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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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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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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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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562

작성
24.06.10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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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반강 (4)

DUMMY


무림인들은 본질적으로 불나방같은 존재들이다.


모두를 압도할 수 있는 최강자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숙적을 만나고 패배하여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그 최강자조차 항상 안심하고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날의 몸상태나 상대방과의 상성에 따라 어처구니없게 헛발질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무튼 무림인이랍시고 칼을 옆구리에 찬 순간부터는, 죽음이라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성급히 달려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이 빡빡머리 임풍만 해도 그렇다.

쓰러지면 쓰러질수록 더 강해져서 돌아온다는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애초에 쓰러질 일이 없으면 제일 좋은 것이고, 한번 쓰러졌을때 얌전히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집에 돌아가 손주들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이 최선 아니겠는가.


하지만 임풍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짐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것 마냥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색목인의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자신이 결국 불타오르고 말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더 크고 환한 불덩이에 자신의 온 몸을 던지는 불나방이 되어.


반강이 그를 비웃었다.


“너 혼자서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해. 애송이 녀석의 힘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악– 퉤!


임풍이 땅에 붉은 가래침을 뱉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군. 개수작의 냄새가 나!”


반강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임풍은 반강과 그의 뒤에 시립해있는 서생무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놈들은 이 젊은 친구를 조금이라도 더 관찰해서 약점을 찾아보려는 것 아니냐. 그 얄팍한 수작을 내가 모를 줄 알아?!”


반강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헤- 벌렸다. 잠시 할 말을 잊었던 그가 부채로 입을 가린 채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임풍은 색목인의 어깨 너머로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찔리니까 답을 못하는군. 그게 아니라면 그 무거운 궁둥이를 떼고 이리 직접 나와라”


가까스로 웃음을 그친 반강이 가소롭다는 듯이 대꾸했다.


“내가 언제 싸울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딴 어설픈 도발로 나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끝까지 비겁한 녀석”


“······”


“너같은 부류가 딱 질색이다. 항상 뒤꽁무니에 숨어 뭔가를 꾸미고, 관찰하고, 평가질하고··· 뒤늦게 주인공인 마냥 나타나서 잘난 척하는 행태들··· 부하들이 피를 뚝뚝 흘리는 동안 꼴사납게 혼자 고고한 척 의자에 앉아 으시대는 꼴이라니! 두고 보아라. 아마 네놈이 처참하게 찌그려지더라도 아무도 너를 위해 슬퍼하거나 복수하겠다는 놈이 없을걸? 이 수많은 이들 중에 너를 진정으로 따르는 녀석이 몇명이나 되느냐? 한 명? 두 명? 설마 니 뒤에 있는 저 책벌레들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임풍의 목소리가 드넓은 평원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천통표국이 위치한 이곳 평원에는 반강이 동원한 사파무리들의 세력이 아직도 한가득이다. 그러나 임풍의 말을 듣고 나서인지는 몰라도, 그들 무리의 눈에 비춰지는 감정은 명확한 목적의식이나 투지라기 보다는··· 반강과 단혈맹이라는 조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하루종일 이어진 싸움에 대한 피로감일 뿐이었다.


아마 그들 중에는 오늘의 이 싸움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는 녀석들이 태반일 것이다. 한가로이 앉아서 부채질하고 손가락질만 해대는 저 서생 녀석과 책사들 무리에 대한 반감 또한 적지 않을 터였다. 만약 나같았으면 진즉에 줄행랑을 쳤을 것이다. 하다못해 녀석의 의자라도 확 빼버리던가.


반강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녀석은 따로 있었군. 자기 한 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면서 말이야”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불사조라고. 얌전히 기다려라. 곧 이 불쌍한 꼭두각시 녀석을 부셔버리고 네놈 허리도 반으로 접어줄테니”


몸을 젖혀 의자에 기댄 반강이 입꼬리를 올렸다.


“꿈도 크구나. 좋다. 네놈이 비두사를 꺾어낼 수 있다면 내가 직접 너를 상대해주지. 단, 누구의 도움도 받지 말아야만 한다”


“좋아!”


