


그가 칼을 땅에 질질 끌며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백리연 쪽이 아니었다. 백리세가의 무인들과 사파 무리들 쪽으로 다가서는 매부리코를 바라보며 백리연이 다급히 외쳤다.


“어딜 가는거냐? 네 상대는 나다!”


하지만 매부리코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슬슬 걷는 듯 했던 그가 차츰 속도를 높혀 달려가더니, 어느 순간 갑작스레 몸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격전지 한복판에 나타난 매부리코가 맹렬히 회전하며 그 거대한 칼을 붕— 휘둘렀다. 칼의 궤적을 따라 사파무리들과 백리세가 무인들의 몸이 한꺼번에 갈라져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피가 번쩍 치솟았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무인들의 몸이 굳은 순간, 그의 칼이 다시 한번 붕 허공을 갈랐다.


“안돼—!”


백리연이 만두귀를 내버려두고 다급히 몸을 날렸다. 검을 들었던 이들은 검과 함께 쪼개졌고, 가까스로 피해냈던 이들도 그의 다음 칼날을 피해내지 못했다. 그녀가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하늘 높이 치솟았던 피의 분수가 땅으로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아찔한 피의 장막 사이로 불쑥 칼이 튀어나왔다. 백리연이 황급히 칼을 검으로 쳐내는 사이, 그녀의 옆구리에 거대한 도끼의 옆면이 와서 충돌했다.


쾅-


거대한 충격과 함께 그녀의 몸이 날아가 바위에 쳐박혔다.


“으헤헤헤! 감히 나를 앞에 두고 등을 보여?”


만두귀가 요란하게 웃었다. 백리연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검을 잡아보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단 한 대 적중당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몸 전체에 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갓 태어난 송아지마냥 홀로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모든 무인들을 도륙한 매부리코가 칼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만두귀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거 참 대단한 아가씨로군. 탐이 난단 말이야”


잠깐 사이 피투성이가 된 만두귀가 자신의 귀에서 흐르던 피를 그녀의 옷깃에 닦아냈다. 그의 눈빛이 살기와 알 수 없는 욕심으로 번들거렸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려 할 때, 백리연이 갑작스레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이빨이 그의 코를 물어뜯었다.


“으아···으악—-!!!!”


퍽! 퍽! 퍽!


만두귀의 주먹이 백리연의 복부에 틀어 박혔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단단히 깨문 이빨을 풀지 않았다. 보다 못한 매부리코가 달려들어 그녀를 뻥 걷어찼다. 백리연은 또 다시 수 장을 날아가 쳐박혔다.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만두귀 녀석의 더러운 콧잔등을 퉤 뱉어냈다.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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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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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5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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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36 반강 (4) +2 24.06.10 1,039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1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7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0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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