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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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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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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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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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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궁세가 (1)

DUMMY



한번 전세가 기울어지고 나자 그 뒤로부터는 일방적인 학살극이었다.


백리세가와 그 우방 가문들의 무인들은 하루종일 시달린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도망치는 적을 향해 끊임없이 검과 칼, 창을 휘둘렀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피아의 구분이 어려워질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전투는 반강제적으로 끝이 났다. 분명 결과만 본다면 승전이었지만 백리세가 무인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시체의 산 위에서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함께 했던 동료들이 대부분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는 경우에 말이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율은 오늘 싸움의 승패를 사실상 결정지은 인물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직 말 위에서 내리지 않은 채, 주변 무인들의 시체를 꼼꼼히 확인하고 마무리를 하고 있는 인물 - 남궁세가의 대공자이자 차기 가주, 남궁휘였다.


자신에게 걸어오는 백리율 가주를 뒤늦게 발견한 남궁휘가 재빨리 말에서 뛰어내렸다. 종종걸음으로 마주 걸어온 그가 백리율을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흠 잡을데 없이 공손하고 완벽하게 예를 갖춘 모습이었다.


“후배 남궁휘가 백리가주님을 뵙습니다”


백리율 가주는 달빛에 비춰진 남궁휘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던 것이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남궁휘는 지금의 백리담이나 백리연보다도 어렸지만, 앳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중함과 날카로움을 갖추고 있어 그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었다.


강산이 변할만큼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남궁휘의 존재감은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단순히 삼십대의 나이- 한명의 사내, 그리고 무인으로서 절정을 향해가는 나이가 되어서가 아니었다. 최근 부쩍 건강이 악화된 그의 아버지 남궁옥를 대신해 몇년간 그 거대한 세가를 이끌어온 그는, 이미 무림 내 그 어떤 문파의 장문인이나 지도자와도 견줄만한 무게감을 내뿜고 있었다.


평야에 나타나자마자 그가 보여준 신위는 또 어떠했는가. 백리율은 까마득한 후배뻘인 남궁휘를 이전처럼 마냥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정말 고맙네. 그대들이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는···”


백리율이 말꼬리를 흐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하루종일 지속해온 휘하무인들은 규율을 따질 겨를 없이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있었다. 모두 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살아남아준 것에 감사해야할 뿐.


하지만 백리율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남궁휘를 따라 일제히 말에서 뛰어내리면서도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저 눈빛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남궁세가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어떻게 그대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건가?”


같은 안휘성에 속해 있다고는 하나, 백리세가와 남궁세가의 거리는 끝과 끝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지난 십수년의 세월에 걸쳐 남궁세가의 가세가 급격히 기울고 외부활동을 줄이게 되면서 두 가문간의 교류는 이전만큼 잦지 않았다. 때문에 긴급히 우방세력을 모으면서도 남궁세가에는 미처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백여명에 달하는 정예무인들을 이끌고 와준 것은 그야말로 뜻밖의 일이었다. 더군다나 정확히 이곳 전장에 시기적절하게 도착할 줄이야.


남궁휘가 포권을 풀지 않은 채 정중히 답했다.


“가주님께서 몇 달 전 서신에서 언급하셨을 때부터 계속 사파무리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조사하면 할수록 그 규모와 배경이 범상치 않더군요. 특히 그들의 움직임 뒤에 옛 혈교의 잔당이 주축이 된 무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 첫번째 목표로 백리세가를 일거에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다는 것 또한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허...!”


백리율 가주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가 주변 우방들 뿐 아니라, 전 무림의 유력 세가들과 주요 문파들에 최근 사파들의 움직임에 대해 경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림은 넓고 그만큼 우환거리 또한 많으니,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세심하게 신경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들도 지극히 최근에야 눈치챘던 움직임을 남궁세가에서 그 전에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몇번씩이나 전서구를 보냈지만 답이 없으시더군요. 마음이 급해 휘하 무인들을 데리고 무작정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서 그들이 수작을 부릴지는 알 수 없었는데, 천만다행으로···”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남궁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던 남궁가의 무인 몇몇이 조심스레 누군가를 부축하여 걸어왔다. 백리율의 뒤에 서있던 백리담과 임강이 앗- 비명을 질렀다.


“연아!”


쏜살같이 튀어간 백리담과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남궁가의 무인들로부터 의식없는 백리연의 신형을 넘겨받았다. 임강은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길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연아, 어찌된 것이냐. 정신을 차려 보아라!!”


백리담이 어찌나 거칠게 백리연을 흔들어대는지 그녀를 넘겨준 남궁세가의 무인들조차 당황할 정도였다.


“거친 전투를 겪었던 모양입니다. 푹 안정이 필요할 것인데···”


그의 말마따나 그녀의 몸 이곳 저곳에는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백리담은 남궁휘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리연의 뺨을 찰싹 찰싹 두드렸다. 모두가 걱정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가운데, 서서히 백리연의 눈이 떠졌다.


창백한 얼굴에 붉어진 뺨. 잠시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백리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대뜸 그녀의 아버지에게로 뛰쳐들었다.