임풍이 커다랗게 박수를 쳤다.


“방금의 대화를 잘 들었겠지. 너희들은 이 싸움에 절대 끼어들지 마라. 알겠느냐?


그의 시선이 조승지, 대식, 임강을 차례로 거쳐 나에게로 향했다. 임풍의 눈 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그의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던 나는 결국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은 그의 의지를 쉽사리 꺾을 수 없을 것 같다. 혈도를 짚힌 임강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제 승부는 색목인과 임풍, 둘만의 것이 되었다.


적어도 임풍이 생각하기엔 그럴 것이다.


반강이 정말 둘의 싸움에 아무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하들의 목숨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녀석이기 때문에 정말 끼어들지 않을 수도 있고, 원체 음흉한 놈이니까 몰래 수작을 부릴 가능성도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임풍이 위험한 순간이 되면 언제고 뛰어들어 그를 구해낼 생각이었다.

애초에 나는 무림인이 아니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그들의 약속 따위를 존중하거나 지켜줄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임풍은 너덜너덜해진 상의를 성가시다는 듯이 뜯어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터질듯한 근육이 위협적으로 불끈거렸다. 이제 그의 몸은 손과 발뿐이 아니라 몸통과 목, 머리 끝까지 온통 붉은 색이 되어 있었다.


“오라!”


임풍이 거칠게 외치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이 먼저 색목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내내 아무 감정없이 냉정한 듯 보였던 비두사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팔의 근육을 부풀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돌격을 맞이하자, 곧 후퇴란 없는 무식한 두 존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달려드는 임풍을 향해 비두사가 커다란 주먹을 내질렀다. 임풍은 그의 주먹을 피하기는 커녕 그것을 피해 번쩍이는 정수리를 들이밀었다. 쾅- 주먹과 머리가 부딪혔는데 기세에서 밀린건 도리어 비두사였다. 코뿔소같이 주먹을 받아낸 임풍이 주먹을 휘둘렀다. 붉은 기운이 담긴 그 주먹을 비두사 또한 피하지 않고 맞섰다.


아까 전의 나와 비슷한 한발자국 거리의 싸움이었으나 양상은 매우 달랐다. 각기 잿빛 기운과 붉은 기운을 손에 두른 짐승들이 서로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두드렸다. 각자가 지닌 힘도 대단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는 맷집 또한 대단했다.


특히 임풍은 정말 아까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임강과 함께 싸울 때는 마치 힘을 아끼기라도 했던 것 마냥, 지금은 혼자서 비두사를 상대하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위험해지는 순간을 대비해 언제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좀 저렇게 싸우지···”


내 중얼거림을 들은 조승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염주홍단공은 몸의 기운을 한계치까지 끌어내는 극양의 무공이다. 임풍 단주가 특히 저렇게까지 기를 끌어내 싸운다는 것은 더이상 뒤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의미야”


“어이, 저 재수없는 책사무리들을 따라하는 건가? 남의 문파 무공을 꽤나 잘 알고 있군?”


내 질문에 잠시 흠칫했던 조승지가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나를 저런 책벌레들과 비교하지마라. 아버지께서 저 가문의 무공을 사들이는 것을 검토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일 뿐”


“...무공을 사들여?”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변노인이 나를 가르쳤듯, 돈을 내고 무공을 배우는 것은 이곳 중원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문의 무공 자체를 통째로 사들인다는 이야기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조가장을 백리세가 같은 무림세가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이 우리 아버지의 야심이었다. 염주홍단공은 임풍 단주같이 조그마한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가전무공치고는 그 수준과 파괴력이 독보적이니, 우리같이 돈은 넘치지만 이렇다할 독문무공이 없는 가문이 딱 찾아 해메던 무공이라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임풍이 거부한건가?”


“거부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가문이 세력을 더 키우지 못하고 일인전승(一人傳承)에 가깝게 유지되어 오던 이유가 있더군. 아무나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어. 애초에 저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모든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그 세세한 조건을 맞추기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설사 그 조건을 맞췄다 하더라도, 유달리 가혹한 수련과정을 버텨내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지”


조승지가 혈도가 꽁꽁 짚혀있는 임강을 흘깃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슬하에 자식을 보지 못한 임풍 단주가 온 중원을 뒤져 찾아낸 후계자가 바로 저 임강이다. 핏줄이 섞인 것도 아니고, 극악한 확률을 뚫고 모든 조건들을 다 만족하는 아이를 찾아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더군. 처음에 임풍 단주가 우리에게 소개할 때만 하더라도 볼품없이 깡마른 아이였지. 의지할 곳 없이 혼자 구걸하고 다니던 고아였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떤 불평 불만도 없이 그 가혹한 수련을 버텨냈다고 하더군”


“음. 아무래도 네 녀석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로군”


조승지가 잠시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떴다.


“...아무튼 그가 아니었으면 임풍 대에서 염주홍단공의 맥이 끊어졌을 지도 모른다. 어떤 일에도 절대 물러서거나 빠지는 법이 없는 임풍 단주가 왜 유독 임강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을 잃는지에 대한 이유가 그것에 있지”


임풍 부자에게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하긴 불나방 중의 불나방, 상남자 중의 상남자인 임풍이 유독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싸움은 점차 더 격화되고 있었다. 둘은 마치 이 싸움을 위해 태어난 것 마냥 모든 힘을 다해 상대방을 두드리고 있었다.


임풍은 고통도, 나이도 잊은 것 마냥 무아지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붉어진 몸에서 언뜻 언뜻 화염같은 것이 어른거리고, 맨들맨들한 그의 정수리에서는 심지어 하얀 아지랑이같은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분화구가 되어가는 듯한 모습.


입을 쩍 벌린 채 임풍을 바라보던 대식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속삭였다.


“그나저나 저렇게 몸에 열이 많아서야··· 저 무공을 쓰는 자는 머리카락이 남아나질 않겠군요!”


조승지와 내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대식이 임풍의 맨들맨들한 머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무릇 몸의 화기를 잘 다스릴 수 있어야 머리카락을 보전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렇게 머리에서 아지랑이까지 일어나는데 어떻게 머리카락이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일리가 있군. 임풍 단주가 원래부터 대머리였나?”


내가 조승지에게 물었다. 조승지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머리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틀림없군, 틀림없어! 쓰면 쓸수록 대머리가 되는 무공이라니··· 강해질 수 밖에 없는 무공이로다!”


나의 너스레에 조승지가 흥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멍하니 임풍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곧 깊은 한이 담긴 넋두리를 했다.


“저렇게 강해질 수 있다면 머리카락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나?”


나와 대식이 냉큼 답했다.


“중요하지”


“중요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승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중요한 것 같군”


우리 셋의 시선이 동시에 임강에게로 향했다.

하루종일 거칠게 뒹군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돋보이는 하얀 피부와 곱상한 얼굴.

저 준수한 외모를 가진 미청년이 곧 대머리가 될 운명이라니···


그 와중에 임풍과 색목인의 전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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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남궁세가 (2) +1 24.06.18 882 20 12쪽
43 남궁세가 (1) +1 24.06.17 930 20 12쪽
42 피의 냄새 +1 24.06.16 941 21 11쪽
41 하얗고 붉은 것들 +4 24.06.15 969 19 12쪽
40 알량한 자비심을 버리고 +2 24.06.14 975 20 12쪽
39 격전 +2 24.06.13 983 21 12쪽
38 날카로운 검 끝에 +2 24.06.12 956 23 12쪽
37 주인이 되어주마 +1 24.06.11 985 21 12쪽
» 반강 (4) +2 24.06.10 1,040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1 27 13쪽
32 바람 잘 날 없다. +1 24.06.06 1,175 25 12쪽
31 금화역조 +1 24.06.05 1,192 22 12쪽
30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2) +1 24.06.04 1,237 25 12쪽
29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일 (1) +1 24.06.03 1,251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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