“아버지–!!!!!”


평소 결코 무뚝뚝한 편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격하게 감정을 드러낸 적 없는 백리연이다. 백리율 가주는 소중한 그의 막내딸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늘 강인한 줄로만 알았던 백리연의 가늘게 떨리는 어깨에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가족과 세가 사람들을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남궁휘가 신중한 어투로 말했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일단 백리세가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던 중, 천만다행으로 사악한 무리들의 공격을 받던 백리연 소저를 우연히 만나 구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다른 휘하 무인들은 모두 사파 무리들에게 당했던 터라, 결국 백리연 소저만을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백리율 가주가 침음을 흘렸다. 백리연을 호위하기 위해 함께 남아있던 무인들 또한 모두 그의 가족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모두 당했다는 것도 뼈저리게 가슴아픈 사실이거니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그들을 눈 앞에서 잃었어야만 했을 백리연의 심정, 그리고 그녀가 겪었을 고초가 그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아닐세. 그대가 최선을 다했음을 알고있네. 남궁세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겠는가”


한 무리의 지도자에게는 슬픔에 잠겨있는 것 또한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백리율은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남궁휘에게 감사를 표했다.


호흡을 가다듬은 백리연이 비로소 그의 아버지에게서 떨어지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백리연은 자신을 둘러싼 생존자들을 차례차례 바라보며 감격의 눈빛을 교환했다. 자리에 없는 이가 왜 보이지 않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남궁휘가 주변을 둘러보며 백리율 가주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상하군요. 저희가 도착했을 때 적들은 이미 지휘하는 자도 없이 모래알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우두머리는 없었습니까? 이 많은 무리들을 조종하던 인물이 있었을 텐데요”


“왜 없었겠는가? 나도 처음 보는 인물이었네. 자신의 이름을 반강이라고 하더군. 그 자를 잡아낸 시점에 자네들이 시의적절하게 도착해서 적들을 분쇄하기가 용이했던 것 같네”


남궁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님께서 이미 적들의 수괴를 베어내셨었군요. 대단합니다. 제가 한발 늦은 셈이었군요”


“아닐세. 그를 잡은 것은 내가 아니라···어디갔지?”


백리율은 누군가를 찾으려는 듯 고개를 돌려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사방이 어둑하고 백리연의 주변에 사람들이 한데 뭉쳐있어 그가 찾는 인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찾는데 실패한 그가 저 뒤쪽을 가리켰다.


“아무튼 그 자는 아직 죽지 않았네. 상처가 중해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헛!”


백리율 가주의 당황한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반강을 묶어놓은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곳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백리담과 임강을 비롯해 모두의 표정이 급변했다.

겨우 숨만 붙어있던 신세였던 그가 어찌 감쪽같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단 말인가.


“저기다!”


누군가가 저 멀리 어둠 속을 가리켰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띌 정도로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희끄무레한 반강의 신형을 어깨에 짊어진 채 비틀거리며 도망가고 있었다.


그것도 도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남몰래 반강을 빼어낸 사내 또한 몸이 성치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열살 아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그리고 힘겹게 걸어가던 거구의 사내.


사람들의 떠들썩한 외침을 들은 그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급히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속도는 굼벵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반강을 포기한다면 속도는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반강을 꼭 붙들어맨 채 필사적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멈춰라!”


백리담과 임강, 그리고 다른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그를 잡기 위해 뛰쳐나갈 때···


가만히 사내가 도망치는 방향을 바라보던 남궁휘가 불쑥 검을 빼어 쏘아냈다.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탓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쐐애액—


마치 벼락과도 같이 날아간 검이 여지없이 사내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퍽!


그 검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검에 관통당한 거구의 신형이 한참을 날아가 땅에 쳐박혔다. 그가 메고 있던 반강의 신형 또한 속절없이 땅을 굴렀다.


“···!!!!”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은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남궁휘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하하, 이번엔 제가 조금 더 빨랐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백리율 가주와 백리담, 임강을 비롯한 백리세가의 무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표정을 굳혔다.


남궁휘가 단번에 죽여버린 인물은 그들을 하루종일 괴롭혔던 반강의 수하 - 그 중에서도 존재감이 남달랐던 색목인, 비두사이다. 반강과 단혈맹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분명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지만, 방금 전 그가 보인 손속과 언행은 다소 섬뜩한 측면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한없이 공손하고 예의바르던 남궁휘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그에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자 어깨를 으쓱해보인 남궁휘가 색목인의 시체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네 이 녀석. 이게 무슨 짓이냐?”


굵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남궁휘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두터운 목을 칭칭 감싸고, 온 몸에 가득한 상처가 더 그를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인물.

반짝 반짝거리는 민머리에 터져나갈 것만 같은 근육을 가진 중년 무인.


오금상단주 임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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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반강 (4) +2 24.06.10 1,040 24 12쪽
35 반강 (3) +1 24.06.09 1,064 22 13쪽
34 반강 (2) +2 24.06.08 1,088 24 13쪽
33 반강 (1) +2 24.06.07 1,153 2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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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금화역조 +1 24.06.05 1,193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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